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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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리아
작품등록일 :
2023.03.19 14:37
최근연재일 :
2023.07.22 09:58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12,119
추천수 :
622
글자수 :
1,031,190

작성
23.03.19 15:51
조회
308
추천
6
글자
19쪽

그녀는 엔젤이었다 제3화

DUMMY

구름 잔뜩 낀 하늘..

희미한 달빛조차 없는..

아니 있다 한들

빽빽한 나무 아래 산길은..

그냥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다.

손전등의 불빛이 그나마 그녀와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고 있긴 했지만..

음산하고 싸늘한 분위기까진 밝혀주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검고 고요한 적막 속에서 들리는 거 라곤..

터벅터벅.. 조심스레 내딛는

그녀와 나의 발자국 소리 뿐이다.




"무섭냐?"

"네?"

"무섭냐고?"

"아.. 네.. 조금 무서워요.."


긴장을 한 듯..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무섭긴 뭐가 무섭냐? 너도 귀신 같은 거 믿어?"

"아니요. 귀신 같은 건 안 믿죠.."

"근데 뭐가 무서워?"

"뭐.. 그냥.. 선배님이랑 둘만 있다는 게.."

"..........."

"농담이에요 호홍~"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녀의 농담..

귀여워 죽겠다.


​"흠.. 우리 재밌는 이야기 하면서 가요.."


농담을 한번 해서 그런가 살짝 긴장이 풀린 듯 보이는 그녀..


"재밌는 얘기?"

"네.. 이런 기회에 서로 좀 더 알고 그러는 거죠 뭐.."

"난 남의 인생 별로 알고 싶은 맘 없는데.."


물론 너에 대해선.. 상당히 알고 싶단다.


"선배님은 취미가 뭐에요?"

"취미? 무슨 맞선 보냐? 유치하게 취미는 뭐 하러 물어봐?"

"에이.. 원래 대화의 시작은 유치한 거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취미가 뭐에요?"

"취미라.. 흠.. 경제 서적 읽기나.. 뮤지컬 공연, 난초 키우는 것도 좋아하고.. 또.."


​뭔가 고상해 보이는 것들만 읊어가는 나였다.

그래.. 뭐 조만간 해보고 싶은 취미긴 하니까 상관 없잖아.


"선배님!"

"어?"

"하고 싶은 거 말고.. 지금 좋아하는 거요.."

"............."


​헐.. 예리하네.

그나저나 뭐라고 답해야 되나..

만화책.. 당구.. 오락.. 야동..

뭐하나 내세울게 없다.


"그런 너는?"

"네? 저요?"

"어.. 넌 취미가 뭔데?"

"선배님 먼저 말해야죠.. 제가 먼저 물어 본 건데.."

"난.. 취미 따위 없어. 그런 거 관심도 없고.."

"치.. 취미 없는 사람이 어딨다구.. 선배님도 있긴 있잖아요.."

"뭐?"

"이상한 거 보기. 이상한 거 모으기. 이상한 거 연구하기. 크큭"

"............"


​또 슬쩍 웃어버리는 그녀.

그녀가 웃을 수만 있다면.. 나의 이미지 따위야.. 에휴.


​"그런 넌 취미가 뭔데?"


제법 궁금하다..

겉보기엔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 큰 거 같은데..

하는 거 보면 세상 시련 다 겪은 어른 같은 느낌이고..

아무튼 미스터리 한 그녀였다..


​"저요? 음.. 전 요리하기, 영화 보기, 클래식 듣기 같은 거 좋아요."

"클래식?"

"네.. 엄청 좋아해요. 특히 고갱의 즉흥 환상곡 같은 거.. 혹시 선배님도 아세요?"


이.. 이런..

클래식 쪽으론 거의 관심조차 없는데..


"어.. 고갱.. 나도 한때 좋아 했었어. 뭐 다들 좋아하는 음악가잖아."


어물쩡 대답을 하긴 했는데..

그냥 모른다고 할걸 그랬나?

너무 국영수 위주로 공부를 해서 그런지

음악 미술 같은 예체능 분야에 대한 지식은 거의 바닥이었던 나였다.

