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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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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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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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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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Act 37. 마음의 치료사 - (1)

DUMMY

서예나.

올해로 28살의 4년 차 배우로, 24살에 데뷔하던 때만 하더라도 밝고 상큼한 과즙미를 뿜어내며 주목을 받았던 배우이지만, 그것은 어느덧 옛날 말이 되었다.

데뷔 3년 차가 되고 나서부터 현재까지.

잇따른 흥행 실패로 그녀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무서워요.”


급상승한 인기의 역효과였다.

매일 같이 달리는 이유 없는 악플과 성희롱.

조언이라는 핑계로 무수히 날아드는 악의의 감정은 그녀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게 만들고 말았다.


“그때부터였어요. 배역에 몰입이 안 돼요.”


경계심이라는 이름의 벽은 사람들로부터 거리감을 만들었고, 마음으로부터의 상처는 그녀의 모습과 태도마저 차갑게 바꿔버렸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을 잃어버리니 연기에도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였다.

사람에 대한 상처에서 비롯된 공포는 배우로서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솔직히 자신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몰입]과 [공감]의 재능이 경계심의 벽을 부수고 차가운 마음의 벽 안에서 잊고 있었던 감정을 되살렸다.

덕분에 서예나는 배우로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배우로서 제대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도와주세요.”


그녀의 마음에 한 번 공감했기 때문일까?

서예나가 겪고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는지, 이런 속내를 감춘 가면 뒤에서 홀로 어떤 삶을 보내왔는지.

그렇기에 이런 임무가 나타난 것일지도 몰랐다.


- 긴급 임무 : [가면] -

내용 : 상처 입은 그(녀)의 [가면]을 부수고 본래의 모습을 일깨우시오.

보상 : 4000코인 및 활약에 따른 추가 보상.

힌트 : [마녀], [감정], [일그러진 팬심]

* 실패 시 작품의 평판이 극도로 하락하게 됩니다.


상범이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긴급 임무.

하지만 상범이와 그녀는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달랐다.

상범이가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에 두려워했다면, 서예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고 분위기가 차갑게 변한 것이다.


‘쉽지 않네.’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상처 입히지 않을 방법과 그 사실을 인지시키면 바뀔 수 있다.

당장 상범이만 보더라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한창 주가를 갱신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람에 의해 입은 상처는 단순히 말로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범이에 대한 임무였던 [교정]에 비해 [가면]이 보상 코인이 2배인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이요?”

“물론이죠. 선배님이 잘되어야 작품도 잘 되는걸요.”


임무를 떠나서도, 서예나의 회복은 내게 정말 중요했다.

여주인공인 서예나는 내 인생에 첫 연애 드라마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핵심적인 존재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니 일단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 볼까?


***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한다.

단적인 예로 연인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또 다른 연인을 만나 그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이다.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저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예나를 보며 나는 빙긋 웃음 지었다.

서예나는 감정을 잊은 것이 아니다.

단지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상황에서 특정 감정을 일깨워주고 표현을 독려한다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그러한 추측을 바탕으로 우리는 인적이 극히 드문 작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관은 왜요?”

“다른 작품을 보다 보면 그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잖아요?”


웃으며 대답하자 서예나는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내가 고른 작품은 요새 한창 유명한 로맨스 영화인 <새 시작>이란 영화였다.

감미로운 배경 음악 덕분에 더 몰입이 되고 잔잔하면서도 애틋한 스토리에 호평이 자자한 영화로,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설마 상대 여배우랑 이렇게 같이 보러 올 줄은 몰랐다.


상영관에는 우리뿐이다.

호평 일색인 영화라고 해도 평일 오후라는 시간대에 인적이 드문 영화관이라 그런지 덕분에 상영관을 전세 낸 기분이다.

마침 잘 됐다.


“같이 연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화 보는 건 어때요?”

“연기요?”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는 아니고, 영화에 몰입을 하는 거죠. 우리가 저 안의 주인공처럼 몰입하고 영화를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서예나는 자신 없는 눈치였다.

감정 표현에 차가워진 것 때문에 몰입하는 것에도 걱정이 되는 눈치인데, 그건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몰입에 관해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재능이 내게 있으니까.


“···가지 말아요.”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내가 남자 주인공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그녀 역시도 영화에 몰입했다.

[공감]에 의해 서로의 감정이 공유되며 우리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왜 자꾸 가려는 거예요?”

“가는 게 아니에요. 단지 내가 하는 꿈을 이룰 뿐이죠. 내가 꿈꾸는 길에 당신도 곁에 있어 줬으면 해요.”


물꼬를 터준 것만으로 서예나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었다.

마치 자신이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서예나는 대사를 치고, 그녀의 감정에 공유했다.

