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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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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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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1)

DUMMY

-쉿! 고요한 은사(隱死)의 나라, 까레아-


1-방백(傍白, Aside)-


“형님. 또 누가 뭐래요?”

일단 제가 위로를 빙자한 질문으로 탐색의 문을 빼꼼하게 열자, 어째서인지 그자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고 해야 하나요.

얼핏 보기에도 그의 경우, 흥분한 것이 분명함에도 냉철한 말투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할까요.

“저년이 또 나에게 도축작업을 할당하려 하고 있어. 이젠 내 나이도 있으니 그만 시마이(仕舞い)하겠다는데도, 위에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야.”

이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흠칫 몸을 심하게 떨어댔죠.


이건 마치 물벼락을 맞은 개나 고양이가 몸서리를 치는 모양새가 아니던가요?

저는 갑자기 저년이 뉘시고 무슨 일을 하시는 년인지가 무지무지 궁금해졌답니다.

“저년이라뇨? 원래 형님 직업이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는 다시 인상을 쓴 채 저를 잠시 옴팡지게 노려보다, 이내 흥분을 억누르고 체념한 표정으로 언급하더군요. “어머니···.”

저 역시 그의 ‘어머니’란 대답엔 돌연 긴장감을 느끼기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유인즉슨, 최근 간호사와 보호사들의 서로 심각한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서였죠.

이자의 이름은 ‘여무명’! 침대에 그의 이름과 나이(38세)가 적혀 있어서 알 수 있었거든요. 병원 관계자들의 수군거림을 요약하자면, 여무명이 과거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하여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지 뭐예요.

어머니가 그의 처벌을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치소에 수용될 정도로 죄질이 불량했던 것이지요.

덧붙이자면, 항소심 재판 당시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재판정에서 도주마저 기도하기도 했다는데, 나중에는 구치소에서도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패륜아적인 내용이라니!

그래서랄까 처음 그에 관한 나쁜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직계존속마저도 함부로 가해하는 이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있다니!”라며 무조건 멀리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치만 다시금 그와 함께 한 시간을 곰곰이 점검한 결과,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답니다. 어찌하여 그런고 하니 여무명이 그사이 동료들의 생필품과 간식을 대신 사주는가 하면 몸이 불편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는 등 좋은 품성을 보여 왔기 때문이지요.

또한,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저만의 촉이 있었기에 조심은 하되, 친분관계는 유지하기로 결정했던 것이고요.

이 밖에도 이곳에서 우리의 ‘Mr.여’처럼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인간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이유 등등이죠. 물론이려니와, 정상적인 상태에 한해서이지만···. 근데 지금 그의 입에서 어머니를 ‘저년’이라고 지칭하고, 극도의 긴장한 모습을 표출하는 것을 보면서, ‘제 촉이 틀렸나’ 하는 의심도 잠깐 동안 들었던 것이 사실이랍니다.

허나 촉에 관하여는 백발백중이었다는 자부심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다시 냉철한 관찰자적 입장에서 그를 지켜보기로 했죠.

아무튼 그자는 저의 평소와 다른, 약간 긴장한 모습을 접하고는, 자신이 부모에게 욕하는 극악무도한 자가 아님을 주저리주저리 강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제기랄! 암튼, 그 여자는 내 친모가 아냐, 생각해 봐. 알고 보면, 같은 민족도 아니라고. 그러엄! 난 평생 그들에게 이용만 당했지.

그년 맘대로 내 뇌와 심장에 도부수(刀斧手)란 글자를 입묵(入墨)하지 않았겠어. 사형집행자 말이야!” 글쎄 이런 식으로 횡설수설하더니 어느 틈에 침착해진 상태로 회귀하지 뭐예요! 밖에서는 40도를 돌파하는 역대 최강의 폭염이라는데도 선풍기 바람도 거부하는 사내였죠. 더위에 강한 체질임이 확실하다니까요.


주변에 있던 같은 방 환자들은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표정이었는데 반해, 전 그 말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한 달 전쯤인가 한밤중에 깨서 보니, 여무명이 어린아이의 말투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거든요.

“마마(媽媽)! 또또(豆豆) 으어(餓)러(了).” 귀 기울여 경청하자, 그것은 틀림없는 중국어! 그것도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이 아니겠어요.

