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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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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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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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UMMY

오랜만에 촌장의 집이 아닌, 나고 자란 집.


체감상으로는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은 너무나도 편안한 마음이 들게 했고, 리아는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선 여전히 맛있는 필리아의 조식을 먹었다.


그렇게 포만감이 느껴지는 배를 두드리며 행복을 만끽했고, ······이스카르의 도움을 받아 씻었다.


이 나이에 아버지가 씻어주다니······


노인으로서의 기억이 강한 지금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단박에 거절했었다.

혼자 씻기에는 아직 불안하다지만, 필리아도 있는데 굳이 그에게 부탁할 이유도 없고.


그렇지만 세상이 멸망한 듯 좌절하는 이스카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버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오늘 딱 한 번만 몸을 맡겼다.


그 처참한 시간이 끝나고 나서는 반년간 잠들어 있던 탓에 엉덩이 부근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필리아가 정리해주기로 했다.


능숙한 솜씨로 머리카락을 다듬어주는 필리아.

리아는 보자기를 둘러쓰고는 의자에 앉아 이스카르에게 물려받은 갈색의 머리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멍하니 구경했다.


그런 한때를 보내고 있으니 문이 두들겨졌다.



“야! 이스피리아, 준비됐냐?”


찾아온 사람은 루데릭으로, 어제의 약속을 지키러 왔는지 제법 이른 시간에 찾아왔다.



“아, 잠깐만!”

“리아야, 아빠가 나갈게. 그대로 있어라.”

“고마워요, 아버지.”


문이 열리고 밖에 서 있던 루데릭이 보였다.



“어서 와라. 일찍 찾아왔구나.”

“안녕하세요, 아저씨.”

“미안한데 리아가 지금 머리를 정리하고 있단다. 들어와서 기다릴래?”

“네. 그럼 안에서 기다릴게요.”


뭔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눈 루데릭은 망설임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금방 끝나니까 여기 앉아서 기다리렴.”

“미안, 루데릭! 금방 준비할게.”

“됐어. 천천히 해도 돼. 어차피 금방 갈 수 있으니까. 아주머니도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 루데릭.


참 의외의 모습이었다. 기억 속의 루데릭은 꽤 말괄량이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쩌면 이 또한 착각이었고, 실제 꽤 성실한 아이일 수도 있겠다.


제법 서둘러줬는지 머리카락 정리는 곧 끝났다. 리아도 뒷정리를 도우려 바로 일어났다.



“엄마가 할게. 리아는 다녀오렴.”

“으음. 그렇지만······”

“괜찮으니 어서. 루데릭도 계속 기다리고 있었잖니.”

“알겠어요.”


얼른 내쫓는 느낌이 강한 필리아의 재촉에 리아는 어쩔 수 없이 따르기로 하고 반강제적으로 집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잘 다녀오렴.”

“조심해서 다녀오렴, 리아야! 루데릭도!”

“네!”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의 마중을 받으며 출발. 곧장 루데릭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응? 마을 안에 있는 게 아니야?”


작은 마을이니 조금만 걸으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을 밖 숲을 향하는 것 같아 물었더니, 선두에 서서 걷던 루데릭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음. 알았어.”


에이브안도 너무 멀리 나가지만 않는다면 마음대로 다녀도 된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걱정은 던 채로 설레설레 따라가고 있으니, 루데릭이 힐끔힐끔 돌아보는 게 보였다.



“왜 그래?”

“진짜 건강해졌나 보네.”

“응. 근데 뭘 보고 그러는 거야?”

“뭐긴. 너 예전에는 이 속도로 가면 숨을 몰아쉬기 바빴잖아. 그런데 지금은 주위까지 둘러보는데 모를 수가 없지.”

“어······ 그랬었어?”

“맹한 건 여전하군.”

“으응?!”


살짝 성을 냈지만 루데릭은 신경도 안 쓰고 앞을 봤다.



“뭐, 마침 잘 됐어. 가깝다고는 했지만 평소보단 조금 거리가 있었거든.”

“많이 멀어?”

“아니. 그렇지만 기왕이면 빨리 가는 게 좋잖아?”

“그건 그렇지.”

“어. 그러니까 조금만 빨리 간다.”


그리 말한 루데릭은 조금씩 속도를 높여 걸었다.


하지만 너무 막무가내로 가는 건 아니라, 가끔 고개를 돌려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면서 적당히 속도를 높였다.


예상외로 세심히 배려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는 리아도 알지 못했던 루데릭의 다른 면모였다.


확실히 기억 속에 천방지축 뛰어노는 모습과는 조금 괴리가 느껴졌다.


‘별 나이 차가 있진 않은데 조금 다시 보이네.’


