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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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작품등록일 :
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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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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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2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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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삽질 대마법사 이야기 9화

DUMMY

9화 다시 한 번 일이 생기기 위한 전조가 돌기 시작해버렸다.





어느새 두 개의 달이 뜨고 별들이 세상을 비출 때 괴도는 탑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었다. 검은 망토를 거친 채 살금살금 조심스레 움직인다. 잠시 이리저리 움직이던 괴도는, 토괴의 후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역시 사야겠네.”


골렘을 제작해서 사용한다고 해도 벽의 두께는 상식 밖이다. 자신이 현재 쓸 수 있는 물리력으로 부수기는 어렵다. 탑 자체에 걸린 연금의 일종인 ‘고정화’를 뚫는 건 당연히 무리고.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의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거니까 역시 열외.


물건을 처리하다가 생긴 선에서 반대로 물건을 구입한다가 되는 셈이군, 씁쓸한걸. 후케는 일정을 점검했다. 일단 4일 후에 몇 개 처리할 게 있었고 그 때 만날 테니까 바로 구입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설치를 하고 사용이 가능할 텐데.


“최소한 일주일이네.”


곤란하네. 너무 오래 걸려. 물론 지금 위장한 신분 자체는 쓸 만해서 당분간 사용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네. 후케는 발로 돌멩이를 하나 찼다. 아마도 어떤 우연이 있기 전에는 보물고에는 일주일 후에나 들어갈 수 있겠지. 후케는 고개를 젓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침이 왔다. 사이토는 여전히 양호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겠지. 기쉬와 같은 방에서. 시원해라. 밖을 보자 오늘따라 싱그럽게 느껴지는 잔디와 나무의 푸름이 가슴 깊이 상쾌함을 가져온다. 저기 방구석에서는 대체 어디서 가져온 지 알 수 없는 천들로 만들어진 이부자리가 있다.


당사자는 아침 산책이라면서 나갔지만. 이래서야 주종관계가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루이즈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잠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사자-카서스-는 일찍 아침을 해결할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현재로서는 들어가지도 못하니. 약간 미안해져서 사과하려하니 태연히 웃고는 나가버렸다.


“아아, 진짜!”


오히려 늙을 대로 늙은 노인이 아직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루이즈는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모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순간 들어 손을 멈추고 복장을 다 갖춘 것을 확인하고 방 밖으로 나섰다.


“주인의 체통을 지켜야하는데.”


빈틈이 정말로 없다. 그 누더기는 빼고. 아니, 그 누더기를 오히려 무기로 만들고 있는 느낌까지 드니까. 닳고 닳은 정치가가 저런 느낌일까. 그렇다고 일부러 트집을 잡는 것도 그렇다. 애초에 바보 개의 건도 있어서 아무거나 트집 잡다가는 역으로 당할 것 같으니까.


“어이, 루이즈.”


앞에서 가슴만 큰 퀴르케와 타바사가 다가온다. 타바사는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한다.


“아, 안녕.”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어제 일은 무시할 수가 없다. 루이즈는 고민을 했다.


“으, 응. 어, 어제는……”


“고마웠다고? 그래, 고마워해. 호호호홋. 내가 제로인 너를……”


루이즈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왠지 머리에서 김이 나오는 것 같다.


“퀴르케! 이 가슴만 큰! 내가 고마워할 리가 없잖아!”


“아아, 지나가던 평민을 끌고 오신 발리에르 양에게 들은 말은 아니지요. 안 그래?”


퀴르케가 응수해온다. 루이즈는 한 번 더 강력한 일격을 줄 말을 찾다 타바사를 보았다. 아주 잠깐 얼굴에 미소를 뗬다가 없애는 게 보였다. 다시 퀴르케를 쳐다보았다. 일부러 독기를 품은 양 눈매를 좁히며 말을 한다. 퀴르케가 또 응수한다. 어느새 조금씩 입가가 올라가고 있는 게 보인다. 그렇게 또 일상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카서스는 오늘도 식당 밖의 야외용 좌석에 앉았다. 곧 시에스타가 음식을 갖고 온다. 메뉴가 전보다 많다. 아예 손수레를 끌고 오고 있다. 손수레의 트레이(tray)에서 차곡차곡 쌓여진 음식을 시에스타가 식탁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분명히 한 명이 먹으라고 할 만한 양이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와인까지 있다. 이걸 아침으로 먹으라는 건가?


