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찬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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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松潭)
그림/삽화
필로스
작품등록일 :
2014.10.23 21:43
최근연재일 :
2014.12.01 07:06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11,350
추천수 :
3,086
글자수 :
73,009

작성
14.10.25 19:24
조회
6,274
추천
147
글자
9쪽

제 1 장 선택 3

DUMMY

“죽여!”

쾅!

악에 받친 소리에 이어 뭔가 부서지는 모양이었다.

카페에 막 들어서던 대철이 눈을 치켜떴다.

“이 이게…….”

부지불식간에 대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실내를 환하게 밝혀 준 LED등의 불빛 아래로 보이는 카페는 난장판이었다.

온통 부서진 집기들과 그 위에 피로 범벅이 된 채 널브러진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보였다. 얼추 헤아리기에도 예닐곱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아직도 꽤 많은 사내들이 몰려서 누군가를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그런 와중에 소파에 앉아있는 이가 있었다.

사십 쯤 된 것 같은 정장차림의 사내였다.

‘저 놈이 대가리란 말이네.’

순식간에 장내를 훑어보고 마지막으로 사내에게 시선을 준 대철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놈의 차림새 때문이었다.

양복은 물론이고 구두와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까지 온통 흰색으로 치장한 놈이었다. 놈은 담배를 꼬나문 채 열심히 엄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몰두해 있던 것으로 보이는 놈이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든 놈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어렸다.

대철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어디서 낭패를 보았는지 놈의 시선에 들어 온 대철은 음식찌꺼기 냄새가 요동을 쳤으며 옷은 물론이고 머리까지 온통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썩을 놈들.”

대철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중앙 소파에 앉아있던 흰색에 환장한 놈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놈은 대철이 막노동판에서 일 하다가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하려고 들어 온 손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영업 안합니다.”

정중한 말투였다.

놈은 정말로 제 딴에는 예의를 갖췄다.

이 정도면 자신의 할 도리는 다 한 상황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나는 예의를 갖춰서 상대를 대했다. 그런데 상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손을 봐 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그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도 상관없었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직원들에게 경종을 울려줘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서 구역 다툼이 거의 없다 보니 많이들 나태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조만간 합숙훈련이라도 한 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참이다.

“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문도 안 잠갔잖아! 무심코 들어왔던 선량한 시민들이 얼마나 놀라겠어!”

이내 고개를 돌린 놈이 구석에 몰려있는 직원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게 이름을 그 따위로 지었으니 이렇게 난장판이 벌어지는 거야. ‘바람 잘 날 없는’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네.‘

대철은 ‘오늘 영업 안 합니다.’라고 했던 흰색 숭배자의 말을 무시한 채 카페를 둘러보았다.

정말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수리비 깨나 나오겠군.”

대철이 한 마디를 더했다.

온통 흰색으로 치장한 놈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직원들에게 한 소리 호통을 쳤던 놈의 얼굴에 없던 표정이 생겨났다.

그것은 미소였다.

“얘들아, 손님 모셔라.”

놈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직원들에게 다시 소리를 질렀다. 입술은 앙다물고 눈만 웃는 그런 살벌한 미소를 보이며 말이다. 그래놓고 놈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엄지를 놀리는 놈의 모습에서 대철을 의식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기서 몰매를 맞는 게 설마 개식이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랬다가는 나한테 먼저 맞아 죽을 텐데 그럴 리가 없지. 암, 개식이가 아니고말고.”

대철이 주절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놈을 무시한 행동이었으며 개식이한테 자신이 왔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제대로 상대하지 않으면 혼을 내주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영업 안 한다고 했는데…….”

스마트폰에 몰입해 들어가던 놈이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물고 있던 담배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보이던 스마트폰을 자리에 곱게 내려놓았다.

슬며시 일어나는 놈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난장판처럼 변해버린 카페였다. 그리고 지금도 한쪽 구석에서는 연신 주먹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놀라 뒷걸음질을 치거나 그 자리에서 몸이 굳기 마련이었다.

한데 지금 들어온 사내는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유로움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대철의 모습은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놈을 향해 대철이 다가섰다.

이제까지 놈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모습에서 마침내 상대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썩을 놈, 남의 영업장에서 이게 무슨 행패야.”

대철의 말투는 가벼웠다.

하나 그의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어서서 대철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놈이 주춤거렸다.

“누구냐!”

놈이 으르렁거리듯 소리를 질렀다.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자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결과였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상대하기 위해 원군을 부르는 소리였다. 즉, 한쪽 구석에서 신나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똘마니들을 부르는 신호였던 것이다.

“썩을 놈, 행패를 부리려면 상대가 어떤 이력을 갖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보고 했어야지.”

눈빛을 잔뜩 굳힌 채 투기를 일으키는 놈을 대철은 마치 어린아이 상대하듯 대했다.

그의 그러한 태도는 놈을 흥분시키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하얗고 고른 치아를 드러낸 채 히죽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이건 일부러 시비를 건다는 것으로 봐야했다.

“어디서 왔냐!”

놈이 잔뜩 웅크린 호랑이마냥 매서운 기세를 피웠다.

하나 대철은 놈의 물음을 무시했다.

“어이, 이개식! 5분 안에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나한테 죽는다. 명심해!”

대철이 구석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이계식을 향해 말했다.

군대 부하였던 이계식을 대철은 개식이라고 불렀다.

눈앞에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는 상대가 있었지만 대철의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시커먼 얼굴에 짧은 머리 그리고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이빨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씨부렁거리는 거야!”

놈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어깨를 애써 펴면서 소리를 질렀다.

“겁을 먹으면 그 순간부터 밥으로 전락하는 거야.”

나직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놈의 귀에는 천둥소리와 다르지 않게 들렸다.

“이런 개시키가…….”

놈의 입에서 억눌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서든지 굳어가는 몸을 풀어보려는 안간힘이었다.

자기 딴에는 많은 싸움을 해왔고 또 칼로 사람을 찌르기도 하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일반적인 조폭들만 상대했던 놈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대철의 눈빛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 시키는 뭐야!”

때마침 구석에서 열심히 손발을 놀리던 한 놈이 대철이 이계식에게 하는 말을 듣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다른 놈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 뭐하는 놈인데 여길 들어온 거야? 형님! 그냥 앉아 계십쇼. 쌍칼이 처리하겠습니다.”

또 다른 놈이었다.

남들보다 뒤늦게 고개를 돌리던 쌍칼이라는 놈이 손을 탁탁 털면서 중앙으로 나왔다.

하나 그 순간 이미 대철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퍽! 퍽! 퍽! 하는 가죽부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털퍼덕!

온통 흰색으로 치장했던 놈이 코와 입 그리고 사타구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놈은 이제 더 이상 하얀색을 강조할 수 없었다.

꾸에에엑…….

놈의 입에서 다 죽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대철은 문득 어떤 동물이 생각났다.

“허어, 그 놈. 주인에게 실컷 두드려 맞은 도야지 새끼처럼 징징거리네.”

대철이 자신에게 다가 오는 놈들을 향해 몸을 움직이면서 이죽거렸다.

“저 저 새끼!”

“죽여!”

중앙으로 걸어 나오던 쌍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고 뒤이어 다른 놈들이 질러대는 악다구니가 꽤 넓은 카페를 온통 장악했다.

대철은 여전히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눈빛과 시커먼 얼굴에 대비되는 하얀 이빨이 유난히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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