그러한 배려도 있고 하니 아직 여유가 있었는데, 묵묵히 걷기엔 지루했던 리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어째 내 기억 속에 있는 모습과 조금 다르지 않나?”


현재 걷고 있는 길은 오르막도 없는 평탄한 곳이었지만 자갈이나 바위 같은 게 제법 많아 조금 걷기 불편했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어딜 가더라도 비슷할 거다. 그런데 평소엔 이보다 험하지 않았단 기분이 든다.


‘오늘따라 유독 다르게 느껴질 뿐인가?’


확실히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게 다를 수도 있다고 들어 본 적이 있다.


그것처럼 세심한 부근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어 착각한 게 아닐까.



“자. 손잡아 여기는 맨날 가는 데 보다 조금 길이 안 좋아.”

“응. 고마워.”


‘······기억과 조금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처음 오는 곳이었나 보네.’


혼자 무안한 기분을 느끼며 리아는 뻗어주는 루데릭의 손을 잡았다. 덕분에 넘어지진 않을 것 같다.


그 상태로 또 걷기를 몇 분.


제법 흘리는 땀을 닦으면서 앞을 보니 리아의 시선에 널찍한 호수가 보였다.


‘오오! 멋져. 엄청 넓어! 경관도 아름다운데? 동물들이 뛰놀 거 같은 풍경이야.’


내리쬐는 빛에 반짝이는 듯한 호수는 깊고 고요한 청취를 느끼게 하여 정말 판타지 세계에서나 나올 법했다.


전생에서 자연경관을 구경하던 취미가 있었던 리아로서도 단연코 몇 손가락에 꼽히는 멋진 풍경이었다.



“이스피리아! 이쪽이야. 일로 와”

“응?”


약간 구석진 나무 그늘에서 루데릭이 불렀다.


습한 그늘 밑은 벌레가 많아 리아는 조금 멈칫했지만, 신경이 쓰여 호수 한쪽을 쳐다보는 루데릭을 따라 옆에 앉았다.



“저쪽 끝을 봐봐. 저기.”

“어디······?”

“왼쪽 물가 말이야. 거기에 보이지?”


리아는 루데릭의 옆에 바짝 붙어 머리를 내밀었다.


아무리 못해도 150m쯤 떨어진 곳이라 호수 말고는 잘 안 보였다. 그렇지만 눈에 인상을 쓰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뭔가 동물 같은 게 있는 듯했다.



“사슴?”


익숙해진 것인지 조금 잘 보이게 된 시선엔 두꺼운 2개의 뿔이 머리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네 발로 선 동물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근육이 잘빠지고 뭔가 신체 비율도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지구의 사슴과 닮은 외형이다.


그 사슴이 호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무려 새끼사슴과 함께.



“와! 귀여워!”

“쉿! 바보야, 조용히 해. 들킨다!”

“아······ 미안.”


핀잔을 주는 루데릭에게 리아는 사과하고 바로 호수를 봤다.


루데릭이 꽤 긴장하는 듯도 했지만, 방금 봤던 그 새끼 사슴이 먼저였다. 새끼인데도 조그마한 뿔이 달린 게 정말 너무 귀여웠다. 그것을 다시 보지 않고선 못 배기겠다.


‘그 귀요미는 어딜 갔지? 설마 떠들어서 도망쳤나? 읏. 미안하네. 하지만 너무 귀여웠었어. 테레비에서 보던 것보다도 한참!’



“아, 아쉽다. 다른 동물은 있나?”


투두두두.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던 리아의 귓가에 뭔가의 소리가 포착됐다.


마치 뛰어오는 듯한―― 말발굽 소리와 닮지 않았을까.



“응? 뭐지―― 았! 어······ 어······ 아, 안녕하세요?”

“리, 리아! 내, 내 뒤로 와!”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넨 리아의 앞에는 새롭게 등장한 존재―― 방금 호수에서 본 사슴이 있었다.

정확히 그 사슴인지는 확신할 근거는 없지만, 느낌으로는 그 사슴이 맞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슴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박력이 넘친 것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푸른빛이 감도는 진한 갈색 털, 한눈에 보기에도 잘 발달한 근육, 거기에 앞으로 나온 뿔들은 두껍고 뾰족해 찔리면 아픈 수준을 넘어섰다.


명백히 귀여운 사슴과는 비교를 달리하는 모습이다.


리아는 덜덜 떨면서도 자신보다 2배 이상 큰 사슴을 쳐다봤다.


사슴은 그런 리아를 지성의 빛이 감도는 눈으로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그, 그······ 모, 몰래······봐서 죄······송했어요.”

“야! 뒤, 뒤로 빠져.”