설마 더 묻진 않겠지?


​"아참! 고갱은 화가인데.. 쇼팽하고 헷갈렸네요."

"............"


​헐.. 이런 젠장할..


"크큭.. 그나저나 선배님 넘 웃겨요. 다들 좋아하는 음악가래. 크크큭"


배꼽을 부여잡으며 웃음을 터뜨려 버린 그녀..

아.. 쪽팔려 진짜.


​"재밌었냐? 하하.. 오랜만에 농담 좀 했더니 분위기 확 사네!"

"크큭.. 아 웃겨.. 고갱이 음악가래.."

"........."


흠.. 뭐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수 없지.

후딱 화제나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의 학과를 묻는다.


"그런데 넌 무슨과야?"

"엥? 아직 말씀 안 드렸나요? 영문과에요. 첨 뵐 때 말하지 않았나요?"

"............"


아 그랬나?

얼핏 분식 집에서 라면 먹다 들었던 거 같긴 하다.

그나저나 영문과였군.

나중에 토익 준비 할 때 도움 좀 받아야겠네.. 훗..


​"꺄~악~ 엄마야~~"


갑자기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내게 안겨버렸다.

헐.. 이렇게 갑자기 안기면..


"왜?"

"선배님.. 누가 제 발목을.. 꺄악~"


​허... 본격적인 담력 테스트의 시작인가?

향긋한 그녀의 샴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우와.. 이거 정말 대박 프로그램이네.

누가 제안 한 건지 몰라도

나중에 술 한 잔 사줘야겠어. 하하..


"쨔잔~ 짜슥들 놀랐구나?"


숲에서 숨어있던 민철이 형이 나오며 말한다..


"아 선배님~ 깜짝 놀랐어요. 심장 멎는 줄 알았잖아요 으잉.."

"하하.. 앞으론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기다릴 텐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지."


더 무시무시? 흐흐흐..


"에구.. 형도 힘들겠네요. 숲 속에 숨어서 이게 뭐에요.. "

"크크.. 그러게나 말이다. 벌레들이 달라붙어 짜증나 죽겠다."

"하하하.. 그럼 저희 갈게요. 수고하세요."

"그래라.. 아 참.. 가다 보면 두 갈래길 나오는데 좌측 길로 가야됀다."

"네.."

"수고하세요 선배님~"


​다시 담력 코스를 위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하는 그녀와 나.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나의 팔을 붙잡기 시작한다.


"괜찮죠?"

"어.. 뭐.."


당연히 괜찮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냥 선배 품에 안겨서 가도 괜찮거든?

그나저나 왠지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더 진한 스킨쉽으로 발전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 계획 대로면 코스가 끝나갈 때 쯤엔.. 흐흐..


"근데 뭐야.. 너 겁 왜 이렇게 많어?"

"치.. 갑자기 발목 잡히는데 안 놀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난 별로 안 놀랄 거 같은데.."

"무방비로 당하면 선배님도 놀라실 거에요.. 어라.. 근데 어디로 가야 되죠?"


​아까 형이 얘기하던 갈랫 길이 나왔다.

흠.. 얘는 어디로 가는지 못들은 모양이군.

가는 건 좌측 길인데..


"어.. 우측.."


뻔한거 아닌가.

이 좋은 상황을 그냥 넘기면 안되지.

나는 오늘 그녀와 함께..

이 산에서 행방불명이 될 것이다. 후훗..

그녀에겐 제법 미안하지만..

그래도 학창 시절에 이런 좋은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어 줘야겠단 사명감으로

뻔뻔함을 대신한다.


"어떻게 아세요? 와보셨어요?"

"아.. 아까 형이 우측으로 가라드라."

"네.. 빨리 가요"


내 팔을 당기며 길을 재촉하는 그녀.

..........

미안하다 윤경아..

이 선배가 너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 주려는거야.

선배 마음 이해하지?





"그런데 이길 맞아요? 길이 이상한데.."


나무와 풀들로 막혀 버린 길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그녀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나에게 물어온다.