여주인공이 느끼는 행복과 슬픔, 사랑.

다양한 감정에 공감하며 그동안 사람을 피해 숨어있던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정신없이 몰입하고 영화에 집중하니 영화는 금세 끝이 났다.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니 서예나의 눈꼬리에는 맑은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잔잔한 여운이 그녀의 감정을 파도처럼 덮친 모양이다.

나는 서예나를 향해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고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가 지금 떠올린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많이 기다렸어요?”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

아직 울음기가 남아있는 목소리에 나는 황급히 손을 내리고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아닙니다. 영화는 어떠셨나요?”

“오랜만이에요. 그렇게 영화에 몰입해서 감정을 쏟아낸 것은···”

“재밌게 보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저기, 손수건은 제가 나중에······”


우는 모습이 창피했는지 무표정 사이로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간다.

눈물 때문에 눈가와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정도 쏟아내고 마침 시간도 됐겠다. 배 채우러 가볼까요?”


***


다음으로 찾아온 장소는 식당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긍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한 까닭에서였지만, 이어지는 서예나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식사는 제가 대접할게요.”

“네?”

“오늘 많이 도와주셨으니까요. 식사 정도는 제가 대접할게요.”


영화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서예나의 태도는 조금 바뀌었다.

무표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딩 때와는 달리 내 말에 내가 하는 말에는 전부 대답해주고 이처럼 나를 배려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곤 했다.


식사로 시작된 자리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소주라는 이름의 이슬이 투명한 잔을 채우고, 잔이 부딪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서서히 게슴츠레하게 변하는 시선 사이로, 그녀가 조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요, 오늘.”

“네?”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오늘 뜬금없이 부탁했는데도 전부 들어주고.”


술에 취한 것인지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서예나는 감춰두었던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부턴 이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자꾸 실패만을 반복하고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사람이 무서워서 감정 표현도 못 하게 되고, 점점 인형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은 연한 홍조를 그리고, 풀어진 눈동자가 감춰두었던 진심을 이야기했다.

취기에 끌려 나온 본심은 서예나의 눈동자에 물기를 자아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에게로 옆에 있던 휴지를 내밀었다.


“선배님 잘못이 아닙니다.”

“제 잘못도 아닌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매일 같이 악플에 성희롱에··· 특히 그 사람은···”


부서져 가는 무표정 사이로 서예나는 다시금 소주 한 모금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그 사람?’


뭔가 석연치 않은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그 사람이라.


“그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간 망설이던 서예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소주잔을 다시 기울이는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분명 뭔가 있다.

악플 외에도 그녀의 마음을 닫게 한 뭔가가.


***


“오늘 정말 고마워요.”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은 시간.

아파트 앞에 도착한 서예나가 꾸벅 인사를 건넸다.

겉으로 보기엔 리딩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무표정이지만,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확실히 조금 나아졌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눈꼬리가 그 증거였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오늘 일이 선배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서예나가 재차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를 향해 마주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또 말씀해주세요.”

“정말 고마워요, 지혁 씨.”


엷은 미소를 끝으로 서예나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서예나의 뒷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느 정도 감정 표현에는 성공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몰입]과 [공감]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는 슬픔과 사랑, 행복 등의 감정.

소주 한 모금으로 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 긴급 임무 : [가면] -


긴급 임무는 아직 건재하다.

단지 이것만으로 서예나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계속 케어해 준다면 언젠가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정답이 아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아까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


술김에 서예나가 엉겁결에 언급했던 ‘그 사람’

자기가 언급을 해놓고도, 되물으니 그녀는 대답을 회피했다.


‘분명 이게 끝이 아니야.’


가슴 한쪽이 찜찜하다.

내가 서예나로부터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

혹은 서예나가 내게 숨기고 있는 무언가.

술을 마실 때 튀어나온 ‘그 사람’을 해결하기 전에는 완벽하게 풀리지 않을 느낌이다.

결국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 월 1회 힌트 제공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결정적인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번 임무는 해결할 수 없다.

핵심 키워드를 손에 넣기 위해서, 나는 조용히 손가락을 두드렸다.


- 힌트 제공권을 사용하여 임무 수행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가 지급됩니다. -

- 누군가의 일기가 등장합니다. -


“일기?”


- 2014년 7월 20일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웃음만으로도 나를 치유해주는 그녀를. -

- 그녀의 웃음은 너무 사랑스럽다.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해주는 시원한 사이다 같은 모습에 하루하루에 활력이 넘쳐난다. -

- 2015년 10월 17일 그녀가 드라마에서 키스를 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입술을 맞대는데, 내 전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간 내가 보인 사랑은 보답받지 못한 것일까?