사슴을 상대로 말을 건다는 아이다운 순진한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더라도 미소 지을 만한 일이다.


평범한 사슴이었다면.


하지만 패닉에 빠진 리아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단순히 무의식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지, 진짜 노, 놀라게 하려고······ 소, 소리친 게 아니에요.”

“바보야······! 그, 그만하고 도망쳐.”


루데릭은 제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는 리아의 손을 잡아당겨 본인의 뒤로 숨겼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게 된 리아는 우선 현재 상황부터 파악했다.


눈앞에서 내려다보는 위엄 넘치는 사슴과 루데릭의 긴급하다 못해 절박한 모습.


아니. 따로 상황을 파악할 필요도 없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은 명확했고, 리아도 많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큰일 났다는 마음속 경종이 미친 듯이 울린다.


그러던 때였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으응? 누가―― 어? 설마 사슴 씨가 말하는 거예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봤지만······ 말하는 것은 현재 사슴밖에 없다. 너무나 헛소리 같음에 재차 둘러봤지만, 말이 들려오는 방향에 있는 건 사슴뿐이었다.


정확히는 울음소리를 내는 거였지만, 리아는 그 울음소리의 의미가 이해됐다.


리아는 루데릭의 손을 놓고 앞으로 나왔다.


놀란 루데릭이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리아는 손을 내밀어 제지하고 침착하니 사슴 앞에 섰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 통하면 대화로 풀어갈 수 있으리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나. 자칫 공격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네······ 죄송해요. 정말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너무 귀여운 새끼 사슴을 봐서 그만.”


리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루데릭이 움찔하는 기척이 전해졌지만, 조용히 듣는 사슴의 모습에 사태를 지켜보자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잠자코 내려다보던 사슴이 다시 말을 했다.



《이곳은 아이들끼리 오기 위험하다. 다른 마수나 마물도 찾아오니까 빨리 돌아들 가거라. 데리러 온 인간도 있구나.》

“정말 죄송했어요. 그리고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울음소리뿐이었지만 명확히 이해되는 소리에 리아는 재차 머리를 숙였다.


그걸 끝으로 사슴은 그대로 몸을 돌려 뛰어갔다.



“무, 무지하게 빠르네.”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이곳에 도착했던 거니 그야 빠르겠지. 하지만 사슴이 달리는 속도치고는 지나치게 빠르게만 보인다.


그렇게 사라진 사슴을 뒤로 하고 리아는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스피리아! 야! 리아. 괜찮아?!”

“어······어어. 괘, 괜찮아. 루데릭은 어때?”

“남 걱정할 때냐?! 도대체 어떤 놈이 마수한테 말을 걸 생각을 하는지 원. 저 마수가 그냥 가서 다행이지 진짜로 위험했다고.”

“마수?!”

“――아니.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위험해.”


처음으로 마수를 만났다는 사실에 놀란 리아의 말을 뚫고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무 놀라 황급히 루데릭과 뒤를 돌아봤더니······



“엇! 재, 잭 아저씨?”


그러고 보니 아까 사슴이 데리러 온 사람이 있다고 했었다. 그게 잭이었던 모양이다.


용케도 알아차린 사슴이 대단하기도 했지만, 리아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이 의아스럽기만 했다.



“어째서 아저씨가 여기에?”

“너희야말로 마을에서 꽤 떨어진 이곳까진 뭐 하러 온 거냐?”

“어, 그게요······”

“후우······ 혼내는 건 나중이다. 일단 위험하니 돌아가자.”


진지한 잭의 표정에 루데릭과 함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리아는 얌전히 뒤를 따라 이동했다.


돌아가는 길은 익숙해져서인지 아까보다는 걷기가 편했고, 어른이 같이 있다는 안심감에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겨났다.


‘힘들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어왔었구나.’


새삼 이런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해졌다는 실감이 난다.


그 사실이 정말로 기뻤던 터라 리아는 룰루랄라 신이 났다. 다른 일 같은 건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잭은 분명히 말했었다.


혼내는 건 나중이라고.


혼나는 건 확정 사항이고, 중요한 건 ‘누가 혼내는가’에 대한 생각엔 이르지 못했다.


뒤늦게 집 앞에서 팔짱을 낀 필리아를 보고 깨닫게 됐지만······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루데릭도 다를 게 없었다. 그의 어머니인 루루카나에게 연행되듯 끌려가 추궁당하고, 몰래 호수를 몇 번이나 다녀온 것이 들통나 등짝을 맞았다.



“리아까지 위험하게 만들고 뭐한 거야?!”

“그냥 보여주려고 했어! 쟤 저런 거 멍때리면서 보는 걸 좋아하니까······”


번쩍 치켜 올라갔던 루루카나의 팔이 멈췄다.

