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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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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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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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

DUMMY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에르는 스르르 감았던 눈을 떴다.


잠에서 깬 게 아니다. 본디 에르에게 수면이란 불필요한 행위―― 아니, 수면이란 개념 자체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잠을 잔다는 표현을 쓰긴 하나, 그건 단지 대체할 다른 뜻이 없기에 쓰는 것이었다.


심소에서 자는 행위 또한 큰 의의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즐길 뿐······. 영겁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땅히 할 게 없으니 일부러 표층 의식을 가라앉힌 것에 불과했다.


용왕이란 그런 존재였다. 세상을 관리하기 위해 창조된 그들에겐 처음부터 수면이란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꿈이란 용왕들에겐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것.


미래에 대한―― 현재의 기괴한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니 아쉽긴 하다. 하지만 단순 정보로서만이 그러한 게 있음을 알 뿐이더라도 상관없다.


곁에서 기분 좋게 자는 아내를 보노라면 뭔들 괜찮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으니 말이다.



“헤헤······. 에르, 더 못 먹어요······.”


헤실헤실 웃는 리아.


리카드와 세리오, 두 사람과 함께 해주 술식을 만들기 위해 거의 자정 무렵까지 애썼던 터라 그런지 푹 잠들었다.


물론 육체적인 피로는 아니다. 단순히 정신적인 피로에 불과하다.


아니. 리아에겐 그러한 피로조차도 있을 턱이 없다. 그저 살아있는 생물로서의 흔적―― 인간이었을 적의 잔재에 불과하다.


본래라면 없는 것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리아는 지극히도 불안정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의 리아가 왠지 모르게 안심된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유지되었으면 싶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입맛까지 다시고.’


마음 같아서는 그 음식을 진짜로 만들어 대접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에르는 자신의 팔을 껴안고 잠든 리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한동안 따스한 눈길로 아내를 바라보던 에르는 순간 눈빛을 날카롭게 하였다. 동시에 [염화]가 걸려 왔다. 다름 아니라 지금도 잘 자고 있는 리아에게서······


에르는 눈만을 천장으로 향한 뒤 [염화]를 수락했다.


············.


조용했다. [염화]가 연결되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제법 기다렸음에도 말을 할 기색이 없자 에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이로구나. 이야기는 리아에게서 들었단다.』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부드럽게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을 연결하는 [염화]이기에 더더욱 에르의 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뜻한 반응에 용기를 얻은 것인가, 무뚝뚝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찬크에르레이.』

『에르면 된다.』


조금 고심하는 듯 말이 없었던 리아 안의 존재―― 아이는 이내 수긍해주었다.



『알겠습니다, 에르. 저는 아시는 대로 아이라고 합니다.』

『그래.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쁘구나.』

『······.』

『왜 그러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왜 저러는지 얼추 눈치챘다. 에르를 아는 자라면 누구라도 저러할 것이다.


‘그런데 리아에게 듣던 것과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군.’


어투라든지 듣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희박함에도 조금은 머쓱했던 에르는 굳이 건들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괜히 시비를 걸 것도 아니고.




『어쩐 일이니, 굳이 말까지 걸고? 아아. 폐가 됐다는 뜻은 아니란다. 언제든 편하게 말을 걸려무나.』

『······고려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힘이―― 마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용건입니다.』

『상관없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거라.』

『······.』


다시금 아이가 침묵했다.


에르는 닦달하지 않았다. 차분히 아이가 다시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렸다.



『왜 필요한지······ 묻지 않으셔도 됩니까?』

『음. 왜 필요하느냐? 몹시도 궁금하구나. 괜찮다면 알려주지 않겠니?』

『······.』


앞서 고민하던 것과는 달리 넋이 나간 듯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이내 묻는 말에 대답해주었다.



『눈치채셨으리라 판단합니다. 마스터의 봉인이 풀려 간다는 것을······.』

『기억에 관한 부분인가······. 역시나 리아는 일찍이 다른 미래에 대해 떠올린 상태였었군.』


남편 된 자로서 리아의 현 상태는 누구보다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세스타스라는 비렁뱅이―― 델리안이 거둬들인 자식과의 일전 이후 달라진 것도 전부. 친구인 소베르비아마저 알아차린 걸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한심한 작태 따윈 부리지 않는다.


최근 리아가 다른 미래를 떠올리는 것도 그러하다. 한눈에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가 남몰래 리아를 유도하는 것도 말이다.


당최 어떠한 방향인지, 왜 유도하는 건진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할 말은 없다. 왜냐하면 [염화]로 연결된 탓에 이쪽도 아이의 감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너무나 리아를 염려하는 그 마음이······.


여기에 어찌 토를 달 수 있을까.



『그 봉인을 재차 견고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마력이라면 마스터께서 굳이 봉인을 건들려 하진 않을 테니.』

『과연 리아를 잘 알고 있구나.』


아이의 말대로였다. 리아는 워낙 호기심이 왕성한 터라, 만약 본인의 마력으로 몸에 펼쳐진 마법을 감지해낸다면 그 즉시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려 들 것이다. 숨겨져 있다면 더욱. 반드시 리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들쑤실 터다.


봉인의 존재에 대해 감추려는 형편상 그건 좋지 않다. 그러니 아이가 취하려는 이 방편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의 마력에 대한 영향력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마법사 죽이기’ 사건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아내를 지극히 아끼는 에르의 마력은 리아에겐 전혀 독으로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탈로스의 가호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게다가 이번엔 순수 마력을 주는 게 아닌, 마법으로 치환된 것이기에 더더욱 리아에게 끼칠 영향은 없다.



