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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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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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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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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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DUMMY

“으흠. 좋아, 다 됐네요.”


서류의 끝에 날인을 찍고, 뭉쳐있던 어깨를 풀던 남자는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썼다.


남자가 있는 방은 등 뒤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밝았지만, 방에는 온갖 소류와 책들, 연구에 필요한 도구들이 즐비하여 다소 난잡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자신의 방―― 학원장실을 바라보던 그는 정리하겠노라 다짐하였으나, 매번 연구에 시간을 쏟기 바빠 그럴 틈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 다짐은 지켜지지 못할 것 같았다.



“하아······ 정말 시간이 너무 부족하군요. 저의 시간만 2배······ 아니, 3배 정도만 천천히 흘러가게 할 순 없을까요.”


똑똑.


실없는 소리를 푸념처럼 내뱉은 그는 노크소리에 문 쪽을 바라봤다.


온갖 방어 기제와 설비, 마법이 잔뜩 걸어져 있는 이 방에는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쉬이 침입은 어렵다.


그러나 그―― 학원장은 살짝 긴장하며 문 밖의 손님을 살펴봤다.


느껴지는 마력으로 봐선 익히 아는 사람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특히 요 근래에는 등골이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초조해지기 일쑤였기에 더욱이나.


이윽고 모든 장치에서 적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그는 책상에 있던 부저에 손을 올렸다.


찰칵.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밖에 있던 인물이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했다.



“실례합니다, 학원장님. 슬슬 끝났을까 하여 왔습니다만.”


들어온 사람은 여성으로, 이름은 세리오 리벨리타스. 언제나 긴 갈색 머리카락을 말아 올린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녀는 학원장의 비서 겸, 부 학원장이었다.


예상한 그녀의 등장에 학원장은 책상 밑에서 집고 있던 지팡이를 슬쩍 내려놨다.



“지금 막 끝났습니다. 여전히 정확한 시간에 찾아 오시네요, 세리오 씨.”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일 처리는 이리도 빠르게 하시는 분이 연구만 하면 절대 제 시간을 안 지키시니 말이죠. 전 학원장님의 자명종이 아니에요. 매번 알리러 오는 제 귀찮음도 생각해주시길. 알겠나요?”

“하하하.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절대로 지키지 않을 약속이다. 매번 주의하라고 경고하면 곧장 사과는 하지만, 막상 연구를 시작하면 또 몇 날 며칠을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학원장을 데려오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세리오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무책임한 자가 어떻게 학원장이 된 걸까.


그러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다.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 그는 이 학원이 창립한 이래로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천재였고, 최연소로 학원장에 취임하는 업적도 이루어냈다.


능력적으로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일 처리도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그런 학원장이기에 자신보다 조금 어리지만 존경할 수 있었고, 밑에서 일하는 것에 불만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탐험하러 나갑니까?”

“탐험이 아니라 연구입니다. 방에서 책과 씨름해봐야 실제――”

“――네네.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것만 못하다고요. 나머지는 빼주세요. 너무 자주 들어서 다 외울 지경입니다.”


이것이 문제였다. 학원장이라는 인물이 종종 사람이 없는 오지 같은 곳을 탐험하러 나가는 것이다.


물론 그는 학생 시절에도 엘리멘탈 마스터라 불릴 만큼 온갖 속성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였고, 몬스터의 습격에도 대처는 쉽겠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치고는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하다못해 호위라도 데려가세요. 학원장이라는 사람이 혼자서 몇 개월을 싸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뇨. 혼자 가는 편이 더 빠르게 갈 수도 있는 데다, 연구할 때 방해받지도 않아서 좋습니다.”

“그 연구할 때가 허점투성이지 않습니까?”

“하하. 그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제 연구실이라는 것도 있고, 또 세리오 씨가 데리러 오신다는 걸 알기에 그런 겁니다. 밖에서는 제대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다음번에도 제가 데리러 와야 한다는 소리군요.”


아까 조심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반성의 기미도 없다.


그렇지만 자신을 신뢰해서 그렇다는 것에 세리오의 표정은 조금 느슨하게 풀렸다. 말투도 살짝은 다정해졌다.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니니 어련히 잘하시겠죠.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음······ 이번에는 마국 국경 근처에 있는 숲에 다녀올까 합니다.”

“마국이요?!”

“마국이 아니라 인근에 있는 숲입니다.”

“왜 그런 곳을······?”

“사람이 없는 오지이니만큼 희귀한 것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리고? 뭐죠?”