그때를 틈타 리아도 거들었다.



“맞아요! 저 풍경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그리고 루데릭은 절 지켜주고 했어요! 자기 몸 아끼지 않고 저부터요! 그러니까 너무 혼내지 말아 주세요. 네?”


간절한 호소에 차마 이 자리에선 더 혼내지 못하겠던지 루루카나는 미안했다는 말만 남긴 채 루데릭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안도하고 있던 리아의 차례가 돌아왔다.


“자아~ 우리도 집에 돌아가 볼까, 리아?”

“어, 저기, 어머니?”


변명 따윈 듣지 않겠다는 양 평소와 같은 미소지만 어딘가 차가웠던 필리아는 호송하듯 리아를 집으로 끌고 갔다.


달리 뭐를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리아는 죄인과 같은 심정으로 차분히 판결을 기다렸다.


그리고 비극이 시작됐다.


엉덩이로부터 느껴졌던, 그 절묘하기 그지없는 테크닉은 결단코 내일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고 멍하나 남지 않는 최고의 기술로 리아에게 고통만을 선사했다.


그렇다. 판결은 최악. 그날 하루는 엎드려서 일어설 수가 없게 됐다.


눈물을 찔끔 흘렸으나, 분명 창피해서 흘린 눈물이라며 리아는 마음속으로 변명했다.








그 비극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나 잭이 왜 호수에 있었는지 듣게 됐다.


잭은 경비장으로서 마을로 진입하는 마수나 마물을 처치하고는 했었는데, 그 때문에 집도 마을의 북동쪽 끝에 있다고 한다.


마을 주변도 대부분 정리하여 큰 위험은 없었다지만, 그때 간 호수까지는 범위 외로 마을보다 훨씬 마수와 마물이 들르기에 위험성이 높았다.


그런 곳을 몇 번이나 찾아가고 멀쩡히 돌아온 루데릭은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여하튼 호수로 가는 길목 끝엔 잭의 집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만나러 온 줄 알았던 자신들이 숲으로 들어가길래 혹시 몰라 미행했다고 한다.


이후는 아는 바와 같이 잭에게 연행되어 돌아왔다는 것인데······


그날의 대가는 비극―― 엉덩이 팡팡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동자인 루데릭과 함께 무기한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당하게 된 것이다.


당연한 처사이긴 했다. 전생의 기억을 찾고 매번 픽픽 쓰러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위험한 곳까지 찾아갔으니.


필리아와의 엄명을 어찌 어길 수 있을까.


그러한 용기는 조금도 생겨나지 않아 이후로는 얌전히 에이브안에게 공부를 배우며 주민들과 친분을 쌓는 일에 주력했다.


필리아처럼 만들 생각은 없다며, 이상하게 의욕을 다진 에이브안에게 받은 교육은 기초상식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배우게 된 것은 시간 개념이었는데, 우선 일, 월 등은 지구와 거의 똑같았다.


1년은 12개월, 1달은 30일로 지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태양이 없는 이곳에서 양력과 같은 셈을 하길래 신기해 이건 어떻게 정했냐고 물어봤더니, 에이브안이 예상하기로는 세계에 널리 신봉되는 생명의 신, 루시아스 교에서 시작된 걸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한 건 모르겠다며, 대륙 전체에서 쓰는 공통된 날짜 개념이니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 루시아스 교단 이외에는 정할 단체가 없다는 것만 덧붙였다.


다른 대륙도 있다고는 하는데, 에이브안도 그러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만 본 정도에 그쳤다. 다만 그쪽은 서로 다른 날짜를 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마을의 위치도 알게 됐다. 위쪽으로 며칠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어, 대륙의 위쪽에 있다는 정도지만.

정확한 위치는 다른 곳과 교류가 없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배우면서 가장 신기해했던 것은 시간이었는데, 이곳은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몇 시인가를 생각하면 극소의 마력이 소비되어 대충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대충 시간을 알 수 있다고 한 건, 어떤 사람은 단순히 낮, 대낮, 밤쯤으로 정말 대충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각자의 이미지에 따른 것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시간 개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떠오르는 시간 표기 방식이 서로 다른 거다.


리아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서처럼 24시간 체계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초까지 정확히.


실제 시간도 지구와 똑같았는지 밝고 지는 시간대를 확인해 보았는데 큰 차이는 없는 듯했다.


이런 편리한 마법이 있건만 알려주지 않았던 건 역시나 몸 때문으로, 마력을 소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생활마법 수준이라면 마력이라면 괜찮았기에 배우게 됐는데, 배우지도 않은 숫자를 알고 있어 에이브안이 약간 폭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끄러워 죽을 뻔했지만.


