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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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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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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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2)

DUMMY

언제부터였던가, 저는 이렇게 뒤엉켜 망가져야만 했던 뇌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풀어보기 위해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실마리를 건져 내려 노력 중이에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책에선가 ‘엉킨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했다죠?

섣불리 건드리지 말고, 오랫동안 꼬나보면 길을 알 수 있다는 뜻일 테구요.

아마도 그러께인 병신년(丙申年) 말부터 타오른 불꽃 ‘피에스타(Fiesta)’가 끝난 직후부터 증상이 심해지더니 각종 미디어를 집어삼킨 광란의 퍼레이드가 저의 심약한 심신을 더욱 자극한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자가진단을 해 본답니다.


짜잔! 2016년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였어요.

원숭이는 뭐든 붙잡고 절대 놓지 않는 습성이 있지요. 빨강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더니,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상징하는 붉은 닭이 새벽은 열더군요.

닭울음소리인 ‘꼬끼오’가 ‘고귀위(高貴位)’로 들리는 순간··· 문자 그대로 혈계(血鷄)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죠.

피로 물든 골짜기인 혈계(血溪)에서요.

그야말로 온통 붉은 멋들어진 신세계의 도래였고요.

병신년의 병(丙)과 정유년의 정(丁)은 5가지 색(靑•赤•黃•白•黑)의 천간 중에서 붉은색을 뜻한대요.


매일 밤 악몽 속 배경은 중세 유럽! 백성들은 모조리 불꽃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축제용 불꽃이 꺼져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아니 두려웠는지, 성난 군중들은 사냥한 사람들을 산 채로 태우기 시작하네요.

세상에나! 피에스타가 급기야 잔인한 헌팅(hunting)으로 전격 전환을 하다니! 이들이 바로 Grim(잔인)한 자들이거나 Bloody-man(피 흘리게 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제가 영어권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순간순간 마구 튀어나오는 외래어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어

쨌거나 이러한 파티를 단순개념으로 해석해도, 사냥개들을 앞세운 유럽 귀족들의 격조 높은 스포츠인 여우사냥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네요. 이들 사냥개들은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아홉 마리의 으르렁거리는 개들과 같군요.


저기, 저쪽에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혹여 ‘저’?

광기 어린 스포츠에 열렬히 환호하는 열성팬들과 소심한 방관자적 구경꾼들이 혼재된 광장 한 모퉁이에 저도 있었던 것이죠. 별안간 인간 땔감을 먹이 삼아 몸집을 부풀린 불꽃은 이제 화마(火魔)가 되어 사방으로 번졌고, 사람들을 덮치더니 저에게까지 다가오는 극도의 공포로 겨우 잠에서 깨기 일쑤였어요.

이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잠꼬대는?

‘장다리는 한 철이나, 미나리는 사철’! 정녕코 이 땅의 백성들은 구전민요 ‘미나리요(謠)’를 잊었단 말인가요? 생물학적으로도 무나 배추에 비해 여러해살이인 미나리가 오래 간다던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밤에도 극한대의 공황 상태가 다시 시작되는군요. 죽음의 물결이 또다시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지요. 아니, 저 자신이 죽음의 늪에 턱까지 빠져 있다는 표현이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요? 인간으로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유무형의 통증이 뇌와 흉부를 동시타격하고 있다는 의미고요.

급기야 통원치료만으론 이러한 악귀의 소행 같은, 마음속 병이 구사하는 게릴라식 공략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답니다.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결국 손들고 자진해 입원을 선택했는데, 아직까지는 호전되었다는 기미는 1도 보이지 않고 있다니···.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나를 이중삼중으로 힘들게 하는 건, 함께 방을 쓰고 있는 이들이 교대로 종일 내뿜고 있는 중얼거림이지요.