- 그녀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부디 이글을 보고 그녀가 다시 마음을 돌리고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내 것이니까. -


분위기가 점점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

나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의 내용은 비슷했다.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둥, 매일 댓글로 조언을 남겼다는 둥, 그녀의 상대 배우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둥.

마치 자신이 그녀의 연인이기라도 한 듯한 말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2016년 6월 2일 그녀를 완전히 내 것으로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다면······ -


“미친놈···”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제정신이 아니다.

누굴 죽여?


- 마침 그녀가 집을 비웠다. 오늘이 기회다. 자주 이사를 해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녀 집이 OO아파트 406호라는 것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아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빨리 그녀와 하나가 되고 싶다. 오늘 밤 그녀는 영원히 내 것이 된다. -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결정적인 힌트라고?

그렇다면 지금 서예나의 집엔······


“꺄아아!”


평화로운 밤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밤하늘을 가르고 울려 퍼지는 서예나의 비명을 쫓아서!


***


“특이한 사람이었지.”


다른 많은 말로도 표현할 수 있었지만, 특이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제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 특이했다.

다소 갑작스러운 도와달라는 말에도 그는 자기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고, 닫혀 있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으로 힘 써주었다.


“조금 데이트 같긴 하지만.”


다소 특이하게 이루어지긴 했으나, 효과는 있었다.

그동안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잊고 있었던 감정이 조금 떠올랐으니까.

게다가, 그동안 응어리졌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차마 다른 이들에게 하지 못했던 감정을 원 없이 털어놓는 데도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기탄없이 전부 들어주었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


문득 시선이 거울로 향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다.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점점 더 감정 표현에 능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내가 좀 고맙지?”


방 안쪽으로부터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발을 벗고 거실의 거울을 살피던 서예나의 몸이 덜컥 굳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밤하늘에 걸린 달빛의 커튼 사이로 누군가가 점점 다가온다.


“···다, 당신은?”


익히 아는 얼굴이다.

자신의 마음이 닫히게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이자, 그간 무수히 많은 악플과 성추행을 일삼던 악질 중의 악질!

지겹도록 스토킹을 해오던 덕에 몇 번이고 신고했던 남자다.

저 남자 때문에 몇 번이나 이사한 건데, 대체 여길 어떻게.


“드디어 이렇게 단둘이 만났네.”

“다, 당신······”

“그동안 몇 번이나 만나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네가 유명해질 수 있도록 내가 얼마나 많은 댓글을 남겼는데 그렇게 무시하고 신고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네?”


그의 입꼬리가 시뻘건 초승달처럼 길게 늘어진다.

무엇보다도 남자의 손에 있는 흉흉한 기세의 칼.

지켜보고 있던 서예나의 모습이 파르르 떨린다.


“우리 예나,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린 줄 알아?


이대로라면 저 미친놈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서예나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현관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방이라면!


“저!”

“꺄아아!”


황급히 칼을 들고 쫓아오는 남자를 피해 서예나는 작은 방에 몸을 숨겼다.

닫자마자 문고리를 닫았으니 정말 조금은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덜덜 떨리는 손을 누르고 서예나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어떻게든 신고라도 한다면···


쿵!


“히익!”


부서질 듯한 충격에 반사적으로 몸이 물러난다.


“우리 예나 아주 귀여운 짓을 하네.”


싸늘하고, 차디찬 한 마디가 문을 넘어 방안으로 파고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키패드를 두드려 보지만 하필 이럴 때 스마트폰의 화면은 제대로 눌리지 않는다.


“이 문만 부수고 보자 예나야.”

“···그렇게 부르지 마.”

“뭐?”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자신도 모르게 억눌렸던 분노가 목소리를 내었다.

분하면서도 억울하고, 정말 괴로웠던 감정이 한순간에 분노로 치환되어 남자에게로 쏟아진다.


“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왜 나한테 자꾸 이러는 거냐고!”


비명과도 같은 일갈이 그에게로 쏟아진다.

일순간 몇 번이고 가해지던 문으로의 충격이 멈춘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잠시.


쾅!


“꺄악!”


몇 번이고 버텨주던 문고리는 끝내 파편이 되어 허공에 비산했다.

흩날리는 파편 사이로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섬뜩한 칼을 들고 씨익 웃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이.


“왜 너한테 그러냐고? 그야 예나 네가 정말 예뻐서 그렇지. 내가 너를 사랑해주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야?”

“···미친놈.”

“그래, 난 미친놈이야. 단지 사랑에 미치고, 너한테 미쳤을 뿐이지.”


사이코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입꼬리가 더욱 하늘로 치솟는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가 천천히 발을 뗀다.

그를 피해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서예나는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신을 찾았다.


‘제발,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구해주세요.’