그리고 지구와 비슷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선 오엘문리아, 이곳에는 벌레가 없었다. 정확히는 ‘작은’ 벌레가 없는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


종이 비슷한 건 많았다. 개미, 벌 등등.

에이브안이 또 광분할까 봐 명백히 지구에서 본 것과 동일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모른 척 했지만.


심지어 이름까지 같은 것도 있었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 사이즈가 거대했다. 그래서 루데릭과 숲에 갔을 때 벌레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만나지 않은 게 행운이었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최소 30cm나 되는 벌레를 만나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나 다행인 것은 수가 적다는 거다. 호수에 다녀온 이후로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숫자가 바글거리지도 않고 적당히 있었다.

저만한 크기의 벌레가 지구에서처럼 많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못해 소름이 돋을 거다.


마물과 마수에 대해서도 배웠다.


마물은 조금씩 분류가 다르지만, 벌레나 혹은 식물이 마력을 받아서 된다. 그리고 동물이 마수가 된다.

나라나 대륙마다도 분류가 다르나 기본적인 공통상식으로는 이렇게 통한다고 한다.


마수와 마물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오랜 수수께끼 중의 하나였지만 어느 학자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자신에게도 가르치는 상식이 됐지만 실은 이 사실이 밝혀진 게 500년이 채 안 됐다고 했다.


마수와 마물로서 변했다고 판단하는 척도는 첫 번째가 뚜렷한 외형의 변화로, 마력량―― 마력레벨과 마력조작도 기존보다 좋아지지만, 외형적인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고 한다.

그래서 판별하기는 어렵지 않고, 간혹 가축으로 키우는 동물이 마수가 되는 경우도 있어 그대로 사육한다나 뭐라나.


또 마수나 마물 중에는 대화가 가능한 개체들도 존재한다고 했다.

이 설명을 들을 때 숲에서 만난 사슴을 떠올렸지만, 루데릭은 평범하게 못 알아들었으니 다른 경우라 생각됐다.


이어서 대화가 가능한 마수 중 하나는 용. 이쪽에서는 드래곤이라 부르는 마수가 대표적이란다.


그 드래곤! 판타지의 정석.


흥분하기에는 충분한 소재였다.


들뜨는 마음을 진정하며 설명을 들으니 이 드래곤은 개체차가 존재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한가, 아닌가로 나뉜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드래곤은 동화에서처럼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문헌에도 제법 많이 기록되어 있기에 신빙성이 높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반대로 의사소통할 수 없는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흉포하단다.


이러한 지식이 부족했던 몇몇 사람들은 드래곤과 조우하여 대화를 시도했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이런 사례들이 발생하고 학자들은 목숨을 건 연구를 시작.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드래곤은 평범한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널리 퍼뜨렸고, 드래곤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행동 자체가 줄어들어 헛되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줄게 되었다고 한다.


문자도 배우게 됐다. 다만 이건 생판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공용문자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는데, 말 그대로 대륙 전체에서 사용하는 문자다. 에이브안의 추측으로는 이것도 루시아스교에서 만들어 배포한 것 같다나.


문자는 이 이외에도 각 나라나 지역마다 고유의 문자가 존재한다고도 알려줬다. 그렇지만 이것들의 사용법은 조금 달라 귀족들의 지식을 자랑하는 용도나 쉽게 해독하지 못하게 암호처럼 쓴다고 한다.


그러니 기본적으로는 서민, 부자, 귀족 가릴 것 없이 공용문자를 쓰니 문자는 이것 하나만 배우면 만사 오케이였다.


물론 익히는 건 쉽지 않아 꼬박 1년이란 시간을 소비하게 됐다.


문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말에 대한 설명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먼 지역의 사람과는 말이 다르면 어떡하나 궁금했지만, 마을을 나갈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게 시간을 알 방법이었다면, 가장 놀랐던 것은 수명이었다.


이곳의 평균 수명은 200살로, 아무리 많이 줘도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에이브안은 현재 140세 정도를 살고 있었다.

그 본인조차도 오래 살아 나이를 세는 것도 까먹어 정확히 기억 못할 정도였다.


전, 현세를 모두 합친 이쪽의 나이를 뛰어넘다니······.


암만 마법이 있는 세계라지만 쉬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재차 물었더니 설명해주기로는, 여긴 외형이 20살까지는 지구와 다를 바 없는 성장을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매우 느린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160세 정도부터 노화가 급격하게 빨라져 200세에 이를 무렵에는 익히 알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된다고 한다.


놀라운 건 마력레벨이 높아지면 수명이 거기서 더 오른다는 소리가 있다고 하니 정말 경악스러울 뿐이다.

아마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구보다 오래 살지 않을까.


