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덕, 저승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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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명안
작품등록일 :
2021.05.12 12:39
최근연재일 :
2021.08.06 06:00
연재수 :
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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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12
추천수 :
994
글자수 :
378,592

작성
21.05.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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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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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7쪽

3화. 우리 애들헌테 또 한 번만 거지 어쩌구 해봐

DUMMY

이후로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해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거나, 급히 출동해야 한다며 끊어버리기 일쑤였다.


몇 번을 찾아가도 담당 경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요즘처럼 발달된 세상에서 범인을 잡을 단서조차 찾지 못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이 아들내외의 죽음에 맞춰져 있었다.


순덕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들어올 겨를도 없었다.


‘거 뭐여, 카메라가 많다면서 왜 거기만 없다는 겨?’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몸이 절로 벌떡 일어나졌고, 찬물이라도 들이켜야 벌렁대며 끓어오르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식었다.


어린 시절 깊은 산골에서 약초 캐는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던 순덕이었다.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한 그녀지만 기억력과 순발력, 눈썰미는 꽤 좋은 편이었다.


아들내외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그 사고가 터졌을 때, TV에서 본 대로 길거리에 현수막도 걸어보고, 전단지도 돌려보고, 경찰서도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뺑소니차량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순덕이 직접 뺑소니 가해자를 잡아보겠다고 미쳐 돌아다닌 것이 6개월이 넘었다.


그날도 순덕은 뺑소니를 찾는 전단지를 돌리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문 앞에서 주인집 여자에게 호통을 듣고 있는 인한을 보았다.


“너희 할머니 어디 갔어, 어?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저번 달도 월세를 밀리고, 이번 달도 밀리면 언제 주겠다는 거야?”


“우리 할머니 곧 올 거예요.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인한이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선 주인집 여자가 인한을 향해 위아래로 눈을 부라렸다.


“내일까지 안 넣으면 방 빼라고 전해.”


할 말을 마친 주인집 여자가 홱 돌아서며 던진 한 마디가 순덕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에이,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들어와서는.”


순덕은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분노한 순덕의 손과 다리가 덜덜 떨렸다.


냉큼 뛰어가 재빠른 걸음으로 뒤돌아 가는 주인집 여편네 머리채를 확 잡아채고 흔들어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내 새끼들을 진짜 별 것도 아닌 연놈들 앞에 거지로 만들었구나. 죽은 내 아들이 이 꼴을 보면 저승에서 땅을 치겠구나.’


순간 순덕이 돌아선 주인집 여자의 머리통을 노려보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오냐, 너 잘 걸렸다. 어디 두고 보자.’


순덕이 다가가자 기가 죽었던 인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할머니!”


“그려, 그려. 배고프지? 들어가자.”


그 말을 들은 인한의 표정이 슬며시 굳으며 순덕의 눈치를 보았다.


“저··· 할머니, 저희 월세···.”


“걱정 말어. 내일 이 할미가 해결할 터니.”


“네···.”


“어여 들어가자.”



다음날 아침 순덕은 은행으로 가서 2달치 월세를 주인 집 여자 계좌로 이체했다.


현금도 약간 찾았다.


잔고를 보니 100만원이 채 남지 않았다.


순덕이 하늘을 보며 마치 눈앞에 있는 아들한테 말하듯 혼잣말을 했다.


“아들, 니 새끼들부터 살리고, 꼭 그 뺑소니 놈을 잡아줄 테니 기다려.”



순덕은 장부터 봤다.


내 새끼들부터 제대로 먹이고 보자며 정육점에 들려 돼지고기를 사고, 상추와 사과도 샀다.


소시지와 어묵도 샀다.


양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순덕은 장 본 물건을 문 앞에 내려놓고는 주인집을 노려봤다.


두 주먹을 꼭 쥐고 부리부리한 두 눈에 힘을 한껏 준 후, 주인집을 향해 돌진하듯 걸어갔다.


벨을 누르자 여자가 껌을 질겅거리며 문을 열었다.


여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마나 분칠을 했는지 얼굴만 하얗게 떴다.


그 위에 그린, 진한 눈썹화장과 빨간색 립스틱은 요란스러운 화장의 정점을 이루었다.


“지난 달, 이번 달 월세 넣었으니 지금 확인 혀.”


서슬 퍼런 순덕을 보며 살짝 움찔한 여자가 순덕이 내민 은행입출금거래내역서를 확인했다.


“알았어요.”


여자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순덕이 홱 문을 잡아재꼈다.


“뭐, 뭐예요?”


“우리 들어오기 전에 고장 난 화장실 수도 언제 고쳐줄 겨?”


“그걸 왜 내가 고쳐요? 살고 있는 세입자가 고치는 거죠.”


“이봐, 이봐, 뻔뻔하긴. 사람이 그리 뻔뻔하면 못쓰지.”


“아니, 이 할머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우리 이사 오기도 전에 고장 난 거잖어?”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증거 있어요?”


