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오토
밤 9시, 오토는 알콜 램프 하나만이 켜진 어두운 집 안에서 탄약 재고와 관련하여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불빛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커튼도 완전히 닫아 둔 상태였다.
램프에는 온갖 날벌레들이 꼬여 있었고, 이미 오토의 군복 여기저기에는 이가 들끓었다. 씻고 싶었지만 개울가에 갔다가 저격 맞을 수도 있어서 목욕은 요원한 일 이었다.
현재 부대가 점령한 마을에는 수도 시설도 없었고, 남녀 같이 쓰는 혼탕 사우나가 있었다. 그런데 소련군이 우물에는 전부 독을 풀고 갔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독일군은 힘들게 근처 개울가에 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다른 부대에서도 식수가 부족한 것은 큰 문제였다.
아직 오토의 부대에는 없었지만 이질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 때, 조종수 마티아스 하사가 문을 열고 말했다.
"소위님, 정비반에서 우리 애기 정비 완료했습니다."
전차병들은 모두 자신이 타는 전차를 '우리 애기'라고 불렀다.
오토가 말했다.
"빨리 들어오게. 불빛이 세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마티아스 하사에게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사실 병사들 모두에게서 냄새가 났다. 오토는 램프를 끄고는 자신의 전차병들을 보러 갔다.
에밀, 알프레트, 요하네스는 천막 안에서 고체 알콜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고체 알콜로 불을 피우면 연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다.
"알콜 다 떨어져가는데?"
"나 고체 알콜 남은거 있어."
에밀은 수저 겸용 포크, 반합, 그 외 온갖 잡동 사니가 들어있는 배낭을 뒤졌다.
"여기!"
그 때 에밀의 가방에서 불칸 자네스 콘돔이 툭 떨어졌다. 독일군은 민간인과 성관계는 금지였지만, 이렇게 병사들에게는 콘돔이 배급되었던 것 이다.
"쓸 일도 없는데 이딴건 왜 주는거야?"
에밀은 콘돔을 풍선처럼 불어보았다. 알프레트가 말했다.
"휴지없으면 손가락에 끼고 똥이나 닦으라는거지."
이 삼인방은 그 말에 키득거렸다. 그 때, 비르타넨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내가 뭘 가져왔나 보라고."
비르타넨은 농가에서 슬쩍한 당근 몇 개를 가져왔다. 이 녀석은 오토 소대에 포수로 핀란드 출신이었지만 독일어에도 능한 엘리트 집안 출신이었다. 전차병들은 당근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맛있군."
"스프에다 집어넣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
병사들이 배급 받는 스프는 묽고 맛도 없었다. 그렇기에 병사들은 근처 농장에서 당근이건 양파건 채소를 하나라도 슬쩍할 수 있다면 토막내서 자신이 배식받은 스프에 첨가해서 먹고는 하였다. 하도 피곤하다보니 당근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대다수가 17살에서 19살 정도 나이인데 먹을 것이 너무 부족했던 것 이다.
전차병들의 손은 떼와 기름 투성이였지만 손을 씻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보병보단 낫지 않냐?"
"그 새끼들은 행군하면서 졸아야 해!"
그 때, 천막이 열리고 오토가 들어왔다. 당근을 씹던 전차병들은 모두 오토를 보고 얼어붙었다.
"그 당근 어디서 구한 건가?"
잠시 뒤, 오토는 농가에 가서 당근 값을 지불하고 사과하고 돌아왔다. 비르타넨은 오토에게 대가리를 한 대 맞았다.
오토가 비르타넨에게 말했다.
"마을 열 개가 있으면 그 중에서 우리가 점령 가능한 마을은 두 개 정도일세. 나머지 8개 마을은 점령할 수 없는 걸세. 민심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나?"
"죄송합니다!"
오토는 그 핀란드 출신의 비르타넨에게 담배를 한 대 주며 물었다.
"자네는 왜 독일군에 지원했나?"
17살의 비르타넨이 담배를 물며 말했다.
"소련 새끼들 목 따려고 지원했습니다!"