이러한 설명을 들은 뒤 순간 부모님의 나이도 궁금해졌지만······ 물어보기 껄끄러워 그만뒀다.


필리아가 무서워서.


그렇게 숲으로의 외출이 금지된 이후로는 오전엔 에이브안에게 기초상식을 배우면서 간간이 마력레벨을 올리기도 했다.


오후에는 루데릭과 놀거나 주민들을 도와 잡초를 뽑았는데, 주민들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을 지경이었다.


모종이니 뭐니 들어도 전혀 구분을 못 해 괭이질이라도 돕는다며 매번 도움이라는 이름의 방해를 일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주민들은 모두 즐거이 웃어줬다.


이런 착한 사람들을 오해라지만 싫어하고 있었다니.


그런 이전의 시간을 반성할 겸 잡초 뽑기는 빠지지 않고 참가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갔었다.


지금은 너무 자주 찾아가니 옷이 더러워진다며 모자와 장갑, 작업복―― 일명 농민세트를 선물로 받아 매일 오후마다 입고 출근 중이다.


루데릭에게도 같이 하자며 꼬드겼는데,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어느덧 함께 잡초를 뽑게 됐다.

아무래도 할 게 없는 마을이고 유일한 놀 상대인 자신이 빠지니 루데릭도 심심했던 모양이다.


잭에게도 자주 놀러 갔다만, 그는 다정하게 대해주면서도 가끔 “그 리아에게 이런 딸이 태어나다니.”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필리아가 몸이 약한 아이를 낳을 줄 몰랐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잭을 보니 그런 뜻은 아닌 것 같다.


참고로 어머니인 필리아의 옛날 애칭이 리아로, 자신과 같았다는 건 주민들에게 들었었다.

어머니의 애칭을 물려받았다는 것에 조금 부끄러웠지만 기쁘기도 했다.


또 이전처럼 마력을 함부로 많이 끌어들이는 행위도 삼가게 되었다. 몸이 걱정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또 쓰러지면 부모님들이 졸도할 거 같았기 때문에······


심적으로는 답답했으나 걱정을 끼칠 순 없으니 타협해서 수건으로 적당히 물을 빨아들이는 이미지로 차근차근 마력레벨을 높여갔다.


그렇게 1년여.


모든 것을 다 배우고 마을에도 적응하게 됐을 때, 드디어 마력량이 평균은 된다는 에이브안의 판결이 내려졌다.


서서히 마력량을 높여간 터라 몸의 변화를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어느덧 완전히 건강하게 된 것이다.


이때 에이브안의 말을 듣고 광분한 이스카르와 필리아가 또 끌어안고는 오랜만에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지만, 진정되고 나서는 곧바로 마을주민에게 알려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는 이 마을에서는 이런 소식만으로 축하하는 것인가.


제법 당혹스러운 이쪽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마을 광장에는 돼지마수인 폴코를 한 마리 통째로 굽는 등 꽤 본격적으로 즐겼다.


리아도 무척 맛있는 돼지 통구이 냄새에 무심코 침을 흘리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점점 찝찝한 기분만이 들었었다. 여차저차 잘 마무리 되긴 했어도······











정상 판정을 받은 6살 그해 겨울, 쌀쌀한 날씨에 눈이 내렸다.


호수에서의 사건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생에 처음으로 눈을 보기도 했었는데 별로 지구와 다르진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색다른 것도 없고, 많이 내리지도 않은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루데릭은 왠지 신나 보였다.



“왜 그래, 루데릭. 뭐 좋은 게 있어?”

“아니, 없어. 있어도 너랑은 상관없어.”

“흐응.”


대놓고 피하는 말에 리아도 관심을 끄고 올해도 내리는 눈을 별 감흥 없이 봤다. 그러다가 집에 찾아와 에이브안이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에 시선을 옮겼다.


아무 생각없이 본 것이었지만, 그 눈을 치우는 방식이 리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쳐다만 보니 훅, 불듯이 눈이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너무 신기해 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마법이겠거니 싶었다. 에이브안의 마력이 줄어드는 모습을 봤으니 확실하겠지.


그리고 흥분이 솟구쳤다.


여태 공부만 하다 마법은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목격하니 불이 지펴진 것이다.


참지 못한 리아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 문을 열고 에이브안의 곁으로 뛰어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응? 리아야, 춥게 그러고 나왔니?”

“괜찮아요! 그보다 아까 마법이요!”

“아아. 봤느냐?”

“네! 그 마법이요. 저도 할 수 있을까요?!”


마구 몸을 들이대면서 하는 질문에 에이브안은 조금 곤혹스러워 보였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구나. 간단한 것은 슬슬 시험해보자꾸나. 하지만 꼭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거라.”

