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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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작품등록일 :
2008.06.14 03:08
최근연재일 :
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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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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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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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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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팬픽]삽질 대마법사 이야기 7화

DUMMY

7화 사태가 수습되어버렸다.





사이토는 갑작스레 날아갔다. 누군가가 잡고 던진 것 같았다. 관중들 속으로 떨어졌다. 몇 명과 부딪쳤다. 순간 정신이 사라졌다. 어둠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 목소리가 들렸다.


-살고 싶다면 그걸 잡아라.-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거리를 벌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는 확실 아까 전의, 모든 사태의, 이 사건의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피가 묻은 나이프가 있었다. 이걸 잡으라는 건가?


-그거다.-


이런 걸 잡으면 바로 살해당하는 거 아닌가? 사이토는 가만히 나이프가 있는 정원을, 그리고 피를 주시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씩 마음이 진정해간다. 매사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조용해지다 다시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좀 지난건가. 이제 어쩌지? 이걸 잡아봐야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그래도 애초에 희망 같은 거 이제 없으니까. 제로가 아니라면 할 수밖에 없잖아. 사이토는 손을 뻗어 잡았다.


-앞으로 뛰어라.-


이제는 미혹을 품을 여유도 없었다. 사이토의 눈가에서 흐르던 눈물은 이미 멈췄다. 피 묻은 나이프를 앞으로 향하게 했다. 비명이 났다. 무리 중 다수가 뒤로 물러나려 했고 소수가 지팡이를 들었다. 사이토는 땅을 박찼다. 그리고 거리가 생긴 곳으로 달렸다. 지팡이를 든 학생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군중의 무리에 틈이 생겼다. 사이토는 페이스를 올렸다.





카서스는 기쉬라 불리는 학생을 보았다. 루이즈는 당황해 있다. 받은 걸 갚을 뿐이다. 무시하고 가기에는 자신의 자긍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큰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 전의 일에 한해서는 당당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일이지만 해주도록 하지.


“아아, 국왕이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램프의 지니 흉내를 내는 것 같군, 카서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한 번만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저런 녀석 하나만 어떻게 해주고 가다가는 자신 속의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명확하게, 확실하게 해두지 않기에는 전의 실수가 너무 크다.


기쉬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자신은 세 번 루이즈를 돕는다고 계약했다. 당사자인 그녀조차 그 실체를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리고 지금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도와준다는 것과 이루어준다는 것은 완벽하게 차이가 나지. 카서스는 싱긋 웃었다.





기쉬는 갑작스레 나타난 누더기의 거지에게 짜증이 났다. 방해하지 마라. 언제까지 이렇게 훼방을 놓는 거냐.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장미를 몇 차례 고쳐 잡으며 당장이라도 박살내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도발하며 우세를 완벽히 하려던 거 자신이다. 이렇게 된 이상 가차 없이 무너뜨리고 더 이상의 참견이 끼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자.


“그래. 그러고 보니, 그 쪽도 루이즈의 사역마였군.”


주변에서 다시 한 번 야유가 터져 나온다. 앞의 거지를 향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새 정이라도 들었나?”


거지는 고개를 저었다. 기쉬는 목이 아파오는 것을 참으며 크게 비웃었다.


“크하하하. 그러니까, 넌 멋지군. 크크큭.”


거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서 있었다. 눈동자에는 하나의 흔들림도 없었다. 기쉬는 과장해서 웃기를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기쉬는 목을 만졌다. 이러다 쉬어버릴 것 같군.


“미스 발리에르를 위해 저 불손하고 주제도 모르는 멍청이에다 그렇다고 용기도 없는 녀석을 돕겠다는 건가. 아아, 멋진 사역마시구만.”


기쉬는 눈을 닦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군. 멋지고 아름다운 주인과 시종의 충정이야. 그런데 말이지……”


기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지금 말하면 되겠군.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짓이 네 주인을 몰락시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약간 분위기가 끊기는 말 같기는 했지만 주도권은 이제 완전히 자신의 것이다. 거지가 웃었다.