이곳 하얀 병동에서는 장시간 연설 투로 지껄이는 자, 혼잣말로 누군가와 심각한 토크를 하는 시사(時事) 만담꾼, 아랫것들을 엄하게 훈계 중인 지체 높으신 분, 지속적으로 의사나 간호사 또는 병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자기의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외치는 갑질 민원인, 심하다못해 나중에는 인류 문명의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사용했었다는 수메르 언어와 같은 고대 언어이거나, 혹은 영혼계의 방언으로 추정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외래어를 자유자재로 던지는 존엄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언어가 난무 중인걸요. 이분들이 이곳에서 각자 하고 있는 혼잣말은 호언난어(胡言難語)가 아니던가요?

이는 옛날 중국인들이, 주변 오랑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만든 사자성어라지요.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사울 왕에게 악령이 들어와 호언(胡言)과 난어(難語)를 정신없이 떠들어 대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랍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기괴함의 최고봉은 혼자서 두 명 이상의 목소리로 비밀 대화방을 주제하시는 절대고수를 꼽을 수 있겠어요.

심하게는 남녀 목소리를 교차적으로 발성하는 지존도 계시지 뭐예요. 처음 이러한 현상들을 접했을 때에는 경악과 공포로 인해 병원에서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으나, 어느덧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고 계시나, 하는 지적 호기심이 자극되기 시작하면서 나름 제4세계 언어들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요.

이뿐만이 아니죠. 제 지식과 경험으론 도대체 이해가 불가능한 다이얼로그에 관해서는 예를 갖추되 대화를 중간에서 끊어 버리는 과감한 돌직구 질문까지 날리게 되었답니다.

헌데, 왜 하고많은 질문 중에 하필이면 그 질문이 기화가 됨으로써 그자가 살아온 대하드라마를 듣게 될 줄이야! “No! No!” 외침과 함께 저는 심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어요.

당최 이건 범죄소설 장르인 후더닛(whodunit)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허나 그건 탐정소설류나 수사드라마가 아닌 대서사시였던 것이죠. 지하세계의 반신반인(半神半人)들이 펼치는 고대 근동지역의 길가메시(Gilgamesh)와 다름없었다니까요.

저는 처음엔 대한민국에서 은밀하게 자행된 최초의 암살신화를 접하고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었죠. 그러니 혹여 제가 푸는 썰 중에서 되게 어렵거나 모르는 말이 나오면 당황해하지 마시고 스마트폰을 잠시 꺼내 조용히 찾아보시라니까요···



저는 다시 여무명을 대상으로 추가 조사에 착수하려고요.

“형님, 한국인 아니죠? 이 나라엔 왜 오신 겁니까?”

그는 제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에 다시 혼잣말로 무아지경에 돌입하더군요. 특이하게도 평소에 저에게 하던 반말투가 아니라,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설명하는 방식으로요.

“난,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지만, 한국인은 아닌 것이 분명해요. 어머니! 이제 나 여무명에 대해 뭔가는 좀 알려주셔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요? 물론 나를 키워주시고, 공부시켜 주신 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역할을 해냈잖아요. 이래도 되는 거예요? 열심히 하면 고향에 보내준다면서! ···그리고요. 언제까지 인간 백정 짓이나 해야 하는 겁니까? 내가 왜···. 혁명 완수를 위해서, 라고요? 죄 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는 작업이 혁명과업이 아니란 건 이제 나도 인식할 수 있다고요. 닥쳐! 나쁜 년, 그따위 미친년 널뛰는 소린 지겹다고! 너희들 모두 서로 이기기 위해 널을 뛰었잖아. 이젠 너무 높이 오르내리고 있어서 멈출 수가 없는 거란 말이지. 한 년이 널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저는 그의 미친 방백(傍白)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반면에 여무명의 이런 놀라운 심경 발표에도 불구하고 다른 환자들은 자기의 환청 상대와 대화하기 바빠서 그에게 귀를 기울일 여력은 없군요.

그가 다시 중얼거리네요.

