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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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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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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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31

DUMMY

굶주림은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당연히 아는 사실이고, 청년 시절에는 직접 느껴보기도 했었다. 그땐 며칠 굶는 거야 다반사였으니.


리아는 고개를 돌려 광장을 봤다.


마을 광장은 현재 잔치를 열고 있었고, 바지탄스 일행과 더불어 마을 주민들로 가득하였다.


‘역시 다들 배가 아주 고팠나 봐’


수척했던 모습 그대로 상당히 굶주렸던 것인지, 바지탄스들은 날라주는 음식들을 빠른 속도로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빈속에 저렇게 먹으면 체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켜보던 주민들도 매한가지.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피폐했던 이들의 모습에 동정심이 들어 차마 말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상당량의 식사를 하자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바지탄스들의 날이 서 있던 표정이 조금씩 온화하게 변하였다. 기분 탓만은 아니어서 음식을 가져다주는 주민들에게 예를 갖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그런 이들에게 음식은 많으니 천천히 먹으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도 거칠게 만들 정도로 배고픔은 역시 견디기 어려운 거지. 그것이 며칠이나 이어졌다면 더욱.’


리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요리하는 곳으로 잡아 온 소를 들고 갔다.


소는 요리엔 자신이 없기에 하다못해 재료 조달을 위해 숲에서 잡은 것이었다. 가축으로 키우는 게 아닌, 야생에서 사는 버팔로 같은 소였지만 맛은 상당히 좋은 녀석이었다.


‘이젠 못 먹지만······’



“어머니, 여기다가 두면 되나요?”

“벌써 다녀왔니? 어머!”


요리하다 돌아본 필리아는 커다란 소를 목격하고는 놀라 소리쳤다. 이리저리 살피는 낌새로는 아마 딸을 찾고 있으리라. 하지만 소의 앞발과 뒷발을 잡아 둘러업고 있는 리아는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몸집이 작은 리아가 자신보다 큰 소를 들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초인이 많은 오엘문리아라 하더라도 신기한가 보다. 필리아는 한동안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리아를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으응······ 거기다 두렴. 고생했단다.”

“아뇨. 모두가 고생이죠. 제가 데려왔는데 저만 놀 수도 없고요. 어머니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뭘~ 힘들 땐 다 같이 도우면서 살아야지. 리아도 이 정도면 다들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테니까 그만 쉬고.”

“네에~”

“아 참. 어디 다치진 않았니?”

“완전 멀쩡해요.”


마을에선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 리아이기에 한밤중에 숲에 다녀오겠다는 만행을 말렸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리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했고, 그것을 한방에 뒤집어 준 게 에르였다. 단지 따라간다고 했을 뿐인데 단숨에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역시 에르였었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나보다 벌써 모두에게 신임받고.’


정말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멋진 남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멋지더라도 에르는 보호자 명목으로 따라온 것. 소를 마법으로 들려는 에르에게서 빼앗아 억지로 자신이 들고 왔던 거다.


상처는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잠시 의심스럽게 보던 필리아도 정말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불러 소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자주 잔치를 하는 마을답게 모두 능수능란한 실력으로 낄 자리는 전혀 없었다.


‘내가 도와준다고 나서면 방해만 되겠지.’


리아는 자리를 피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필리아를 비롯하여 마을의 모두를 둘러봤다.


한밤중에 방문한 외지인이건만 누구도 싫은 표정 하나 짓지 않고 웃으면서 대접해주고 있었다. 바지탄스들을 어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야. 저분들이 마족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했었는데.’


그랬었다. 바지탄스들은 전원 마족이었다.


머리에 달린 뿔 때문에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마족이라길래 정말 놀랐었다. 특히 인간에다가 뿔만 달린 모습이라 더욱 그러했다.


마족이란 존재는 에르에게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과 교류가 없는 이 마을에서 타 종족에 대한 정보는 중요도가 낮아 외모나 특징들은 듣지 않고 넘겼었다. 그래서 설마 마족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중요했던 일은 많기도 했고 말이지.’



“그런데 마족이란 사악하고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이미지였었는데······. 무섭게 생기지도 않고,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지?”


바지탄스들은 아무리 봐도 인간에게 뿔만 달린 모습이다. 사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난폭하지도 않았다.


멱살을 잡히긴 했지만 그건 굶주림으로 인한 것이었다. 때리지도 않았고 말이다. 화살을 쏘긴 했지만 그건 실수였다. 다치지도 않았을뿐더러 잃어버린 물건까지 찾아줬다.


