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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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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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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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1)

DUMMY

-고백(告白, Profession)-


식구들이 나를 어머니나 누님 또는 언니 따위들의 호칭으로 부른다고 들었소.

앞에선 그러면서도 뒤에선 자기들끼리 날 ‘백사(白蛇)’라로 은밀히 말하고 있다지? 어찌 이런 흉악한 별명이 있단 말이오.

내가 아무리 암살자들의 두목이기로서니 이런 대접은 못 참지, 암! 첨엔 백발마녀가 떠올라 ‘어떤 잡것이 그런 게야!’ 라는 사자후를 토하면서 AK 소총을 난사하고 싶었거든!

한데, 뭔가 백사는 신비스럽게 느껴지는지라 일단은 참았지 뭐요.

그런데다가 식구들은 내가 화를 낼까봐 영화 ‘청사(Green Snake, 1993)’에서 여배우 왕조현(王祖賢)이 백사로 나왔다고 일러주는 게 아닌가! 그래 왕조현 정도라면 그런대로 괜찮은 별칭이 아니더냐!

작금에 염색으로 가리고 있는 내 머리의 원단은 흰색이기에 그다지 틀린 평가도 아니거니와 고백할 것이 있다오.

난 이제 대남(對南) 사상투쟁에 참전하지 않는다오.

적어도 지금 시점인 2018년 무술년(戊戌年)에선 그렇다는 뜻이야. 되레, 자본주의사회 오락물에 자주 등장하는 킬러로 살아갈 뿐이고.

다른 풍의 표현도 있걸랑! 북조선은 공식임무를 수행하는 우리를 소위 암살조라고도 부른다 하오.

북조선이라고 하니, 새록새록 흰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즐겨 입었던 고향생각이 간절하다네! 어마이께서 예전에는 치마도 흰색이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 그럼에도 난 어릴 적 다채로운 한복을 입는 것이 소원이었소.

이왕이면 다홍치마랄까. 내가 알고 있는 한, 흰색은 우리민족이 염색기술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선택했다는 인접국의 저평가와는 반대로 원재료를 제대로 염색한 결과물일 게요.

맞네, 안 맞네, 따지기에 앞서, 흰 옷은 유지 및 관리하기가 번거롭다는 게 사실이 아닐는지?

면밀하게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선의 여럿 왕들은 백성들이 백색 옷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하들에게 입는 것을 금지했다는구나. 근현대사에서도 유사사례가 반복되고 있거든!

1906년 고종이 흰옷 착용 금지명령을 내렸고, 일제도 백색 옷이 조선인의 자주성을 나타낸다고 하여 법령으로 금지한 기록이 나올 만치 흰색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나 보오.

난 당의 명령에 의해 흰옷 입기에 매몰된 남조선 인민들에게도 빨간색 모자를 씌워주러 왔던 것이외다. 저간의 사정이 있어서 지금 두 번째 넘어왔을 땐 그 흰옷에 붉은 피를 묻혀주러 왔다오.

그리하고 이 백사는 남조선에서 작지만 알찬 회사를 창업했거들랑. 먼저께는 여느 탄탄한 중소기업 못지않소.

근자에 들어 잘나가는 말로 표현하면 ‘스타트업 론칭’ 이라던데?

이래 봬도 난 이런 사람이오. 그건 그렇다 치고, 식구란 용어는 남조선 깡패집단이나 쓰는 용어이기에 난 회사원이란 단어를 더 선호하는 바요.

영화에 나오는 암살 전문회사라고나 할까? 이들은 다 멋진 슈트를 잘 차려입은 미남미녀들로 구성되어 있다던데. 반면에 우리 식구들은 까놓고 말하면 모두 그런 건 아니라오. 하긴, 아무렴 어떤가!


2016년 병신년(丙申年)과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 있었던 찬란한 광경을 동시에 펼치자꾸나.

옳다구나, 촛불아! 그래 훨훨 타올라라.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을씨고···. 불꽃놀이가 따로 없구나, 야. 붉은 잔나비가 안고 있던 붉은 닭을 높이 날려 보냈지.

그러자 붉은 닭인 ‘정유(丁酉)’는 닭싸움의 최종 승자가 되어 자랑스럽게 울어 젖히더라. 닭 울음소리는 새벽이나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던가?