"맞겠지.. 가다 보면 뚤릴거야."

"그럴려나? 와 그나저나 정말 너무 깜깜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손전등을 좀.. 으악!!"

"엄마야~~"


갑자기 눈앞으로 튀어나온 알 수 없는 물체에 경악해 버렸다.


"야.. 너희들 왜 여기로 와? 좌측으로 가란 말 못 들었어?"

"............"


​환수형 이었다.. 흐미.


"아.. 환수 선배님이넹.. 깜짝 놀랐어요 잉~"

"많이 놀랬냐? 후레쉬가 고장이 나서 켜지를 못했더니 놀랬나 보구만..크크"

"그런데 형은 왜 여기에 있어요? 여기도 담력 테스트 코스에요?"

"설마 하고 있었지. 이쪽으로 가면 길 안 나오는데 혹시나 오는 놈들도 있을까 봐 걱정 되서 있었다."

"............"

"선배님 우측 이라면서요?"

"아까 우측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으이그.. 암튼 다시 가서 좌측으로 가야 돼! 언능 가라.."

"넹..."

"히힛.. 선배님 그럼 수고하세요.."

"오냐.. 아 참 윤경아!"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 찰나 환수형이 윤경이를 불러 세웠다.


"네?"

"조심해라."

"네? 뭘요?"

"그 놈.."


​잉? 나?


"넹.. 저도 잔뜩 긴장 하고 있어요."

".........."

"이상한 짓 하려고 하면 소리 질러. 그럼 우리들이 후딱 구하러 가줄께.. 크크"

"네.. 그렇게 할께요.. 후훗"


이 인간들이.. 사람 중간에 놔두고 무슨 말도 안되는 농담들을..


​"하하.. 농담들도 잘하시네요. 빨랑 가자 윤경!"

"네.."


이거 망신을 곱빼기로 당했다.

무슨 말을 해야 되나..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도 제법 무서운 건 남아있는지..

그녀의 팔은 더욱 깊숙히 나의 팔짱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선배님~"

"어.."

"무서우셨나 봐요?"

"............"

"아까 놀라실 때.. 선배님 기절 하시는 줄 알았어요. 크큭"

"............"


농담처럼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이니 대꾸할 말도 없다.

이젠 더 추락할 이미지도 없겠네. 에휴..


"어이.. 너무 달라 붙는 거 아냐?"


괜시리 심란한 마음에 내뱉어낸다는 말이.. 아.. 이런..


"아.."

"아니 뭐..."


수습 안된다.

괜한 말 꺼내서 이 좋은 분위기 파토나게 생겼다. 젠장..


"죄송해요. 근데 그냥 이렇게 가면 안되요? 날씨 넘 쌀쌀해서 추워요."


잉?

너무나 뜻밖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다..

아.. 이런 고마운.. 흑..

잠시..

나의 생각 없이 말하는 버릇에 반성을 하곤 다시 침착을 되찾았다..


"춥냐?"


지금 보니.. 그녀는 티셔츠 한 장만 딸랑 입고 있었다.

점퍼를 걸치고 왔던 나로선

그녀가 이렇게 추워 하는지를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하긴.. 나야 이 상황에 춥단 생각이 들 리가 없잖아.

이렇게 뜨거운 시간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네.. 산이라 그런가 꽤 춥네요."


더 깊숙히 안겨라.

이 선배의 뜨거운 체온으로 너를 녹여줄테니..


"흠.. 별로 안 추운데.."

"치.. 선배님은 따뜻하게 입고 계시잖아요. 땀 나겠네.."

"땀은 무슨.. 벗어줘?"


흠.. 이런 상황에선 벗어 주는 게 남자의 매너이자

모든 연애의 기초 단계 아니던가..


"어머 진짜요?"

"............."


기다렸다는 듯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

아..이거 너무 뿌듯한데?


"그래 뭐.. 난 더우니.. 헛.."


자크를 내리는 순간..

점퍼 안에 나시티만 달랑 한 장 입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헐.. 이걸 벗으면 추운 건 둘째 치고

민망한 나의 속살들이 다 드러나는데...