요리 봐도, 저리 봐도 착한 마족들인 것이다.


에이브안도 그걸 알아봤는지, 막 도착한 바지탄스들을 경계했지만 곧 마을에서의 체제를 허락했다. 그것도 모자라 배고픈 이들에게 음식을 내어줄 수 있냐는 손녀의 무리한 요청도 들어줘 잔치까지 열어줬다.


‘음음. 과연 할아버지였지. 금방 착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봤어.’


하지만 이후 잭도 합류하여 상담도 없이 마을의 중대사일 수 있는 문제를 멋대로 결정했다고 한참을 혼나기도 하였다.


그것만 빼면 이러나저러나 잘 해결되어 나름 만족스럽다.



“뭘 혼자 끄덕이는 거야?”

“깜짝아······ 오라버니구나.”


언제 왔는지 옆에 서 있던 루데릭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넌 어떻게 그리 강해졌으면서도 다가온 것도 몰라?”

“그게, 헤헤······ 조금 이유가 있어서.”

“이유는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겠지. 그거보다 어디서 마족을 데려온 거야?”

“바보?! 바보라···니······”


따져 들던 리아는 말을 멈췄다. 루데릭의 표정이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외지인이기에 경계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런 것치고는 루데릭은 너무나 심각해 보였다. 거기에 외지인이라서 경계했다면 마족이라 따로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분들이 마족이라서 싫어?”

“글쎄. 나도 마족을 보긴 처음이니 딱히 선입관은 없어. 무슨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게 쟤네들에게는 화가 치밀어 올라.”


갈수록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루데릭은 본인도 의아한지 바지탄스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한 건 이들 사이에 미움이나 원한을 살만한 일은 없었다는 거다.


지금 처음 만났으니까.


‘――근데 할아버지나 잭 아저씨도 오라버니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


그때도 뭔가가 걸렸지만······ 지금 루데릭의 표정을 보니 확실히 무언가가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불길하다고 해야 할까, 기분이 나빠진다고 해야 할까. 마을 주민들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이유 모를 예감에 심란해져만 갔다.


리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잡고 루데릭을 따라 바지탄스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아직 식사 중이었고, 여전히 마을 주민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오해의 여지는 없다. 그저 힘든 상황에 부닥쳐있던 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준 이들에게 고마워하는 모습이다.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수상한 행동도 전혀 없다.


‘괜한 생각인 건가······’


조금 무안해진 리아는 뒷머리를 긁으며 루데릭을 보았다.



“오라버니,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저분들 내 잃어버린 물건도 찾아주신 착한 분들이야. 오라버니도 알지? 옛날에 아이리스의 알을 주웠을 때 들고 갔던 바구니 말이야. 그거 찾아주셨어!”

“그때 잃어버렸다고? 바구니를? 그런 일이 있었나······? 아까 집에 놔두고 온 낡은 바구니가 혹시 그거야?”


자연스럽게 대꾸한 루데릭이었으나, 시선을 옮기고도 여전히 바지탄스들을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리아는 최대한 기분이 풀어지도록 밝게 대답했다.



“응! 안에 들어있던 깔개까지 같이 있었어! 몇 년이나 지났는데 둘 다 찾게 돼서 진짜 놀랐다니까.”

“흐음······ 아! 바위에 앉을 때 깔던 천 말이지? 아하~ 기억난다. 마물이랑 싸우기도 했고, 경황이 없어서 잊고 돌아왔었지. 근데 설마······ 그거 때문에 아무 경계도 안 한 거야?”

“오, 오라버니도 참. 나, 날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


루데릭의 눈빛이 너무 차갑다. 신뢰 따윈 조금도 하지 있지 않았다. 거짓말은 용납하지도 않겠거니와 이미 루데릭 안에서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빠르게 단념한 리아는 사실대로 자백하기로 했다.



“맞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쟤네들을 냉큼 데려 오기까지 했다?”

“마, 말씀대로······. 그, 그렇지만 다들 정말 배고파 보였는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마족을.”

“마족이 왜······”


어쩌면 마족이랑 인간은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닌가?


이러한 생각이 리아의 머리에 번뜩 스쳐 지나갔다.


만화나 게임에서도 마족은 단골처럼 거의 모든 종족과 사이가 나쁜 경우도 허다했다. 오엘문리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고, 루데릭의 반응을 보면 그럴 확률은 높기만 하였다.