“시간 낭비하게 하지 마라!”


기쉬는 장미를 한 번 휘둘렀다. 꽃잎이 하나 떨어지며 땅바닥에서 하나의 청동 골렘이 나타났다. 나름대로 뛰어난 조형의 전사. 청동의 기쉬의 발키리가.


“할 말은 끝냈나?”


거지가 발키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기쉬는 듣지 않기로 했다.


“비켜라!”


거지가 발키리를 잡았다. 하아, 뭔 바보짓을 하려는 거지? 이렇게 된 이상 처리해. 기쉬는 발키리에게 명령을 내리고 거지의 옆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발키리가 창을 잡고 휘두르겠지. 그리고 거지는 쓰러질 거다.


-우직-


기쉬는 발키리였던 것을 보았다. 머리 부분이, 정확하게는 투구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그 위에 거지의 한 손이 얹어져 있었다. 저걸 손으로 부순 건가? 철퇴라면 몰라도 맨손으로? 기쉬는 혼란스러웠다.


“자 슬슬 내가 말하고 싶은데 혹시나 더 할 말은?”


거지는 기쉬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기쉬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루이즈는 가슴을 잡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퀴르케가 놀란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하긴 자신도 놀랐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괴력을 낼 수 있는가. 무언가 크게 휘둘려서 타격한 게 아니라 순수한 악력으로 기쉬의 자랑인 발키리를 무력화시켰다.


“대, 대단하잖아.”


퀴르케의 입이 벌어져 있었다. 아까 그걸 듣지 않았다면 자신도 저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목소리의 정체는 카서스였던가. 루이즈는 고민했다. 아마도 맞을 것 같다. 저 말도 안 되는 괴력도 설명이 된다. 애초에 그 목소리는 분명히 어떤 초월적인 것이 말하는 걸로밖에 안 들렸으니까. 괴력쯤 갖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뭐,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기쉬가 오른팔을 잡으며 말을 한다. 그래, 카서스. 당신 어떻게 해봐. 이 골치 아픈 사건을. 분명히 가능하겠지?


“일단 저기 저 바보 사역마의 처분에 관한 일이지.”


루이즈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조용해졌다.


“뻔한 거 아닌가. 당신은 눈이 없는 건가? 아까부터 말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면 제기해 보라고!”


“맞아!”


“시간 끌지 마라.”


“사역마끼리라고 도와봤자 헛수고다.”


기쉬의 말에 관중들이 다시 수긍하기 시작한다. 루이즈는 깍지를 꼈다. 정말로 가능한 걸까? 카서스가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난 그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루이즈는 깍지를 풀었다. 무슨 소리야?


“그래. 이렇게 확고한 것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거지? 당신 왜 나온 거냐?”


기쉬가 기고만장해졌다.


“설명하지.”


“그 따위로 시간 끌어봐야 아무 것도 안 나온다고!”


소리를 지르는 기쉬 앞에 카서스가 손에 들린 발키리였던 것을 보였다. 기쉬가 입을 닫았다.


“시간을 끌 생각도 없다. 처분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내 말이,”


“다만 실행에 이의를 제기하지.”


기쉬가 멍하니 섰다. 퀴르케가 멍하니 섰다. 모두가 멍하니 섰다. 루이즈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 바보 사역마는 루이즈의 수하다.”


기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역마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주인이 해야 할 일이다.”


“뻔하디 뻔한 거로군. 그렇게 대충 몇 대 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가! 웃기지 마라!”


기쉬가 카서스의 말을 끊었다. 카서스는 잠시 인상을 쓰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지금 루이즈가 공정한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로 삼고 있겠지?”


“물론이다. 이것은 반드시 철저하게, 완벽하게 해야 할 일이다!”


루이즈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불길했다.


