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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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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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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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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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 2층 : 여물지 못한 요정(2)

DUMMY

싸움이 시작되자 살호취는 곧바로 정령들을 보내 현우를 덮쳤다. 현우는 이에 맞서 재빠르게 창을 세 번 찔렀다.

와이번의 힘이 담긴 창을 내지르니, 닿지도 않았는데 정령들의 몸에는 구멍이 뚫렸다. 거기에 와이번의 힘이 가진 마법적인 힘은 단순히 정령의 형체만 무너뜨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생명력 자체를 손상입혔다. 와이번의 힘으로 생명력이 손상된 정령들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살호취는 멍청한 구실을 대며 싸움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방금 싸움을 통해 정령은 직접적인 전투원으로 사용하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살호취는 정령을 조금 더 영리하게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다시 벽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벽은 정령이 되었지만, 아까와 달리 어떠한 형체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대신에 구멍을 만들어 살호취를 삼켰다.


살호취는 벽이 제공한 구멍을 통해 벽 안을 평지처럼 돌아다니면서 더 넓은 범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탓에 현우는 갑자기 좁아지는 벽이나 갑자기 꺼지려고 하는 바닥을 상대해야 했다.


물론, 그 공격들이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현우는 주위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벽이나 바닥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 공격을 예측할 수 있었고, 와이번의 힘이 깃든 창을 거기에 꽂는 것만으로도 정령들을 죽일 수 있었다.


어쩌다 율리아나 세석을 향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 자신을 향한 공격을 허용한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 경우에도 별 타격은 없었다. 와이번 샤드로스를 사냥한 덕에 그의 몸은 2층의 벽이나 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보다도 단단했고, 거기에 와이번의 비늘로 덮여있는 판금 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물론, 마찬가지로 와이번의 힘을 받은 살호취의 힘으로 가하는 공격인 만큼,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몇 대 맞는다고 큰 부상으로 이어질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살호취는 달랐다. 현우는 살호취가 사용하는 망치를 기억했다. 그 아티팩트는 샤드로스에게도 강한 충격을 주었다. 갑옷과 육신을 믿고 맞아줬다가는 같이 분쇄되리라.


그래서 현우는 덤벼드는 정령들은 대충대충 상대하고 살호취의 이동 거리를 예상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 집요한 흐름 파악 덕에 현우는 머리 위쪽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세석! 위쪽을 쏴!”


세석은 현우가 창끝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현우에 비해 부족한 세석의 시력으로는 창끝이 가리키는 방향에 뭐가 있는지 보지 못했지만, 현우를 믿고 중기관총을 갈겼다.


그 끝에는 거대한 바위매가 강하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서려 있는 총알은 바위매를 깨부수고 바위매가 감추고 있던 것을 드러내었다.

바위매가 감싸고 있던 것은 살호취였다. 살호취는 망치를 치켜든 모습으로 바위매 안에 파묻혀 있었다.


비록 바위매는 세석의 사격으로 인해 완전히 부서졌으나, 아티팩트의 힘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이 떨어지고 있는 살호취를 보호하고 있었다. 붉은빛을 머금은 총알이 방어막을 연신 두드려댔지만, 방어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지? 저러면 공격이 맞을 리가 없을 텐데.’


살호취는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순전히 중력의 힘으로만 떨어지고 있었다. 그 탓에 살호취의 낙하 속도는 셋 중에서 가장 신체 능력이 뒤떨어지는 세석조차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세 사람은 살호취에게서 멀어지자 살호취의 망치는 사람 대신, 바닥을 강타했다.


망치에 얻어맞은 바닥은 콰앙-! 하고 크게 울부짖으며 움푹 팼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인간 수백 명은 넘게 집어넣을 수 있는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다친 인간은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샤드로스와의 싸움에서 살호취의 망치가 발휘한 위력을 기억했기에 거리를 넉넉하게 벌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심의 공격이 빗나가고 빈틈이 노출된 상황이었지만, 현우는 안심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살호취는 대단히 영리한 오크였다. 종족 연합군을 결성한 것도 그렇고, 샤드로스와 싸웠을 때도 능숙하게 지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저 허술해 보이는 모습에는 뭔가 함정이 있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쏴!”