원숭이들도 종류가 많다지?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 등등. 그래서 얘들이 모여 있는 걸 몽키 박물관(museum)이라고 하나보오. 그렇지.

특히나 저기 붉은 원숭이가 힌두교 ‘하누만’신이라는 게일 게고. 붉은색의 히말라야 원숭이라! 중국 명나라 때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바로 저 원숭이 동무를 보고 착안했다는 것 아니겠어···.

그래. 저거이 바로 우리가 주구장창 경고하던 불바다란 걸, 니들 남조선 인민들은 몰랐겠지?

촛불바다 멋있지 않니? ‘구국의 촛불이자 구국의 강철대오’! 드디어 시퍼렇게 날이 섯구나, 야. 어언 삼십여 년 만에 저들의 진군가(進軍哥)가 다시 광장에 울려 퍼지누나!

저거이 다음이 ‘동무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라는 걸 암까? 아직은 모르겠지, 암. 이자들 보게나. 세상 좋아 무통분만을 했구나. 날로 먹었다는 뜻이야!

나에게 저 촛불이 세포로 보이는 건 또 무슨 이유인지 알간 모르간?

“어머나, 짜식들 세포분열에 성공했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당시 나의 평가에는 약간 질투 또는 부러운 감정이 묻어있었다오. 그들이 곧 쓰게 될 승리와 영광의 월계관에 대한···.

이내 촛불은 잦아들었지만 대신에 새로운 전사들이 횃불을 들고 나타나더군.

“어럽쇼. 이거 봐라.”

이제 보니 아예 할리우드 전쟁영화 단골 소재인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구나.

맙소사! 도심 방공호에 숨어있는 적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쏘아대다니. 전쟁의 마지막 단계인 시가전은 반혁명분자들에 대한 색출작업의 일환으로 보이는걸.

아비지옥(阿鼻地獄)과 규환지옥(叫喚地獄)의 짬뽕이구만.

“옳아, 바로 그걸세. 이거이 바로 섬멸전이야.”

곧 반동 적폐들의 마지막 저항도 화염이 내뿜는 포효에 의해 외마디 비명소리가 묻히면서 마무리될 판이군그래.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정국에서 매일 TV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선실이모가 생각이 난다오.

나는 한 때 공화국 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분의 알쌈이(오른팔)였소.

주특기로 따지자면 원래 이렇게 개백정 짓이나 하는 신분은 아니었단 말이야.

난 소위 북한에서 잘나가던 ‘새세대 청년공작원’이 아니었더냐.

대남공작부서인 ‘연락부’ 소속이었던 우리는 50살 가까운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정신적 공통분모를 소유했었소. 난 선실동무의 부관이나 매한가지였지. 모든 사업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는 것이오.

1980년도 잠깐 전주를 거쳐 서울 대방동과 안양 비산동에 함께 숙식하면서 선실이모가 90년 강화도에서 잠수정으로 월북하실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그분이 관리하던 대규모 조직만 3-4개 이르고 그 세포조직들이 또다시 새끼를 치는 역사적 광경도 체감할 수 있었소. 정말 눈물겹더라!

나도 처음에는 단순한 정찰 업무부터 시작했지. 남조선에 있는 주요 군사시설이나 정치인들이 모이는 장소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을 일컫는 것이라오.

그때에는 난 과감하게 청와대 인근 야산까지 접근해 방공포 운영상황을 세밀하게 모니터링했는 데다, 인근 요정정치로 유명한 ‘삼청각’에 대한 탐문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소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남파 공작원 선배님이자 반동이 된 김신조가 총격전을 벌였다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고, 청와대와도 가까운 지역에 ‘숙정문(肅靖門)’이라는 옛 대문이 있었거든!

이다지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거꾸로 읽어보니, 공화국의 국모와 이름이 같아서였소. 성은 당연히 달랐다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개방이 되지 않은 곳이어서 더욱 음기가 강하게 느껴졌던 이상한 장소였거늘.

바로 근처에 기생들이 많이 있던 ‘삼청각’이 자리 잡고 있어서였을까? 앞으로도 어쩌면 이곳을 통해 많은 피를 부를 것 같은 기분 나쁜 예감이 든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혹자는 묻겠지.

어찌하여 당신 같은 여간첩이 청와대 근처에서 활동을 할 수 있냐고?

