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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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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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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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3)

DUMMY

이어지는 여무명 환자님의 횡설수설은 이랬어요.

“어머니가 또 질책을 하더군. ‘니 싸쓰개(미친놈)재? 종간나새끼, 신경질 나게스리. 니 지금 사람 놀리매? 어째 그램둥. 그러다 똘갸난다(쫓겨난다).’

요즘 약물의 혼합비율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였어. 만약 지금처럼 병원에서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예전에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면, 또다시 그년을 때려눕혀서 목을 조르고, 엄청난 파운딩을 날렸을 거야.

여자에게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고? 여자···. 어렸을 적에 그 여자가 살처분 작업을 하는 것을 따라가 본 적이 있거든. 일종의 현장실습 참여였다고, 할까?

난 당시 떨고 있는 먹잇감을 놓고 재미 삼아 그 짓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전문가라기보다는 사이코패스에 근접하다는 결론을 내렸지 뭔가!

그렇지, 그녀가 위장 직업으로 이삿짐센터를 선택한 배경에는 의심받지 않고 표적을 면밀히 살필 수 있는 장점에다 밤낮으로 옮겨 다닐 수 있고, 더불어 장비도 챙기고 시신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직업적 판단에서였지. 여기다 대형 이삿짐 전용 트럭에서는 무슨 일을 벌이든지 밖에선 알 길이 없잖아.

이동식 소각 시설까지 장착되어 있다니까. 그래서 한적한 시골로 이삿짐 차량을 이동시켜 인육 소각까지도 가능했지. 마치 병든 가축을 위생적으로 없애는 것처럼. 이래서 그녀를 무서운 년이라는 거야. 말인즉슨 더불어 죽는 세상을 만드는 거라네.”


그래요 그렁저렁하는 사이에 여무명은 시공간 이동을 통해 순식간에 다시 이 세상으로 복귀하더군요. 그러곤 또다시 혀를 털어댔죠.

“파일럿! 혹시,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이라도 했나? 가끔은 모른 척하는 겸손한 생활습관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쯤 알고 있지?”

언제부터인가 이자는 저에게 자주 ‘파일럿’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나는 그가 왜 조종사란 뜻의 파일럿을 나에게 굳이 씌우려하는지 궁금할 뿐이죠. 이런 것도 일종의 프레임 씌우기라고 해야 하나요?

병원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다른 환자들은 여무명과 나와의 대화에 대해 좀체 관심이 없어 보이네요. 다들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욕을 해댄답니다. 대부분의 욕설은 자신들에게 간식비를 보내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었지요.


보세요! 여무명, 그의 몸이 홀연(忽然)히 진동하기 시작하네요.

아주 심하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마치 커피 파는 체인점에서 대기할 때 던져주는 진동기의 떨림 현상을 시현하면서 또다시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진입하려는 게 아닐까요? 이상해요. 그의 몸 안에서 무언가 적대 세력들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영적 존재감들이 상호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진동현상이 연상되잖아요. 여무명은 다시 방백을 시작하려는 중인데···.


“과거를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나보고 마음이 여려서 걱정이 된다는 거야. 다시 말해, 고문이나 살해 후 분쇄 또는 용해작업, 뭐 이딴 짓을 시키는 것은 어렵겠다면서, 주로 약물을 활용한 방법을 권유하기 시작했지.

난 그렇게 비교적 양심적인 처분을 받은 후 조직 내 어떤 분으로부터 특별과외를 받았다네. 나로서도 잔혹한 방식에 징집되는 것이 두려워 열심히 공부했거든. 검정고시를 통해 최고 유명한 한의학과에 입학한 후 약초 활용을 비롯한 고대 암살기법을 연구하는 등 내 나름 실력을 쌓았단 말일세.

생물학과 물리학은 기본이고. 자연스럽게 한자에도 해박하게 되었다네, 동양고전에 심취하기도 했지. 그런데 어쩐 셈인지, 세상이 바뀌어 이 나라 곳곳에 CCTV가 설치되면서 어머니 같은 무지막지한 암살자들의 고전적인 처리방식은 무용지물이 되기 시작했어. 은밀한 도살을 근저에서부터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랄까?

원래가 조선은 은자(隱者)의 나라라고 했잖아. 사실은 은사(隱死)의 나라였다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자행되어온 밀도살이 최대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 자연스럽게 그 분야 전문가들은 도태되어 총총히 사라지거나, 보급투쟁으로 본업을 재빨리 바꾸고 살고 있다네. 이삿짐센터, 노래방, PC방, 심지어 ‘보도’ 같은 사업을 지칭하는 것이야.

이에 반해, 나의 경우는 살육을 피해보려 했던 착한 노력이 오히려 나쁜 짓거리에 자주 출동을 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리게 된 거라면 믿겠나? 세상엔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난 내 일에 마냥 자부심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 세계적인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 온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냐!

작년에 ‘최고 령도자’였던 김정일 동지의 장남 김정남을 작업하는 것, 보지 않았어? 그가 누구겠어? 위대한 김일성 수령의 장손이자 현재 북한의 일인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배다른 형이지. 고도의 훈련을 받은 공화국의 전문 킬러들도 약물 사용에 있어 실수를 하잖아?

일반인들이 보면, 동남아 여자들을 동원한 어설픈 쇼가 아니냐고 저평가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온 두 명의 여자가 각기 다른 화학물질을 표적에게 장난을 치듯 바르면 두 물질이 신체에서 합성되어 맹독물질로 변환하는 고차방정식 같은 것이거든.