『이야기는 알겠다. 말했듯이 필요한 만큼 편하게 가져가거라. 아이라면 내 마력을 잘 다룰 테니 걱정도 없구나.』

『······.』

『왜 그러느냐?』

『······어째서 이리 선뜻 믿어주시는 겁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굳이 물어봤다.


이전의 자신이라면 평생 알 도리가 없었을 감정을 느끼며 에르는 살짝 미소 지었다. 리아와 아이리스, 나트알의 가족들 이외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를.



『리아의 딸은 나의 딸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딸을 믿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필요하겠느냐?』

『저는 당신과는 한 방울도 영혼이 섞이지 않았습니다.』

『양녀라는 개념이 있잖니? 부모의 개념은 다양하다는 거지. 그리고 리아의 딸이라면 난 전력으로 나의 딸로 받아들일 것이다. ······후후. 지금이라면 아주르레이의 기분도 이해가 돼. 그의 슬픔을 공감해주지 못한 당시의 나를 질책하고 싶을 정도로.』

『······.』

『아. 미안하구나. 혼자 떠들어대서.』

『괜찮습니다.』


차분히 대답하는 아이에게선 언짢은 기색이 비치지 않았다.


방금 막 아버지로서 대한다고 해놓고는 저 혼자 떠들다니······. 아이가 리아를 닮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초면에 큰 실수를 할 뻔했다.


크게 안심한 에르는 다정하게―― 리아 말고는 아무도 못 들었을 어조로 말하였다.



『네가 무얼 하든 난 응원할 뿐이란다.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리아 또한 마찬가지일 테니. 아니, 그건 네가 더 잘 알겠구나.』

『마스터는 그러한 분이시죠······.』

『그래. 그러니 곤란해지거든, 혹 리아에겐 말하기 힘든 사정이라면 날 의지하거라. 언제라도 환영한단다.』

『······알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금은 마음을 연 것일까.


애쓴 보람이 있었다며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에르는 천천히 마력을 리아에게―― 아이에게 보냈다. 붙들린 팔로 보내기에 제로 거리나 마찬가지인 데다, 생각했던 대로 아이가 잘 컨트롤하기에 용왕의 마력으로 인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리아도 깨지 않았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가져간다.


물론 얼마든지 가져가도 상관없다. 세상을 관리하는 용왕답게 마력이야 차고 넘치고, 말했듯 아깝지도 않으니 말이다. 어차피 몇 분이면 복구되기도 하고.


그렇지만 정말 너무 많다. 지금도 끊임없이 가져가는 중이다. 총 양으로 따져보면 벌써 델리안이 지닌 마력의 8배를 넘겼다. 그럼에도 기세는 줄지 않고, 보내는 족족 끝이 없다는 양 받아들인다.


도대체 어떤 마법이기에 이 많은 마력이 필요한 것일까······.


‘흐음. 느껴지기로는 [정신 방벽]과도 유사해 보이는데, 그리 단순한 마법은 아니겠지. 일단 마력의 양으로만 봐도 무효 수준마저 가볍게 보일 대마법인 건 분명하다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목을 끄는 점은 아이의 마력조작이다. 정말 발군인지라 어떠한 마법을 쓰려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마력이 들어오는 족족 바로바로 준비하는 마법에 투입하는 것도 대단하고.


‘과연 리아의 딸이로군.’


어쩐지 흐뭇해지는 기분이 드는 걸 느끼며 에르는 거기서 알아보는 것을 그만뒀다. 모처럼 집중하고 있는 아이에게 신경 쓰이게 만들 순 없으니. 미움받기도 싫고.


그렇게 기다리니 잠시 후 마법이 완성된 기척이 느껴졌다.



『협조 감사합니다, 에르. 덕분에 봉인을 견고히 하였습니다.』

『그러하다니 다행이로구나. 나로서도 만족――』


다정하게 말하던 에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말을 바꿨다.



『――만족하기는 하나, 한 가지만 받았으면 싶은 게 있구나.』

『······.』

『경계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저 레시피 하나를 받고 싶을 뿐이란다.』


[염화]를 통해 무척 의아해하는 아이의 감정이 전해진다.


반응이 왠지 신선하고 재밌었던 에르는 속으로 웃고는 가벼운 어조로 말하였다.



『리아가 꿈에서 먹던 음식 말이다. 딱히 대가라는 건 아니지만 그걸 알려주었으면 싶구나.』

『직접 해주실 생각이십니까? 이 세계엔 없는 재료도 있습니다만.』

『시간은 많다. 얼마가 걸리더라도 대체품을 길러내면 그만 아니겠느냐? 여차하면 [생성]으로 만들면 되고. 리아를 미소 짓게 한 요리를 재현할 수 있다면야 전부 값싼 노력이지.』


어이없어한달까, 기가 찬다는 듯 아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소리는 하지 않고 곧 요리의 이름과 재료, 조리법 등을 상세히 알려줬다.



『고맙구나.』

『아닙니다. 이쪽이야말로······.』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아 조금 있다가 꽤 누그러진 분위기로 아이가 작별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협조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마스터가 깨시기 전에······.』

『그래. 잘 쉬거라. 나도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단다.』

『······예. 편히 쉬십시오.』


이 말을 끝으로 [염화]는 종료되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아이와의 대화는 말했듯이 꽤 즐거웠다. 자신도 의외일 정도로. 거기에 리아에게 선보일 요리가 늘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왜 아빠들이 딸을 더 챙기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에르는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아직 어둑한 방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렇게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작가의말

어쩌다 보니 분활하게 됐습니다!

187화도 바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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