“고마워요, 할아버지!”


너무 기쁜 마음에 리아는 달려들 듯 에이브안을 껴안았다.


140세 이상인 노인에게 힘들게 뭐 하는 짓인가, 머리 한편에서 이런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근래에 본 그 어느 때보다도 입가가 풀어진 에이브안을 보니 괜찮을 듯싶다.


이후로도 잔뜩 흥분된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 겉옷을 입고 나왔다.



“그렇게도 좋냐?”

“그야 마법을 배우는 거잖아?”

“흐응. 그러냐?”

“응!”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도착한 곳은 마을의 광장.


그곳에서 리아는 눈을 치우고 있는 주민들을 구경했다. 돕고 싶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방해밖에 안 될 테니 그만뒀다.



“음. 역시 마법이네. 어느샌가 다들 평범하게 쓰고 있었구나.”

“뭐?”

“아. 잠시만 다녀올게!”


되묻는 루데릭을 뒤로하고 리아는 눈을 치우고 있던 주민에게로 향했다.



“아주머니!”

“응? 리아? 추운데 웬일이니. 루데릭도 함께.”


철재로 만들어진 거대 삽으로 눈을 퍼올려 적어도 1.5m 떨어진 곳으로 뿌리던 루데릭의 어머니, 루루카나는 친근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리아는 물었다.



“혹시 방금 마법을 쓰신 건가요?”

“마법?”

“눈을 치우실 때요.”

“얘도 참. 그냥 힘으로 치운 거야. 마법이 아니야.”

“응?”

“왜 그러니?”

“아, 아뇨.”

“후후. 뭔지는 모르겠지만, 추우니 어서 들어가렴.”

“어······ 네. 좀 더 보다가 추워지면 들어갈게요.”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대화를 마친 리아는 처음 자리 그대로 서 있던 루데릭에게로 돌아갔다.



“결국 뭐였는데?”

“그게······ 다들 마법을 쓰는 거 같은데, 본인들은 마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질 않나 봐.”

“내가 보기에도 마법 같진 않은데?”

“그렇지만 마력은 확실히 줄고 있단 말이야. 느낌도 왠지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 같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루데릭은 내버려 두고 리아는 다시 주민들을 구경했다.


함께 길가의 정리를 마친 주민들은 이제 각자의 집에 쌓인 눈을 청소하러 돌아갔는데, 리아는 그런 루루카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집에 쌓인 눈들의 청소는 평범했다.


삽으로 눈을 퍼 나르는 모습을 보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때였다.


길가를 대충 정리한 루루카나가 날아올랐다. 어림잡아도 한 3m는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단 한 번의 점프로 익숙하다는 듯 지붕에 오른 루루카나는 그곳에 쌓인 눈들을 거대 삽으로 치워냈다.



“도대체 이런 게 뭐가 재밌어서 보는 거야?”

“그, 그보다, 루데릭!”

“귀청 떨어지겠다. 살살 좀 말해.”

“됐으니까! 아주머니! 아주머니 말이야!”

“엄마? 엄마가 왜?”

“아주머니 평범한 분이셔? 사실은 어딘가의 비밀 결사대라든가, 굴지의 영웅이든가 그러지 않아?”

“그건 또 뭔 소리여? 우리 엄마의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평범해. 아니, 성격은 조금 괴팍한 축이려나?”

“어, 어쨌든 평범하시다는 거지?”

“그렇지. 근데 그게 왜?”

“왜가 아니라, 원래 다들 저렇게 높이 뛸 수 있는 거야?”

“그러지 않나? 매년 봐서 잘 모르겠네.”

“뭐? 음······ 알았어. 고마워, 루데릭! 그럼 내일 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아는 달렸다.



“어? 갑자기 어디 가는데?!”

“집에! 아버지한테 가보려고!”

“진짜 뭐냐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루데릭의 말을 끝으로, 바로 옆에 있는 집에 도착한 리아는 곧장 이스카르를 찾았다.


이스카르는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치우고 있었는데, 달려오는 리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리아야. 뭘 그렇게 급하게 뛰니?”

“아버지! 지붕이요!”

“지붕······?”

“네, 지붕이요! 저길 단박에 올라갈 수 있는 게 평범한 건가요?!”

“평범······하지?”


그리 대답한 이스카르는 이미 에이브안이 다 치워놔 올라가지 않아도 될 지붕에 괜스레 뛰어 올라갔다.


그랬다. 이스카르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평범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뭔가의 계략에 빠진 기분마저 생겨났다.


‘응?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집에서 달려오셨을 때도 엄청 빠르지 않았나?’