그렇게.


“어이.”

“···어?”


기적이 일어났다.


“이 꽉 깨물어, 혀 잘리니까.”


뻑!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왼쪽으로 솟구친다.

어찌나 세게 얻어맞았는지 소리도 소리지만, 터져 나오는 코피와 허공을 나는 이빨이 그 힘을 짐작케 만들었다.


“괜찮아요?”


걱정이 가득 담긴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가 전신을 맴돈다.

까만 눈동자 사이로 그의 모습이 망막에 비치기 시작한다.

오늘 내내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


“지, 지혁 씨.”

“어디 안 다쳤어요?”

“네, 네··· 그보다 지혁 씨가 대체 어떻게 여길 어떻게······”

“가는 길에 비명이 들리길래 그 소리를 쫓아 왔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의 입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오늘 하루종일 자신에게 보였던 부드러운 미소.

그 미소에 꾹 눌러 참고 있던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 이 개자식이!”

“···뒤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칼을 들고 정지혁을 위협한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은 오롯이 정지혁을 향하고 있다.


“감히··· 감히 네까짓 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지혁은 거침이 없었다.

자신을 향해 그는 슬쩍 웃음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 하지만 칼이!”


황급히 칼에 대해 소리쳐보지만, 그는 살짝 고개만을 돌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습니다. 대신에 전화만 하나 걸어주세요.”

“아, 알았어요, 지금 당장 경찰에···”

“아뇨.”

“이게 어디서!”

“지혁 씨!”


남자의 칼이 빠르게 정지혁을 향한다.

행여나 남자의 칼이 닿을까 황급히 그를 불러보지만···


“끄아악!”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정지혁은 태연하게 그의 손목을 꺾으며 그의 손에 있는 칼을 뺏었다.

통증으로 흘러내린 남자의 눈물과 코피가 뒤섞이며 기괴한 몰골로 변한다.


“선배님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네! 역시 경찰에······”

“아뇨, 그게 아니라.”


때마침 창문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 달빛이 그에게로 향한다.

달빛을 보고 미쳐버린 것일까?

남자는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정지혁을 윽박질러보지만,


“너 내가 누군 줄 알······ 아악!”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정지혁은 들은 척도 않고 붙잡은 손목을 더욱 꺾을 뿐이다.

어스름하게 반짝이는 달빛 아래, 남자의 손목을 꺾으며 정지혁은 싱긋 미소를 그렸다.


“밖에 문만 좀 닫아주세요. 자꾸 이렇게 소리 지르면 곤란하잖아요.”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하면서도 섹시한 미소를.


작가의말

벌써 조회수 20만에 이르렀네요.

올 한해 여러분들의 관심 어린 사랑 덕분에 지금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값진 한해 마무리 선물을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응원 한마디가 정말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고 애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0년 한해 마무리 잘 되시고 2021년 신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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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Act 55. 퇴장은 이별이다 +16 21.01.17 6,454 23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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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Act 47. 드림팀 - (2) +39 21.01.10 9,338 322 18쪽
46 Act 46. 드림팀 - (1) +18 21.01.09 9,907 264 19쪽
45 Act 45.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2) +19 21.01.08 9,918 311 15쪽
44 Act 44. 잡초를 뽑을 땐 뿌리까지 - (1) +21 21.01.07 10,303 257 18쪽
43 Act 43. 마지막 퍼즐 +15 21.01.06 10,793 273 20쪽
42 Act 42. 너 인성 문제 있어? +23 21.01.05 10,491 312 18쪽
41 Act 41.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 (2) +17 21.01.04 10,791 294 20쪽
40 Act 40. 여러분이 제 힘입니다 - (1) +16 21.01.03 11,211 295 19쪽
39 Act 39. 마음의 치료사 - (3) +19 21.01.02 11,142 308 17쪽
38 Act 38. 마음의 치료사 - (2) +14 21.01.01 11,219 305 19쪽
» Act 37. 마음의 치료사 - (1) +22 20.12.31 11,715 321 20쪽
36 Act 36. 마녀의 남자 - (3) +24 20.12.30 12,175 289 18쪽
35 Act 35. 마녀의 남자 - (2) +16 20.12.29 12,105 296 20쪽
34 Act 34. 마녀의 남자 - (1) +14 20.12.28 12,897 293 20쪽
33 Act 33. 꿈이 무엇입니까? +12 20.12.27 12,759 304 19쪽
32 Act 32.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4) +13 20.12.26 12,709 294 20쪽
31 Act 31.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3) +12 20.12.25 12,432 286 17쪽
30 Act 30.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2) +20 20.12.24 12,725 308 20쪽
29 Act 29. 액션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 (1) +18 20.12.23 13,175 30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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