외전)2차대전 한국인 캐릭터 한병태 4
한병태는 일본 군사 학교의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졸업만 하면 가족도 먹여살리고 덕선이와 결혼도 할 수 있어!'
병태는 97식 전차의 운전과 지휘 수업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군사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것은 켄타 녀석이었지만, 켄타는 전술 수업 시간에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병태 녀석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병태는 졸업을 하면 조선에서 장교로 근무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때, 친구 히로가 병태에게 물었다.
"너는 졸업하면 어디서 근무할거냐?"
하루토가 말했다.
"빨리 진급하려면 만주 쪽에서 근무하는게 좋을 거야! 병태 너는 성적도 좋으니 충분히 거기서 근무할 수 있을걸?"
병태가 말했다.
"난 조선에서 근무하고 싶네."
"뭐라고?"
"첫 해는 조선에서 근무하다가 만주로 가려고?"
"아니, 나는 계속 조선에서 근무하고 싶네."
"자네같이 실력 좋은 녀석이 왜?"
그 때,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타이세이가 말했다.
"실전 전투가 겁이 나는 것 아닌가?"
"뭐라고?"
타이세이는 기백이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대 일본 제국군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가장 큰 영예이고 전사로서의 목표네! 그런데 안전한 조선에서만 근무하겠다? 너 같은 놈은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자격이 없다!"
병태는 타이세이에게 아무 대꾸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잘난 야스쿠니 신사 네 놈이나 묻히라고..난 장교 봉급으로 먹고 살면 그만이야.'
다음 날, 군사 학교에서는 졸업을 앞둔 생도들한테 희망하는 근무지를 적어서 제출하도록 했다. 생도들이 수근거렸다.
"빨리 진급하려면 첫 해 근무지가 중요해!"
"어차피 고생할거 미리 갔다오는게 나을 거야!"
병태는 당연히 1순위에 조선에서 근무하는 것을 희망한다고 적었다. 근데, 어제 모찌를 하도 먹은 탓인지 배가 슬슬 아팠다.
'으으...화장실 가야겠다...'
병태의 옆자리에는 켄타가 앉아 있었다. 병태는 켄타에게 자신의 지원서를 주고는 말했다.
"이거 제출해줘.."
병태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켄타는 병태의 지원서를 흘끔 보았다.
'이 녀석...'
일주일 뒤, 병태는 최전선 국경선 쪽으로 배치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에에?'
히로가 말했다.
"이 자식 욕심 없는 척 하더니 결국!"
하루토가 말했다.
"나중에 대대장 연대장까지 가고 싶다는 거지? 네 놈은 실력 좋으니까 충분히 가능할걸세!"
타이세이는 이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조선인 녀석...'
병태는 새하얗게 질렸다.
'마..말도 안돼...'
병태는 군사 학교 시절 동안 절대 튀지 않고 조용히 보냈다. 하지만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뒤집어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병태는 근무지를 변경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일본 제국군 장교는 병태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군인으로서의 용기와 희생 정신은 전혀 없군..역시 조센징답군! 이런 녀석을 대일본 제국군의 장교로 써먹어야하다니...'
병태는 식은 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제..제발...'
"추가 서류만 제출하면 근무지 변경이 가능할걸세."
'다행이다!'
며칠 뒤, 병태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이 모두 병태를 반겼다.
"어이구!! 병태야!!"
"형아!!"
"아이고 내 새끼..."
어머니는 병태를 안으며 흐느꼈다. 병태는 동생들을 위해서 맛있는 화과자와 비싼 고기를 사 왔다.
"어머니, 아버지, 저 왔습니다!"
일본의 군사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도 와서 병태를 축하했다.
"우리 마을에 장군감이 나왔구나!!"
어머님은 병태가 사온 고기로 맛있는 밥을 차려주셨다. 병태는 일본 군사 학교의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고 졸업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역시 버틴 보람이 있어!'
동생들은 어머니가 바늘로 기워준 옷을 입고 있었다.
'조만간 네 놈들 옷도 모두 새 옷으로 사줄게!'
오랜만에 와 본 집은 왠지 작게 느껴졌고, 여기저기 수리가 필요해보였다.
'계속 이런 집에서 살았구나..'
"내일 제가 집 고치겠습니다."
"멀리서 왔는데 그냥 푹 쉬다 가려무나."