에르에게 들은 것 중에는 이러한 만화에서나 자주 쓰일 설정이 제법 많았었다. 그리 틀린 상상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종도 그렇고 말이지. 마법 자체가 그런 설정의 대표 격이기도 하고.’


그걸 확인해보려 리아는 물었다.



“오라버니. 인간은 마족이랑 사이가 나빠?”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쁘다고 들었어.”

“왜 나쁜지는 모르고?”

“흉포한 마족들에게 인간이 큰 피해를 봐서 싸웠다는 이야기도 있잖아. 뭐 그런 이유겠지. 리아, 너도 들어본 적은 있을 거 아냐?”

“나?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그래? ······아하. 그렇구나.”

“뭔데, 뭔데? 오라버니, 뭐야?”


애당초 마족이 있다는 소리도 에르말고는 마을에선 듣지도 못하였건만, 루데릭은 뭔가 알고 있어 보인다.


뭔가 비밀의 냄새가 난다.


루데릭에게 바짝 달라붙은 리아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내 눈은 무조건 반짝반짝할 거야.’


비밀을 캐낸다. 남자라면 가슴이 떨릴 상황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가 이런 걸로 흥분하면 꼴불견이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은 14살이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남자도, 거창한 상황도 아니지만, 리아의 머릿속은 이미 비밀조직에 침투한 잠입 요원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뭐긴. 너 몸 안 좋았었잖아. 그런 얘가 마족과 인간이 마법으로 싸우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쩔 거 같아?”

“당연히 재밌어서 좋아하겠지?”


루데릭은 잔뜩 흥분한 리아를 밀면서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자기도 마법 써보겠다고 난리 쳤을걸? 특히 너라면 몰래 숨어서 했겠지. 그러다가 큰일 날 수도 있을 테니 다들 안 들려준 거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게 그런 일을 하겠어?”

“호······”


루데릭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다시 차가워졌다. 믿음 따윈 그 파편조차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눈빛에 리아도 조금 양심에 찔렸다. 짚이는 것도 제법 있었기에 더더욱.


‘혼자서 몰래 마력레벨을 높이려다 몸이 펑 하는 기분을 맛보거나, 반년간 잠만 잤다거나······ 윽. 그만하자.’


생각하면 할수록 짚이는 것들은 참으로 많았다.


거창한 비밀 같은 것도······ 없었다.


리아는 반짝이던 눈의 빛을 잃고 루데릭의 시선을 피하고자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업 되어 있던 기분은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네. 했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 내가 봐도 그럴 거 같아.”

“말씀대로 입니다.”


순순히 인정하자 루데릭은 피식 웃고 리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젠 다들 괜찮을 테니 궁금하면 나중에라도 촌장님에게 들어. 쟤네들도 수상한 짓을 하면 내가 막으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여차하면 선생님과 촌장님도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거야.”

“마, 맞아! 나도 만약의 때를 위해 강해졌으니까 도울게!”

“네가 나서면 쟤네들이 불쌍―― 아니. 찬크에르가 있으니 괜찮으려나?”


중얼거린 루데릭은 물었다.



“그나저나 네가 데려온 사람들인데 여기서 뭐 해? 도착하고 나선 바로 사냥에 나가고는 얼굴도 안 비쳤지?”

“내가 가면 식사하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해서.”

“왜 도와준 사람을 불편해하는데?”

“실은 좀 어려워했거든. 특히 에르가 오고 나선 거리낀달까, 갑자기 존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마을에 오고 나서도 여전했지?”

“응······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에르가 화를 냈었거든.”

“그래서 미안해하는가 싶어서 멀찍이 떨어져 다가가지도 않는 거야?”

“자꾸 얼쩡대면 들어갈 밥도 체해버리니까.”


그리 말한 리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루데릭은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더니 리아의 팔을 덥석 잡았다.



“오, 오라버니?”

“또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를 거다.”


항의하지만 전부 무시.


루데릭은 저항하는 리아를 질질 끌어 그대로 광장에서 식사하고 있는 바지탄스들의 앞에 당도했다.


둘이 다가가자 마족들은 모두가 손을 멈추고는 쳐다봤다.


전원이 굉장히 어색한 표정이었는데, 특히나 멱살을 잡았던 아시리트는 어깨까지 떨면서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안경이 어울릴, 지적으로 보이는 멋진 여성이 저리 까무러치게 놀란다는 사실에 리아는 시무룩해져 고개가 내려갔다.