게다가.. 나시만 놔두고 점퍼를 벗어 주는 건 상당히 오버 스러운건데.. 젠장..


​"뭐하세요. 빨리 벗어주세요.."


라며.. 잠시 주춤한 나의 손을 잡아 자크를 확 내려버리는 그녀!

..............


"어머! 선배님 메리아스네요. 크큭.."

".............."

"추우시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뭐.. 너만 좋다면야 이 정도는 참을 수 있긴 하다만..

그래도 제법 추운 건 사실이란다.


"좀 따뜻한 걸로 입고 오시징."

"..........."


나의 점퍼를 아주 자기 옷인 것처럼 자크도 목 끝까지 쭉 올려버린다..


"뭐 선선하니 좋네.."


피부로 느껴지는 쌀쌀한 밤바람..

............

이거 괜히 벗어준 거 아냐?

잘못하면 내가 얼어 죽게 생겼네.. 이런..

​​


갑자기 또 팔짱을 껴오는 그녀.

그런데 이번에는 초반보다 더 깊숙하게 몸을 밀착 해와서

연인들이나 취할만한 다정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하.. 이런..

너.. 너무 좋은데 이거?


"에구.. 붙어야 따뜻하죠. 우리 선배님 감기 드실라."


헐..

우리 선배님?

어쩜 말도 이렇게 이쁘게 하는 거냐.


"안춥다니깐.. 난 원래 겨울에도 반팔 입고 다니고 그래."


괜히 남자 다운 척 허세를 떨어본다.

물론 겨울엔 내복부터 시작해서 최대한 껴입고 다니는 나였다.


"근데.. 이제 슬슬 또 놀래킬 선배가 나올 때 돼지 않았을까요?"

"그러게.. 어찌 이렇게 조용하냐."


그러고 보니 한참을 지나 왔는데도.. 아무런 기색이 없다.

길은 어차피 한 길이라 그대로 잘 온 것 같은데..

벌써 10분째 아무도 나타나질 않는다.


"길을 잘 못 들었나?"

"네? 그럴리가요. 아까 두 갈래길 말고는 계속 이 길 뿐인데요.."

"그렇지? 흠.. 더 가야 나오는 건가?"

"어.. 선배님 혹시 저기에 가면 누군가 있는거 아닐까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멀찌감치 보이는 다 쓰러져가는 폐가였다..

흐... 그런 거였나?

그런데 시작하기 전엔 폐가에 들어가란 말은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뭐 암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폐가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선배님 진짜 가시려구요?"


그녀의 팔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응? 가기 싫다는 거니?


"가보자. 저기에 뭔가 있을 거 같은데."

"잉.. 무서운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얼른 와.."


발걸음을 약간 주저하는 듯 보이는 그녀였지만..

뭔가 신선한 일이 생길 거 같아 억지로 그녀를 끌고 폐가로 향했다.


"누구 있어요? 저희들 왔어요."


폐가에 다가가 크게 외친다..


"아무도 없어요?"


다시 한 번 크게 외쳐 보았다.


"아무도 없나본데요?"

"그러게.. 그냥 가자~"

"네? 그냥 가려구요? 에이 이왕 왔는데.. 안에 한번 둘러보고 가야죠."


잉? 뭐야~ 무섭다고 안 올 거처럼 굴더니..


"무섭다며?"

"네.. 무섭긴 하죠.."

"그런데 들어가 보고 싶어?"

"아뇨.. 선배님만..."

".............."

"제가 밖에서 망 봐드릴 테니 선배님이 들어가서 확인해 보세요.."


...........

얘 지금 나 놀리나?

아니 이 무시무시한데를 어떻게 혼자 들어가?

딱 봐도 귀신은 아닐지언정 들짐승 같은 거 튀어나오기 딱 좋아 보이는데..

누구 심장마비로 쓰러질 일 있어?


"에이.. 들어가려면 같이 들어가야지. 어떻게 너만 밖에다 놔둬.. 위험하게.."

"아뇨.. 전 괜찮아요. 언능~ 들어가 봐요.."

"............."

