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과학자-개정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SF, 대체역사

madscient
작품등록일 :
2022.05.12 17:13
최근연재일 :
2023.07.20 18:43
연재수 :
166 회
조회수 :
157,843
추천수 :
6,522
글자수 :
832,090

작성
22.11.14 18:51
조회
588
추천
39
글자
9쪽

5년 10개월차

DUMMY

“참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청국과의 전쟁이 참호전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영국군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보급품에 식량이 추가되었다.


아직까지 취사병이라는 개념도, 취사 후 추진이라는 개념도 희박하던 시대. 식사는 각 부대별로 날것인 식자재와 쉽비스킷, 염장고기 등등을 뿌려주면 알아서 조리해먹던 시대였다. 물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그런 식자재의 질은 대부분 개판이었고, 맛을 그리 중시하지 않던 영국식 레시피까지 합쳐져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한끼 내지는 생체 연료로서 만들어지는 식사가 대부분이었다.


전장식은 보통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대충 썰어 다 때려박고 끓이는 것이 국룰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소금조차 치지 않았는데, 이유는 염장 고기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녹색 내지는 누런색 덩어리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티타임! 티타임이 좆나게 필요하다!”


영국인이 티타임을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기,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영국 노동자들은 홍차향 설탕시럽을 식사 대신 마시는 셈이었고, 그것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고된 일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것은 영국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터에서 티타임이란 우아하고 고상하게 대화를 즐기며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대신, 설탕과 우유를 잔뜩 때려박은 차와 함께 크림이나 버터가 듬뿍 들어가 한 덩이만 먹어도 하루가 든든할법한 묵직한 빵 종류를 우걱우걱 쑤셔박는 것이었다.


그나마 전쟁터에서 유일한 낙이라고는 먹을 것 밖에 없는데, 그 먹을 것 조차 짬밥+영국음식의 단점이 섞인 영국식 급조 짬밥이었던 영국군에게 티타임마저 없다면 아마 칼을 거꾸로 들고 지휘부를 향해 역돌격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참호전이 그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전열보병으로 싸우던 시절에는 각 부대가 수백명 단위로 모여 있었고, 그 정도 규모가 된다면 적어도 제빵 트레일러라도 붙어 다녔기에 빵이라도 갓 구운 것을 며칠에 한번은 먹을 수 있었다. 부대장의 재량이 어느 정도 된다면, 근처 농가에다 돈을 좀 주고 신선한 야채를 구하거나 계란과 고기라도 좀 사서 적어도 맛이라도 좀 보여줄 수 있기라도 했고...


그러나 참호로 인해 부대가 소수로 조각조각 쪼개지면서 식량의 질은 더욱 개판이 나고 말았다.


“저...이기고 돌아간다던 한 달은 애시당초 지났는데...”

“이겨야 끝내든 말든 할 것 아냐. 군소리말고 스튜나 끓여.”

“또 참호스튜야? 한달 내내 참호스튜만 먹었는데...”

“아잇 싯팔! 쉽비스킷 맛 좀 볼래?”

‘...좆같은 새끼...’

“처신 잘하라고.”


그래도 스튜는 따뜻하기라도 하고 목구멍으로 넘길 수는 있었으나, 쉽비스킷은 말이 비스킷이지 사실상 갑옷에 증가장갑으로 붙일 수 있을 수준의 강도를 자랑했기에 꾸역꾸역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침은 구운 고기와 구운 소시지, 구운 계란과 구운 감자, 베이크드 빈스등으로 느끼하고 든든하게 먹던 영국인들이 참호에 쳐 박히고 식사마저 저렇게 되자, 영국군 지휘부가 우려할 정도로 사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참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식사가 필요합니다.”

“설탕이 더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고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들어 내는 조선도 식량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조선도 식량이 부족하여 공충도에 결제하는 대금 상당 부분을 쌀과 기타 식량류로 지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영국은 주석으로 코팅한 철을 이용한 통조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기에 영국 본토에서 유럽까지 정도 거리라면 어찌어찌 식량 공급이 가능할 수도 있었으나, 청국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러고보니 조선에서도 강철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은가?”

“원물형태의 식량을 조선에 공급하고, 조선 바다에서도 증기선을 기반으로 하는 어업을 바탕으로 생선을 잡아 통조림에 추가하면 어떨까?”

“솔직히 참호에서 불피운다고 연기 피워올리면 병력규모부터 위치까지 다 노출되지 않는가. 통조림과 같이 가열과정 없이도 취식할 수 있는 식량이 필요하다.”

“연기가 나지 않는 연료는 어떨까? 식사는 차갑게 하더라도 최소한 차는 먹여줘야 하지 않는가.”

“알콜은 소독용으로도 쓸 수 있고, 연료로도 쓸 수 있으며, 일선 간부들이 잘 통제하면 사기를 유지하는 용도로도 어느정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충도에 생선 가공공장과 통조림 생산공장이 삽을 뜨게 되었다. 자본과 기술, 주석은 영국이 대고, 철판의 생산과 도금은 사영이 맡고, 일꾼은 공충도 주민들을 고용하는 식이었다.


“아주 이참에 경공업도 키워봅시다.”

“솔직히 공충도 마량진 일대에는 은과 쌀이 넘쳐나지만, 그것을 소비할 만한 시장이 없고, 계속 사람들만 유입될 뿐입니다.”


확실히 그러했다. 지금 공충도 마량진에는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고, 고용과 교육 모두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였으나 정작 돈을 쓸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수입되어 오는 동남아산 쌀, 흔히 안남미라고 하는 것과 은의 가격은 상당히 떨어지고 있었다.


