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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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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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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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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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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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 하루3

DUMMY

야심한 저녁.

거실 한 편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있는 세 사람과 한 마리.

얼굴 가득 감도는 긴장감과 그들 주변으로 무겁게 깔리는 공기.

그들은 비장했다.

그 이유는,

쓸데없는 에피소드 때문에 이야기의 진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 밭일 에피소드나 집 공사 에피소드가 그렇게 중요할 리 없잖아. 중요한 건 이야기의 진행이지. 하여튼 작가 놈의 쓸데없는 아이디어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라고 생각한 현과장이었다.

아, 진짜 주인공만 아니면 당장에 죽였을 텐데. 주인공이라서 봐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갓패치를 설득해야 한다!”


현과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얼마나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가는지 한번 두고 보자. 난, 결코 삐친 게 아니다. 넓은 아량으로 현과장에게 기회를 주는 것일 뿐.

정말이다. 믿어 줘. 진짜라니까.


“어떻게 설득하냥. 갓패치는 한번 삐치면 절대 용서 안 한다.”

“삐쳐? 왜 삐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현과장. 그런 그의 행동에, 어흥선생 역시 행동으로 답했다. 대답 대신 어흥선생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천장에 뭐 있어?”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것인지. 어흥선생이 보인 행동의 의미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현과장. 어흥선생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어디에 계신 어떤 분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단단히 삐쳤다냥.”


어디에 계신 누가? 지금 어흥선생도 내 탓을 하는 거야? 어흥선생 정말 이러기야?


“미안하다냥. 사실은 사실이다냥.”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거야? 어흥선생. 나 좀 무서워.”


어흥선생의 돌발행동에, 현과장은 살짝이 그에게서 떨어졌다. 어흥선생을 바라보는 현과장의 두려움을 가득담은 시선.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마라냥. 그냥 그런 게 있다냥.”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랄까나. 갓패치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랄까나.”


조용히 입을 연 채야. 덕분에 어수선해졌던 거실의 분위기가 다시금 차분히 가라앉았다. 진중하게 머리를 맞대는 세 사람. 그들의 눈빛에 다시금 비장함이 감돌았다.


“우선,”


뭔가를 결심한 것일까. 현과장의 시선이 천천히 채야와 어흥선생 그리고 키토를 바라보는 스쳐지나갔다. 그의 눈빛이 차분히 내려앉았다. 아니 눈꺼풀이. ...응?


“우선 잘까? 오늘 하루 피곤했잖아.”

“그러자냥.”

“집짓기는 역시 피곤하다랄까나~”


세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덩달아 움직이는 한 마리, 키토. 키토는 누굴 따라갈까 고민하는 듯 우왕좌왕 움직였지만, 이내 현과장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키토님 나랑 안 갈 거냥?”


뭔가 몹시 서운한 것일까. 어흥선생은 그 자리에 서서 키토를 바라봤다. 마치 사랑을 갈구하듯 애처로운 눈빛. 그러나, 키토의 눈동자는 결코 어흥선생에게서 멈추지 않았다. 짝사랑은 힘든 거야. 힘내, 어흥선생.


“격려 고맙다냥.”

“격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러지마... 무서워, 어흥선생.”


축 처진 그에게서 한걸음 물러서는 현과장. 에효, 눈치도 없는 인간.


“맞다냥. 현과장은 눈치도 없다냥. 난 들어가 잔다냥. 현과장도 빨리 가라냥. 모노레일 막차 끊기기 전에.”

“자, 잠깐! 막차가 있어? 여기에?”

“안내책자에서 못 봤냥? 이제 5분 남았다냥.”


어흥선생의 말에, 현과장은 현관 앞에 놓인 안내책자를 손에 집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 모노레일의 운행시간. 어흥선생의 말 대로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슨 집에 모노레일이야! 막차는 또 무슨 일이야?!!”


현과장은 비명같은 외침을 지르며, 허겁지겁 거실 역 방향으로 달렸다. 뒤뚱뒤뚱. 시간 안에 도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의 스피드. 그러기에 지구에 있을 때 운동 좀 하지 그랬어. 그 상태로 봐선 아무래도 노숙해야 할 거 같은데.

어쨌든, 나도 퇴근한다. 내일 봐, 현과장.


***


날이 밝았다.

싱그러운 햇살이 현과장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햇님의 장난에 살며시 눈을 뜬 현과장. 그는 눈을 비비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집에서 노숙이 웬 말이니.”


