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 던전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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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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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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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1층 : 튜토리얼(5)

DUMMY

현우가 고블린에게 입은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는 데는 이틀이 지났다. 그 이틀 동안 현우는 앞으로 어떻게 싸울지 계획을 세웠으나, 막상 상처가 다 낫자 그 계획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현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순간, 던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벽이 솟아났다. 부서져서 너덜거리던 문은 말끔하게 고쳐지거나 사라졌다. 문이 사라져서 생긴 구멍은 스멀스멀 자라나는 바위에 막혀서 벽이 되었다.

재구축이 시작되었다.


던전은 불규칙한 주기로 재구축을 진행한다. 허물어진 시설들이 다시 복구되고 장비나 마법도구, 금화, 소모품 등 다양한 물품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그렇기에 재구축이 진행되는 날은 던전이 가장 혼잡해지는 날이었다. 덜자란 일개미들만 순찰보내는 개미들도 이때는 일개미 대신 병정개미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활동 영역이 좁은 코볼트들도 이때만큼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고블린들은 원래도 활동 범위가 넓었지만, 이때는 더 많은 순찰대를 운영했다.


던전에서는 금속을 구하기도 힘들고, 땔감으로 쓸 물건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그러니 장비를 구할 방법은 재구축한 방에 놓인 장비를 가져가는 방법뿐이다. 고블린에겐 많은 인원을 장비시킬 물건이 필요했고, 코볼트는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더 질 좋은 장비와 마법 도구들을 챙길 필요가 있었다.

현우는 개미가 어째서 장비나 마법 도구를 원하는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개미들도 장비나 마법 도구를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런 상황이니 싸움이 끊일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몸을 사릴 상황에서도 맹렬하게 싸웠다. 이는 현우에게 큰 기회였다. 이전에는 장비도 없고, 힘도 없어서 재구축이 이루어지면 숨기 바빴지만, 이제는 장비도 힘도 있었다.


물론, 코볼트라도 된 것처럼 멀쩡한 무리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현우는 어부지리를 노릴 생각이었다. 멀쩡하거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무리, 그리고 코볼트를 만나면 도망치거나 숨고, 피해를 많이 입은 무리를 찾았다.

첫날에는 결심이 무색하게 도망치기 바빴지만, 이틀째에는 적절한 무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방에는 개미들과 고블린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 시체 무더기의 한 가운데에는 아직 살아있는 고블린 셋과 그들을 이끄는 홉고블린 하나가 보였다.

현우는 이전에 싸웠을 때처럼 몰래 접근하려 했지만, 홉고블린은 그런 현우를 바로 발견하고 육척봉을 들었다.


“인간이군.”


홉고블린은 오른쪽 얼굴이 녹아있었고, 입고 있던 사슬갑옷은 넝마가 되었으며, 갑옷이 찢어져 드러난 몸 곳곳에는 검게 멍이 들어 있었다. 지구에 살던 인간이라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고 홉고블린 기준으로도 중상이었지만, 그 홉고블린은 침착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채로도 침착하게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 현우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물론, 침착한 건 홉고블린 주위에 있는 고블린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체구가 작은 고블린과 달리 홉고블린은 키가 190cm에 달하는 거구였기 때문에 위압감이 달랐다.


“약한 인간은 아니군. 어쩌면 우리가 모두 덤벼도 패할 수 있겠어.”


홉고블린은 현우를 훑어보며 그렇게 평가하더니, 살아남은 고블린 셋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물러나서 지원군을 찾아라. 내가 시간을 벌지.”


홉고블린은 그리 말하며 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현우는 고블린들이 도망가게 두고 싶지 않았지만, 홉고블린은 그렇게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현우에게 접근한 홉고블린은 들고 있는 육척봉을 크게 휘둘러 현우를 견제했다.

현우는 방패로 봉을 막아내고 칼로 찌를 생각이었으나, 봉이 방패에 닿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그의 팔을 타고 흘러들었다. 두 다리는 땅을 온전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없어서 뒤로 주룩 밀려났다.


“크윽!”