“오늘은 왠지 많군.”


“주방장인 마르토 아저씨께서 대접을 못했다고 서운해 하셨지요. 그래서 오늘 시간 남은 김에 힘써서 전해드리라고 하시던데요.”


“글쎄. 이 정도로 주면 학생들이 질투를 보내는 게 아닐까 싶은데.”


시에스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하면 곤란해지지 않나 싶은데.”


“히라가 사이토씨와 카서스씨는 평민의 영웅이니까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귀족이 와도 오히려 떨면서 지나갈 거라고 하시던데.”


사이토는 아니야, 무심코 속으로 딴죽을 걸었다.


“특히 사이토씨는 우리들의 창이라고 불리고 있어요. 카서스씨는……죄송해요. 딱히 없네요.”


“괜찮네.”


오히려 이쪽에서 사양하지.


“분명히 마르토씨가 멋진 별명을 지어드릴 거예요.”


“아니, 사양하지.”


사양을 말해도 이 시에스타라는 아가씨가 주방장에게 건네는 동안 뜻이 왜곡되어 ‘영웅이 겸손하기까지 해, 그래, 그게 진정한 달인이라는 거야.’같은 뜻을 말하고 결국은 뭔가 황당한 별명이 붙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아, 그럼 저 시간이 돼서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카서스는 손을 몇 번 흔들어주곤 식사를 시작했다. 뭐, 호의적인 별명일 테니 그냥 놔두자. 딱히 나쁠 것도 없는데. 특별히 신경 썼다고 해선지 괜찮군. 카서스는 천천히 식사에 집중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어느새 다가온 루이즈의 뒤를 따라 교실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무시하고서 제일 뒤로 걷는다. 루이즈가 의아해했지만 옷을 손으로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의 좌석으로 갔다. 벽에 등을 기대고는 느긋하게 수업을 듣는다.


“그러니까 두 가지 속성이 가능하면 라인, 세 가지 속성일 경우 트라이앵글, 네 가지에 도달하면 스퀘어라고 합니다.”


들어봤자 쓸 데 없는 거였기에 그나마 호칭만 기억해둔다. 다음번에는 그냥 도서관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미시스 슈브르즈던가하는 인물이 연금으로 돌을 놋쇠로 만들고 해볼 사람을 불렀다. 루이즈가 손을 들었다. 카서스는 이마를 잡았다.


“결과는 뻔하다. 그냥 나가자.”


물론 자신이 마법의 구성을 변동시킨다거나 하면 제대로 나오겠지만 루이즈가 성공한 줄 알고 마구잡이로 사용하다가는 뭔가 큰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설명하려면 자신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밝혀야 하는데 이제 와서 일부러 밝히는 것도 피곤할 뿐이다.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어느 쪽이 유리한 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아니까. 비록 그것이 별 의미가 없다한들.


복도로 나가자 뒤를 따라 안경을 낀 소녀 한 명이 나왔다. 카서스는 잠시 보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벽 안 쪽으로 폭음이 나는 게 들린다.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깐 귀를 기울이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탑의 문 밖에 도착하자 카서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용건을 말하는 게 어떤가?”


소리를 죽인 채 따라오던 소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일이 없다면 가도록 하지.”


“실피드에 관해.”


카서스는 눈을 찌푸렸다.


“내 용.”


“나는 그것에 대해 타인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만.”


“확증 필요.”


카서스는 웃었다.


“무엇으로 확증을 받을 건가?”


파란 머리의 소녀는 조용히 있었다. 카서스는 가만히 있다가 다시 발을 옮겼다.


“정지.”


“호오.”


카서스가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애초에 자네는 나를 믿지 않아. 어떤 필요성에 의해 다가오긴 했지만 그걸 말할 생각도 없어. 그렇다고 어떠한 조건에 의해 확증을 얻을 수도 없지.”


그러니까 그녀는 절대로 자신을 믿지 못한다.


“아아.”


카서스는 다시 웃었다.


“그래. 그런 건가.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가?”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잠시 가만히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지 모르겠군.”


“가능.”


카서스는 이마를 잡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이는 건가.”


“당신 위험. 그러나 가능.”


“자네는 안경을 바꾸는 게 좋겠어. 아니, 제법 사람 많이 죽인 것 같은데 파악하지 못하는가?”


소녀의 눈매가 변했다. 지팡이를 강하게 잡으며 자세를 잡는다.