다음날 기상 즉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캐물었죠.

“형님, 중국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평소엔 쓴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는 ‘아차’ 싶은지 아주 잠시 놀라더니 이내 아나운서가 기사를 읽듯이 청초하되, 무미건조한 어투로 반응해 주더군요.

“···왜? 내가 여태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나? 으음···뭐랄까. 어머니가 원래 조선족이라네. 난 먼저 한국에 와서 식당일 하시던 어머니의 초청으로 어릴 때 이곳에 올 수 있었어. 이제 됐나?”

아니 저더러 이 걸 믿으라고요?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생활했다 해도 그의 억양은 완전 서울 토박이였거든요. 조선족 특유의 사투리도 전혀 느낄 수 없었죠.

그뿐만이 아니지요. 그의 나이를 가지고 계산한 결과, 조선족들이 대한민국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 이후라는 점을 감안 할 때 그가 한국에 온 시점과는 뭔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요?

거기다 외모는 조선족이라기보다는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인과 흡사했다니까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그래서인지 보통 한국인에 비해 1.5배 정도 크고 둥근 눈이 나를 더욱 짠하게 했는지도 모른답니다.

저의 속 좁은 편견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현재 살고 있다는 거주지 역시 강남 한복판이라는 것도 수상하지 않은가요? 이를테면, 그의 출신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랄까? 그렇잖아요. 요즘 아무리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에서 다짜고짜 추가 질문에 들어갔죠. “외람됩니다만 형님 집에선 뭘 하시는데요?” 그러자 그는 저의 식상한 호구조사(戶口調査)에 관심이 없다는 투로 대화를 끊으려 했지요.

“이삿짐센터. 어머니가 사장이고 난 그냥 옆에서 일을 돕고 있지. 언제 주말에 외박 나가면 함께 식사나 하자고.” 풍기는 분위기 내지는 짙은 외모로만 따지자면 부(富) 티라고는 헤집고 봐도 없었던 그였거든요.

이삿짐센터 일꾼이 아닌 대표 아들이란 신분 노출 덕분에, 항상 여유가 있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그제야 설명되더군요.

한데 주말에 그와 제 외박 시간이 겹쳤던 거예요. 드디어 병원에서 그를 데려가러 온 조선족 어머니를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대한민국 출신인 제 판단으론 전형적인 조선족이던데? 말투와 억양이 그랬다는 거죠.

단지,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둘은 모자지간이라기에는 혈육들 간에 읽을 수 있는 애증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까. 더더욱 기이한 것은 아무리 정신병 환자라고 해도 단순히 외박을 나가는데, 이삿짐센터 직원이라는 자들이 4명씩이나 동행을 했다는 점이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이때쯤이 아닐는지요.


아뿔싸! 바로 그때 또 다른 당일 외박신청 환자인 한 탈북민이 여무명과 어머니의 대화를 듣더니 어머니를 향해 고향사람을 만났다고 반기더라고요.

이에 대해, 그녀는 “예···, 에? 에구머니···”라면서 매몰차게 대화를 거부하고 그랬죠. 잘못 봤다는 황당한 표정이 아니었답니다.

오히려 경멸스럽다는 눈빛으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게 아니겠어요! 마치 배신자를 노려보는 독기마저 품고 있었으니···.

오히려 당황한 탈북민 출신 환자는 나에게만 조용히 쫑알 거렸죠. “저 동지가 어째 이럴까. 분명 조선족이 아니었슴다.

조선족 중 상당수가 함경도와 량강도(兩江道) 출신이지만···. 함경도 사람이 문화어(평양 표준말)를 배운 말투였단 말임다. 조선족은 저런 투로 말하지 안슴다. 지금 저 동무 조선족이라고 ‘후라이 치고’ 있는 검다.”

그 순간 전 그녀가 당황하여 떨어뜨린 책을 봐버렸어요.

제목은 ‘The Catcher in the Rye(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저자는 ‘J.D Salinger’였죠. 조선족 중년여성이 중국책도 아니고 영어 원서를···. 곧이어 여무명 일행은 서둘러 병원을 나섰고, 나는 그날부터 알 수 없지만 재밌어 보이는 수수께끼 놀이를 여무명과 함께 시작했으니!