“하하하······ 그게······ 정확한 정보는 아닌 듯싶지만, 이전에 그곳은 마국과 교류할 때 거쳐 가는 길목으로 활용됐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헛소문일 가능성은 크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옛 유물들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마국 국경 근처라면 분명 사람이 살고 있진 않을 것 같다. 그런 곳이니 희귀한 생물이나 약초도 자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알려진 것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모르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이 학원장이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모를 리는 없겠지만······’


세리오는 슬쩍 책상을 바라봤다.


책상 위에는 이리저리 책과 종이가 너저분하게 있지만, 한편에는 제대로 잘 정리된 서류의 산이 있었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밤새 몇 달 치 서류를 전부 처리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학원장은 벌써 탐험하러 나가는 게 기대되는지, 전혀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말리는 건······ 힘들어 보인다.



“하아.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구하는 겁니까?”

“그냥 얼핏 들은 말입니다. 하지만 마국을 들어가는데 굳이 그 숲을 거쳐 가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니 말씀드렸다시피 지어낸 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식량이나 물을 보급하러 갔을 수도 있잖아요.”

“저도 그 가정을 고려해봤지만······ 그곳은 숲입니다. 짐을 실은 마차는 속도도 못내고 일정이 늦어지기만 할 겁니다. 안 그래도 돌아가는 것인데, 속도가 더욱 늦춰지면······”

“그러네요. 헛소문이겠군요. 그런데도 가시려는 겁니까?”

“헛소문인지 아닌지는 가봐야 아는 겁니다. 소문을 무심코 맹신하는 것은――”

“――네네. 진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죠? 거기까지 하세요.”


학원장은 자신의 신념이나 연구에 대한 화제가 되면 너무 말이 길어진다. 암만 좋은 말과 감명 깊은 이론이라도 계속 들으면 지치기 마련. 세리오는 이번에도 빠르게 말을 잘랐다.


하지만 익숙한 일인지라 학원장은 전혀 언짢아 하지 않고 여전히 즐거워 보이기만 했다.



“흠흠.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아티팩트를 발견할지.”

“결국 그것 때문에 이번의 행선지가 정해진 겁니까?”

“그,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태 정보가 없던 곳이니――”

“――알겠어요. 그렇다고 해둘게요. 전 이만 서류나 챙겨가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출발 전엔 제대로 말씀 좀 해주시고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세리오는 쌓여져 있던 서류의 옆을 잡아 들어 올렸다.


보통 이리 들면 서류는 땅으로 흩어져 대참사가 벌어졌을 테지만, 이미 학원장이 마법으로 고정해놨기에 서류 더미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마법은 넉넉하게 2시간은 지속될 것이니 중간에 흩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익숙하게 서류를 든 세리오는 그대로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학원장의 방을 나섰다.


그렇게 세리오는 한동안 묵묵히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티팩트······”


방학시즌만 되면 몇 개월을 탐험이라든가 이상한 연구에 힘을 쏟는 학원장.


이런 그에게 체면을 중요시하는 교사들은 아직 어리기도 한 학원장에게 뭐라 불평을 토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매번 성과를 내보이는 그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고, 지금은 점차 사그라져 연례행사처럼 받아들게 됐다.


거기에 지난 번 탐험에서는 정말 아티팩트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 아티팩트는 생김새가 투박했지만, 대상의 마력레벨을 곧장 정확히 측정하는 등 성능만은 정말 엄청났다. 발견자인 학원장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입지는 더욱 견고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394이라······”


아티팩트로 측정한 학원장의 마력레벨이다.


실로 굉장했다.


인마전쟁에서도 활약한 전설 속 대영웅이자, 이 중립국가 벨루디스의 초대 왕―― 인비트 네우리 디안 벨루디스가 500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수치였다.


이 정도의 학원장이니 호위도 없이 싸돌아다녀도 별말이 없는 것이다. 호위를 붙이면 오히려 그들이 보호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탐험하러 가기 전엔 확실히 일은 끝마치고 나가니 그것 또한 다행이긴 하지만.



“143······ 후우······”


그에 비해 너무 낮은 자신.


아티팩트는 사용한계를 고려해 처음에는 몇 명만 조심스럽게 확인을 했었다. 그러다 이내 한계가 없다는 게 판명되고 나서 교직원 전원의 마력레벨을 측정했다.


그제야 알게 된 자신의 마력레벨은 교직원 중에선 그럭저럭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고, 부 학원장이며 그의 곁에서 보좌하기엔 민망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다.