“그만두게. 고작해야 스물도 안 된 아이를, 게다가 여자 아이를 죽이는 취미는 갖고 있지 않아. 딱히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녀는 뭔가를 읊조린다.


“기껏해야 진공의 칼날 몇 개를 날려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소녀가 멈칫했다.


“자네는 나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어.”


소녀의 입에서 우득, 소리가 났다.


“결국 자네는 날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무력은 통하지 않아.”


소녀는 다시 주문을 외우려 했다.


“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말일세.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누군지 밝히지 않았군. 자네는 날 알고 있으니 나의 소개는 넘어가기로 하지.”


소녀의 주변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소용없다고 거듭 말한 것 같지만. 자네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설풍(雪風)의 타바사?”


소녀가 잠시 경직하다가 휘몰아치는 회오리를 앞에 둔 채 묻는다.


“루이즈에게, 들었나?”


“글쎄.”


카서스는 빙긋이 웃었다. 타바사가 지팡이를 움직이려 했다.


“아니, 그게 아닌가. 그건 본명이 아니지 않은가. 타바사양.”


타바사의 손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카서스가 야단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세 차례 쳤다.


“이런, 가짜 정보를 말해서 미안하군.”


타바사가 카서스의 입을 쳐다본다.


“잘못을 사과하지. 샤를로트양.”


“반드시 살해.”


타바사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달려온다. 카서스는 느긋이 웃었다. 그리고 회오리바람이 사라졌다. 타바사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 달려왔다. 작은 체구라 힘은 적지만 정확하고 날렵하다. 몸의 전 체중을 실어 일직선으로 공격. 갑옷조차 뚫을 일격이 카서스에게 향한다. 카서스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충돌했다.





타바사는 칼을 바라보았다. 이가 나가있었다. 그리고 조금 휘어져 있었다. 단 한 번의 충돌에. 이래서야 무기로서 사용할 수가 없다. 분명히 손을 찔렀는데 상대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괴물.”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하면 조금 충격 받는다네. 그리고 아까 말했지 않은가. 무력은 소용없다고.”


카서스가 다가온다. 마법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단도는 이제 사용할 수 없다.


“아까 그건, 허무의 마법?”


카서스가 웃었다.


“마음대로 생각하게나.”


타바사는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고 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딜 가는가?”


바로 앞에 그가 다시 서 있었다. 분명히 앞질렀는데?


“의아한 표정이군. 하지만 답은 주지 않겠네.”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겠지만 지팡이를 다시 쥔다. 그가 손을 뻗는다. 기쉬의 발키리를 한 손으로 우그러뜨린 그 손으로!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타바사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움직여라. 어서. 손이 다가온다.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조금만 움직이면 가볍게 회피할 수 있다. 그런데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째서?


“제안 하나 하지.”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의 손이 머리에 다가온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 어머니!


“내가 지금 자네를 죽이지 않는 걸세.”


뭐? 그의 손이 타바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손녀를 어루만지는 노인처럼.


“그렇다면 자네는 용의 일에 대해 확증을 가질 수 있겠지. 그 대신!”


손길이 멈췄다. 그는 어느새 몇 걸음 떨어져 있었다.


“자네는 날 습격했어. 그러니까 페널티를 부가하지.”


그는 뒤돌아섰다. 등이 보인다.


“만약 자네가 이번 일을 누설한다면 나는 용의 일을 선포할 뿐 아니라 자네의 목숨을 거둬가겠네.”


그리고 천천히 발을 옮겼다.


“자네에게 남겨진 것이, 자네가 해야 할 것이, 자네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든 나는 자네를 죽이겠네. 그러니……”


그가 다시 돌아보았다. 뭔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되돌릴 수 없는 것에 회한을 품은 눈이었다.


“매사에 조심하게나.”


그리고 몸이 풀렸다. 타바사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조용히, 평온히 잠에 빠졌다. 1시간 후 퀴르케에 의해 식당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카서스는 오늘도 도서관에 잠입해 이곳의 상식에 대한 부분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생각을 말했다.


“이 동네 왜 이러냐?”


그는 다시 책장에 책을 끼워 넣고 이번에는 그냥 사서의 앞을 지나갔다. 사서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식당 앞에 가서 아침보다는 조촐한 점심을 먹었다. 어느새 루이즈가 다가왔다.


“다, 당신. 당신 때문에 혼자서 청소를 하고 왔단 말이야!”