그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진검승부 게임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인식하게 되었지만···. 과도한 궁금증은 자칫 위험을 끌어당기는 징글징글한 블랙홀이란 걸 몰랐다고 해야 하나요?

이제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하다는 얘기를 시작해보자구요.


2018년 무술년(戊戌年) 내내 이곳 백색병동에서 보내고 있으려니 왜 이리도 좀이 쑤실까요.

무술년은 60간지(干支) 중 35번째 해이고, 무(戊)는 황(黃)을 뜻하므로 노랑 개(戌)의 해라죠. 작년 내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짖어대던 황구(黃狗)들이 금년 복날부터는 보신탕집으로 끌려가기 시작하네요. 무술년에 뭔 일들이 일어났는지 대강 꼽아 볼까요?

1418년 무술년에는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역사적 해이기도 하지만,

1598년 무술년에는 조선 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데 이어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년도였답니다. 그해에 임진왜란이 종료되었던 것이죠. 성웅의 죽음에 대해서 강요된 전사였는지는 좀 더 고찰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자고요.

이 땅엔 언제부터인가 이렇듯 강요된 죽음이 많았대요.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갑작스러운 부상(浮上)이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끼치기도 하며 어떤 인물들의 죽음은 때론 큰 역사적 사건들과 특정 시대의 종말을 몰고 오기도하고요. 역사를 잠시만 더듬어 올라갈라치면,

1238년 무술년은 신라 호국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황룡사가 고려 고종 때 몽골 침입으로 불에 타 소실되었지요. 노랑 개의 해에 노란색 용이 사라졌네요. 또, 698년 무술년에는 망해 버린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해동성국 발해가 건국되기도 했고요. 작년에 망한 남한 보수정권의 유민들은 앞으로 뭘 할까요?

때마침 병실 스피커를 통해 에릭 클립톤(Eric Clapton)의 ‘Tears in Heaven’이 애처로이 울려 퍼지네요.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내가 천국에서 널 만나면 넌 내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네 살배기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슬픔을 달래기 위해 쓴 곡이라 하더라고요. 큰 슬픔이다마다요.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기타의 신’이래요. 심지어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폐쇄국가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 아니 그의 형 김정철이 그의 공연을 보려고 해외를 자주 방문할 정도라잖아요. 일찌감치 후계 구도에서 물러나 있던 그가 슬픔을 달래려 에릭 클립톤의 음악에 빠지진 않았을까요? 최고 권력에 위협이 되는 인물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절대 왕정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무관심한 예술가입네 해야 하고, 게임과 마약에 빠진 방탕아인 양 처신해야 하겠지요.

놀라워요! 그의 처세술이. 그가 혹여 왕의 자리를 거부하고 방탕아로 살던 영국 ‘헨리 5세’일까요? 아님 말고!

그렇다면 혹시? 태종 이방원의 세자이자 세종대왕의 형이었던 양녕대군? 그는 폐세자가 된 앙갚음을 세종의 아들인 세조(수양대군)를 통해 말끔히 해소했지요. 세종의 직계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살해되잖아요. 양녕대군이 골육상쟁을 부추겼던 것이지요. 이것도 아니라면 조선말 흥성 대원군 이하응?

이쯤 해 두죠. 듣자 하니 김정철 군의 기타연주 솜씨도 수준급이라던데. 어떤 공식 직함도 없는 그였기에 군(君)이라고 불러봤답니다. 군(君)이란 호칭은 친구나 손아래 사람을 부르는 의존명사이나, 왕자에 붙이는 존칭이기도하니 북한당국은 흥분하지 마세요. 왜, 막내 여동생 김여정도 노동당 부부장이라는 공식 직함이 있잖아요.

나 역시 이 노래 ‘Tears in Heaven’ 중에서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네요.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하지만 난 강해져야만 해. 천국과 다른 여기서 살아내야 하니까.)’

그랬어요. 전 강해져야 했지요. 고요한 은사(隱死)의 나라, 까레아에서 Stand fast(불굴)의 의지로 살아내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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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타백(7) 23.06.16 22 0 12쪽
195 타백(6) 23.06.06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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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타백(4) 23.05.13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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