어안이벙벙했던 리아는 지붕을 내려온 이스카르에게 바로 달려가 물었다.



“아버지, 마법을 사용하신 거예요?”

“아니. 그냥 뛴 거다만.”

“마력이 줄었는데요?”

“그랬니? 당연히 움직였으니 그런 게 아닐까?”


이스카르는 덧붙여 자기는 잘 못 느끼지만, 그래도 오래 움직이거나 뛰면 좀 줄어드는 걸 알기도 한다고 했다.



“왜, 여태 이렇게 굉장한 모습을 안 보여주신 거예요?”

“그게······ 마력을 억누르는 일에 소홀해질까 그랬단다. 영 익숙해지지 않아서 말이다.”


이제야 말할 수 있었다며 이스카르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

“솔직히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맘 편히 해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벌써 다 보답받았단다. 그러니 그런 표정 짓지 말렴, 리아야.”


울컥해진 리아는 이스카르를 껴안았다. 그리고 고맙다며 마음을 전했다.


그날 저녁, 리아는 집을 나와 에이브안의 집으로 향했다. 물론 부모님에게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자고 온다고 이야기해뒀다.


리아는 길을 걸으면서 오늘 하루 본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엄청난 신체 능력의 사람들.


단순히 생각하더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도 전원이 3m 정도는 뛸 수 있는 터무니 없는 능력을 지녔다는 게 된다.


딱히 이 마을이 특별한 건 아니라고 했으니 오엘문리아에 사는 사람은 최소한 이 정도의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저 마력으로만 이루어 내는 일은 아닐 거 같아. 아마 신체 능력 자체도 지구보다는 좋지 않을까 싶은데······’


똑똑.


고민하는 사이 금방 도착한 리아는 문을 두드렸다.


대문은 금방 열렸고, 밤늦게 찾아온 손녀를 에이브안은 만면의 미소로 맞이해줬다.



“자자. 어서 들어오렴. 춥진 않았니?”

“금방인걸요.”


이제는 제집같이 익숙해진 촌장의 집에서 리아는 거실에 앉아 오늘 보고 온 것을 말했다. 그랬더니 에이브안은 파안대소하며 “역시 내 손녀다”라며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칭찬 일색이던 에이브안은 천천히 본론으로 넘어갔다.



“확실히 힘을 쓰거나 빨리 달리면 마력을 쓰곤 하지. 완전 무의식적인 행동이지만, 나도 리아처럼 마법의 일종이라 생각한단다. 결국엔 본인의 의지가 깃든 것이니 말이야.”

“몸으로 쓰는 마법 같은 거네요?”

“그렇지. 그러므로 마력을 많이 쓸수록 더 큰 힘을 낼 수도 있을 게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쉽지는 않겠지. 일단 고통이 엄청날 테니. 그래도 보통은 무의식적으로 몸이 허용하는 양만을 사용할 것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만······”


힐끔 에이브안이 곁눈질로 쳐다본다. 그 눈에 담긴 뜻은 시험해 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에이브안은 구태여 말로서 전하였다.



“할 능력이 안 된다면 모를까, 리아는 아마 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언젠가는 분명. 그만한 재능의 편린을 보여왔으니 말이야. 하지만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별개다. 리아가 아프면 슬퍼할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거라.”


무척이나 신뢰도가 낮은 에이브안의 눈빛과 말에 리아는 뜨끔하여 허둥지둥 대답했다.



“아, 안 해요. 진짜로요!”


여전히 미심쩍다는 눈빛을 거두진 않았지만 에이브안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흠······ 어쨌든 사람들이 강해지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마력의 허용량을 늘리려고 말이야. 신체가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를 높인다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겠지?”

“그리고 대부분은 태어났을 때부터 평생을 그래왔는지라 마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겠네요.”

“그렇지. 힘을 쓰면 마력이 단다―― 그 정도로만 파악하겠지. 나도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자신 하나 때문에 다들 저런 굉장한 신체 능력을 쓰지 않고 생활했다니······


불편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을 거란 기분에 리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예민하게 이런 감정을 알아차렸는지 에이브안은 리아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다독여줬다.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라서 쓸 힘도 적었고, 리아가 안 보이는 데에서는 평범하게 지냈단다? 그리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 언제 힘든 티라도 냈느냐? 그들은 모두 리아가 웃으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힘을 냈던 거야. 그러니 리아는 계속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렴. 그게 모두에게 보답하는 길이란다.”

“네. 알겠어요, 할아버지.”


에이브안에게 활짝 웃은 리아는 고맙기만 한 주민―― 가족들에게 받은 은혜를 꼭 갚자며 다짐했다.


이후로는 편한 주제로 즐거이 떠들다가 언제나 신세지는 방에서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 입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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