“아니야. 열심히 하면 되지.”


세리오는 자꾸 부정적으로 되어가는 머리를 흔들었다.


막 방학이 시작된 학원은 바쁘다. 처리할 일도 많다.


그 중에선 고민이 많아지게 한 원인인 마력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아티팩트―― 지혜의 신의 이름을 따온 세베브리나의 눈을 다음 신입생에게 사용하는 안도 있었다.


일정을 맞추기엔 빠듯하니 세리오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복도를 나아갔다.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리아는 처음 에이브안의 집으로 가며 봤던 멋들어진 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있었다.


긴 흑발의 남자, 에르는 그런 리아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었다.



“리아.”

“우음······”


무척이나 상냥한 손길.


새하얀 흰 바탕에 검정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값비싼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장갑을 낀 채, 나무에 기대 밀짚모자를 배 위에 안고 있던 리아는 몸을 뒤척였다.



“리아. 깨워서 미안하지만 제법 시간이 흘렀어.”


눈을 뜨자마자 잘생긴 에르의 얼굴이 반겨준다. 이를 멍하니 보던 리아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밝긴 했지만 잠들기 전보다는 확실히 어두웠다.


황급히 시계마법으로 시간을 확인한 리아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버, 벌써 3시가 넘었나요?! 좀 더 빨리 깨워주시지!”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곤히 자는 리아를 깨우기가 망설여졌어.”

“으······ 그건 고맙지만 수확할 게 많은······”


밭이 있는 곳을 쳐다본 리아의 시선에 오늘 수확할 밀과 보리가 수북이 쌓인 게 들어왔다.


양으로 봐선 아마 오늘 분량의 전부이리라.


대충 막 수확한 것도 아니었다. 쌓아진 밀과 보리는 이삭 하나 떨어지지 않았던데다, 아주 깔끔히 밑단을 베어 수확한 것으로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졌다.


‘역시 농사의 프로. 여전히 굉장한 솜씨야. 나도 이런 에르를 본받고 열심히――’



“――가 아니라! 왜 저를 안 깨우고 에르 혼자 다 한 거예요?!”

“자는 리아를 보다 보니······ 흠흠. 아니, 몸을 정교히 움직이는 훈련의 일환으로 집중하다가 전부 해버렸어. 미안해, 리아.”

“아, 아뇨! 미, 미안할 거까지야······. 그, 혼자서 힘들지 않았나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 내가 이 정도의 일로 지치지 않을 거란 건 잘 알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음. 그나저나 시간이 꽤 지체됐어, 리아. 어서 돌아가 봐야 하지 않겠어?”

“아! 그러네요! 다들 기다릴지도 몰라요. 어서 가요!”


리아는 밀짚모자를 쓰고 서둘러 수확물의 절만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수확물들은 전부 에르가 넝쿨줄기로 묶어놨기에 들기 편하였다.


에르는 나머지를 [차원수납]에 넣고는 뒤를 따랐다.


사실 전부 에르의 힘으로 옮겨도 됐으나 이는 리아의 고집 때문으로, 여성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시원찮아 무능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버둥에 가까울 뿐, 단지 힘만 센 꼬맹이로밖에 안 보인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나 에르가 애정이 어린 눈으로 보기에 리아는 오늘도 나름 효과가 있다 여기며 꿋꿋이 직접 날랐다.


그렇게 에이브안의 집, 요새 한편에 마련된 공동 식량창고에 도착한 리아는 수확물을 분류하여 잘 쌓아뒀다.



“자! 그럼 어서 가요, 에르!”


닦달하듯 재촉한 리아는 빠르게 마을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다가갈수록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들린다.



“다들 열심히 하시네요.”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대화를 나누며 걷던 둘은 이내 광장에 도착했고, 그것을 알아챈 한 마족이 서둘러 바지탄스에게 알렸다. 다른 자들도 하나둘씩 이쪽이 온 것을 알아차리고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쳐다봤다.


이내 웅성거리는 그들 사이로 바지탄스가 뛰어왔다.


그는 앞에 서자마자 깊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찬크에르 님.”

“님은 필요 없다고 했다만?”

“저도요! 아가씨 말고 리아로 불러주세요!”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저희들의 은인이자 성녀――”

“――잠깐만요! 그건 창피하니 하지 말아주시라고 했죠?”

“그렇죠. 하하. 실례했습니다.”


싹싹하게 대답하는 바지탄스. 그는 처음 마을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제법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표정 또한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편안했다.