어지간히 분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학생들의 눈초리가 흡사 고문 같아서 먼저 빠져나왔기에 상황을 몰랐다만.”


“그, 그래도 내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판단하기로 내가 그곳에 있는 게 오히려 자네의 명예를 실추하는 것 같았다만?”


루이즈는 소리를 죽였다.


“내일 옷 사줄게! 알겠지!”


“감사하게 받도록 하지.”


루이즈가 화를 냈다.


“전혀 감사하다는 표정이 아니라고!”


“내 표정이 어떤지 자네가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루이즈가 땅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청소를 하게 된 건가?”


루이즈는 우물쭈물했다.


“뭔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거라도 저지른 건가?”


루이즈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실수 하나 한 거라고!”


카서스는 일어섰다.


“어딜 가는 거야?”


“바보를 만나러 간다.”


루이즈가 가만히 있었다.


“다른 용건이 없다면 이만 가겠다.”


“그 바보 개를 왜 만나러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역마를 보러 한 번은 가봐야 하니깐 나도 갈게.”


카서스는 양호실로 걸어갔다. 루이즈가 뒤를 쫓기 시작했다.


“진짜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네.”


루이즈의 불평이 들려왔다.





사이토와 기쉬가 서로 주먹을 나누다 사이좋게 쓰러져 있었다. 루이즈가 인상을 썼다.


“역시 이 바보 개는!”


루이즈는 사이토를 밟았다. 사이토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카서스는 조용히 이렇게 단평했다.


“바보가 바보와 싸우다 바보같이 서로 쓰러져서 바보 같은 주인에게 바보 당하듯이 맞고 있군.”


루이즈가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패기 시작한다. 이윽고 담당이 와서 루이즈를 뜯어말린다. 카서스는 담당이 타온 접대용 차를 마시며 흥얼거린다. 창문 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맑은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무리지어 바람의 파도에 몸을 이리저리 꼬며 천천히 흘러간다.





올드 오스만은 거울을 만져보았다. 여전히 사용이 불가능하다. 아, 얼마나 돈이 나갈려나. 요즘은 미스 롱빌도 어딘가 마구 나가서 회춘의 기분도 느껴지지 않고 일은 많고. 생각할 것도 많고. 그나마 경험 많다고 생각한 미스터 콜베르는 어딘가 미숙한 점이 눈에 띄고.


“더구나.”


요즘 들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의 유품을 봐도 그 때를 회상하며 자신 대신 죽은 그를 위해서 마음을 다지는 작업이 이상하게도 되지를 않는다. 분명히 ‘파괴의 지팡이’인데도.


“늙어서 무뎌진 건가.”


이상하다. 늙으면 분명히 더 추억을 즐기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과거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째서 자신 대신 죽은 자의, 아무 것도 되갚아 줄 수 없는 자의 마지막 물품을 보아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건가. 그것도 최근 3일.


“그냥 생각할 게 마구잡이로 늘어서인가.”


아마도 과거의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겠지.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수많은 감상이 쌓이고 모이고 그것을 떠올리는 추억이란 보석이 부서진 건 아닐 것이다. 아니면 설마.


“치매라도 온 건 아니겠지?”


기억을 하고 정신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호색한이라고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스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면.


“또 한 번 운명이 밀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다시 한 번 앞으로 갈 때라고. 과거의 추억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시련에 맞서나가 당당히 정상으로 올라가라고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다 늙어 죽을 시간만 기다리는 몸에도. 오스만은 천천히 숨을 들여 마셨다. 결국 감상하기 나름이겠지만.


“토괴의 후케. 간달브. 카서스.”


오스만은 지팡이를 들었다. 어느새 습관적으로 챙기려던 파이프담배를 내려놓았다.


“모트소그닐!”


책상의 아래에서 하얀 색 생쥐가 나타났다. 생쥐가 로브 자락을 잡고 오스만의 몸을 기어오른다. 그의 사역마가 그의 어깨에 오른다.


“자, 이제 뭐부터 시작할까?”


오스만은 학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마침 미스 롱빌이 올라오고 있었다.


“올드 오스만. 무슨 일이시라도?”


오스만이 롱빌의 치맛자락을 바라보았다.


“아, 아무것도 아닐세. 잠시 환기 좀 시킨다고 말이야.”


오스만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까짓것 나중에 하자. 좀 천천히 해도 뭐 상관없지 않은가. 모트소그닐이 어느새 롱빌의 다리 사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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