현우의 지시에 맞춰 세석은 방어막 위로 총알을 쏟아부었다. 그 사이에 현우는 볼텍스를 준비하고, 율리아는 도끼에 오러를 덧씌웠다.


세석의 총알이 살호취가 다시 만들어낸 방어막을 두드리는 사이, 율리아가 오러가 덧씌워진 도끼를 던졌다. 도끼는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지만, 균열을 만들어냈다. 현우는 그 균열을 향해 볼텍스를 쏘았다.


현우의 힘이 강해진 만큼, 볼텍스의 위력도 막강해졌다. 와류는 닿는 모든 것을 갈아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균열이 생긴 방어막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살호취는 욕설을 내뱉으며 망치의 추를 내밀었다. 모든 것을 갈아버리면서 나아가던 와류도 아티팩트만큼은 찢지 못했다. 하지만 본신에 충격이 전달되지 않던 방어막과 달리, 무기를 이용한 방어는 본신에도 그 충격이 전달되었다.


힘이 소용돌이치며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살호취의 몸도 같이 요동쳤다. 고막이 파열되어 귀에서는 피가 흘렀고, 눈도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코에서는 피가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왔다. 꽉 다문 입에서는 너무 꽉 다물어서 깨진 이빨 조각이 피와 함께 흘러나왔다.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공격이 성공하자 현우는 어이없어하면서 살호취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원래 저렇게 멍청했나?’


분명, 지금 살호취의 모습은 현우가 기억하던 살호취의 모습이 아니었다. 샤드로스를 사냥했을 때의 철두철미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멍청하고 다급하고 오만한 모습만이 남았다.


다만, 현우의 생각과 달리, 살호취는 멍청해지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살호취는 분명 적절히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낙하 공격이 통할 리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아티팩트가 만들어내는 방어막으로 그 이후의 반격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 방어막을 뚫고 퍼부어지는 공격을 막을 셈이었다. 무한한 체력을 가진 자신과 달리, 세 명의 인간은 체력의 한계가 있으니, 수월하게 반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적절한 판단이다. 그가 이제는 바위 오크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살호취는 공격이 끝난 뒤에도 반격하지 못했다. 아니, 공격이 끝나기 전까지 힘을 끌어올리지도 못했다.


살호취는 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과 다리는 추를 매달아둔 듯이 무거웠고 입을 막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도 호흡이 힘들었다. 바위와 생명체 중 바위의 특징이 더 많았기에 무한한 체력을 지니고 있던 바위 오크와는 달리, 바위 엘프는 생명체의 비중이 더 높기에 체력도 무한하지 않았다.


‘내가 지나치게 오만했어.’


조금만 깊이 생각했으면 분명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살호취는 자신이 얻은 것에 취해 잃은 것을 보지 않았다. 오크였기에 휘두를 수 있었던 힘을 자연스럽게 외면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살호취는 뭔가 깨닫고 중얼거렸다.


“축복이 아니었어.”


당장이라도 공격을 이어나갈 준비를 하던 현우는 갑자기 공격을 멈추었다. 그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하는 살호취가 갑자기 망치 자루로 땅을 찍었기 때문이다. 망치자루가 바닥을 치자, 망치자루를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나 살호취의 몸을 감쌌다.


현우는 섣불리 공격하는 대신에 나머지 일행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 그는 율리아의 팔을 붙잡고 세석의 앞으로 달려간 뒤, 창을 회전시켜 볼텍스를 준비했다.

뒤늦게 위험을 알아챈 율리아가 현우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는 그의 갑옷을 길 삼아 이동하여 현우의 창에 도달해 오러를 덧씌웠다.


그와 동시에 몰아치던 회오리는 수십, 수백 자루의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현우를 덮쳤다. 현우는 준비한 볼텍스를 쏘아내는 대신에, 와류를 휘감은 그 상태로 창을 휘둘러서 덮쳐오는 칼날을 쳐냈다.


던전이 내려준 와이번의 힘, 웨폰 마스터인 율리아가 만들어낸 오러, 힘의 흐름을 조종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와류가 합쳐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칼날을 쳐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이윽고 몰아치던 칼날 폭풍이 멎고, 살호취의 주위를 감싼 회오리가 사라졌을 때, 현우는 자신의 체력도, 창에 깃들어 있는 와이번의 힘도 고갈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대로는 살호취가 가할 다음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당장 정령을 불러 벽으로 짓누르기만 해도 이길 수 없으리라.


