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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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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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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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1층 : 튜토리얼(4)

DUMMY

현우는 자신이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를 생각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다른 괴물들을 만나기 전에 인간 무리를 만났다. 그 인간 무리를 이끄는 이는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였다.

그 기사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현우를 자신의 무리에 받아주고, 그에게 살아남기 위한 지식을 알려주었다.


그 지식에는 검을 다루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우는 그 가르침을 떠올리며 오른손으로 검을 들었다. 방패도 들고 싶었지만,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쌍칼을 든 고블린은 언제 중상을 입었냐는 듯, 날쌔게 움직였다. 고블린은 양팔을 활짝 벌리고 두 발을 비틀어 땅을 박찼다.


그리고 몸을 비틀어 몸을 눕히고 허리에 힘을 줘서 회전력을 더했다. 두 자루의 칼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모습은 마치 미친 말이 끄는 수레의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얼핏 보면 위험해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현우는 그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실제로는 요란하기만 할 뿐이다. 평범한 돌진보다 힘은 낭비되고 위력은 떨어졌다. 그 공격은 고블린이 광폭화의 영향으로 그저 미쳐 날뛰기만 한다는 뜻이었다. 방패를 쥘 힘이 있었다면 공격을 막고 목을 찌르면 그만이었다.


아쉽게도 왼팔은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른팔에 들고 있는 검 한 자루로 공격을 막기는 힘들었다.

짧은 시간에 판단을 끝마친 현우는 지팡이가 있던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 직후에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던 고블린의 돌진이 그가 있던 자리를 지나쳤다.


“크르르...?”


회전이 멈추자 고블린도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가로젓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허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두 다리로는 땅을 박차 현우를 향해 달려왔다. 기세도, 속도도 아까보다 훨씬 빨랐다.


고블린이 실수를 바로잡고 달려드는 모습에 현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팡이를 들었다. 실수를 바로잡았다고 실수를 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블린은 감정에 취해 화려하고 위력 없는 공격을 시도했던 실수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그 대가는 마법봉에서 쏘아진 한 줄기의 벼락이었다. 한 줄기의 섬광이 달려오는 고블린의 몸을 구웠고, 달궈진 공기가 콰르릉-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마지막 발이었네.’


그 한 번의 공격을 끝으로 지팡이는 빛을 잃더니 부서졌다. 던전에서 발견되는 마법 도구들은 사용법이 간단하지만, 사용 횟수가 정해져 있었다. 이전에 고블린이 신나게 써댄 덕분에 사용 횟수가 한계에 달했던 모양이다.

현우는 아쉬워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이 한 번으로 싸움이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아!”


과연, 고블린은 버텨냈다. 몸 전체에 번개가 지나가 생긴 흉측한 상처가 있었고, 그 위에는 물집이 잔뜩 덮여있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현우에게 달려왔다.


물론, 기세와 실제 움직임은 별개다. 광폭화가 고통을 없애주고, 상처도 어느 정도 낫게 해주지만 무적은 아니다. 벼락에 맞아서 상처 입은 육체는 이전보다 더 느리고 더 엉성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기민하고 맹렬했지만, 이제는 현우도 해볼 만한 싸움이 되었다. 어차피 더 이상 부릴 편법이 없었기 때문에 현우는 오른팔에 힘을 꽉 주고 칼을 들어 이후에 있을 격돌을 대비했다.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허리에 힘을 실어서 내리쳐. 명심해 칼의 위력은 팔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야.’


현우는 기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칼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와 동시에 현우에게 접근한 고블린도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세 자루의 검이 한 점에서 맞부딪혔다. 위에서 내리친 현우의 검은 아래로, 아래에서 올려 친 고블린의 두 검은 위로 나아가려 했다.

지친데다 오른팔밖에 쓰지 못하는 현우와 광폭화 했지만, 다치기도 했고 원래부터가 인간보다 뒤떨어진 신체 능력을 지닌 고블린의 힘 싸움은 비등했다.


잠시 대치 상황이 되었지만, 현우는 이 대치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광폭화를 사용했기 때문에 고블린의 상처는 빠르게 낫는다. 시간을 끌면 벼락에 지져진 상처가 모두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광폭화가 풀린다면 치유된 상처가 다시 벌어지겠지만, 거기에 기대는 건 너무 위험했다.


현우는 자신의 우월한 키를 이용해 발을 뻗어 고블린의 가슴을 걷어찼다. 검을 밀어붙이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고블린은 그 발길질을 보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큽!”


밀려난 고블린은 짧은 신음을 터뜨리면서도 시선은 현우를 고정했다. 원래 현우는 고블린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곧바로 후속 공격을 가해서 상처를 입힐 생각이었지만, 고블린은 광폭화한 상태에서도 침착하게 현우를 응시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설프게 후속 공격을 하면 역공당할 분위기였기 때문에 현우는 섣불리 공격하는 대신, 검을 허리춤에 꽂고 왼팔을 주물렀다.


‘다행히 왼팔이 부러진 건 아니야.’


아마 힘줄이나 근육이 찢어지거나 파열된 듯싶었다. 지구에 살던 시절이라면 심각한 상처였겠으나, 이곳에서는 하루 이틀만 쉬어도 낫는 상처였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을 벌면 왼팔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광폭화중인 고블린의 상처가 먼저 낫는다. 지금처럼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조금씩 고블린의 상처를 늘려야 했다.

현우는 칼을 다시 뽑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고블린을 응시했다. 고블린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현우를 응시했다.