거실 한 구석에서 안내책자를 이불 삼아 저녁을 지새웠던 현과장. 그가 일어나자, 그의 몸을 덮고 있던 종이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일어나자, 곁에서 자고 있던 키토도 기지개를 켰다.


“키토님 잘 잤어? 노숙은 처음... 이 아니겠지?


키토는 현과장에게 대답하듯 가볍게 고개를 돌린 뒤, 그대로 현과장의 머리에 올라탔다.

그런데 너희들 정말 그러고 있어도 돼? 이야기 진행 한다면서?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래, 정신을 차렸구나. 이제 갓패치를 만나러...


“아침부터 먹어야지.”


현과장은 그대로 거살 역으로 직진했다. 얼굴 가득한 기대감. 마치 ‘오늘 아침은 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얼굴이다.

이래선 안 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현과장과 동료들에게 맡겨 놨다간 더 큰 참사가 일어날 게 뻔했다. 어쩔 수 없다. 비장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 이름도 찬란한 이야기적 허용! 개연성 따윈 무시하는 작가의 개입!

미안하지만, 장면 고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이쯤 자르고 넘어 가겠다.

그럼 3줄 뒤에 보자!


***


날이 밝았다.

싱그러운 햇살이 현과장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거실에서 잠이 깬 현과장.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늑하고, 예전과 다름없는 따뜻한 거실이었다. 그 요란하고 넓기만 한 그런 거실이 아니라.


“현과장, 왜 거실에서 잔 걸까~ 나~ 내가 방까지 만들어 줬는데.”


방에서 나온 채야가 의아하다는 듯 현과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아니, 분명 어제 모노레일을 놓쳐서...”


뜻 밖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현과장. 모노레일이란 단어에 채야의 안색이 굳어졌다.


“모노... 레일? 이상하다랄까나. 나도 그런 게 없는데 있었던 거 같다랄까나.”


젠장! 내 개입이 좀 부족했나?! 안 되겠다. 여러분 다시 3줄 뒤에 보자!


***


날이 밝았다.

싱그러운 햇살이 현과장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엉뚱한 에피소드를 끼워 넣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야기를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서 고민한 결과가 이런 사단을 일으켰어.

지금 난 물건 잡고 반성 중이다. 뭐? 잡은 게 그거냐고? 아니, 노트북. 노트북 잡고 반성중이라고. 노트북은 작가의 목숨과도 같으니까.

어찌 됐건, 이야기는 흘러간다. 실수 없이 그리고 완벽하게.

아, 이미 완벽하지는 않네. 실수가 없지 않고... 많기까지 하고.

자책을 하면 끝이 없는 법. 우선은 이야기에 집중하자.


그럼 이야기로 돌아와서, 잠에서 깬 현과장은 뭔가 잊은 듯한 감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무언가 중요한 사건을 잊은 듯한 느낌적인 느낌 그리고 느낌. 하지만, 그 망각은 이내 큰 환희로 바뀌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갓패치! 복수!”


잠깐! 복수라고? 복수를 입에 담으면 안 되는데. 나 또 뭘 잘못 건드린 거야?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라냥. 오늘은 갓패치 만나서 부탁하기로 했잖냥.”


나이스! 어흥선생! 애드립이란 저런 거지! 어디로(원더랜드) 떨어진 누군가(현과장)가 쓰는 싸구려 말장난 말고.


“부탁? 복수가 아니라?”

“아직도 잠꼬대냥? 씻어라냥! 씻고 먹어라냥!”


어흥선생의 호통에 현과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향했다. 고마워, 어흥선생.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 게.


“서로 돕고 사는 거다냥.”


어흥선생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우더니,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현과장. 그의 얼굴에는 싸늘한 두려움만이 감돌았다.


“뭐야, 어흥선생. 나 무서워...”

“다 들린다냥! 빨리 씻고 와라냥! 밥 먹고 마을에 가야한다냥!”


또다시 울려 퍼진 어흥선생의 호통에 현과장은 후다닥 뛰어서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끝난 작가의 엉뚱한 에피소드. 그리고 이제야 시작된 진짜 현과장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읽는 모든 이들과 출연한 캐릭터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정말로 심심한 사과. 심심(甚深), 이거 말고.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성밖마을 앞에 도착한 어흥선생과 현과장. 그들은 거침없이 중앙 분수 광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분수. 어흥선생과 현과장은 분수를 바라볼 틈도 없이, 주변의 가판대로 달려갔다. 옷이 한 벌만 진열되어 있는 그 가판대로.


