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최근연재일 :
2024.09.01 23:20
연재수 :
219 회
조회수 :
11,396
추천수 :
32
글자수 :
1,131,441

작성
21.12.16 06:00
조회
85
추천
2
글자
11쪽

독백(3)

DUMMY

느닷없이 간호사가 호출한다. 가족들이 환자인 나를 구정 연휴에 집에서 보내게 하겠다고 한단다. 해서, 내 의사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염소 이 새끼, 설날에도 이 짓을 벌이다니. 좀 쉬자꾸나 이놈아!” 당연 혼잣말이다. 난 감히 염소에게 항거할 위치가 아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피스톤’과 급조된 팀들이 와 있다.

염소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피스톤’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염소는 우리조직을 리드하고 일감을 주는 절대자와 같은 존재이시다.

아쉽게도 나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도 그의 얼굴을 모르는 것 같더라. 당연지사 어머닌 예외겠지만. 식구들이 인터넷에서 암호를 통해 지시사항을 하달하는 그에 대해 염소라고 불러서 나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안녕하시까? 이번 건은 일도 아닙네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부가 들어서니께 정말 일하기 쉽죠? 일감이 조금 많아진 건 다 과업완수를 위해 좋은 것 아닙네까?

긴데, 이번 제물(祭物)은 아쉽게도 결정적인 지병은 없어 보이지만, 작년 정밀검사 결과를 보면 심부전증이 있다고 적혀있으니 그걸로 결정하면 될 것 같십니다.

작업 의뢰서엔 다행히 부인은 없고, 모친과 함께 지낸다고 되어 있십니다. 아매(아마) 이곳 언더(Under)들이 이미 사전 정보를 확보했고, 유인책까지 직접 준비했다고 합니다.

기카구 뒤처리도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고 하니 참 쉽죠? 기냥 데까닥(단번에)···. 쾐히(공연히) 조박(조각)내고 할 필요 읎다는 의미지요. 댐에(다음에) 부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고요. 화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것 같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그랬다. 언젠가부터 이 땅에서는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도 아예 부검 없이 화장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왜 그럴까?

전달자 역할을 하는 피스톤(연락간첩)은 이번 건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과 함께, 세부사항을 지시하는 와중에도 어머니께 예를 갖추고 있다.

비록 어머니께서 공식서열에서는 밀리나, 비공식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식구들 말로는 피스톤이 북한에서도 ‘요, 죠’를 쓰는 뗑해도(황해도) 출신이라는 것이다. 말투가 거의 남한의 충청도와 비슷하고 띵하게들 생겨서 ‘뗑해도’라던데 맞나? 우리 식구끼린 이 자, 즉 피스톤을 ‘벽란도령’이라 부른다. 개성부 서쪽에 흐르는 강물인 벽란(碧瀾)에서 출생했다 해서 그리 부른단다.

듣자하니, 공작원들도 높은 자리는 평안도나 황해도가 거의 차지하고 있다는데, 아닌가? 그렇다면 어머니가 있었던 함경북도는 북한에서도 개털? 이어서 어머니의 짜증 섞인 높은 톤으로 토해내는 한 말씀!

“아! 진짜 뭠니까? 너무 쉬운 게 나중에 탈도 죽신히(엄청) 많다 말임다. 어째 고상스럽댆갯슴둥?(어찌 고생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쉬운 일이면 재포(재일동포)나 조선족 얘들 쓰면 되잼까. 그리고 있잰니? 최근에는 이 바닥에 과거 구소련 위성국가 출신 고려인들도 흔해 빠졌어.

왜, 중국 삼합회 애들도 산동성(山東省)에서 보트 타고 막 넘어오고 하지 않칸니. 그거 암까? 이번 정부 들어와서 군과 해경이 중국 눈치를 보고 있어, 해안경비를 설렁설렁하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말이오. 아무튼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잘 가쇼.”