아니, 사람이 모자라고 숙련공이 늘면서 그들의 임금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온 가족이 소작농으로 뼈와 살을 갈아넣으며 일해도 자식이 둘을 넘어가면 굶어 죽지 않을 방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상황이었다면, 이곳에서는 가장만 힘들게 일하면 나머지 식구들은 안남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집도 작게나마 빌릴 수 있었다. 공충도에서 사영이 왔던 초창기부터 일했던 사람들은 아예 자기 집도 지을 수 있었고, 자식도 대여섯명은 밥 안 굶기고 옷도 제대로 입힐 수 있었으며, 아이들을 일시키지 않고 오롯하게 공부를 시킬 수 있었다.


“일은 아빠가 할 테니 너희들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어서 가서 배워라. 아빠는 무식해서 힘 쓰는 것 밖에 못하지만, 너희들은 다를 것이야.”

“하면 된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거 임자도 처남들 다 이리 와서 같이 일하자구 해 봐.”

“아이구 갸들도 오고 싶어 하쥬. 하는데, 요즘은 소작농들 야반도주가 워낙 힘들어졌대유.”

“와그랴?”

“사람이 없대잖아유 사람이.”

“...허기사, 나 같아도 남의 땅 갈아주고 풀죽으로 연명하느니 여기 와서 구르는 게 훨씬 나으니 누가 소작 하려고 하겠어?”


그렇다.


이제 공충도 마량진 일대에는 소작농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져 땅을 놀리는 사람들마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나, 공충도 뿐만 아니었다.


“세를 깎아준다고 해도 소작농 구하기가 어렵습니다요.”

“모내기를 하게 되면서 사람이 덜 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죠. 그랬는데요, 그마저도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요.”

“...야반도주를 하지 못 하도록 다섯 집을 묶어 한 집이라도 도망가면 나머지 네 집이 처벌받도록 하지 않았느냐?”

흔히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의 사이.’라고도 하는 밀접한 관계는 사실 농업의 특성상, 공동 작업을 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득인 때문에 자연 발생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제도는 동아시아에서는 흔한 것이었고, 조선에서는 ‘오가작통제’라고 했다. 이렇게 다섯 집을 한 단위로 묶어 주민들이 서로 가까이 살면서 감찰하도록 하는 체재는 지금 북쪽에서도 써먹고 있는 제도이기도 했다.


다섯 집이 연대 책임을 지게 하여 호구 조사의 편의를 도모한 동시에 정치적인 공동 책임과 공동 담보의 활동 단위로서 형성된 것이었다. 따라서 오가작통을 통해서 농사일을 함께하고 환난에 서로 돕게 할 뿐만 아니라 통패를 작성하여 서로 출입을 감시하고 내력이 불명하고 행지가 의심스러운 자를 보고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랬습죠. 그런데 말입니다요....”

“그런데?”

“그 다섯 집에 같이 튀어버렸습니다요.”

“뭣이?”

“...사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튀었습니다요.”


결국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오가작통제를 통해 소작농의 탈출을 막는 것도 불가능해 질 ᅟ정도로 공충도 마량진의 성장세는 무서운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조선 조정에서도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


질소 비료를 통한 농업 생산량 3배 증가


소작농 탈출을 통한 농업 생산량 감소


양 쪽의 의견을 반영하는 상소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기적 과학자-개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5 5년 9개월차 -5- +11 22.11.10 616 40 8쪽
114 5년 9개월차 -4- +4 22.11.09 584 37 8쪽
113 5년 9개월차 -3- +4 22.11.08 598 36 10쪽
112 5년 9개월차 -2- +7 22.11.07 625 36 8쪽
111 5년 9개월차 +8 22.11.04 657 33 13쪽
110 5년 6개월차 -2- +12 22.11.03 665 38 9쪽
109 5년 6개월차 +10 22.10.28 742 38 19쪽
108 휴재공지 +3 22.10.26 727 20 1쪽
107 5년 2개월차, 청국 -2- +6 22.10.25 747 42 7쪽
106 5년 2개월차, 청국 +5 22.10.24 729 34 10쪽
105 5년차, 청국 +13 22.10.21 805 38 9쪽
104 5년차, 영국 -2- +10 22.10.20 788 41 10쪽
103 5년차, 영국 +6 22.10.19 790 38 10쪽
102 5년차 +16 22.10.18 809 42 10쪽
101 4년차, 인술. +4 22.10.17 791 38 9쪽
100 4년차, 일본 +9 22.10.15 838 45 9쪽
99 4년차, 영국 -3- +15 22.10.13 831 45 9쪽
98 4년차, 영국 -2- +8 22.10.12 803 42 10쪽
97 4년차, 영국 +14 22.10.07 840 44 14쪽
96 4년 7개월차 -3- +6 22.10.06 814 36 9쪽
95 4년 7개월차 -2- +6 22.10.05 805 41 11쪽
94 4년 7개월차 +8 22.10.04 794 38 9쪽
93 4년 6개월차 -3- +8 22.09.30 835 39 9쪽
92 4년 6개월차 -2- +9 22.09.29 813 38 9쪽
91 4년 6개월차 +14 22.09.28 875 41 24쪽
90 4년차 -4- +10 22.09.27 822 39 11쪽
89 4년차 -3- +4 22.09.26 813 38 12쪽
88 4년차 -2- +9 22.09.23 825 38 9쪽
87 4년차 +6 22.09.21 862 40 10쪽
86 3년 9개월차 -2- +8 22.09.20 829 4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