그렇지만 루데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에서 리아의 어깨를 잡아 바지탄스들 앞에 내세우듯이 밀었다.



“자. 리아가 음식이 너희 입맛에 맞는지 궁금하대.”


딱 봐도 제일 연하로 보일 루데릭은 당당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대신 술렁거림과 긴장감만이 가득 자리를 메울 뿐이었다.


이 반응에 리아는 또 다시 시무룩해졌는데, 그때 그들 가운데에서 한 명이 일어나 대표로 다가왔다. 그 대표는 이마에서 자란 두 뿔이 머리 뒤로 넘어가는 남성, 바지탄스였다.


당황한 리아는 양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아, 아니요. 저기 오라버니가 멋대로 데려와서―― 에엥?!”


말릴 틈도 없었다. 다가온 바지탄스는 곧장 한쪽 무릎을 꿇고는 머리를 숙였다.


리아는 당혹스럽기만 했다.


연상이 자신에게 무릎 꿇는 일은 전, 현생을 통틀어 에르의 프러포즈 정도밖에 없다.


하물며 마치 기사가 상급자에게 예를 갖추는 모양새 따윈 당연코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지구에서 경험한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뭘 어떻게 살았길래 겪어본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러한 황당함과는 상관없이 바지탄스는 정중히 말하였다.



“아가씨, 감사합니다. 도움을 주신 것도 모자라 이토록 마음 써 주신 것, 평생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어······엇! 이, 일어나세요, 바지탄스 씨.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은인에겐 당연한 행동입니다. 게다가 무례 또한 저질렀기에······”

“무례고, 뭐고 간에 저한테 이러실 필요 없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바지탄스들이 이런 대접을 하라고 도움을 준 게 아니다.


어느새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몸이 근질근질하나 감사함을 표하는 거라 생각하면 참을 만했다. 그렇지만 황송하다는 태도로 대하는 모습은 기분이 안 좋기만 했다.


말려도 일어날 기미가 없는 바지탄스를 리아는 억지로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은인이라 말한 게 빈말은 아닌지, 바지탄스는 일으켜 세우는 리아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다만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다.


진짜 상급자가 억지로 일으켜 세워 놀라는 것처럼······.


이마에 핏줄이 솟을 것 같은 기분에 리아는 다소 딱딱하게 말했다.



“바지탄스 씨. 전 여러분들이 딱딱하게 대해주시는 건 조금도 기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은혜를 받은 몸으로서 당연한 도리입니다.”

“아뇨. 아가씨라고 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앞으로 이런 식으로 대해주진 말아 주셨으면 해요. 부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어이, 너. 리아가 은인이라고 했지? 그럼 그 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은혜를 보답하는 거냐? 그리고 내 동생은 고집이 엄청나게 세거든. 쉽게 꺾이지도 않으니까 말대꾸하지 말고 얌전히 따르기나 해.”


이때다 싶은 리아는 끼어든 루데릭의 말에 동조했다.



“그 말이 맞아요. 전 고집이 셉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어라? 뭔가 이상한데?”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자신의 편을 들어줬건만, 어쩐지 마냥 좋지만은 않던 것이다.


루데릭을 돌아봤지만······ 딱히 놀린다거나 흉보는 것도 아닌 듯하다. 그는 정말 진지하기 이를 데 없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으음. 이상하네.’


이해할 순 없지만 긴장은 풀렸나 보다. 바지탄스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도련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니.”


작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하는 바지탄스.


확실히 대뜸 무릎을 꿇던 아까보다 정도가 덜해졌지만 그래도 리아는 불만족스러웠다.


‘기왕이면 아가씨도 빼주고 좀 더 허물없이 대해주지.’


하지만 별수 없는 문제였다. 바지탄스들의 행동을 강요할 순 없으니 말이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까처럼 심하지만 않으면 태도가 조금 느슨해진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오라버니도 고마워.”


루데릭은 머리만 쓰다듬어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도련님만은 듣기 거북했는지 빼달라며 바지탄스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바지탄스는 매우 진지하게 아가씨의 오라버님인 루데릭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 마저 편히 식사할 수 있도록 뻐팅기는 루데릭을 데리고 돌아갔다.