“즉 발리에르 가에서 일을 미온하게 처리할 것을 막기 위해 나서는 것이지?”


“당연하다!”


“그렇다면 간단한 거지 않은가?”


“무슨 소리지?”


루이즈는 자신의 예감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확신했다. 카서스는 절대로 목소리의 주인이 아니다.


“루이즈가 미온하게 처리한다면 발리에르 가에 소속된 자가 제대로 처리하면 되겠지.”


기쉬가 눈을 크게 뜨는 게 보였다. 루이즈는 손톱을 씹었다. 퀴르케가 이마를 잡았다.


“그래. 간단한 거지.”


모두가 숨을 죽였다. 다시 카서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를 살해하겠다는 걸세.”


카서스가 다시 한 번 웃었다.





“내가 그를 살해하겠다는 걸세.”


기쉬는 당혹스러웠다. 말은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피해자인 내가 직접 손보겠어!”


거지가 고개를 저었다.


“책임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대는 요양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거지는 그의 팔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화가 났다.


“웃기지 마! 넌 같은 사역마라고 어떤 수작을 부려서 살려주려는 거야!”


거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짝. 정확하게 다섯 번을.


“그 말은 참으로 걸작이군. 지금 당장 새 역사서를 편찬 후 그 역사서에다 옮겨 써서 국민 권장도서에 포함시켰으면 할 정도로 말이야.”


기쉬는 이를 갈았다.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지!”


거지는 그것도 모르냐고 비아냥거리며 답했다.


“그대는 두뇌를 어디다 버리고 온 건가? 그와 나는 어제 만났지. 내가 그를 일부러 살려주려 노력할 이유는 없어!”


“그렇다 해도 같은 사역마다! 같은 주인의 사역마다. 어떻게 그걸 부정할 수 있지?”


거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이마를 잡고 과장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뭐, 좋아. 그 점에서 호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내 옷을 보게.”


모두가 거지의 누더기를 보았다. 거지가 관중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보았듯이 나에게는 재정적 지원이 필요해. 그리고 발리에르 가는 명문인 것 같은데?”


기쉬는 웃었다. 제 발로 함정에 빠지셨군.


“루이즈가 저 머저리 사역마를 살리려 하는 것을 이 자리에 선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발리에르 가의 지원을 언급하는가? 두뇌를 어디다 버리고 온 것은 그쪽이 아닌가! 게다가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거지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대는 하나의 국면밖에 보지 못하는 건가. 저 머저리에다가 용기도 없는 데다 특별한 능력도 하나 없는 사역마는 애초에 필요가 없지! 게다가 이 따위 일을 저질렀어. 분명히 내가 처리한다면 약간의 미움을 받을 거라고 생각은 한다만, 루이즈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것은 필요한 일이다! 분명히 발리에르 가에서도 호의를 보내겠지. 그리고 내 상태를 보게! 이것은 돈을 어떻게라도 구해서 스스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확실하지 않은가. 시간만 낭비하며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보다는 단단하게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거지는 웃었다. 저것은 분명히 비웃음이다. 기쉬는 생각했다. 거지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놓칠 수는 없어! 그 놈은 자신이 부서뜨릴 거다! 사정은 알겠지만 양보는 할 수 없다. 놈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기쉬는 보았다. 놈이 자신을 찌른 나이프를 드는 것을.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관중의 벽 한 쪽이 허물어지는 것을.


“젠장!”


기쉬는 오랜만에 욕설을 뱉고는 달렸다. 실혈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빨리 달려지는군, 기쉬는 호흡을 제어하며 상태를 점검했다.


“이게 다 그대의 탓일세.”


“무슨 소리야!”


바로 옆에서 거지가 따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대의 어설픈 논리를 증명하는 동안 상황이 바뀌어버린 걸세.”


“던진 건 당신이다!”