그 순간, 저 앞에서 살호취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복이 아니었어. 너무 이른 축복은 저주였다.”


앞에서 들리는 살호취의 목소리는 엘프의 미성이 아닌, 무척이나 소름 끼치고 거슬리는 오크의 탁성이었다. 현우의 앞에 서 있는 살호취의 모습은 샤드로스를 사냥한 직후의 엘프의 모습이 아니라, 이레간 봐온 오크의 모습이었다.


그게 바로 살호취가 지닌 아티팩트의 마지막 능력이다. 자신이 가진 힘을 영구적으로 잃는 것으로 한순간의 파괴력을 만들어내는 힘. 이를 이용해 살호취는 체력이 모두 고갈된 상황에서도 현우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체력이 무한한 바위 오크일때는 쓸모 없는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유용한 능력이었다.


물론, 그 공격에도 현우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티팩트의 마지막 능력을 사용한 이유는 현우와 그의 일행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힘을 포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살호취는 샤드로스를 사냥하고 얻은 힘을 포기했다. 그 덕에 엘프의 모습에서 오크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크로 돌아옴으로써 엘프가 지니고 있던 오만함도 사라졌기 때문에 살호취는 냉정한 머리로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판단할 수 있었다.


“너희들에겐 사과해야겠지. 우루취님이 죽은 것은 너희의 잘못이 아니었는데. 너희에게 화풀이했어. 머릿속으로는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내 오만은 랫맨을 막지도, 잡지도 못한 내 무능을 겸허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어. 정말 한심한 일이지.”


현우는 살호취가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의 힘은 알지 못했으나, 그의 변한 모습과 언행, 그리고 살호취가 지닌 흐름의 통제력이 아까보다 현저히 약해졌다는 점에서 그가 샤드로스를 사냥하기 전으로 되돌아왔음을 깨달았다.


분명, 살호취는 약해졌다. 하지만 현우는 그 사실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현우와 율리아는 방금 칼날 폭풍을 막기 위해 체력을 대부분 소모했다. 반면, 살호취는 오크로 되돌아온 덕분에 다시 무한한 체력을 얻었다. 그리고 살호취는 샤드로스를 사냥하기 전에도 충분히 강력한 오크였다.


“하지만 이대로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


살호취는 현우와 율리아가 힘을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멀쩡한 세석이 총알을 갈겨댔지만, 아티팩트가 만들어낸 방어막이 세석의 총알을 튕겨냈다.

현우는 할 수 없이 창을 든 채 앞으로 걸어갔다. 속도는 빨랐지만, 몸은 불안정하게 비틀거렸다.

반면, 살호취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움직임은 정교했다.

이어진 창과 망치의 충돌해서 그 차이는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분명히 현우는 살호취보다 강했다. 하나, 살호취에겐 무한한 체력과 풍부한 경험을 통한 전투기술이 있었고, 현우는 잔뜩 지쳐서 제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창은 망치보다 빠르게 뻗어졌지만, 현우는 살호취를 노렸다. 반면, 살호취는 현우의 창을 노렸다. 망치에 얻어맞은 창은 궤도가 틀어져 살호취를 비껴갔다.

창이 방향을 틀자 망치는 그대로 현우를 찔렀다. 충분한 관성이 실리자 살호취는 움직임을 멈추고 망치가 알아서 뻗어나가기를 기다렸다. 살호취가 멈췄기에 아티팩트가 지닌 파괴력 증폭의 힘이 망치의 파괴력을 늘렸다.

살호취가 멈춘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기에, 극적인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지만, 현우의 갑옷을 흔들고 몸을 때리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위력이었다.


“크읍!”


원래라면 대단하지 않은 위력이었지만, 잔뜩 지친 상태에서는 충분한 타격이었다. 현우는 반격하지 못하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살호취는 반격했다. 먼저 자신을 뒤에서 노리던 율리아의 도끼를 쳐내고, 그 회전력을 이용해 망치에 속도를 싣고 다시 몸을 멈췄다.

살호취의 몸이 멈추자 그 몸은 망치에 힘을 싣지 못했지만, 아티팩트가 대신해서 힘을 실어주었다. 그 위력이 무시하기도 힘들었고, 지친 몸으로는 피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현우는 어쩔 수 없이 창을 들어 망치를 막아냈다.