노력은 빛을 보았고, 마족들은 멈췄던 식사를 재개하였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난 마족들의 잠자리는 에이브안의 허가도 있어 에르가 직접 마법으로 광장 옆에 만들기로 했다.


정작 에르 본인이 집을 만들어 주는 것에 불만스러워 했으나, 이미 밤은 깊어졌기에 오래간만에 사용하는 필살기―― 위로 쳐다보며 꼬물거리기를 시전하니 냉큼 수락해주었다.


집 만들기는 바로 시작됐고, 에르가 쓱 쳐다보니 주변의 흙과 돌들이 모여 순식간에 27명 전원이 들어갈 크기의 집이 만들어졌다.


마력도 거의 안 새는 실력에 리아도 놀랐지만, 구경하던 이들은 더욱 놀랐나 보다. 다들 입을 떡 벌리고는 꿈이라도 꾼 양 넋이 나갔다.



“에르, 고마워요.”

“다름 아닌 리아의 부탁인데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썩은 표정이었으면서 무슨······”

“오, 오라버니! 헤헤······ 에르, 머, 먼저 돌아가셔도 돼요.”

“아니. 저 무뢰배들이 리아에게 또 무슨 짓거릴 할지 모르니 따라갈게.”


에르도 바지탄스들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듯해 배려했으나 드물게도 단호한 거절 의사를 보였다.


이런 에르를 막기란 힘들다.


루데릭도 있는데 과보호라고 생각하며 리아는 바지탄스에게 다가갔다.


완성된 집을 쳐다보며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던 바지탄스는 리아와 루데릭―― 특히 에르를 보곤 잔뜩 긴장했다.


‘에르는 사실 알고 보면 엄청 자상하고 멋지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바지탄스들의 이후 예정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나, 앞으로 에르와 자주 마주치다 보면 분명 그 멋짐을 알리라.


그때를 기다리기로 하며 리아는 말을 걸었다.



“공동저택 같은 느낌이라 죄송하네요, 바지탄스 씨.”

“아닙니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잘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처지였습니다.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그러면 다행인데······ 이후의 일은 나중에 할아버지와 말씀하시는 거죠?”

“예. 내일 촌장님과 상담하기로 했습니다.”

“네. 알겠어요. 오늘은 늦었으니 다들 얼른 주무세요. 피곤하시잖아요.”

“배려 감사합니다.”


깊게 묵례를 올린 바지탄스는 시선을 옮겼다.



“찬크에르 님이시죠? 약혼자이신 아가씨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야, 약혼자! 아직 2년이나 남았고······ 저기 에르도······ 그게······ 약혼자······ 헤헤.”


에르는 몸을 비비꼬는 리아를 보더니 머리를 숙인 바지탄스에게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음성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조금은 부드러웠다.



“리아를 봐서 넘어가도록 하지. 두 번은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저희도 은인이신 아가씨께 다시는 불미스러운 짓을 하지 않겠다 맹세합니다.”


역시나 대인배. 에르는 배고파서 저지른 작은 실수 정도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마음 넓은 용이었다.


짧게 재차 인사를 한 바지탄스는 주민들이 옮겨오는 이불과 베개를 받는 부하들에게로 돌아갔다.


리아도 에르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에르가 마법을 은밀하게 마을 전체에 사용했다.


무슨 마법인지 알기는 힘들었지만 지속형 마법이지 않을까. 긴 기간은 아니고 대충 2~3일 유지될 듯싶다.


마력도 별로 안 썼고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리아는 관심을 끊고 에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먼저 집에 와있던 아이리스는 에르에게 눈짓을 받고 필리아들과 자러 갔다.


‘에르, 오늘은 그렇게나 나와 둘이서 자고 싶었나?’


부끄럽지만 리아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에르의 팔을 껴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달빛이 어둑하게 내려앉은 한밤중 찬크에르가 만든 집에는 마족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여정 내내 씻는 것에 소비되는 마력조차 생존을 위해 낭비할 수 없는 환경이었었다. 그래서 꾀죄죄하였지만,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허튼짓만 하지 않는다면 안전이 보장되었기에 다들 오랜만에 식사도 하고 마음 편히 씻게 되었다.


제대로 된 식사와 청결해진 몸과 복장을 갖춘 부하들은 바지탄스가 보기에도 활력이 돌아와 있었다.


‘이것도 다 그 소녀―― 아가씨 덕분이겠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타난 신비한 소녀.


이것이 바지탄스가 받았던 첫인상이었다.