"아, 덕선이는 잘 있습니까?"
아까 전에 마을 사람들이 왔을 때도 덕선이는 보이지 않았던 것 이다. 병태는 남은 장학금으로 덕선이를 위한 작은 장신구도 하나 선물로 준비했다.
병태의 말에 부모님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 때, 눈치 없는 동생 녀석이 말했다.
"덕선이 누나 시집갔...악!"
어머니가 동생의 허리를 쿡 찔렀다. 병태가 숟가락을 툭 떨어트렸다. 어머니, 아버지 둘 다 병태의 눈을 피했다.
"이게 무슨..."
병태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까무라라는 일본인이 덕선이네 집에 지참금까지 준다고 해서...한 달 전에 시집 갔다."
어머니가 말했다.
"덕선이네 집이 많이 가난하잖니..덕선이보다 이쁜 여자하고도 결혼할 수 있을거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소위로 임관된 히로, 하루토, 타이세이는 들뜬 마음으로 열차에 탑승했다.
히로가 말했다.
"섬나라였던 일본 제국이 이렇게 대륙으로 영토를 확장하는걸 보면 가슴이 벅차올라!"
하루토가 말했다.
"일본 제국의 국경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궁금하지 않나?"
"우리가 그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걸세!"
타이세이가 외쳤다.
"대일본제국을 위해서라면 난 기꺼이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겠네!"
일본 군인으로 미어터지는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히로가 병태를 쳐다보고는 수근거렸다.
"저 녀석 괜찮을까?"
병태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멍하니 열차에 서 있었다. 병태는 조선으로 근무지를 변경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하루토가 말했다.
"쟤는 조선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했는데 왜 우리랑 같이 가는거지?"
켄타가 수근거렸다.
"사실 내가 저 녀석 지원서를 변경했네."
"뭐라고?"
"쉬잇!"
켄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난 저 친구의 실력을 아주 높게 평가하네! 조선인이라고 해도 실력만 좋으면 충분히 일본 제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켄타가 병태에게 다가간 다음 어깨 동무를 하며 외쳤다.
"자네도 천황 폐하를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자랑스러운 대일본 제국군 장교가 되는 걸세!"
그렇게 열차는 머나먼 길을 지나 국경 인근으로 향했다. 신문에는 병태의 기사가 실렸다.
[대일본 제국군은 조선인에게도 천황 폐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
병태가 추가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좋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가혹 행위와 똥군기는 군사학교를 졸업해도 여전히 극심했고, 이런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는 실연의 아픔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갓 소위로 임관한 병태의 동기들은 엄청나게 고생해야 했다. 자기 전, 병태의 동료 히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질질 짰다.
"흐어엉...흐엉..."
하루토가 히로에게 말했다.
"좀만 참자고. 원래 신고식은 초반에만 하잖아."
"그것 때문에 우는게 아닐세! 내가 뒤지게 고생하는건 괜찮네! 하지만 어머니가 날 걱정하시네! 흐으엉!!"
옆으로 드러누워있던 병태도 눈이 뜨거워졌다. 병태는 어머니에게 편지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한편, 병태의 어머니는 통곡하고 있었다.
"아이고...이 멍청한 새끼..."
아버지가 말했다.
"녀석은 금방 돌아올거야..우릴 두고 가겠어?"
동생들이 울기 시작했다.
"형아...흐아앙..."
그로부터 몇 년 뒤, 대위로 진급한 한병태 중대장은 참호 속에서 곤충 더듬이 같은 잠망경을 통해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할하강을 바라보았다.
'저 땅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을까?'
넓은 세상을 경험한 병태에게 덕선이는 이미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조각으로 가슴 한 켠에만 남아 있었다.
'입대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 시골 촌구석이 전부인줄 알았겠지..'
일본군의 참호는 어마어마하게 길게 뻗어 있었다. 한병태는 더 넓은 곳으로 뻗어가고 싶다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법한 열망을 느꼈다.
'유럽은 어떨까? 유학 갔다온 장교들도 있다던데 부럽다..서구는 얼마나 발전한거야?'
그 때, 최근에 대령으로 진급한 오사카 사다오 연대장이 참호 속을 걸어왔다. 병태는 재빨리 사다오 연대장에게 경례를 했다. 사다오는 병태의 능력을 높히 평가했고, 그 덕분에 병태는 중대장으로 보임할 수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쿠리바야시 타타미치는 이제 막 소장으로 진급하여 사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오사카 사다오가 병태에게 말했다.