굉음이 울리더니 현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공격을 막은 팔은 저절로 떨렸고, 떨릴 때마다 알싸한 통증을 몰고 왔다.

현우가 밀려난 사이에 살호취는 율리아의 도끼를 붙잡았다. 샤드로스를 사냥한 대가로 신체 능력이 향상된 현우와 달리, 율리아는 웨폰 마스터가 되어 오러를 다루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즉, 오러를 다루지 못할 정도로 힘을 소진한 지금으로써는 살호취보다 신체 능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살호취는 율리아의 도낏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율리아가 제 쪽으로 당겨지자 즉시 망치를 휘둘렀다.


“젠장!”


이대로라면 율리아의 머리가 박살 날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우는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날아간 창은 살호취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을 깨고 그 몸을 때렸다. 몸을 꿰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움직임을 잠시 멈칫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율리아는 그 잠깐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무릎을 들어 살호취의 턱을 올려 쳤다. 턱을 맞은 살호취는 도끼를 놓고 비틀거렸다.

세석은 방어막이 깨지고, 살호취의 움직임도 멈춘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총성이 여러번 울리더니 와이번의 힘을 머금은 붉은 탄환이 살호취의 몸을 꿰뚫었다.

공격을 눈치 챈 살호취는 주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여 머리나 목 같은 주요 급소를 보호하면서 다시 힘을 끌어모았다. 공격을 버틴 뒤, 다시 방어막을 만들 셈이었다.


하지만 세석은 이미 살호취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나 목 대신, 전투망치를 쥐고 있는 팔을 집중적으로 사격해서 그 팔을 끊어버렸다.

아티팩트를 쥐고 있던 팔이 바닥에 떨어지자 살호취는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졌군.”


물론, 그는 오크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흐름을 제어할 수는 있다. 그는 오크 사제나 오크 마법사급으로 다채롭게 흐름을 제어할 수 있었으니, 폭풍을 만들거나 불길을 일으켜서 마지막으로 현우 일행을 괴롭힐 수는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 일들은 괴롭힘 이상의 일은 안된다는 것을. 꺾인 승기를 다시 세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더 싸우는 대신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사과의 의미로 한가지 충고하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니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현우는 잠시 살호취가 시간을 끄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곧 생각을 바꿨다. 시간을 끌어봐야 유리한 건 현우와 일행 쪽이었다. 현우는 무기를 내리고 살호취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지나친 선물을 경계해라. 나는 너무 과분한 선물을 받았어. 나는 여물지 못한 요정이었다. 그건 저주에 가까웠어. 오만함이 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게 했어. 무의미한 권능과 그 대가로 빼앗긴 나의 장점이 나를 패배로 이끌었다.”


현우는 살호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엘프가 아니라 오크였던 상태였다면 싸움도 없었을 터. 살호취가 패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니, 아티팩트와 경험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싸움이 일어났더라도 승리한 것은 살호취였을 가능성이 컸다.

분명, 엘프가 되는 것은 축복이었다. 저 아래였다면 말이다. 무한한 체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의미를 잃는다. 얼마 전에 싸웠던 샤드로스만 해도 온갖 마법을 펑펑 쏟아부으면서도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지하를 내려갈수록 벽과 바닥은 점차 단단해질 테니, 정령의 위력도 늘어날 터였다.

오만한 성격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 있을 기상천외한 적들을 상대로는 그 어떠한 난관에서도 꺾이지 않을 엘프의 오만함이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2층이었다. 살호취는 지나치게 빠르게 엘프가 되었고, 엘프의 강점은 살리지 못하고 약점만이 두드러졌다. 그것이 살호취의 죽음을 불러왔다. 여물지 못한 엘프는 여물지 못한 오크보다 취약했다.


“던전은 감정이 없어. 그것을 기억해.”


그 말을 끝으로 살호취는 눈을 감았다. 현우는 그 초탈한 모습에서 싸움을 시작할 때 보였던 추악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초탈함에 보답하기 위해 현우는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을 모두 끌어올려 율리아의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는 빠르고 정확하게 살호취의 목을 쳤다. 눈을 감은 살호취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의 전투 망치가 가루가 되어 부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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