진형을 갖추고 있던 자신들의 한복판으로 갑자기 나타났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여태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생존해온 자신감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비웃듯 너무나 쉽게 침입당한 당시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우연찮게 바람의 흔들림을 느꼈기에 알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려왔을 때까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런 굉장한 아가씨가 무례한 짓도 한 우리들을 나무라지도 않고, 오히려 먼저 나서서 식량을 베풀어주고 잘 곳까지 마련해줬다.


은인······ 정말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 은인인 아가씨를 따라 도착한 마을은 사는 인원이 3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싶은 규모의 작은 촌락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자신들 앞엔 아가씨의 할아버지, 이 마을의 촌장인 에이브안과 경비장이라는 잭이 서 있었다.


이 둘과 마주했을 땐 솔직히 좀 흠칫했다.


마족의 나라―― 마국에서는 강한 자가 제법 있다. 그래도 자신은 그리 약한 편은 아니었고, 나름 이명도 지닌 강자 축에 들어가는 마족이었다.


그런 자신의 눈에 에이브안과 잭은 어느 쪽이든 일대일로 싸우면 누구 하나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 보였다.


그 둘이라면 분명 자신의 부대와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터. 전위는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대책도 다 준비했을 듯싶었다.


이렇듯 강자 한 명의 차이가 전투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에 긴장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마을에 위해를 가할 생각 따윈 접은 지 오래다. 괜한 경계를 해 그 둘을 자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있는지도 모를 마을에 왜 저런 강자가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아가씨나 그 약혼자라는 찬크에르. 그 둘은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강자였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진다면 꽃을 꺾듯 순식간에 다 죽을 거다.


특히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왔던 찬크에르를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았다. 엉뚱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전투로 돌입한다면 순진무구하게 도움을 준 아가씨의 자비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겠지.


그런 아가씨 덕분에 무사히 체재를 용인해준 에이브안.


그렇게 들어온 마을은 걱정하던 대로 자신들에게 나눠줄 식량이 있을까 싶었다. 부대원들과 비슷한 인원밖에 없는 마을에서, 또 그만한 인원에게 베풀 식량 같은 게 갑자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조금의 비축분이나 얻을 수 있으면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눠줄 식량이 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아직은 넉넉하지 않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제법 많은 양의 밭을 만들어 식량을 축적해 놓았다고 한다.


어떤 상황을 대비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이 따랐다.


주민들도 아까워하지 않고 선뜻 잔치를 열어줬다. 늦은 밤이지만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고 다들 일을 도우며 음식을 준비했고, 외지인인 부하와 자신에게 친근히 고생했다며 말을 걸어주었다.


다들 좋은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자신 외엔 아는 자는 적지만 실은 마을을 발견하고, 식량을 나눠줄 만한 양이 없어 보이면 약탈하려고 했었다.


――그것이 본래 짜놓았던 계획.


약탈당한 주민들은 분명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었다. 이런 숲속에 있는 마을은 타지랑 교역도 안 할 테니 딱히 해결할 방안도 없다.


결국 굶주림과 기아에 고통을 받다가 죽게 되겠지.


그러니 최소한의 사죄로 고통 없이 편하게 안식에 들게끔 하려 했다.


일반인을 학살하는―― 명예 따윈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 더러운 일이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모든 죄는 자신이 짊어지기로 했다.


이후 부하들이 비난하고 힐난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그들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부하들의 끝이 굶주림으로 허덕이다가 바스러져 사라지는 거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무작정 그리 정한 건 아니었다. 최대한 노력은 하여 사냥을 통해 식량을 확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동물이나 마수는 감이 좋았다. 곤충이나 마물도 마찬가지다.


사냥감에 은밀히 이동할 수 있는 자는 적었고, 전원이 먹을 양을 구해오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딴 계획을 고안하게 된 것이지만······ 비겁한 말일 뿐이며, 봉변당한 이 마을의 주민들에게는 통하지도 않을 변명이다.


그런 더럽다 못해, 추악함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자신이다.


부하들은 간만의 식사와 주민들의 환대에 밝아지는 것에 반해, 죄책감으로 인해 무겁게 짓눌려 얼굴을 들 수도 없었다. 계획을 알고 있던 몇 명도 마찬가지로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어색하게 잘 넘어가지 않는 식사를 하고 있다가 눈에 아가씨가 들어왔다.