그제야 현우는 계획을 잘못 세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블린을 한둘 죽일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독 묻은 송곳을 던져서 홉고블린을 약화해야 했었다.

큰 키와 근육질 몸에 어울리게도 홉고블린은 심하게 다쳤는데도 현우보다 훨씬 힘이 셌다. 이틀 전에 싸운 광폭화한 고블린 정도를 생각했던 현우로서는 무척이나 낭패인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홉고블린은 고블린보다 힘만 센 게 아니었다. 현우를 밀어붙인 홉고블린은 육척봉을 뒤로 빼고, 왼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봉도 같이 내질렀다. 그 일련의 동작이 매끄럽고 빨라서 현우는 피하는 대신, 다시 방패로 막아야 했다.

두 차례의 공격을 막아낸 탓에 욱신거리는 팔을 제대로 달랠 틈도 없이 홉고블린의 공격이 이어졌다. 홉고블린은 봉을 앞으로 쭉 밀어 방패를 압박하더니, 어느 순간 발과 허리를 틀어서 봉의 반대쪽으로 현우의 옆구리를 후려치려 했다.


이번엔 현우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방패에 가해지던 압박이 사라지자마자 방패를 들어서 옆구리를 노리던 봉을 내리찍었다. 그 탓에 봉의 방향이 틀어졌고, 홉고블린의 자세도 무너졌다. 현우는 그 틈을 노리고 칼을 앞으로 찔렀다.


홉고블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 현우의 칼을 피했다. 그리고 양손을 슬쩍 당겨서 봉을 앞으로 살짝 밀었다. 아까까지는 앞과 뒤를 5:5로 맞췄다면, 지금은 7:3 정도. 아무래도 더 긴 사거리를 이용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 생각대로, 뒤로 물러선 홉고블린은 육척봉을 창처럼 찔러대기 시작했다. 비록, 창과 달리 끝은 뭉툭했지만, 뭉툭하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방패로 막으면 팔이 상하고 몸에 맞으면 갑옷이 부서지고 내장이 상할 터였다. 다행히 직선적인 공격이라 피하기 쉽기는 했다. 다만, 홉고블린도 아무 생각 없이 찌르는 게 아니라, 현우가 피하더라도 구석으로 점점 몰리도록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피하기만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올 터.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반격해서 활로를 열어야 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홉고블린의 공격에 맞아 중상을 입을 테고 너무 느긋하게 행동하다가는 구석에 몰릴 테니, 현우는 적절하게 피하면서도 활로를 뚫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생각을 마친 현우는 들고 있던 방패를 원반처럼 던졌다. 홉고블린은 봉을 살짝 옆으로 트는 것만으로 방패를 막았다. 빠르고 단순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에 틈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낼 시간은 충분했다.

현우가 꺼낸 물건은 이전에 고블린과 싸우면서 얻은 독 묻은 송곳이었다.


힘껏 던져야 홉고블린의 시선을 끌 수 있던 방패와 달리, 독 묻은 송곳은 아주 작은 힘으로 던져도 홉고블린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현우는 송곳을 던짐과 동시에 칼을 앞으로 뻗었다. 송곳을 쳐내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홉고블린은 현우의 칼을 막지 못했다.


푸욱- 하고 살점이 꿰뚫리는 소리가 나며 현우의 칼이 홉고블린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복부가 찔린 홉고블린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반격하려 했지만, 반격을 위해 양팔에 힘을 준 순간 몸의 힘이 풀리고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홉고블린은 현우와 싸우기 전에도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에 몸을 마구 움직였으니 상처가 터지고 피가 흘러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거기다 배에 칼이 꽂히기까지 했으니, 더 움직일 힘이 남지 않은 건 당연했다.


“안타깝군···”


홉고블린은 침음성을 흘리며 억지로 힘을 주려 했다. 현우는 홉고블린이 그러지 못하게 무릎으로 턱을 올려쳤다. 턱을 맞은 홉고블린이 뒤로 넘어지자 현우는 배에 꽂았던 칼을 도로 뽑아서 확실하게 목을 쳤다. 잘린 홉고블린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휴우.”