비르타넨은 오토 소대의 소속한 4호 전차의 포수로 조준 실력이 기가 막혔다. 이 녀석은 얼마 전 전투에서 소련군 전차 4대를 격파하는 것에 성공했다. 오토가 말했다.
"조만간 자네는 훈장을 받을 걸세."
비르타넨이 말했다.
"제 아버지는 절대 입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결국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순간 오토의 표정이 굳었다. 오토는 병사들을 격려한 다음 장교들이 머무는 건물로 돌아가서 지푸라기와 담요로 만든 임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오토는 전쟁에서의 생활이 벌써부터 좆같이 느껴졌다.
'하나도 생산적이지 않잖아!!'
전쟁터에서는 좆같은 중노동 시간이 45프로, 지루하게 기다리는 시간 50프로, 4프로는 존나게 비위생적인 일상, 1프로는 뒤질지도 모르는 전투의 순간이었다. 몇 번의 전투로 체감해보건데 죽을지, 살지, 내일도 내 팔다리가 제 자리에 붙어있을지는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했다. 포탄 파편이 빗겨가야 했고, 장비가 멀쩡하게 돌아가야 했다.
군사 학교에서 오토는 전술을 짜는데 있어서 대단히 능했다. 실전 전투 훈련을 하면 늘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실력을 발휘할만한 기회는 오지 않았던 것 이다.
오토가 소속된 중대에는 퀴벨바겐이 한 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농가에서 옷 한 벌 훔치고 퀴벨바겐에 음식 넣어놓고 탈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오토는 조만간 훈장을 받게 되는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도 이런걸 모두 이겨내고 전쟁 영웅이 되셨다! 좀만 더 버티자! 계급이 올라가면 그때부턴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거야!!'
오토는 겁이 많지만 사격 실력이 좋은 무전수 요하네스를 불러서 전차 부대가 기동하기 좋은 길을 찾기 위해 같이 야간 정찰을 할 것을 명령했다. 요하네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하필 나야!!! 이건 보병 시켜야 하는거 아닌가?'
오토가 말했다.
"전차가 기동하기 좋은 길을 알기 위해서는 보병의 정찰만으로는 부족하다! 포탄 구덩이가 있는 곳, 땅이 질퍽해서 기동하기 힘든 구역은 모두 기억해둬야 한다! 이번 정찰이 끝나면 자네는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걸세!"
오토와 요하네스는 제각기 MP38 기관단총을 한 자루씩 챙겼다. 예비로는 발터 P38 권총이 있었다. 그렇게 둘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며 지형을 살폈다.
급경사가 있는 곳으로 전차가 기동하다가 과부하 걸려서 모터가 타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앞에도 내리막길이 있는데 모르고 그냥 가다가 선두 전차가 전복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형 정찰은 필수였다.
오토는 달빛을 보면서 방향을 가늠했다. 야광 나침반을 차고 갔다간 소련군한테 발각될 수도 있었기에 계급장, 수첩, 시계와 함께 모두 두고 나왔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오토는 허리를 숙인 상태로 발 소리도 조심스럽게 요하네스와 은밀하게 이동했다. 누군가가 주의깊게 살폈다면,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시커먼 두 개의 형체를 발견했을 것 이다.
요하네스는 속으로 오토를 원망했다.
'망할 놈의 소대장!!!'
그럼에도 요하네스는 계속해서 오토의 뒤를 쫓아가며 나름 지형을 열심히 살폈다.
'이 쪽에 내리막길이 있군...'
오토는 지형을 확실히 머리 속에 기억해두고 나서는 요하네스에게 약속한 벌레 소리를 내서 신호했다.
'이제 돌아간다!'
그 때, 20m 쯤 앞에서 러시아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볼가강!!"
오토와 요하네스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말고 멈추었다. 다시 러시아어가 들렸다.
"안 들리나? 볼가강!!"
그 러시아어로 외치는 소련군의 목소리는 벌벌 떨고 있었다. 요하네스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렸다. 소련군이 속으로 생각했다.
'잘못 들었나?'