"쉬게."
사다오는 잠망경 속을 들여다 보았고 병태가 말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현재 소련군 기계화 부대 2개 사단 정도가 이동하고 있네."
'???'
병태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현재 일본군은 거대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소련군의 전차와 무기가 일본군보다 발달했다는 것은 병태도, 다른 일본 장교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이 물자를 지원하려면 돌출부를 우회해서 650키로미터를 기동해와야 했다. 병태가 속으로 생각했다.
'소련 놈들이 그렇게까지 기동해서 오지는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사다오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놈들의 BT-7 전차, BA 장갑차 총 800대 정도가 이동해오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탄약이나 식량을 운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트럭도 최소 수 천대가 이동하고 있지. 정찰에 따르면 놈들의 진지에는 거대한 엄체호들이 있고, 그 안에 물자를 비축해두고 있지."
'엄체호?'
"쿠리바야시 소장님은 놈들이 그 엄체호 안에 전차를 엄폐하고 포탑만 내밀어 포를 쏠 수도 있다고 하더군."
"아군 보병이나 전차병이 선제 공격을 했다간..."
"맞네. 불에 뛰어드는 나방꼴이 되겠지."
옆에 있는 한 병사는 38식 소총을 들고는 사다오와 병태의 말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병태가 물었다.
"호..혹시 놈들이 선제 공격을?"
"놈들은 야포도 이 쪽으로 운반해오고 있네.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근데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아닐세."
병태는 손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소련 놈들은 항공 전력도 막강하다..정면 대결이 일어난다면 관동군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상부에서 선제 공격하라는 좆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이었다. 사다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며칠 전에 사단장께서 직접 동경에 보고를 하러 가셨네. 일단은 명령을 기다리게."
그 날 저녁, 병태는 히로, 하루토, 켄타, 타이세이와 함께 참호에 장교 대피호에서 저녁을 먹었다. 커다란 멸치와 단무지가 들어있는 도시락이었다. 타이세이가 말했다.
"일본 최대의 적은 소련이라고 보네. 이 야만스러운 자들은 대일본 제국의 영토 확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네."
다른 젊은 장교가 말했다.
"소련이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양 쪽에 전선을 형성해야 하네. 놈들은 인구가 워낙 많고 공업 기술력도 상당히 발달해 있네."
다른 녀석들은 식사를 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병태는 조만간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치하 전차는 놈들의 전차보다 약하다...나는 내 부대원들이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도록 해야 한다...하지만 어떻게?'
다음 날, 쿠리바야시 소장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공병들에게 대규모로 대전차 지뢰를 매설하도록 하고, 병사들에게는 종심 깊게 참호를 파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히로가 말했다.
"방어를 준비하는군."
타이세이가 투덜거렸다.
"그냥 먼저 놈들을 쳐야하는건데! 대일본 제국군의 대규모 전차 기동을 놈들에게 보여줘야 하네! 일본군의 정신력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하다!"
켄타가 말했다.
"정신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네. 객관적으로 놈들의 기갑 부대 화력이 더 강하네. 그렇기에 대전차 지뢰를 깔아서 놈들 전차와 장갑차를 유인하고 격파시킨 다음에 반격을 꾀하는거지!"
병태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놈들의 우세한 기갑 전력을 분쇄시킬 수 있겠지..하지만 놈들 항공 전력은 어떻게?'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쿠리바야시 사단은 이전까지 일본군 명령 체계와는 달리 독일 방식의 임무형 지휘체계를 적용하여, 하급 장교들에게 더 많은 전술적 권한을 보장하였다. 여전히 병태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켄타는 이를 몹시 반겼다.
"좋았어!! 내 중대가 소련놈들 전차를 몇 대나 격파할지 기대가 되는군!!"
하지만 병태는 이게 부담되기 시작했다. 중대원들은 중대장인 병태를 믿고 따르고 있었다.
'중대원들 목숨이 나에게 달렸다니...'
엿 같은 참호에서 지내야 했고, 매일 잠도 제대로 못잘 정도로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잘 계실까? 내가 보내주는 돈으로 밥은 다들 잘 먹고 있겠지?'
병태는 자신의 97식 치하 전차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문득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그리고 첫사랑 덕선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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