현우는 홉고블린의 주머니에서 쏟아진 물건을 챙겼다. 무슨 주문이 걸려있는지 알 수 없는 스크롤이 한 장, 짓누르는듯한 힘이 느껴지는 갈색 돌멩이가 하나, 금화 서른아홉 닢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진 게 많지는 않았다. 물론, 큰 피해 없이 홉고블린을 사냥한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시쳇더미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시체들을 치우고 확인해보니, 상처 치유 물약 4개가 있었다. 아마 이 방의 개미와 고블린들은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 모양이었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다행이었네.’


현우는 아까의 싸움을 떠올렸다. 상당히 다쳤는데도 기량과 기술 모두 현우보다 우위였다. 만약, 현우가 조금 더 늦게 와서 고블린들이 시체 수색을 해서 상처 치유 물약을 발견하고, 그래서 홉고블린이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이기기 힘들었으리라.


저번에 고블린과 싸울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운이 좋았다. 물론, 거저 얻은 행운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감각으로 적을 알아채, 적절하게 몸을 숨기고, 기회를 엿본 결과였다.


그리고 여태 행운을 물어다 준 현우의 감각은 지금 태연하게 물건을 뒤지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도망갈 것을 권했다. 문을 열자 들리는 철컥-철컥-하는 사슬갑옷 부딪히는 소리와 말소리가 감각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네 말대로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어야 할 거다. 난 아까 싸우느라 부하 절반을 잃었어. 마법 도구도 다 썼고, 많이 다치기까지 했어. 넌 아까 그 방에 상처 회복 물약이 있다고 했는데, 이루카르나 그 인간이 다 마셨을 가능성은?”

“이루카르님의 상처를 모두 치료하는 데는 물약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인간은 이루카르님보다 약했으니, 인간이 시간을 끌어 이루카르님을 처치했다 하더라도 한 병만 소모했을 겁니다.”

“네 예상과 다르면 부족에서 책임을 묻겠다.”

“그리하시지요. 상검사님.”


고블린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현우는 손톱을 깨물었다.


‘젠장.’


방금 고블린은 홉고블린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불렀다. 고블린 사회에서 별명은 한가지 의미밖에 없었다. 원래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고귀한 존재라는 의미.

고귀한 고블린이란, 힘겨운 전투를 여러 번 거쳤음에도 살아남았음을 의미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던전의 특징상, 별명으로 불리는 홉고블린은 평범한 홉고블린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못 이겨.’


방금 현우가 싸운 홉고블린은 평범하게 이름으로 불리는 홉고블린이었는데도 현우를 밀어붙였다. 상검사라는 저 홉고블린은 다쳤다고는 말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걸 봐서는 아까 그 홉고블린만큼 심하게 다친 건 아니었다.

더 강한 상대인데, 부상도 덜하다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다행히도 아직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도망칠 시간은 충분했다. 현우는 소리가 들리는 쪽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우가 간과한 것은 아까 도망친 고블린이 하나가 아닌 셋이었다는 점이다.


“음?”

“저 녀석입니다! 저 녀석이 이루카루님을 공격한 인간입니다.”


도망치던 현우는 왼쪽 갈림길에서 고블린 무리를 만났다. 그걸 본 현우가 오른쪽으로 도망치려니 그쪽에서도 한 무리의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다.


“저 녀석이 이루카루님을 죽인 것 같습니다.”


그 직후, 뒤쪽에서 오던 상검사측도 현우를 발견하고 도망치지 못하게 진을 쳤다.


“망할······.”


지금 현우는 홉고블린 하나를 상대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백여 명에 가까운 고블린과 홉고블린이 셋. 그중 하나는 별명을 가진 홉고블린이기까지 했다. 싸울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아까 얻은 알 수 없는 마법 스크롤. 현우는 거기에 모든 걸 걸기로 결심하고 스크롤을 찢었다.

스크롤이 절반으로 찢기자 스크롤을 펼쳤던 자리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덩어리 같은 게 꿈틀거렸다. 이윽고 덩어리는 강렬한 빛으로 변하여 고블린들과 현우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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