“너무 인상이 좋아 보였다고. TV에서 볼 때보다 더 착해 보였단 말이야. 난 다른 동지들에 의해 끌려온 그에게 작업물질로 흥건히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어. 미혼향(迷混香)이었지. 일본 닌자들이 오래전부터 쓰던 마취제를 말하는 것이야. 난 마취하는 그 순간에 봐버린 그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어.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이랄까. 마지막 탄식조로 하소연을 뱉어내더군.

‘난 그 돈 받은 적 없잖아요, 이런 식이면 결국 뇌물을 인정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내 삶의 의미와 명예는 어찌 되는 겁니까? 다른 건에 대해서는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당시 작업의 책임자 놈이 그에게 지껄였어. ‘그러니 왜 그딴 걸 어쩌자고 굳이 알려고 했소. 이왕지사 당신 명예도 살리고, 우리 전체를 위해서도 이 길밖에 없소. 한데 또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건 아니지요?’라고 말하더라고.

그다음엔 나 여무명은 그냥 잠들어가는 그를 뒤로한 채 병원으로 돌아왔지. 이튿날 기사를 접한 저는 무진장 화가 났어. 굳이 그를 던져서 골절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유골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그도 같은 편이었다면서···.

그렇게 멀리 던져졌다는 건 마지막에 정신이 돌아와 저항했다고 봐야겠지. 근데 이상한 점이 있어. 뉴스 시간에 나온 장례식 광경에서 그의 부인이 어떤 지체 높은 분을 안고는, 그것도 그자의 허리에 깍지를 낀 채 오열하는 것이었어.

난 그 모습이 마치 그 옛날 논개가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껴안은 모습이 연상되더군.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만큼 그 둘이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는지, 아니면 여차하면 우리 모두 함께 갈 수도 있다는 위협인지···.

역사적으로 논개는 투사였대. 짙푸른 진주 남강으로 뛰어든 애국 열사는 혹시 붉은색 한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까? 직업이 창기(娼妓)였다면서···.

그러고 보니, 그 숭고한 죽음을 놓고도 전북 장수군과 경남 진주시가 서로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싸웠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나? 논개의 고향이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라는 거야. 아, 글쎄 전라도 본가에서는 절대 ‘창기’란 말 안 써. 왜 말이 이렇게 길어졌냐면,

이렇듯 어떤 죽음을 놓고 말도 많고, 자기편에 유리하게 일단 써먹고 보자는 인간들이 많이 있어서야. 우리처럼 사람들을 ‘죽이는 인간’들 만큼 저들은 두 번 죽이는 나쁜 자식들이 아니겠어?

아주 오랜 전에 미 제국주의 서부활극에서 들었던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잖아. 여자와 죽은 사람을 이용하는 놈은 ‘bad man’이라고 규정하더군.

반대는 당연히 ‘good man’이었지. 이밖에 ‘ugly man’도 있었고. 아마 그 영화는 ‘석양의 무법자(1966년 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으로 나오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빠라바라밤 빠바바∼. 어럽쇼.

그러고 보니, 요즈음 이딴 자들이 많다마는···. 아무러하든지 간에 이러한 강요되거나 잘 설계된 자살이 오늘날에는 흔한 세상이 된 게지.

2010년 충북 오창 맨홀에서 양손이 뒤로 묶이고 목이 줄에 매달린 채 발견된 시신을 두고 자살이니, 타살을 위장한 자살이니, 말들이 많았어.

그 사건을 두고 유명한 프로파일러(profiler) 한 분이 말씀하신 게 가장 기억에 남더군. ‘이해관계로 추정된다. 피해자가 없어져 주는 것, 피해자가 활동하지 않게 되어야만 본인들이 어떤 이익을 얻거나 혹은 손해를 보지 않는 것. 이러한 형태가 아닐까···’라고 말했지.

해당 프로파일러는 곧이어 다른 건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분조차도 이번 정권 들어서 연이어 발생하는 기괴한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지? 이상하다. 그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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