어느덧 설 연휴 마지막 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시간! 연휴 내내 필살(必殺)의 타이밍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니는 명절에 외박 나온 나를 좀 더 붙잡아둘 모양새다. 고로, 당직 간호사에게 전화로 조금 늦게 보내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중. 병원 측으로부터 기어코 허락을 받았단다.

난 지금 표적이 유인책을 만나고 있는 장소가 강남 우리 집 근처여서 직접 현장에 잠입한다.

부언컨대, 나는 표적 내지는 희생자를 제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절대로! 제물을 받는 대상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렇다.

나는 약물 종류와 주입량을 결정하기 위해 계속 그의 상태를 살폈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근접해 확인하는 수밖에.

표적은 이미 취한 상태인데도 날카롭고 까칠한 인상을 풍긴다. 누가 보더라도 전형적인 대한민국 엘리트의 관상이었다.

그는 유인책을 앞에 둔 채 경상도 억양이 섞인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중.

“일에 정치가 개입하면 쓰레기가 된데이∼내 확 불어버리면 우짤끼고?” 자포자기식으로 뱉어내는 그의 입술 위에선 날이 선 눈빛을 볼 수 있었다.

표적은 뭔가에 흥분한 것이 역력해 보이더라. 분을 못 참고 억울해 하면서 목구녕에 술을 퍼붓고 있다. 표적이 하고 있는 말들을 요약하자면, 상사가 계속해서 자기를 갈구고 있어 일하기 힘들다는 불만토로에서부터 앞으로 이것 때문에 나라가 걱정이라는 고뇌에 찬 심경까지도···.

이것이 대체 뭘까? 앞에 있는 유인책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대취하도록 부추기는 모양새였고.

나는 현장 화장실에서 표적을 직접 보고 파악한 신체조건과 만취한 상황을 토대로 화학물질 종류와 양을 결정한 후 바로 조제에 들어갔다. 그러곤 사약-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표현 한다-을 실행자에게 건네주고는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왔다.

내 임무는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그 후에 진행된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알 길도 없고 이젠 관심조차 없다.

작업에 참여할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나 같은 살인마에게 인간적인 양심이 남아서일까? 반면에 1막에서의 악몽이 엔딩한 후 2막에서는 포근한 꿈도 있었다.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 엄마를 만나는 꿈! 중국 친어머니는 나를 안고는

“아가야, 다시는 혼자서 멀리 가지 마렴!”라고 말씀하시더라.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꿈속에서 난 양으로 변신하고 엄마는 듬직한 목동으로 변해있었다.


다음 날, 언론에서 표적에 관한 사망기사가 살짝궁 다루어지더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연사라고? 그동안 현안업무 처리에 과로 상태였다는 깔끔한 분석기사는 덤이고. 이 밖에도 개인적으로 지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기자의 취재내용도 친절하게 소개되면서 마무리.

이거 원, 기자가 직접 취재한 내용인지 누구로부터 전달받은 사항인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한국 기자들, ‘이래서야’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들의 게으르고 통찰력도 부족한데 대해서 묘한 실망감마저 드는 건 나만의 시건방일까? 아니 뒷감당을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무지의 소치였다. 긴급 사과해야겠다. 어쩌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기자하다가 청와대를 포함한 높은 자리로 가시려면 매사 가려가며 기사를 써야 해서 그런가 보다.

그건 그렇고. 돌아가신 분이 담당하던 업무와 직책이 공개되면서 약간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긴 한데? 난 몰랐지만 고위직이었다.

요새 암호화폐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게 맞나 보다. 그런 업무를 총괄하던 분이었다. 왜 암호화폐와 관련된 업무를 하던 표적을 제거하라고 시킨 것일까?

너무도 궁금하지만 내 위치에서는 그런 생각조차 해서도 안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한 인물은 아닌 걸” 또 나의 반복되는 혼잣말!

얼마가 지난 뒤 그때 표적과 함께 식사하던 유인책도 신문에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또한 거물로 보였다.