기쉬는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거지는 여전히 걸었다. 그런데도 간격이 벌려지지 않았다. 뭘 하는 거야? 기쉬는 주변이 지나쳐가는 시간을 파악했다. 실혈이 있어도 달리는 속도 자체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정확한 판단을 위해 그대가 냉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 것뿐일세!”


거지의 체격을 보았다. 분명히 자신과 아주 차이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보폭을 보았다. 평균적인 보폭이다. 진짜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대는 지금 상황을 처리할 능력이 없어. 당장 양호실에 가서 치료나 받게!”


웃기지 마! 괴력이 있어도 요상한 능력이 있어도 그렇게 저평가하는 것 참아줄 수 없다고!


“혹시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건 도발이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쉬는 멈춰 섰다. 거지도 멈췄다. 폐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닐까 싶다. 기쉬는 다시 놈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관중 중 일부가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사용하려 했다. 어쩔 수 없군.


“멈춰! 당장 주문을 멈춰!”


호흡이 거칠어져 간다. 심장은 끓듯이 뛴다. 실혈은 조금이나마 늘어가고 있다. 망토는 어느새 완벽하게 자신의 피에 젖었다. 지팡이를 내리는 이들이 보인다.


“그 놈을 상대하는 것은 바로 이 나다!”


거지가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그를 상대하는 건 그대가 아니라 나일 텐데.”


“나는 피해자다! 발리에르 가에도 권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난 수치를 당했어! 어차피 발리에르 가는 나에게 보상해야 해! 그러나 난 처벌의 권한을 여기서 받는 걸로 모든 걸 끝내겠어!”


거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대는 부상을 입었고 지쳐 있지. 그럴 수 없을 걸세.”


기쉬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목이 아픈 것을 참으며. 크게 웃고는 크게 말했다.


“좋아! 조건이 뭔지 들어보지!”


거지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래, 그대는 갚아야 할 것을 갚아준다고 한 거지? 게다가 굳이 부상을 입은 상태로 처벌하겠다는 거고?”


“그렇다.”


“하지만 처벌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있을 리 없는 일을 고려해보아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


기쉬는 강하게 부정했다. 이 자는 대체 무슨 소리를 계속 하는 거지, 그만 비키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것을 수행하지 못 한다면 그대는 모든 귀족에게 모욕을 돌리는 게 되고 말아.”


이번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할 말은 있다.


“질 리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조건을 걸게. 그렇다면 발리에르 가에서도 기꺼이 처벌의 권한을 넘겨줄 걸세.”


“제안한 쪽이 걸어!”


거지는 고민하는 척 시간을 들이다 말했다.


“이것을 결투로 처리하세.”


“무슨 소리지?”


“결투는 금지란 말이야!”


참견을 하고 있는 목소리는 분명히 루이즈의 것.


“루이즈. 귀족과 평민의 결투는 금지되어 있지 않아. 금지된 것은 오로지 귀족끼리의 것뿐이다!”


“하, 하지만……”


거지는 어느새 포위된 채로 나이프를 든 놈 쪽을 바라보다 기쉬를 돌아보았다.


“계속해서 말하지.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발리에르 가의 명망은 나빠지겠지. 게다가 그대가 그를 처리한다면 마땅한 권리조차 사용하지 못한 게 된다네. 그는 죽겠지만 원인 중 하나인 그대는 남아있어. 비록 공식적으로 적으로 여기지는 않겠지만 고생할 거라는 건 확실하지. 하지만 결투가 된다면 발리에르 가에는 피해가 오지 않아. 그리고 자네 역시 적대세력을 만들지 않고 오히려 치부를 덜어준 셈이 되지.”


기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혼자 쓰러뜨리기로 한 것이다.


“좋아! 나의 친우들. 길을 열어주게. 나는 여기서 저 빌어먹을 평민을 박살내겠어. 만약 내가 패배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하지.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기쉬는 힘겹게 웃고는 놈에게로 향했다.





