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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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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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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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무진옥

DUMMY

무진옥의 조화는,

마음이 조여 드는 그곳에서 오히려 그들의 죄업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비워 낸다면, 그들의 새장은 그만큼 조금씩 가벼워져서 위로 떠 올라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위로 올라간 무진옥의 영혼들은 어느 순간 환생의 길로 접어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한마디라도 목소리를 내게 되면,

그 소리는 다시 마음의 무게가 되어 여지없이 그들의 새장은 무진해 아래로 조금씩 더 내려가고, 결국은 물 아래로 잠겨 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은 영영 무진해 속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되고 말았다.


아주 가끔씩, 무진해의 감옥 에서는 아주 짧은 비명소리만 잠시 들리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흐느낌도 존재할만한 여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무진해의 물결위로는 항상 누군가의 살이 태워지는 냄새가 흐르고 있었고, 새장 속에 갇힌 영혼들을 언제나 두렵고 신경이 곤두서도록 자극하고 있었다.




“형님, 저 왔어요. 아녕이에요.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마세요!”


이제는 잔인하고 냉혹하게 보여야할 필요가 없는 아녕이, 원래의 아이 같은 모습으로 겁에 질린 채 이렇게 넓은 곳 어디쯤에 있을지도 모를 그의 형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소리는,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도록 무진해의 어둠속에 숨겨진 채, 아녕의 마음을 따라 형의 새장 속으로만 다다를 것이었다.


“형님, 세상에서 귀왕과 함께 요마귀가 잠시 사라졌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형님을 위한 일이었으니, 천제께서 저의 공덕을 형님께 드리는 걸 허락 하셨어요.”


어둠속에 갇혀 혼자 이야기 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속엔 점점 더 외로움이 커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무진해의 수면 위로는 금빛으로 빛나는 새장 모양만 듬성듬성 보일뿐, 어떤 말도 들려오진 않았다.


“곧, 세상으로 역겁을 떠나시게 될 거예요. 인간계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역겁이 끝나면 지금이 기억나실 거예요.

형님이 다녀오실 때까지, 집에서 기다릴게요. 우리가 살던 집도 그대로의 모양으로 다시 돌려받았어요.”


사방이 침묵뿐이었지만, 저 많은 새장 속 어딘가에 있을 형이 분명히 듣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형이 자신의 소리를 듣고, 잠시나마 행복하고 뿌듯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형님, 무사히 잘 다녀오셔야 해요. 그리고 다녀오시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세요!”


작은 볼 위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메마른 입술을 감싸 도는 밝은 미소는, 지금까지 그가 인내한 고통을 살뜰히 달래주고 있었다.



****



“참 좋은 곳이야! 중천의 모든 곳은 인간계를 참 많이 닮았지.”


천제가 상제를 찾아 왔다.

정영지 앞에 놓인 너른 바위 위에 구중천의 두 주인이 아이처럼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었다.


연못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선학과 물고기 떼들이 서로 숨고 또 찾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던 천제가 먼저 그와의 어색함을 깨우고 있었다.


“이전엔, 이곳에서 자네와 나 그리고 자영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 많이도 놀던 곳이었지. 그땐 이런 바위가 없었는데, 자네가 가져다 두었나?”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만지작거리던 상제가, 연못을 향해 한 개씩 툭툭 내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흙 위에서 노는 게 신경 쓰여서요. 우리 아이들도 아마 이곳에서 키가 다 자랐을 거예요. 웬 종일 붙어서 지내더군요.”


다정한 아비의 회상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제의 기억 속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어미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훌쩍 지나가 버리게 한 탓에, 그에게는 언제나 미안함으로 가슴을 휑하니 할퀴는 기억이기만 했다.


얕은 한숨을 내 뱉던 상제가 천제를 돌아보았다.


“사형, 운이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천제는 아직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차마 그를 돌아 볼 용기가 없는 눈길은, 정영지에 비친 구름의 흐름만 연신 쫓고 있었다.


“구중천의 상신들과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부르지 않은 이유도 있을 테죠."


이제 천제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 아이의 아비이지 않나... 부를 수가 없었네! 자운이 이번에 구중천의 뜻을 몇 번이나 거스르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네.”


상제도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딸의 운명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사형, 그래도 운우 상신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계에서도 이미, 더 없이 커졌을 귀왕의 힘을 가늠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자운이 아니었더라도,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어찌되었던, 귀왕은 천계를 침범 했을 겁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너무 빨리 뚫리는 바람에, 결계 속에 숨었던 소선들 또한 너무 빨리 발각되어 많은 죽음을 초래했네.

그리고 그 아이가... 전신과 천계의 병사들까지 공격하지 않았나."


차마 할 말을 잃은 상제도, 주먹만 불끈 쥔 채로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오룡광진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은 부분까지, 상신들의 분노가 컸던 것 같더군.”


그들의 이야기가 끊어진 후, 천제가 드디어 상제의 눈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알고 있었네. 진을 펼칠 것을 대비해, 이 기회에 자영을 데려오고 싶었던 자네마음을... 하지만 내가 막았었지.

솔직히 자운에게 청룡의 원신이 깃든 것을 알고, 많이 노여웠네. 그래서 모든 걸 자네 마음대로 하도록 두고 싶지가 않았어... 자운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나 또한 너무 두려웠네. 운이의 존재를 알고 난 후 천계 상신들의 고지식한 반응이 어떠하리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래서 영이는 얽히게 하고 싶지가 않았어."


상제의 두 눈이 붉어지고 있었다. 자영과 자운을 지키지 못한 남자와 아비로서의 무능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 ... 미안하네 옥호, 천계가 자운을 지키지 못한 탓이기도 한 걸 왜 모르겠나."


