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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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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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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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1층 : 퀘스트(4)

DUMMY

던전에는 태양이 뜨지 않는다. 대신, 던전의 천장이나 벽에 일정 간격으로 발광석이 박혀 있었는데, 이 발광석은 하루의 절반 동안만 빛났다. 즉, 발광석이 빛나면 아침이요, 빛나지 않으면 밤인 셈이다. 어찌 보면 이 발광석이 던전의 태양이었다.


현우가 상검사와 손을 잡은 지 이틀이 지난 뒤, 현우는 그 태양을 먹어 치우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었다. 쿠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우의 우측에 있는 벽에 금이 갔다. 쫙쫙 갈라진 벽을 확인한 현우가 몸을 옆으로 던지자마자 벽이 완전히 부서졌다. 부서진 벽에서 빠져나온 건 거대한 벌레였다. 생김새는 회색 갯지렁이와 비슷했지만, 껍질이 훨씬 단단했고 크기는 코끼리 세 마리를 줄 세운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 벌레는 입안에 들어온 돌멩이와 발광석을 꿀꺽 삼킨 뒤, 옆에 있는 현우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마저 달려들었다. 처음 튀어나올 때와 비교하면 굼뜬 속도였지만, 현우는 섣불리 반격하지 못했다. 벌레가 돌멩이와 발광석을 삼킨 순간, 피부에서 분비되기 시작한 회색 점액질 때문이었다.


저 점액질이 바위벌레가 바위벌레라 불리는 이유였다. 바위벌레의 몸에서 벗어나는 순간, 빠르게 굳어 던전의 벽을 이루는 바위와 같은 재질로 변한다. 보통은 흩뿌려서 사냥감을 굳히거나 자기가 빠져나온 구멍을 도로 메우기 위해 사용하지만, 훌륭한 방어구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근접 무기로 치는 순간, 점액이 튀어서 몸이 굳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운 좋게 몸에 튀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가 못쓰게 된다. 더군다나 바위벌레의 껍질은 들고 있는 철제 무기로도 쉽게 뚫기 힘들 정도로 단단했다.


그러니 현우는 반격하는 대신, 몸을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현우가 몸을 피하자 바위벌레는 현우가 방금까지 서 있던 바닥을 파먹으며 몸을 숨기려 했다. 현우가 반격을 개시한 건 바위벌레의 몸이 9할 정도 파고들었을 무렵이었다. 그때쯤에는 바위벌레의 몸에 묻은 점액이 거의 말랐고, 새로운 점액이 만들어지기엔 일렀다. 현우는 그 틈을 파고들어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렀다.


마법으로 강화되어 일반적인 강철보다 튼튼하고 묵직한 현우의 대검이 바위벌레의 껍데기를 깨고 살점을 갈라 꼬리를 완전히 잘랐다. 꼬리 잘린 바위벌레는 꼬리에서 점액과 비슷한 회색빛 피를 줄줄 흘리면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위로 솟아오른 바위벌레는 제 몸을 팽이처럼 팽팽 돌리기 시작했다. 바위벌레의 몸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기에 현우는 대형 방패를 꺼내 몸을 가렸다. 대형 방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점액에 뒤덮여 부피가 5배나 불어난 바위의 모습으로 변해 못쓰게 되었지만, 덕분에 현우는 바위벌레가 회전을 멈출 때까지 점액 한 방울 튀지 않았다.


‘바로 지금!’


바위벌레의 회전이 멈추자 현우는 방패였던 바위를 넘고 벌레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지금 바위 벌레는 점액도 모두 떨어졌고, 격하게 움직인 탓에 지쳐서 움직임도 굼떠졌다. 지금이야말로 바위벌레의 숨통을 끊을 기회였다.


현우는 대검을 앞세운 채 돌격했다. 바위벌레는 원래 하던 대로 땅에 숨으려 했지만, 이미 숨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가리를 벌린 채 현우를 덮쳤다.

현우는 승리를 직감하며 칼을 앞으로 뻗었다. 현우가 돌진한 속도와 바위벌레가 달려든 속도가 합쳐져서 대검은 현우가 가진 힘 이상으로 강하게 꽂혔다. 대검은 바위벌레의 벌린 입으로 들어가 부드러운 입천장을 뚫고, 그 안에 보호받던 뇌를 헤집었다.