사이토는 나이프를 든 채 서 있었다.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사용하려는 무리들이 동작을 멈췄다. 기쉬가 멈추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제 어떻게 하지?


-무기란 것은 싸우기 위한 수단이지.-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이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어디서 발생한 건지 알 수 없다. 여전히 머릿속에다 직접 전하는 것 같았다. 텔레파시라도 되는 건가, 하긴 마법이 있는 곳인데 부정할 수는 없지.


-그리고 그 나이프는 누군가를 상처 입게 한 걸세.-


아! 사이토는 알았다. 이것은 이제 무기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걸로 저 무리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중의 철벽의 한 쪽이 열렸다. 오른팔을 망토로 싸맨 채 적대감을 품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기쉬가 나타났다.


“운이 좋게도 너는 이제 나만 이길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지.”


그는 왼손에 장미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꽃잎이 땅바닥에 닿자 청동의 움직이는 인형들이 나타난다.


“아아, 물론 그런 건 있을 리 없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저 자를 제압한다면 살 수 있다는 소리다. 예전이었다면 아니 학대를 조금만 덜 당했다면 낙천적이라는 성격으로 문제를 안 일으켰을지 모른다. 폭음에 귀가 멀 것 같고 죽음을 체감하지 않았다면 간단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지만. 뭐, 방법이 하나 생겼으니 전력으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지. 안 그래? 사이토는 나이프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으랴아아아아!”





카서스는 느긋하게 서서 그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도와줄 만큼 도와주었다. 남은 것은 스스로 해야겠지. 애초에 뉘앙스는 그렇다 쳐도 ‘소원을 이루어준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오랜만의 설전이군. 뭐 너무 쉬운 감이 있었지만.


부유도시의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강력한 마법사들이었기에 회의가 있을 때는 마법의 효과를 받는 것을 포기해야 했었다. 결국 서로간의 설전에서의 승리자가 주도권을 잡았었다. 이올라움 실종 후 최고 지도자로 추대되었던 자신의 역량이 떨어질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쉬운 일이었지만.


“그나저나……”


카서스는 전투가 벌어진 현장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중앙의 본탑을, 그 최상층을, 학원장실이 위치한 곳을.


“언제까지 쳐다보고 있을 건가?”





기쉬는 지쳐 있었다. 체력이 자꾸만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끝내기로 했다. 6마리의 발키리를 한 번에 불렀다.


“으랴아아아아!”


놈이 기합 아닌 기합을 넣으며 달려왔다. 제일 왼쪽에 발키리 하나만 있는 쪽으로. 창으로 찔러 버려라. 놈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리고 발키리의 팔이 잘려나갔다. 엇? 뭐야! 말도 안 돼! 어떻게 식사용 나이프로!


놈이 발키리의 창을 집어 들었다. 팔이 잘린 발키리로 놈의 팔을 잡게 명령했다. 동시에 다른 5기의 발키리를 전원 이동시켰다. 하지만 팔을 잃은 발키리는 다리를 한 발짝 움직이다 머리가 깨져 행동을 정지했다. 기쉬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발키리 넷이 사방으로 놈을 포위, 하나가 창으로 찌른다. 놈이 피했다. 포위한 넷 중 하나가 발차기를 먹인다. 오오, 잘했어. 다른 하나를 놈 위로 다이빙해서 충격을 먹이며 동시에 놈의 움직임을 방해하게 하기로 했다. 놈이 쓰러지면서 창을 휘둘렀다.


털썩


“무슨?”


한 번의 창질이 둘의 발키리를 잘라버렸다. 창의 촉끝으로 베어버렸다. 창의 예리함과 발키리의 강도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저런 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저 자세로 베어버리는 것은 무리라는 건 딱히 무술교본을 보지 않아도 뻔히 아는 사실이다. 제길, 기쉬는 꽃잎이 없는 장미의 줄기를 잡았다. 그리고 남은 셋의 발키리로 놈의 동작을 최대한 제한하도록 했다.