그 모습에 리아도 적응을 잘하는 듯해 걱정을 덜긴 했으나······ 자꾸 성녀 취급을 하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다들 모여 배례하듯 경건히 예를 표했을 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질색하기도 했었다.


‘또 에르는 성자니 해서 성녀와 성자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둥, 추켜세워서 정말 곤란했었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건 괜찮았지만.’


평소라면 배배 꼬며 좋아만 했을 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성녀라 불리는 건 좀 달갑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제야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헥. ······허억. 어, 어서 오세요, 어머니······.”

“엇. 오라버니랑······ 아이리스?!”


들려온 말에 시선을 돌리니 그곳엔 흙먼지에 조금 더러워진 채 땀을 닦고 있는 루데릭과······ 넝마가 된 아이리스가 있었다.


아이리스는 땅을 마구 굴렀는지 옷은 전체가 흙먼지로 범벅이었으며, 회색의 머리카락도 여기저기 뻗치고 엉망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 너덜너덜해진 모습과 달리 피가 나는 곳은 없는 듯하다.


빠르게 상태를 확인한 리아는 곧장 아이리스에게 다가갔다. 다만 이 와중 주부의 감각이 되어 혹여 옷이 찢어지진 않았나 살펴보고, 멀쩡하여 안심하기도 했다.



“괘, 괜찮니?! 지금 바로 치료해줄게!”


말을 함과 동시에 리아는 바로 손을 튕겨 청결마법과 치유마법을 순차적으로 발동하였다.


마법의 효과로 아이리스의 옷에 붙어있던 먼지는 곧바로 밑으로 떨어지고, 보이지 않던 작은 타박상들도 전부 치료됐다.


여전히 겉으로 드러나는 마력이라든지 발동어는 없었지만, 최근에는 자주 보아온 일. 놀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감탄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자가 대부분이었으며, 눈썰미가 예리한 바지탄스만이 “이중 스펠······”이라며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감탄을 했을 뿐이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어머니.”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

“그게······”

“어쩌다가는 뭘 어쩌다가야. 보다시피 훈련하다가 이렇게 됐지.”

“훈련?”


훈련을 하는 건 안다.


이 훈련이 시작된 건 작년으로, 바지탄스들이 새로이 주민이 된 다음부터였다.


그들이 온 덕분에 밭일은 오전에 끝날 정도로 짧아졌고, 수확 철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처음 하는 일임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하는 그들의 모습에 주민들과의 사이도 가까워지게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은 시간만큼 다들 광장에 모여 지금과 같이 훈련하는 게 일과가 되었는데······ 오늘처럼 넝마가 된 적은 단연코 없었다.



“그러니까······”


루데릭이 설명해주기로는 평소와는 다르게 제법 진지하게 훈련했다고 한다.


상대는 루데릭으로, 여태 많은 대련을 해왔던 둘은 나름 비등한 양상으로 싸웠었다. 하지만 엄연히 실력의 차이는 존재했고, 아이리스는 그 정도를 알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봐주는 것 없이 대련했다는 것인데······


결과는 처참했다.


아이리스도 5년간 산속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훈련은 계속했으나, 주된 훈련은 인간으로 변한 상태에서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전투 훈련은 그다지 한 적이 없었고, 그나마 마을에 돌아온 이후 살짝 맛을 본 정도였다. 하물며 이마저도 제대로 된 훈련이라 할 순 없었다.


그에 반해 루데릭은 어렸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왔었다. 마력량만큼은 아이리스보다 한참 적었지만, 인간으로 변하여 마법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아이리스를 상대하는 건 큰 어려움이 없을 거다.


게다가 이번 대련은 다른 때와 달리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것. 봐주는 게 없는 승부였기에 루데릭은 아이리스의 요청에 따라 최선을 다했고······ 승부는 매우 일방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당연히 루데릭의 압승으로······


아이리스도 당시를 떠올린 것인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닌지 입가의 끝이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기긴 힘들 거라 예상했었지만 막상 시작하니 손도 못 쓸 정도로 압도적이라 얼떨떨하긴 했지. 하지만! 어머니에게 알리는 건 또 다른 문제야! 특히 바보 아빠 앞에서 말하면――”

“――역시 아이리스는 대단하더라고. 검을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 많이 따라졌혔어. 여차하면 바로 뒤쳐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루데릭······”


분개하며 따지려 들던 아이리스는 한순간에 감격하여 말을 잃었다.