모르는 소리 말라! 쉿! 청와대 안에서도 활동하는 직판간첩이 있었다는 걸. 진짜라니까. 우리 같은 직파간첩들이 포섭한 남조선 출신 첩자들은 지금 온천지에 드글드글 들끓어. 완전 신천지라니까.



그렁저렁하는 사이에 세월이 또 흘러갔나니.

나 역시 공작원으로서 성숙해지면서 이모 지시를 받고 별도의 특별조직을 관리하기 시작했소.

처음엔 미약했지만 아무튼 작은 점포로 시작하게 되었다오. 대남사업이라고 해봐야 선실 이모로부터 인수받은 남자 공작원 3명과 여자 공작원 1명, 이들 외에는 고작 중국에서 막 데려온 언놈이 하나 정도.

이런 열악한 인적구성이었음에도 난 야무진 꿈이 있었소이다.

원래 대남사업 부서인 연락부의 경우, 당시 남조선 지역인 대구 출신 여성공작원 정경희가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각별한 신임으로 연락부장에 올랐고, 정경희 동지가 해임된 이후에도 통일전선사업부 부부장을 지낸 유정숙 동지에다가 이선실 이모까지 여성 삼총사가 다 해 먹던 시대였기 때문이지.

이처럼 공산주의는 여성평등에 앞장섰거늘. 이런 제길! 내 신세란 게, 나 원 참.

해방 전에도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주세죽, 고명자, 허정숙이 유명했다는구나! 최근엔 남조선 얘들이 이분들에 대해 아예 대놓고 열광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진정한 페미니스트란다. 쉿! 고인이 되신 그분들의 스캔들에 대해선 일단 함구라오. 퇴폐적인 남조선 드라마 ‘사랑과 전쟁’은 저리 가라야.


“내 방조(도움) 받던 간나들이 많이 컸다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놀라, 혹시 여무명이가 듣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야지. 자나 깨나 사주경계가 습관이 된 몸이라서 그렇다오.

이 짓거리에는 피아(彼我)가 따로 없다니까.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요. 그러니까 피(彼)가 아닌 아(我)로 여기던 놈이 어느 날 방심하고 있던 내 목을 딸 수 있어서 그렇소이다.

언젠가 무명을 처치해야 할 시간이 올 성싶소. 가끔 난동을 부리고 있지만, 외려 저렇게 맛이 가버린 것이 보안상으로는 안전하다오. 미심쩍다 한들 아직 쓸모가 있으므로 제거할 기회를 보고 있는 중이거든.

왜, 무명이가 양아들이 아니냐고? 그럼,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이 양아들 여포에게 왜 당했냐? 여포나 여무명과 같은 단순무식 칼잡이는 매사 조심해야 하오.

이들은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는 이리 새끼거든. 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앞으로도 남한 땅에 여포에게 당하는 동탁들이 많이 나올 것 같소이다.


건데 요사이 그놈을 보고 있노라면 겁이 나는 것은 왜일까?

내가 김포공항에서 처음 본 무명은 손에 종이를 한 장 쥐고 있었지 뭔가.

안내원 동지가 말하기를 중국 친모가 이름이라고 주었다고 하더군.

어쭈! 괴이하게도 ‘餘○○’이라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일단은 성은 그대로 사용키로 했다오. 대신 이름은 이 땅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의미로 무명(無名)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않았겠소.

타국에 끌려온 노예 주제에 ○○란 이름이 너무 건방지고 주제넘게 보여서라오. 당연히 가족관계 신고 시에는 그럴듯하게 무명(武䳟)으로 표기했다니까.

무기를 뜻하기도 하는 무(武)에다 ‘초명새’란 상상 속 새(鳥)를 의미하는 명(䳟)을 합친 이름으로 그럴싸해 보였소. 일본식으로 해석하면 ‘갱까 도리(싸움 새)’와 유사한 싸움닭이란 뜻이어서 내가 키워서 사용할 암살병기를 암시하기도 했고.

“어라, 어어···” 내가 직접 작명한 이름이 불길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은 후일에서야 알게 되다니!

무명이 도착한 날, 난 꿈을 꾸었소. 왕 까마귀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로 높이, 묵중하고 날카롭게 홰를 치며 날아오르는 장면을! 이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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