돌진을 받아내느라 양팔이 저릿했지만, 상대가 바위벌레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손쉬운 승리였다.


···라고 착각했다. 잠깐 멈칫했던 바위벌레는 몸을 거칠게 밀어붙여 현우의 달콤한 착각을 흩었다. 현우는 대검을 쥔 손에 더 힘을 줘서 대검을 더 깊이 박았지만, 바위벌레는 뇌가 찢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현우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바위벌레의 힘이 현우보다 셌기 때문에, 바위벌레의 입이 서서히 현우에게 다가왔다.


바위를 과자처럼 씹어먹는 바위벌레에게 물렸다가는 상체와 하체가 깔끔하게 분리될 터. 몸이 반토막 나면 상처 치료 물약도 소용이 없다.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설프게 검을 쥔 손을 놨다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 거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버틸 수도 없다. 발로 걷어차려고 다리 한쪽을 들면 바위벌레가 밀어붙이는 힘에 밀려서 균형이 무너질 터.


잠시 대치하던 현우는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일단 대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자유로워진 바위벌레가 덤벼들면 무릎으로 턱을 올려 쳐서 잠시 시간을 벌고, 주머니에 있는 다른 대형 방패를 꺼내서 막을 생각이었다.

생각을 마친 현우는 대검을 놓고 바위벌레가 덤벼들기를 기다렸다.


“응?”


그런데 예상과 달리, 바위벌레는 현우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뒤로 기고 있었다. 이제야 뇌가 박살 난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일까?

의아해하며 뒤쪽을 본 현우는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바위벌레는 제 의지나 본능으로 뒤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바위벌레의 뒤에 나타난 홉고블린 하나가 현우에 의해 반쯤 잘린 꼬리를 붙잡고 끌고 있었다.


“빈틈을 보는 눈은 좋았는데, 정보가 아쉬웠어. 바위벌레는 원래 지능이 높지 않은 생물인 만큼, 뇌가 조금 파괴되어도 본능적으로 사냥해. 머리를 찔렀다고 안심하지 말고 도망쳐서 시간을 끄는 게 나았어.”


바위벌레를 끌어준 홉고블린은 다름 아닌 상검사였다. 그는 죽어가는 바위벌레의 마디 사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입을 노리는 대신, 이쪽 부분의 마디 사이를 찔렀다면 발광할 수도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혔겠지.”


현우는 주머니에서 장검 한 자루를 꺼내곤 바위벌레 쪽으로 다가가 상검사가 발로 밟았던 부분을 장검으로 찔렀다. 마법으로 강화되지 않은 평범한 장검이었음에도 검은 부드럽게 파고들어 바위벌레의 뇌를 휘저었다. 뇌가 완전히 뭉개지자 바위벌레도 더 움직이지 못하고 축 늘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바위벌레가 죽자 저 멀리서 고블린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현우에게 장갑 하나를 내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죽 장갑이었지만, 범상치 않은 마법적인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바위벌레가 지키고 있던 마법 도구였다. 현우가 바위벌레와 싸우고 있는 사이에 챙긴 모양이었다.


“장갑이라면 네게도 필요한 물건 아니야? 진짜로 넘길 줄은 몰랐는데.”


현우의 말대로 상검사가 착용한 장갑은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평범한 판금 건틀릿과 가죽 장갑이었다. 그런데도 상검사는 아까워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게 약속 아니었나? 시작부터 신뢰 없이 행동하면 너도 나를 믿지 못하지 않겠어? 딥 후드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너와 난 동료야. 동료끼리는 신뢰가 있어야지.”


상검사가 턱짓으로 장갑을 가리켜 착용하라는 신호를 보이자, 현우도 더 묻지 않고 착용하고 있던 사슬 장갑과 가죽 장갑을 벗고, 새로 얻은 가죽 장갑을 손에 착용했다. 장갑의 끄트머리가 현우의 손목을 덮은 순간, 장갑은 크기가 줄어서 틈 없이 현우의 손에 딱 달라붙었다.

현우가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마치 장갑을 끼지 않은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장갑 안쪽도 답답하지 않고 시원했다. 손에 힘을 줘서 주먹을 쥐자, 손 주변에 희미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허공에 주먹을 한 번 휘둘러보니, 장갑을 끼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묵직한 주먹질이었다.