루데릭은 그런 아이리스를 보며 주먹을 내밀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고, 아이리스.”


뜨거운 시선을 교환하던 둘은 주먹을 맞댔다.


그리고······


두 남자가 우정을 나누는 현장을 직관한 리아는 매우 감격했다. 본인에겐 아들과 오라버니이고, 둘은 친구라는 조금 묘한 관계였지만.


어쨌든 잔뜩 흥분한 리아는 그대로 소리를 높여 말했다.



“에르! 저희도 늦은 만큼 더 열심히 해요!”

“그건 상관없지만,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마을에 피해를 끼칠 거야.”

“그, 그렇지요. 다른 분들도 훈련을 못 하실 테고.”






능숙하게 사고를 유도해 곧장 진정시킨 에르는 눈치채지 못하게 곁눈질로 리아를 바라봤다.


어색하게 웃는 리아는 천진난만하게만 보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리아가 행복하면 그걸로 모든 게 만족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점차 돌아오던 사고의 유연함이 다시 마을에 돌아온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쉽게 말해 다시금 제 나이대에 맞는 소녀로 돌아간 것이다.


바지탄스들의 처분을 결정하던 그 날에······


‘분명 또 다른 일들을 처리하는 거겠지.’


리아에게 설명을 들어 어떻게 된 건지 짐작은 갔다.


오엘문리아에서는 마법이 발동하려면 최저 조건으로 목적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리아가 마을을 떠나고 자신에게 건 마법은 아직 발동하고 있는 채였다.


즉, 아직까지 리아가 정한 목적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나마 도중에 마법의 처리 속도를 변경할 수 있어서 여유로워진 부분만큼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면 지금도 리아는 잠만 자고 있거나, 갓난아기처럼 지내고 있었을 터였다.


‘현재는 그 여유로워진 부분만큼 여러 일들을 분석하는데 사용하고 있겠지.’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지만, 마법으로 본인의 몸과 머리를 지배해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일 정도로 이해했다.


발상은 굉장했다.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분석할 주제만 정해놓으면 잠을 잘 때도 알아서 강해지는―― 어찌 보면 사기적인 방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위험도는 높았다.


마법이 불안정했으면 바로 폭주해서 사망이거니와, 안정시키고 있는 마력도 언제 제어에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한폭탄······


리아가 이 말을 처음을 내뱉었을 때는 미안하지만 이토록 잘 어울리는 단어는 또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리아는 불안함을 바로 옆에 끼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위태롭기 짝이 없다.


최근 리아는 시한폭탄에서 벗어났다며 좋아했지만 본인만 모를 뿐 여전히 조마조마한 상태이기만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날, 바지탄스들의 처우를 결정했던 때에―― 전력을 드러내어 피곤해져 먼저 집으로 돌아가던 바로 그때, 리아가 말한 것이다.



“에르······, 누군가가 저희를 보고 있었어요.”


순간 지난번처럼 단순히 벌레나 동물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지한 리아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지만,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바로 리아의 말을 믿었다. 더불어 지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그 시선이 사라졌기에 하는 거라고도 알아차렸다.


언제 지켜봤던 자가 다시 볼지 모르는 일. 가급적 질문은 하지 않고 리아가 말해주는 정보를 듣기만 하였다.


전해줄 이야기만 빠르게 전한 리아는 그대로 마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곧바로 잠들었다.


그런 리아에게 담요를 꺼내 덮어주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우선 리아가 강해지기 위해――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떠난다고 했던, 피해망상에 가까웠던 위협들이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물론 리아의 걱정거리를 진심으로 믿고 함께 고민했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지나친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지켜보고 있던 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도 둘이나.


용인 자신이 시선조차 못 알아낼 정도의 자다. 그러나 그 상태의 리아가 잘못 느꼈을 리는 없고, 앞으로는 주변의 경계에 좀 더 신경 써야 했다.


이것이 다시 무리하는 리아를 말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에르?”


사고의 늪에 빠져있던 에르는 자신을 부르는 리아의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리아. 조금 생각할 게 있었어.”

“그런가요?”


상당히 얼버무리는 말이었지만······ 역시 리아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재차 자신의 무력함에 씁쓸해졌지만, 겉으로 티를 낼 순 없는 법.


애써 밝게 웃으며 리아의 손을 잡아 광장에 새로이 마련한 긴 의자로 이끌었다.



“어. 에르? 우리는 오늘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거예요?”

“응. 늦게 오기도 했고, 다른 자들을 방해하기도 뭐해서.”