“갓패치, 우리가 왔다냥.”


어흥선생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갓패치는 묵묵무답. 그는 그저 붉은 재킷을 다듬고 또 다듬을 뿐이었다.


“약속을 지켜라냥. 원래 이런 사람 아니지 않냥.”

“원래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올 것만 같이 차갑고 냉랭한 그의 눈빛. 두 사람은 직감했다. 뭔가 크게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뭘 잘못했냥?”

“아니.”


단호하다. 단 두 글자지만, 그 뉘양스에서 수십 만 가지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중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것은 바로,


“미안하다냥.”


일단 고개를 숙여라. 어흥선생이 그 의미에 맞게 고개를 숙이자, 현과장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잠깐, 슝!쿵! 이거 안 해? 지금 제정신이야?”

“그, 그랜절?”


현과장은 난감했다. 또 그랜절을 하라니. 갓패치 역시 어흥선생처럼 그랜절에 중독 되어버린 것일까. 현과장의 가슴 속에서 왠지 모를 찝찝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개운치 못한 감각과 함께 다가온 번뜩이는 아이디어. 현과장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랜절은 지금 쿨 타임이라네. 미안하네!”

“쿨타임? 지금 제정신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여기 있지. 현과장은 얼굴 가득한 미소를 최대한 감추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랜절은 얼티밋 기술이야, 궁극기라고. 그런 걸 남발하는 게 말이 돼?”

“그럼 얼마나 걸리는데?”

“일주일.”


현과장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혹시나 망설이면 거짓말인 게 들통날 지도 모르니까.


“그럼 일주일 뒷면 볼 수 있는 거야?”


기대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인 것일까. 갓패치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에 가만히 있을 현과장이 아니었다. 갓패치와의 기싸움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그는, 이내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당연히 보여줄 수 있지!”

“좋아. 그럼,”


살짝 올라가는 현과장의 입 꼬리. 그러나, 갓패치의 다음 이야기에, 그 입 꼬리는 그만 그대로 상승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고야 말았다.


“일주일 뒤에 오도록.”


일주일이란 말에 어흥선생은 두 눈을 끔뻑이며 현과장을 바라봤다. 당황한 건 현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이라고? 지금 제정신이야?”

“당신들이야 말로 제정신이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무척이나 서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갓패치.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겨우 출연했는데, 이제 막 출연했는데. 그렇게 너희들끼리 콩닥콩닥. 그렇게 너희들끼리 출연했어야 속이 후련했! 냐!”

“미안하다냥. 그건 작가가...”


변명을 하려고 어흥선생이 입을 열었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그는 차원문을 열고 그대로 사라진 뒤였으니까.

눈앞에서 그렇게 갓패치를 놓치게 된 어흥선생과 현과장. 아쉬워하는 어흥선생과 달리, 현과장은 두 눈을 반짝였다. 눈동자 안에서 사물사물 올라오는 기대감. 이내 그는, 마치 산속 깉은 곳에서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 큰 소리로 광장이 떠나가게 외쳤다.


“차원문은 존재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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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0 커피마신z
    작성일
    23.05.30 12:11
    No. 1

    방문 감사드립니다...잘보고 갑니다...꾸욱.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천세은
    작성일
    23.05.31 06:24
    No. 2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철없는사과
    작성일
    24.02.13 21:05
    No. 3

    ㅋㅋ 아니 다른 인물들은 작가랑 소통이 가능한데
    현과장만 못하는 건지ㅋㅋ 하긴 맞짱이라도 뜨자고 하면
    난감할 테고 아무튼 차원문을 무슨 가게 문 여닫듯이 한 게
    갓패치 따라가면 답 바로 나오겠는데요~ ㅎㅎㅎ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천세은
    작성일
    24.02.13 21:56
    No. 4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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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현과장과 갓패치 - 1 +3 23.03.09 196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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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 등장! 숲의 주인! +6 23.03.07 29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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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현과장 인 원더랜드 - 3 +4 23.03.05 437 13 11쪽
3 3. 현과장 인 원더랜드 - 2 +6 23.03.04 679 12 12쪽
2 2. 현과장 인 원더랜드 - 1 +6 23.03.03 1,392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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