“있어, 있다구. 계약서 보여줘? 나 촌 노인네라고 무시혀? 나도 계약서 볼 줄 알어. 여기 이거 누구 글씨여?”


“···이게 누구 글씨지?”


정당하게 복비 내고 작성한 계약서를 들고도 딴소리를 하는 주인 여자에게 순덕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면 아저씨헌테 말혀? 안에 아저씨 계시남? 아저씨! 주인아저씨요!”


주인집 여자가 순간 움찔했다.


이전, 그 이전에 살던 세입자와도 계속 갈등을 빚었던 여자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세입자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여자가 남편은 못마땅했다.


타일러도 보고, 부부싸움까지 했어도 여자는 쉽게 그 버릇을 고치지 못 했다.


여자와 달리 점잖은 남편은 여자의 행실을 창피해 했다.


그 사실을 슈퍼주인 여자에게 듣고 잘 알고 있던 순덕이었다.


여자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오늘 중으로 고쳐. 안 고치면 바로 다이렉트로- 아저씨한테 말할 거여.”


“허어이 참, 이제는 영어도 쓰시네?”


“왜? 나는 하면 안 돼? 그리고!”


“그리고 뭐요? 뭐, 뭐?”


순덕이 여자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순간 여자에게 순덕의 조그만 덩치가 갑자기 두 배는 크게 보였다.


“말 조심혀. 그노무 혀를 확- 뽑아버리기 전에. 우리 애들헌테 또 한 번만 거지 어쩌구 해봐. 아작을 내버릴 텐께.”


“어머어머어머, 이 할머니가 미쳤나? 어디서 협박질이야? 협박질이.”


“협박? 협박이라고 혔어? 내가 너 뭐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거 같어? 니 남편한테 파랑 바지 말해?”


그러자 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뭐, 뭐, 뭐, 뭐, 뭐하는 소리예요!”


“허이구, 뒷구멍이 구리니 말도 헛 나오지?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는 거, 그거 나의 취미생활이여. 내가 입 한 번 열어 봐?”


“미쳤어, 미쳤어!”


여자는 순간 할머니를 밀어내고 문을 확 닫았다.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은 순덕이 문틈으로 소리 질렀다.


“아, 지금이 11시구먼. 1시간 안으로 고쳐 놔아. 알. 았. 지?”


할 말을 다한 순덕의 표정이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순덕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걸음으로 문 앞으로 돌아가 장 본 식자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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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승하의 신고(1) +6 21.05.25 244 8 7쪽
30 30화. 너 이년 딱 걸렸어(2) +2 21.05.25 223 7 7쪽
29 29화. 너 이년 딱 걸렸어(1) +6 21.05.24 228 9 7쪽
28 28화. 네 꺼에 침바른 적 없어 +2 21.05.24 231 7 7쪽
27 27화. 개구멍을 뚫자 +4 21.05.23 239 9 7쪽
26 26화. 할머니가 이상해 +2 21.05.23 256 8 7쪽
25 25화. 흰둥이 몸속으로(2) +7 21.05.22 251 9 7쪽
24 24화. 흰둥이 몸속으로(1) +5 21.05.22 246 9 7쪽
23 23화. 다시 이승으로 +7 21.05.21 272 9 7쪽
22 22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2) +2 21.05.21 251 7 7쪽
21 21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1) +10 21.05.20 255 11 7쪽
20 20화. 저승으로 (3) +1 21.05.20 262 10 7쪽
19 19화. 저승으로 (2) +8 21.05.19 249 10 7쪽
18 18화. 저승으로 (1) +2 21.05.19 256 9 7쪽
17 17화. 순덕의 사고(2) +3 21.05.18 253 10 7쪽
16 16화. 순덕의 사고(1) +1 21.05.18 246 9 7쪽
15 15화. 악연의 시작 (3) +2 21.05.17 261 7 7쪽
14 14화. 악연의 시작 (2) +3 21.05.17 276 7 7쪽
13 13화. 악연의 시작 (1) +4 21.05.16 285 9 7쪽
12 12화. 볼 때마다 눈빛이 별루야. +2 21.05.16 286 7 7쪽
11 11화. 자칫하면 큰 일 나겠어. +1 21.05.15 305 9 7쪽
10 10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2) +2 21.05.15 319 11 7쪽
9 9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1) +2 21.05.14 320 13 7쪽
8 8화. 찍는 게 남는거 (2) +4 21.05.14 333 13 7쪽
7 7화. 찍는 게 남는거 (1) +3 21.05.13 343 13 7쪽
6 6화. 인희가 말을 안 한 이유 +2 21.05.13 350 14 7쪽
5 5화. 굴러온 복덩이 +1 21.05.12 376 14 7쪽
4 4화. 일자리를 찾아야 해. +2 21.05.12 411 13 7쪽
» 3화. 우리 애들헌테 또 한 번만 거지 어쩌구 해봐 +2 21.05.12 411 12 7쪽
2 2화. 방순덕이 인천으로 온 이유 +2 21.05.12 474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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