유인책들은 자신이 유인책인지 모르는 자들이 많이 있다. 간첩 하부조직원들 중에서도 실제로 자기가 간첩 지시로 움직이고 있음을 잘 모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를 부지불식간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는 척이라고 해야 할까? 순간적으로 난 직감했다. 비트코인이 어떤 이들의 목을 비트는 동전이라는 것을, 나아가 나라까지도 비틀어버렸다는 사실을 곧이어 알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은 ‘기만의 도시’가 된지 오래인 듯싶다.



비록 내 생의 대부분을 암흑세계 무림객잔(武林客棧)에서 종사했지만, 나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된 분들이 종종 있었지만···. 이럼에도 이러한 살(殺)처분을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맹세하노니 취미생활은 더더욱 아니고. 나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는 부모님과 같은 사람이 시키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한다는 입장이었다면 변명일까?

게다가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본 서양의 퇴폐적인 영화들은 킬러인 나의 자부심까지도 드높였다.

예를 들자면, 이태리 영화 ‘섬머타임 킬러(Summertime Killer)’? 금발의 젊은 킬러인 남자주인공이 나라고 상상하곤 했다. 물론 이 영화의 압권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나온 ‘올리비아 핫세’의 절대미모이지만. 아직도 킬러무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OST ‘Run and Run’이 귓전을 맴돈다.


그건 그로하고 애초 살 처분 대상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었는데, 언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이가 되면서 내가 보내드린 분들 중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대상은 평범했어도 관련사건 자체는 어마무시한 것이었음도 알게 되었고. 과거를 더듬어보니, 철따구니 없던 시절에는 나름 내가 하는 일에 프라이드까지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나는 저 무식한 여자하고 달라, 적어도 피를 보진 않잖아, 예전에 저년이 마구 연장을 휘두르며 도살하는 끔찍한 장면을 본 적도 있다고!”라며 자주 절규하곤 했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끔찍하게 떠오르는 장면 좀 보시게! 흘러간 다큐 보듯이.

이른바 첫 현장학습 시간을 어찌 잊으랴! 당시만 해도 젊었던 어머니는 아직 어린 날 데리고 산에 가셨지.

누가 봐도 어머니와 초등학생이 소풍을 나온 거였고. 그날 실습상대 역시 우릴 의심하지 않더라. 한적한 산속에서 등산복 차림인 그는 날 귀엽다고 머릴 쓰다듬는 순간에 난 배운 대로 그자의 명치에 펀치를 날렸지 뭔가.

실습대상은 초등학생의 기습에 숨이 일시적으로 막혀버려 나무에 기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어머니는 나무 뒤에서 끈으로 그 자의 목을 감더니 나무에 발을 딛고 몸을 활처럼 뒤로 재끼는 게 아닌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이어라! 그 광경은 그 후에도 살면서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노라. 지금 생각해도 그 모습은 남녀 무용수들이 추상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고난도 자세와도 같았다.

어머니의 표정을 볼라치면 동화 속에서 양을 덮친 늑대의 그것이었다. 마치 ‘맛있게 생긴 양이로군. 내가 잡아먹어 주마!’라고 대사를 날리는···.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께서는 이쪽 세계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살(絞殺)의 여제였던 것이었으니···.

당시 놀라움과 괴이함이란! 잠시 후 그렇게 무대는 커튼이 내려졌고. 곧 도착한 삼촌들이 한적한 곳, 사람들이 결코 찾을 수 없는 비밀의 땅에 그분을 매장하셨다.

CCTV도 거의 없었고, 투지폰이나 스마트폰도 없어 위치 추적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노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룡신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고백(1) 21.12.17 73 0 12쪽
9 독백(5) 21.12.17 79 2 12쪽
8 독백(4) 21.12.16 80 2 11쪽
» 독백(3) 21.12.16 86 2 11쪽
6 독백(2) 21.12.15 115 2 12쪽
5 독백(1) 21.12.15 148 3 13쪽
4 방백(4) 21.12.14 186 5 11쪽
3 방백(3) 21.12.14 305 4 12쪽
2 방백(2) +1 21.12.13 548 5 12쪽
1 방백(1) +2 21.12.13 1,693 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