발키리들이 창을 경계하며 원거리에서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놈은 이쪽으로 다가오려 한다. 기쉬는 주문을 외웠다. 시야가 점멸해간다. 하지만 계속해야 한다. 자신은 놈을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니까. 놈이 발키리 둘을 처리했다. 마지막 남은 하나로 자신에게 오는 가장 빠른 진로를 막는다. 주문은 거의 다 완성되었다.


놈이 마지막 하나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제 승리는 자신의 것이니까. 기쉬는 장미의 줄기를 휘두르며 주문을 사용했다. 그리고 기쉬의 바로 앞에서, 그가 선 앞의 땅에서 하나의 모래기둥이 날아갔다.


기쉬는 주문을 날리면서 알아버렸다. 조준이 잘못되었다. 점멸해가는 시야 탓인가. 제길, 시간만 끌지 않았다면! 어느새 놈이 창을 그의 목 앞에 두었다. 그는 웃었다.


“하하하. 아하하하.”


놈은 그저 창을 내민 채 가만히 있었다. 기쉬는 그 창에다 목을 들이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참았다.


“저, 저거 설마!”


관중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리고 어렴풋한 시야 속에서 어느 누가 주문을 쓰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까지 자신을 모욕하는 건가! 기쉬는 장미 줄기를 던졌다.


“멈춰라! 지금 당장 주문을 멈추라고 했다!”


“잠, 잠깐. 기쉬 너 분명히.”


“그건 날 모욕하는 짓이다.”


당황하는 급우를 보았다.


“하, 하지만 귀족이.”


“그래서 내가 지지 않았나! 그리고 분명히 이 일은 내가 혼자서 처리하겠다고 했었다!”


모두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쉬는 힘을 내어 박수를 쳤다. 그리고 말했다.


“뭐하고 있는 건가! 지금 나의 앞에 선 자는 평민의 몸으로 혼자서 귀족을 이긴 자다. 그에 영예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힘없는 박수소리가 퍼졌다. 기쉬는 창을 내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놈을 보았다. 그리고 힘겹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놈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너 재미있는 녀석이군. 이름이 뭐지?”


놈은 멍한 눈으로 천천히 보다가 말했다.


“히, 히라가 사이토.”


“그런가. 기억해 두지.”


기쉬는 뒤를 돌았다.


“자, 일순간의 연회는 이만 파장이야. 모두들.”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급우들이 보였다. 그는 하나의 장미를 꺼냈다.


“어이, 그 표정들 그만둬. 장미는 모든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니까.”


기쉬는 웃으며 그들 속으로 나아갔다. 사이토가 박수를 쳤다. 루이즈가 박수를 쳤다. 퀴르케가 박수를 쳤다. 케티가, 몽모랑시가, 남의 연애사업에 관심을 갖던 녀석들이 박수를 쳤다. 기쉬는 과장스럽게 팔을 벌리며 허리를 숙인 뒤 쓰러졌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정규 - 미정 (bn_794)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0 11:04)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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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61 단D.a.n.n
    작성일
    08.06.01 10:46
    No. 1

    ...........돌리고 꼬고 비약하고.......뭐 이상망측한 대화만 계속.....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빛의추적자
    작성일
    08.06.01 22:23
    No. 2

    아쉽게도 현실에도 저런 경우가 많다는 게 슬픈 일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08.06.09 10:45
    No. 3

    그런데 계약이라는 것은 쌍방이 무언가 얻을것을 기대하는거죠. 저렇게 일방적인 계약이 존재할까요? 뭐 사기나 예전의 노예시대를 예로 들수는 있겠지만, 저렇게 계약성공률 만빵에 저항 불가한 계약의 존재는 너무 설정을 위한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빛의추적자
    작성일
    08.06.10 21:13
    No. 4

    금원님 원작 설정이 저러다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내여자
    작성일
    08.10.07 18:06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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