전문용어로 ‘이원화 화학무기’라고 한다네. 두 여자는 원래 모르는 사이였을 걸? 그 정도로 치밀했지. 단, 문제는 계산한 것보다 약이 빨리 과다하게 신체에 흡수된 것일 뿐이지.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업에 참여한 보조출연자들이 공항을 빠져나오거나 김정남이 비행기를 탄 후 약물효과가 나타났어야 했거든. 그것 보라고! 돌연사를 가장한 화학물질 주입방식이 쉬운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한 것 아니겠어?

불곰국(러시아) 형님들의 경우는 또 어떻고? 아예 국제사회에서 안면몰수하고 정적들에게 독배를 강권하잖아! 야권 운동가 ‘나발니’ 독살 미수사건이 있었잖아?

죽다 살아났는데도 검사결과 독극물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는 러시아의 언론기사가 나왔어요. 금년 전직 러시아 비밀요원이 이중 간첩질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았고···. 그것도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백주대낮에 발생했다네. 2006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어. 아마도 알렉세이 나발니는 오래 버티기 힘들걸.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 대상으로 정식 등록된 것 아니겠어?

해외까지 갈 필요 없어.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조선노동당 비서께서는 자연사하셨을까? 조국과 수령을 배신한 주체사상의 창시자께서···”


이런 식으로 여무명은 이제 오랜 시간 숨겨진 비경을 저에게 제한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단순히 조현병환자의 비상식적인 방백(傍白)만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내부 고발자)의 고의적인 비밀누설 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요.

또다시 병실에서는 영국 록 보컬 다이어 스트레이트(Dire Strait)의 히트곡 ‘Sultans of Swing(스윙의 대가)’가 들려오네요. ‘You get a shiver in the dark. It’s raining in the park but meantime.’

병원에서 음악을 틀어주시는 분께서는 연식이 좀 된 모양이에요. 틀림없다니까요. 저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지요. 기타 위를 자유자재로 흐르는 핑거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모름지기 이 땅에서 살려면 스윙을 잘해야 해요.

골프는 물론이거니와 복싱에서도요. 헛스윙을 하는 분들이 많아서 해본 소리랍니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권에 꽤 있걸랑요. 그들은 정타를 제대로 못 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듯해요. 주식에서도 초단타나 장타가 아닌 매매기법을 스윙이라고 하죠. 오르내리는 주가의 흐름을 잘 잡아야 하겠죠? 잘못하면 물리죠. 이렇게 인생의 성패는 결국 타이밍과 정확도에 있네요.

당연히 다이어 스트레이트의 스윙(Swing)은 노래이지만···. 가사를 더 들어 보아요. ‘You check out Guitar George he knows all the chords.(기타 연주자 조지를 좀 봐. 모든 코드를 알고 있잖아)∼They’ve said an old guitar is all he can afford.(낡은 기타 하나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지)

앞으로 이 땅에서 벌어질 일들에 관해 모든 코드를 알고 있는 조지는 누구? 당당하게 낡은 기타 하나로 뭔가를 보여줄 인물이요. 기대가 됩니다.


방금 우리가 예전에 함께 외출을 나간 날이 떠올랐어요.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얘깃거리를 보탤게요. 찬찬히 들어보세요. 이전에도 무명 형님은 병원 측 관계자들을 밖에서 대접하거나 용돈을 주는 방식을 통해 보호자 없이 혼자 외박까지 가능한 상태였어요.

우리 둘은 더위도 식힐 겸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마셨고,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대낮에 노래방에서 양주까지 시켜 오랜만에 대취한 상태가 되었고요.

아마 불법 노래방이었죠. 얼마쯤 마셨을까? ‘두두둑∼둑둑, 디디딕∼딕딕’ 빗소리가 지하 안에까지 들리는 거 봐서는 우산도 없는 우리 둘은 이동할 처지가 못 되었답니다.

“대관절 어떻게 간담?”

저는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우리 둘만 있다가 사고가 날 수 있음을 고려해서 오랜만에 사촌형을 불렀어요.

멀리서 계단을 내려오는 위풍당당한 모습의 사촌형이 보이네요. “여깁니다.” 형이 요즘 잘나가는 사업가답게 큰소리치더군요.

“아니, 뭔 비가 이렇게 지랄 맞게 내려. 다니엘! 오랜만인데, 룸빵(룸살롱)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냐? ‘텐프로’도 좋다고, 내가 쏜다니까.”

전 사촌 형의 통 큰 제안을 극구 사양하면서 여성 도우미 한 명만을 부르는 것으로 어려운 협상을 마쳤죠. 술자리는 그 자리에서 저녁까지 이어졌고, 여무명과 저, 우리 모두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가운데, 여무명이 또다시 대사를 뿜기 시작했답니다.

“판러! 판러!(反了! 反了!-반역이도다!)··· 츄미에(除滅-멸절하다)∼쥬 코우 바!(住口吧!-입닥쳐!)···” 오랜만에 들어보는 옹알거림이었고, 그건 분명 한국말은 아니었다고요! 이러므로 옆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앉아 있던 여성 도우미는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나, 하는 떫은 표정이었죠.

사촌형도 무명을 눈여겨 똑똑히 보다가, 이쯤 해서 그에 대해 궁금했는지 무명이 졸고 있는 틈을 빌어 캐묻네요.

“저치, 누구냐니까? 뭐랄까. 저 친구, 왠지 이국적이면서도 묘한 분위기인데···.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하기는 형 말에도 일리가 있지요. 제가 봐도 무명은 한국인이라기보다는 동남아 쪽에 근접했으니까요.

저는 사촌 형에게 무명이 조선족이라서 가끔 저렇게 중국어를 쓴다고 말하자마자. 이에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후, 한중수교가 되자마자 대륙으로 건너가 오랜 기간 사업을 하고 있는 사촌 형께서는 무식한 소리 말라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그러면 여무명 이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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