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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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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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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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지원 요청폭격

DUMMY

타카슬은 몸을 감싸던 밧줄도 다 끊어지고 피칠갑이 된 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무괴의 눈이라도 동원해야 했다.


함께 몸을 섞으며 피를 내던 상대 무괴는 온 바다에 울려퍼지고 있는 끔찍한 파장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는 타카슬과의 싸움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


하지만 타카슬은 도망가지 않았다. 이 파장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츠카?”


타카슬은 수면 위로 올라갔다. 쇠로 된 거대한 배가 수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사방에서 철썩대는 파도 소리까지 겹쳐서 그 배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분간되지 않았다.


타카슬은 주둥이 끝으로 배를 툭 건드렸다. 금속 배는 그 인간들이 사용하던 대나무 배보다 묵직해서 잘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한 번 더 배를 건드렸을 때, 텔레파시가 들렸다.


<건드리지 마라. 귀한 거니까.>


목 뒤로 가볍게 툭 건드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타카슬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그것을 물어뜯었다.


그것은 옥토끼였다. 츠카와는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그 옥토끼는 가슴 아래가 없었다. 옥토끼의 상반신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내 다리 내놔.>


타카슬의 이빨 사이에 끼인 피와 고깃덩이가 옥토끼 쪽으로 이끌려갔다. 그때 구역질이 났다. 타카슬이 그 짧은 시간에 삼켜버린 부위가 위에서 도로 끄집어내지는 감각이었다.


옥토끼의 몸은 허공에서 조립되듯이 치유됐다. 타카슬은 고통 하나 호소하지 않는 평온한 텔레파시에서 그가 츠카가 아님을 느꼈다.


“너······누구야?”

<지나가는 나그네라고 생각해 둬. 그 무괴와 계속 싸웠으면 넌 졌을 테니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난 이름을 묻는 거야.”


그 옥토끼는 흥미를 보였다.


<이름? 예사 무괴가 아닌가 본데. 난 루니. 너는?>

“타카슬.”

<타카슬? 우연이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무괴 이름도 타카슬인데. 혹시 츠카라는 옥토끼, 기르불이라는 지사리, 주지원이라는 여자 인간, 유찬호라는 남자 인간도 알고 있을까?>


타카슬은 멍하니 루니를 바라보았다. 루니는 출렁이고 있는 배의 후미에 걸터앉았다.


-----------------------------------------------------------------------------


지원은 옷을 벗어서 둘둘 말았고 기르불은 그 끝에 매달렸다.


“상황은······됐다, 말 안해도 알겠네.”

“넓은 아량 참 고마워요.”


찬호가 목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힘없이 누워만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기르불의 합류는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여전히 적들에 대한 뚜렷한 파훼법은 없었다.


적들은 석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기르불이 돌격할 수도 없고, 수류탄이 날아올 게 뻔하니 모래 언덕을 앞으로 밀어붙여 츠카의 염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전체적인 화력이 약하니, 허를 찌르는 방안이 필요했다.


“저희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뭘 하면 될까?”

“구조대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구조대······일단 나랑, 그리고 옥토끼 하나. 그게 끝이야.”


기르불은 지원과 찬호가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옥토끼 하나’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찬호는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왔다.


“루니 실장님!”

“오, 어떻게 알았어?”

“돛대 없는 배가 이런 데에 파견할 옥토끼는 그분밖에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은요?”

“없어. 자기 혼자로 충분할 거라는데.”

“그럴만해요. 책임질 부하가 있는 걸 선호하지 않으시거든요.”


지원은 가만히 이마를 짚고 생각하다가, 기르불에게 말했다.


“일단, 당신은······루니한테 돌아가십시오. 가서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


타카슬은 루니에게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그를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루니도 텔레파시를 더 쏘지 않았다.


루니는 배 후미에 계속 걸터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품속에서 꺼낸 떡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타카슬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하늘이 아주 밝다는 걸 깨달았다. 그 무괴와 싸우는 데 몰두해버린 탓에 시간 가는 것을 까먹은 것이다.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서둘러 일행에게 돌아가야 했다.


타카슬이 몸을 돌렸을 때, 그동안 여유나 부리고 앉아있던 루니가 텔레파시를 쐈다.


<잠깐.>

“뭐야, 왜.”

<질문을 받았으면 대답은 하고 가야지.>

“싫어.”


타카슬은 어마무시한 파도를 일으키며 떠났다. 그가 지나간 수면은 움푹 파여 물로 된 협곡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루니는 굳이 타카슬을 뜯어말리지 않았다. 그의 힘으로 무괴를 제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육지로 정찰을 나갔던 기르불이나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기르불이 돌아왔다.


<어땠어?>

“애들을 찾았어. 아주 위험한 상태야. 지금 추적대와 대치하고 있어. 바닷가에 있어서 데리고오기는 편할 건데, 접근하기가 곤란해. 아 그리고, 하나가 없던데. 무괴 타카슬이 환청 때문에 어디로 도망갔는데 아직 안 돌아왔대,”


기르불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루니는 텔레파시를 통해 들었음에도 하마타면 상황을 헷갈릴 뻔했다.