아가씨는 커다란 소를 메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으면 소의 거구에 가려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린 소녀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소를 통째로 들고 나르는 모습은 분명 놀라웠다. 하지만 시선을 떼지 못한 진짜 이유는 소 때문이었다.


종명은 모르지만, 저 소는 분명 난폭한 부류의 종으로, 자신도 눈앞에 있다면 쉽게 잡을 수는 있었다. 마수도 아닌 동물이라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그런데 아가씨가 들고 있는 소에게는 전투를 한 흔적이 없다. 어디 하나 상처가 없어 피를 흘리지 않았다. 정말 너무나도 깨끗하여 아마 소는 죽은 것조차 모르고 절명한 듯싶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은 저리 깔끔하게 잡을 수 없다고.


더군다나 가지고 돌아오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일단 이쪽의 식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 짧은 시간에 잡아서 돌아온다······


말은 쉽지만, 소를 찾아내고 사냥에 걸린 시간이 이렇게나 짧다면 아가씨의 전투 능력은 생각보다도 더 대단할 듯싶었다.


어쩌면 처음 실수로 화살을 쐈을 때 이미 전멸했을 가능성도 다분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솟으면서 심성 착한 아가씨의 자비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아가씨가 오라버니인 루데릭에게 이끌려 왔다.


부하들은 즉시 긴장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가씨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아시리트는 거기에 더해 무척이나 송구스러운 얼굴이었다.


자신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앞장서서 음식을 나눠달라 요청한 아가씨에겐 너무나 감사하여 잔뜩 경직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굳어있을 순 없다.


대표로 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를 담아 경의를 표했다.


약탈이라는 더러운 짓을 접게 해준 아가씨였다. 그런데다가 은혜를 받기까지 했다. 아가씨라 높여 부르는 것도 별 거부감도 없었고, 무릎을 꿇는 데에도 일순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아가씨는 예를 표하는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싫어했다.


멱살을 잡히고도, 공격당하고도 전혀 화를 내지 않던 아가씨가 노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예를 표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가씨 말고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요청만큼은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다.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는 것이다. 은인인 아가씨에게는 최소한의 도리는 다하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너무 예를 표하진 말고 편하게 대해달라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정말이지 아가씨에게는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마음이 넓은 분이었다.


‘필시 우리를 발견하고 이후 물리치거나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셨겠지. 그런데도 모른척하지도 않고 식량도 나눠준데다 명예까지 지켜줬다. 거기에 이젠 집까지······ 도대체 아가씨는 우리를 몇 번이나 도와주시는 건가.’


먹먹해지는 심정을 느끼며 바지탄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찬크에르가 만든 집은 구조만 대강 갖춘 임시 집으로, 넓은 방 하나에 지붕만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창고라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주위에는 주민들이 나눠준 방석에 앉은 부하들이 있었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밝아진 표정으로 있는 그들을 한 번 보고 바지탄스는 천장으로 시선을 올렸다.


창고 같은 집이라지만 불만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이 늦은 시간에 일부러 외지인인 자신들을 위해 즉석으로 지어준 데다가, 애당초부터 지붕 밑에서 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만큼 상황은 좋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아무도 죽지 않은 게 신기하기만 했다. 부하들의 저 환한 얼굴만 보더라도 여태까지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게 확 실감이 난다.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내부 불화나 분열도 없이 잘 따라주었던 부하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모두 끝났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안식처까지 생긴 것이다.


정확히는 내일 촌장과의 상담 이후 결정될 일이었지만, ‘혹시 아가씨라면’ 하는 기대도 있다.


여기까지 자비로웠던 아가씨다. 나에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분이 여기서 내치진 않는다는 확고한―― 숭배와도 가까운 믿음이 생겨났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을 이리 믿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게 아가씨의 매력이라고 할지······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게 하는 분이었다.


‘아아. 정말 그러해.’


올려다본 시선이 뿌예졌다.



“바지탄스 님.”


조용히 부르는 아시리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뺨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나 보다.


그렇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하루. 단 하루만인데 이리 상황이 변한 것이다. 그딴 것에 신경이 갈까 보냐.


정말 꿈 같은 일이었다. 그 지독했던 세 달간의 여정이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 허상으로만 느껴졌다. 혹시 차가운 숲속 바닥에서 눈을 뜨는 건 아닐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래. 우린 살아남았고, 우리의 고난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아가씨에게 구원받았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쉬다온 라스티아 입니다


여러분들도 주말 잘 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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