현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고블린은 광폭화 상태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알아서 돌진해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고블린은 곧바로 괴성을 내지르며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현우와 가까워지자 오른팔을 들어서 그쪽으로 쥐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칼로 베는 게 아니라, 도끼로 찍는 것 같은 거센 기세였기 때문에 현우는 대응하는 대신, 몸을 뒤로 피했다.


워낙 힘이 잔뜩 실려있었기 때문에 공격이 빗나가자 고블린의 허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으나, 고블린은 그 회전을 억제하는 대신에 오히려 허리에 힘을 더 줘서 회전력을 높였다. 그렇게 몸이 빙글 돌아가자 그 회전력을 실어 왼팔의 검을 휘둘렀다.


덩치가 작아 가벼운 몸과 광폭화로 인해 강해진 근력이 더해져서 가능한 묘기였다. 고블린은 팽이처럼 팽팽 돌면서 현우를 압박했다.

하지만 현우는 그 화려한 압박의 틈새를 찾았다. 그의 눈썰미가 대단해서는 아니다. 오직, 한가지 가르침을 머릿속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칼은 가볍게. 발은 무겁게.’


고블린은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몸이 도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에 따라 검이 휘둘러지는 속도 역시 점점 빨라졌다. 그 속도를 내기 위해 발은 땅을 디디는 대신, 계속해서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칼과 발이 모두 가벼웠다.

아마 창을 든 고블린이나 검과 방패를 든 고블린이었다면, 현우와 마찬가지로 하체로 땅을 디디는 데 신경을 썼겠지만, 쌍검을 든 고블린의 역할은 적의 진형을 파괴하거나 적을 교란하는 역할이었다. 한곳에 단단하게 버티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싸우는 역할이다. 그러다보니 칼과 발이 모두 가벼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기회를 얻은 현우는 고블린의 속도가 더 빨라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더 이상 회전하는 속도가 늘어나지 않은, 발이 가장 가벼워진 순간이 오자 회전하는 칼날을 내리쳤다.


쾅- 하는 강렬한 충돌음과 동시에 고블린의 자세가 무너졌다. 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칼과 부딪혔던 칼을 쥐고 있는 고블린의 왼손을 찔렀다. 현우는 칼끝이 손목을 파고들자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칼을 위로 당겨 왼손을 잘라냈다. 잘린 왼손과 그 왼손이 들고 있던 칼날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르르... 젠장.”


짐승 같은 소리를 내던 고블린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자기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부풀어 오른 근육이 단면을 막은 덕분에 출혈은 없었지만, 사라진 손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손이 잘리며 피가 빠진 탓인지 느리고 폭발적으로 뛰었던 심장이 빠르고 온화하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빠르게 돌자 사라졌던 이성도 되돌아왔다. 이성이 되돌아온 고블린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고블린은 광폭화의 영향으로 강화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에 두 발로 땅을 박차고 하나 남은 칼로 현우를 노렸다. 남아있는 모든 힘을 칼끝에 담았다.


물론 너무 늦었다. 한계에 달한 몸은 두 발과 오른팔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현우는 그 처절하지만 어설픈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고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현우가 휘두른 검이 초승달을 그리며 고블린의 목을 지나쳤다. 그 동작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고블린은 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잠시 생각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달토. 제가 부족하여 당신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고블린은 억울해하지 않았다. 신이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것을 살리지 못한 건 자신의 탓이기 때문이다. 그 고블린은 그저 자신을 책망하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걸로 마지막 적이 죽자 현우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 힘들어서 조금 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싸우던 소리와 짙은 피비린내가 새로운 적을 불러 모을 테니,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현우는 시체에서 쓸만한 물품을 챙길 생각으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일일이 시체를 뒤질 필요는 없었다. 던전은 이곳에 살아가는 지성체들에게 몇 가지 혜택을 주었다.

첫 번째는 전투를 치를 때마다 신체가 강해지는 성장의 힘.

두 번째는 종족이나 국가가 달라도 의사소통이 문제없이 이루어지는 통역 능력. 이 덕에 현우는 지구에서 온 사람을 만난 적이 없음에도 의사소통에 곤란함을 겪은 적이 없었다.

세 번째는 사용자에게 영구히 귀속되는 마법 주머니. 무척 작은 데도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들어갔고, 주머니에 넣은 물건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만이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낼 수 있고, 주인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곁으로 돌아오는 기능까지 있는 무척이나 편리한 물건이었다.


고블린은 이 혜택을 받는 지성체다. 이 혜택을 받고 있으니 굳이 물건을 신체 다른 부위에 숨길 필요가 없어서 주머니에 저장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이 죽은 지금, 주머니는 기능을 잃고 안에 담아두었던 물건들을 모두 쏟아낸 상태였다.

현우는 쏟아진 물건을 자기 주머니에 모조리 쓸어 담았다. 현우와 죽은 고블린 모두 그리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주머니의 공간은 넉넉했다.


고블린이 입고 있는 사슬 갑옷마저 모두 벗겨서 주머니에 챙긴 현우는 벗겨낸 사슬 갑옷 중 한 벌을 입었다. 원래라면 체격 차이가 너무 나서 맞지 않아야 정상이었겠으나, 던전의 신비한 힘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현우가 걸치려고 하자 그의 몸에 맞게 크기가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칼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현우는 생각했다.


이곳에 온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지성체를 상대로 승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첫걸음이다. 이후의 생활은 이전처럼 도망만 치던 삶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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