<흠······. 그래, 이해했어.>

“지원이 시킨 게 있는데, 네 도움이 필요해.”

<타카슬은 방금 내가 찾았어. 바로 여기에서 웬 무괴와 싸우고 있었어.>

“뭐? 그럼 지금은 어디있는데?”

<내가 둘의 싸움을 말렸고, 타카슬은 육지로, 상대 무괴는 저쪽 심해로 도망쳤어.>


기르불은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생각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지 꽤나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심지를 흔들다가 간신히 말했다.


“일단 지원이 시킨 일은 내가 필요 없어. 너 혼자 할 일이야. 내가 애들한테 돌아가서 지원의 추가적인 명령을 받는 동안, 너는 하염강으로 가서 미리 준비하고 있어.”

<지원이가 뭘 시켰지?>


기르불은 간단하게 지원이 세운 작전과 그 의도를 전달했고, 루니는 선뜻 알겠다고 받아들였다.


그 후 기르불은 다시 혼령화해 배의 유리를 통과하여 육지로 뛰쳐나갔다. 루니는 배를 돌렸다.


----------------------------------------------------------------------------------


지원과 찬호는 비몽사몽하여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방금 전 기르불이 왔다 간 것조차 자신들이 헛것을 봤던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츠카는 제정신을 유지했다. 그는 멀리서부터 타카슬이 다가오는 걸 알아챘다. 텔레파시가 아니라, 타카슬이 이외의 원인을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하고 세찬 물보라 때문이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온 타카슬에게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텔레파시를 쏟아냈을 때도 지원과 찬호는 멍하게 있었다.


<어디갔다 왜 이제왔어!>

“이상한 소리에 놀라서 바다로 도망갔어. 다시 돌아오려고 했는데 나랑 똑같이 생긴 다른 물고기가 있었어. 그놈이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싸우다가 못 돌아왔어.”

<뿌리치고 바로 돌아왔어야지! 연안에만 있어도 웬만한 무괴는 안 쫒아왔을 텐데,>

“그럴 수 없었어.”


츠카가 계속 화를 내려 하자, 지원이 말라가는 정신을 쥐어짜 끼어들었다.


“화내지 마십시오. 그건 무괴의 본능입니다. 당신이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처럼, 무괴는 동족을 만났을 때 죽이려고 하는 게 정상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옥토끼의 불살 본능을 언급하자 츠카는 할 말이 없었다. 지원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습니까? 당신이 그 무괴를 이겼습니까?”

“아니, 옥토끼가 나랑 그놈을 떨어뜨렸어.”


그제야 츠카는 타카슬의 몸이 상처투성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미 피가 다 멎어 있고, 피부색이 어두워 눈치채지 못했었다.


<너 몸이······.>


츠카가 다음 텔레파시를 떠올리기 전에, 기르불이 나타났다. 놀랄 기운도 없던 지원과 찬호 빼고 나머지는 모두 육지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


“타카슬도 여기 있네. 지원, 루니가 지시사항에 변동이 있으면 말해달래. 그거 계속해?”


지원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나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안 돼?”


타카슬이 제안했다. 지원은 거절했다.


“당신 몸에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피가 멎었지만 그 상태로 바다로 나간다면 냄새를 맡고 다른 무괴들이 몰려들 겁니다. 루니가 저희와 합류하면 그때 당신이 나서게 될 겁니다.”

“루니는 지금 어디 있는데?”


지원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


루니는 끔찍한 죄악감을 느끼면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죽이게 될 생명들을 두 눈에 담아두었다.


옥토끼는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초록색 명죽림과, 누런색의 모래사장, 파란색의 바다는 구분할 수 있었다. 몸을 돌리자 연두색의 불갈대밭과, 그 사이로 바다와 거의 같은 색의 하염강도 보였다.


모래사장의 바다와 맞닿는 부분에는 공작대 일행이 있었다. 그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반짝거리는 기르불은 눈에 잘 띄었다. 기르불도 아마 루니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기르불이 크게 몸을 키워 인간의 손 모양을 만들었다. 그 손이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루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옆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구를 정렬시켰다.

하염강의 불갈대들을 꺾어내어 둥글게 뭉친 천연 폭탄이었다.


루니는 염력으로 마찰열을 일으켜 불을 붙였다. 공기가 팽창하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불갈대는 활활 타올랐다.


죄책감에 망설였다간 불갈대가 허공에서 다 타버릴 것이다. 루니는 곧바로 불갈대를 놓았다.


불갈대 폭탄은 명죽림과 모래사장의 경계선 부분, 그러니까 추적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4 경훈이의돌
    작성일
    22.06.19 18:27
    No. 1

    지사리의 혼령화에는 제한이 없나요? 불갈대 주변 지나갈 때 꽁꽁 싸맬 필요없이 혼령화해서 지나갔으면 안됐는지?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훙냐
    작성일
    22.06.19 20:10
    No. 2

    묘사가 좀 부족했었는데, 기르불이 돛대 없는 배의 최상층 건물에 잘못 진입했을 때 주변을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혼령화를 해도 기르불처럼 숙련도가 부족하면 자칫 불꽃으로 돌아와버릴 수도 있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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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5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6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1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1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6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0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30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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