똥 싸고 온 소련군 동료가 물었다.
"뭔가?"
"잘못 들었나봐!"
수풀 속에 엎드린 요하네스는 MP38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었다.
'으...으아아...흐아..'
오토도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끄어..끄으으..으아..'
'저 새끼들 왜 안 쏘는거지?'
어둠 속에서 담배불이 보였다. 소련군 녀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이었다.
"나 똥 싸고 올게!"
소련군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오토와 요하네스는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기어갔다. 유심히 봤다면 소련군은 어둠 속에서 덤불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 이다. 가죽으로 된 군화가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오토와 요하네스는 온 힘을 다해 천천히 기어갔다.
뿌지직! 뿌직!
소련군의 똥 싸는 소리는 여기까지 들렸다. 그렇게 오토와 요하네스는 은밀하게 차가운 어둠 속을 기어갔다. 그 때, 어둠 속에서 시커먼 형체가 오는 것이 보였다. 요하네스는 시퍼렇게 질렸다.
'가..가만 있으면 그냥 지나갈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하네스는 이 충격적인 상황에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오토가 하도 당당했기 때문에 요하네스는 MP38을 시커먼 형체를 향해 긁지도 않았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오토가 외쳤다.
"볼가강!"
어둠 속에서 소련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닌그라드!"
그렇게 소련군은 오토를 지나서 걸어갔다. 잠시 뒤, 오토는 다시 엎드리고 요하네스와 함께 천천히 기어가다가, 아까 봐두었던 지름길을 통해 냅다 달려서 진지로 복귀했다. 그리고 오토가 중대장한테 보고했다.
"놈들 진지와 암호를 알아냈습니다!!"
잠시 뒤, 소련군 경계병은 앞에서 시커먼 형체가 오는 것을 발견했다.
"볼가강!!"
"레닌그라드!!"
"들어와!"
시커면 형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경계병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 정찰조 돌아왔는데?'
"이봐, 아까 정찰조 들어오지 않았?"
순간 누군가가 그 소련 경계병을 뒤에서 잡고는 목에 칼을 그었다. 한편, 진지에서 오토와 여러 장교들은 소련군의 포병 진지가 있던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뒤, 그 포병 진지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쿠과광!! 콰과광!! 쿠광!!!
포병대의 탄약 보관소가 폭파된 것 이었다. 독일군의 기갑 척탄병들은 은밀하게 탄약 보관소 근처에 10분이 지나면 폭발하도록 시한 장치를 설치하고, 정해진 경로로 도주하고 있었다.
중대장의 명령이 헤드폰에서 들려왔다.
"전진!!"
그렇게 어둠 속에서 독일군의 전차 부대가 소련군의 포병 진지를 향해 전진했다.
트드드 트트트 트드드 트릉 트릉
어둠 속에서 전진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 소대의 전차들은 앞서 가고 있는 전차의 후미등을 보고 대형을 유지하며 전진했다.
"중대 정지!! 사격!!"
퍼엉! 쿠과광!!
"명중!! 연속 장전!! 계속 갈겨!!"
시커먼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소련군의 야포가 독일군의 전차 부대를 향해 포를 발사했다.
퍼엉!!
쉬이잇!!
무전스 요하네스는 계속해서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득 드드득
기관총 총알이 2시 방향에 어떤 곳에 있는 철판에 맞아, 번쩍이는 불꽃을 냈다. 요하네스가 외쳤다.
"2시 방향에 뭔가 있습니다!!"
그 때, 2시 방향에서 포탄이 발사되면서 불을 뿜었다.
퍼엉!!
포탄은 오토의 전차 부대를 넘어서 뒤에서 착탄했다.
쿠과광!!
오토가 외쳤다.
"2시 방향!! 발사광 보이냐!! 고폭탄 발사!!"
"목표 확인!!"
"장전 완료!!"
"발사!!"
쿠과과광!!
그렇게 오토가 속한 부대는 소련군의 포병 진지를 점령했고, 소련군 포병 장교가 갖고 있던 지도판과 수 많은 야포들을 노획했다.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