“어떻게... 되나요?... 우리 딸은...”


갈라진 상제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간신히 배어나왔다.


“상신들과의 논의 때, 전신과 선풍, 운우, 태자가 모두 나서서 자운의 상황을 얘기하였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천제가 침묵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자운은 무진옥에서 역겁에 들 준비가 될 때까지 있게 될 거야.

그 아이가 무진옥에서 얼마나 빨리 나갈 수 있는지는, 그 아이 스스로가 이 상황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우느냐에 달린 일이지. 이게 최선이라네.”


“다행이군요. 천계의 생명들을 무수히 해쳤는데, 그래도 소멸은 면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운은 반드시 무진옥을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하다고 말하기에는, 상제의 목소리는 여전히 많이 어둡고 무거웠다.


“인간의 역겁은 금방 지나가니, 후에 다시 만나게 되면 아팠던 기억은 잊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도록 하세."


하지만, 상제는 한참동안이나 별 대답이 없었다.


“사형, 자원을 부탁드려요. ”


그의 대답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천제가 상제를 올려 보았다.


“무슨 말인가?”


“아비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자식을 무진옥까지 보내게 만들었는데, 무슨 낯으로 이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중천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

한동안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을 두루 다니며 저 또한 자영처럼 수련을 하려고 합니다. ”


“어떻게 말인가?”


긴장한 천제와 다르게, 상제의 얼굴엔 오히려 여유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한동안 자영을 볼 낯이 없을 것 같습니다.

꽃의 정령인 자영을 만나지 않으려면, 겨울을 따라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눈의 정령이 되어 세상을 두루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겨울을 풍성하게 다스리고 나면, 봄이 되었을 때 자영의 꽃들도 예쁘게 피어나겠죠.”


“중천은 어떻게 하려고...?”


“자운은 용기와 순수함을 가졌지만, 자원은 선량함과 신중함을 가졌습니다.

자운못지 않게 자원의 내력에는 엄청난 힘이 잠재하고 있어서, 중천을 다스려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사형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생각을 끝낸 상제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천제도 힘들게 미소를 지어보이긴 했지만, 이 또한 서로를 위한 위로일 뿐이라는 것을,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멀지않은 곳에서 들리는 폭포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새소리와 어우러져 절벽주변을 자유롭게 흘러 다니고 있었다.


폭포수 옆에 자리 잡은 평평한 절벽위에, 마존이 직접 정성껏 지어 만들어 낸 작은 별채가 이제는 더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별채의 입구에는 지옥의 개 형상의 나무 조각을 만들어 세우고, ‘미운정’ 이라는 푯말을 목에 걸어두었다.


집 앞 마당은 언제나 생기가 넘쳐흘렀다.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아름답고 신기하다는 것은 죄다 모아둔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째 별채 안은... 말소리 발소리도 조심스럽게 다니느라, 고요함을 넘어서 슬프고 우울함만이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닮게 만든 집은, 꽃 넝쿨이 감긴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어서,

밤이면 드러누워 별을 볼 수 있는 대청마루와 창이 넒은 방안으로는 항시 꽃향기가 흘러들고 있었다.


밤이면 인간계에서 가져온 촛불을 켜두어 밝히는 방안은, 아련한 빛을 만들어 창밖까지 그 빛을 밝히고, 방안에는 따듯한 화톳불도 탁탁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며칠째, 마존은 자운의 곁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녀를 위해 그의 내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틈이 나면 영선강의 물을 길어다가 그녀의 손발을 직접 깨끗하게 닦아주며, 작은 소리로 음을 만들어 그녀의 귓가에 들려주는일도 잊지 않았다.


마치 그가 멈춘 시간의 저주 속에 갖혀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자운이 함께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제발... 운아, 일어나서... 나 좀 봐주지 않을래?’


달빛이 밝은 밤은 그녀의 손을 잡고 여전히 깨지 않는 그녀의 귀전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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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미운정의 주인 +2 22.10.06 52 5 13쪽
» 무진옥 22.10.05 51 5 11쪽
90 아녕의 과거 +2 22.10.04 49 5 12쪽
89 만월검의 여인 +2 22.10.03 42 4 12쪽
88 보천귀장 +2 22.10.02 38 4 11쪽
87 아녕의 진실 +3 22.10.01 44 4 11쪽
86 마계로 향하는 청룡 +4 22.09.30 38 4 11쪽
85 천해문을 여는 운우 22.09.29 39 4 12쪽
84 선. 마의 기운 +2 22.09.28 35 4 12쪽
83 격전의 날 22.09.27 39 4 12쪽
82 마존이 선택한 여인 22.09.26 44 4 12쪽
81 보연의 거래 22.09.25 34 4 11쪽
80 회마곡에서 만난 자운과 운우 +2 22.09.24 44 4 13쪽
79 잃어버린 너 22.09.23 38 4 12쪽
78 슬픈 준비 +2 22.09.22 42 5 13쪽
77 셋이서 함께 +4 22.09.21 64 5 12쪽
76 세오의 계획 22.09.20 31 5 12쪽
75 연적의 사내들 +2 22.09.19 33 4 11쪽
74 운우의 흔적 22.09.18 44 4 12쪽
73 기억 심기 +2 22.09.17 39 4 12쪽
72 현연의 탈출 22.09.16 34 6 12쪽
71 전신의 죽 +2 22.09.15 45 6 12쪽
70 다시 제자리로 +4 22.09.14 49 6 11쪽
69 기억 소환 22.09.13 33 6 12쪽
68 현연의 윤회점 22.09.12 38 6 12쪽
67 네가 꿈꾸는 사이 +2 22.09.11 5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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