“아. 살육 강화 마법이 걸린 장갑이야.”

“살육 강화?”

“그래. 다른 홉고블린 녀석들이 사용하는 걸 몇 번 본 적 있어. 딥 후드 녀석도 사용 중일걸? 그걸 착용하고 주먹을 휘두르면 더 세게 때릴 수 있지. 그 장갑을 낀 손으로 무기를 쥐면 더 단단해지지. 둔기라면 더 육중해지고, 날붙이라면 더 날카로워질 거야.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운이 좋았네. 축하해.”


상검사는 그리 말하더니 두 손을 펼치고 손뼉을 쳤다. 고블린들은 현우가 보기에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상검사에게 질문했다.


“상검사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인간들은 무언갈 축하할 때 손바닥과 손바닥을 쳐서 소리를 낸다고 하더라고. 아, 세계마다 다른가?”


상검사의 모습에 현우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 그렇진 않더라고, 근데 내가 살던 세계에선 네가 말한 뜻이 맞아.”

“다행이군.”


상검사는 그렇게 말하곤 씩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현우는 점점 혼란스러웠다. 홉고블린이 살갑게 대하는 모습은 현우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그 탓에 상검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헷갈렸다. 차라리 고블린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그런 종족이라면 상검사의 태도를 가면으로 취급할 수 있을 텐데, 현우가 싸운 홉고블린들은 대다수가 입이 무겁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기에 능한 모습은 보여준 적 없었다.


그렇다면 에리샤의 원수와 같은 종족이니 증오를 불태워야 할까? 하지만 상검사나 상검사의 부하는 에리샤를 공격한 고블린들이 아니다. 그것뿐이라면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로 불태울 수 있겠지만, 그들은 에리샤를 죽인 딥 후드와 적대하는 고블린들이다. 그런데도 같은 종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를 불태우자니, 분노가 타오르기 이전에 자신이 너무 편협하다는 한심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기 가족이 인간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모든 인간을 죽이면 그건 복수자가 아니라 정신병자다. 고블린도 마찬가지다. 원수가 고블린이라는 이유로 모든 고블린을 적대하면 정신병자일 뿐이다. 전에는 고블린들이 인간을 적대했으니, 현우도 마음껏 적대할 수 있었지만, 손을 잡은 이상 과거의 원수가 있다는 이유로 적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동료니까 친근하게 굴어야 할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과 친했던 이들이 고블린들에게 살해당한 건 사실이었다. 이성적으로야 저들이 다른 고블린임을 알았지만, 감정적으로는 고블린을 보면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고블린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다. 그동안 만난 홉고블린 대다수가 입이 무겁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게 뒤통수를 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되지는 않았다. 현우가 딥 후드를 죽였을 때, 바로 표변하여 뒤통수를 쳐도, 아니. 딥 후드를 친다는 말이 거짓이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현우를 속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니 친근감도, 적대감도 표현할 수 없었다. 현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그는 무미한 어조로 용건만 말했다.


“그런데 넌 무슨 일로 왔지? 요 이틀간 안보였었는데.”


현우가 질문하자 상검사는 미소를 지우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현우는 자기가 딱딱하게 굴어서 기분이 상한 건가 싶었지만, 상검사는 인간인 현우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골치가 아프다는 기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일단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은 엄청나게 괜찮은 마법 도구를 발견했어. 왜곡의 망토라 불리는 물건인데, 비마법적인 투사체를 모조리 흘려낼 수 있는 망토야. 딥 후드는 활이 주 무기니까, 우리의 일정에 큰 도움이 될 물건이지.”

“나쁜 소식은?”

“내 부하가 그걸 차지하기 전에 코볼트가 먼저 그 망토를 집었어.”


그 말을 들은 현우는 설마 하는 눈으로 상검사를 바라보았다. 상검사도 그 뜻을 알아본 건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포기할 수는 없는 물건이야. 우린 코볼트를 사냥해야 해.”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자살행위.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상검사의 말대로 그 망토는 너무나 달콤한 물건이었으니까. 현우는 떨리기 시작한 주먹을 꽉 쥐어 몸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일단 계획을 세워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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