그리 말하며 리아가 앉을 곳에 천을 꺼내 깔아줬다. 천은 당연히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최상등급의 질이 좋은 물건이었다.


아쉬운 듯 보였던 리아는 호의에 따라 깔아준 천 위에 앉았다.


직접 참가하지 않아도 리아는 다른 사람들이 훈련하는 걸 구경하고 분석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기에 간접적으로 훈련이 된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것으로 참아줬으면 한다.


‘은근히 바라는 자들도 많고.’


리아는 마냥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지켜보다 안 좋은 점이 있으면 직접 지적해준다.


여간해서는 알기 까다로운 부분까지 상세히 설명하는 탓에 이 시간을 기다리는 자들은 많았고, 더욱이 리아와 대화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으니 그들―― 마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기던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리아가 앉는다는 건 일종의 신호였고, 이것을 본 마족 주민들은 눈을 빛내고는 서로 앞다투어 훈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대련을 하는 자부터 개인 연습을 하는 자, 집단 전 훈련을 하는 모임까지. 방식은 제각각 달랐지만 모두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루데릭과 아이리스도 이미 대련으로 지쳤지만, 힘든 몸을 이끌고 각자 검을 들었다.


가끔 너무 정밀한 지적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스스로도 그게 얼마나 자신에게 피와 살이 되는지 알기에 다른 자들 못지 않게 둘 또한 진지하게 임했다.


그러한 열기를 띤 훈련은 그로부터 저녁을 먹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평소와 마찬가지로 간단히 땀을 닦은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전원 리아가 눈을 뜨길 기다렸다.



“으으음. 네. 다 분석했어요.”

“오오!”


훈련이 끝난 지 10여 분이 지나고, 드디어 눈을 뜬 리아에게 모두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곧장 조용해져 리아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먼저 바지탄스 씨부터 할게요.”

“예!”

“흠······ 많아 좋아지시긴 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상체 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좀 더 하체 쪽에 힘을 배분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리고 일격, 일격마다 경직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 부분은 나름 신경 써서 연격으로 이어지게 했지만, 간격마다 아직 틈이 존재해요. 예를 들어······ 어. 에르, 제 검을 좀 꺼내주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에르는 차원을 열어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옆에서 보면 팔이 중간에 잘린 모습에 처음에는 다들 혼비백산도 하였지만, 이젠 그것도 추억이다. 상당히 익숙해져 다들 소란을 떨거나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리아의 검을 찾아 에르는 팔을 꺼냈고, 천천히 드러나는 그 손엔 은빛을 띤 거대한 대검이 들려있었다.


대검은 길이가 손잡이를 포함해서 리아의 신장만 했고, 넓이는 평평하게 세워놓으면 리아의 모습을 가릴 정도로 넓었다. 외형은 조금도 화려하지 않았고, 날과 칼날받이가 통으로 만들어져 있어 너무나도 투박하였다.


기껏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은 손잡이에 감긴 가죽으로, 가죽은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 심연처럼 어두웠다.


그러한 대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길이와 넓이의 밸런스가 많이 이상한 대검이랄까······


에르는 그 대검의 날을 잡아 손잡이를 리아에게 넘겨줬다.


금속 덩어리로 만들어진 대검은 보기에도 상당히 무거워 보였는데, 리아는 깃털을 드는 것처럼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바지탄스가 마국의 검술을 자신에게 맞게 변형한 것을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시연했다.



“여기 내려친 이후 있죠? 옆으로 베고 도는 이 부분이 제일 틈이 많아요. 반응이 빠른 사람이라면 이 틈을 노려서 들어올 거 같아요.”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기는 하나 검술, 창술, 활 등 무예를 배워 본 적이 없기에 리아는 교정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오로지 지적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전원 리아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지적하는 부분은 합리적이었으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거기에 지금처럼 완벽히 재현하여 풀어 설명하기에 이해하기도 쉬웠다.


‘실제로도 지적한 부분을 고치면 상당 부분 나아지는 걸 몸소 느꼈기에 소홀히 들을 순 없겠지.’


바지탄스의 설명이 끝난 이후에도 리아는 한명 한명 지적해줬다.


그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인원수는 제법 되다 보니 시간이 걸렸고, 하늘이 어두워지자 도중부터 인간 주민들도 나와 리아가 시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드디어 2화만 올릴 수 있는 제약이 풀렸네요.


근데 쭈욱 올릴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되도록 팍 올리고 싶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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