"호홍.. 농담이에요.. 빨리 가요.."


발걸음을 돌려 가던 길을 마저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안 나타나는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다들 끝나서 철수했나?


"선배님.. 혹시 휴대폰 들고 오셨어요?"

"어? 왜?"

"전화 한 번 해보세요.. 아무도 없는 게.. 왠지 저희가 길을 잃은 거 같기도 하구.. "

"그래? 근데 어쩌지? 난 안 가져 왔는데.. 너도 안 가져 왔어?"


이런 일을 기다리던 내가.. 휴대폰을 들고 올 리가 없잖니..


​"네.. 저두 안 가져 왔는데.. 일단 계속 가봐요.."





그녀의 팔짱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그리곤 분명 초반과 다르게 팔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몸도 내게 많이 기대오고 있었다..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아... 선배님.. 빗방울!!"

"어? 아... 정말.. 이거 비 오는 거야?"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들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요?"

"그러게.. 이거 큰 일 났네.."


나도 그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아.. 야.. 아까 그 집으로 일단 가자.."

"어디요?"

"아까 거기 폐가..같은데 있잖아.."

"아.. 그래요.. 빨리 가요.."


그녀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난 허겁지겁 그녀의 점퍼에 달려있는 모자를 씌워줬다.


"뛰어~~"


쏴~아~


순식간에 소나기가 되어 버렸고

쏟아져 내리는 비에 그녀와 나는 흠뻑 젖어버리기 시작했다.


"야.. 왜이렇게 늦어.. 빨리.."

"네"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헥헥헥.."


폐가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헐떡이던 그녀와 나..

그래도.. 이런 곳이라도 있었던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길도 모를 산속에서.. 얼어 죽을뻔 했을 거 아닌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런 게 있어서요.."


그녀도 나처럼 내심 안도한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다. 후아~"​


그녀는 나에 비해 비록 많이 젖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머리카락에서 물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머리에서 물기를 짜내고 있었다.

............

왠지 모르게 섹시해 보이는 그녀..

머리카락이 젖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야릇해 보이지?


"춥죠 선배님?"

"아.. 난 괜찮아"


슬쩍 춥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춥단 생각보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건 줄 알았던..

그.. 뻔하고 유치한 레파토리..

이런 상황이 나에게도 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면.. 준비나 했겠거늘..

갑자기 닥치니..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설레이고 흥분되는 감정만큼은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가고 있었다.


"금방 그치겠죠?"

"글쎄.. 뭐 지나가는 비 같긴 한데.."


밤새 왔음 좋겠다.


"그나저나 선배님 넘 추워보여요. 뭐 닦을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괜찮다니깐..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에이.. 그래도요.. 이 잠바라도 벗어 드릴테니 닦으세요.."

"................"


마치 자기 점퍼인 걸로 착각 하는 듯 선심을 쓴다..

점퍼로 물기를 닦아보지만..

젠장.. 젖은 점퍼라.. 물만 더 묻었다..


​"아.. 비 맞은 거네요.. 깜빡했당.. 히힛.."


알면서 장난친 거니?

장난까지 치는 걸 보니 아직 그녀의 기분은 유쾌한 듯 보였다..

다행인 건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도통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내심 쾌재를 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올지도 모른단 생각에 은근히 걱정도 되긴 했다..


​​


그녀가 조금씩 떨기 시작한다..


"야.. 많이 춥냐?"

"아뇨 아직 참을만해요.."


아..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꽉 안아주고 싶었다.

살짝 안아줘 볼까?

이런 상황에서 안아주면.. 파렴치한인걸까?

아니면.. 듬직하고 따뜻한 선배인 걸까..


"조금만 참아봐.. 비 금방 그칠거야"


슬슬 내 입술도 떨렸다.

하긴.. 그녀보다도 훨씬 전부터 몸은 떨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네.."


목소리에 떨림이 더 심해져 버린 그녀..

설마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를 살짝 안아버리고 말았다.


"선배님..."


그녀가 살짝 놀란듯하다.

하지만..

거부하진 않았다.


"가만히 있어 그냥.. 이럼 좀 따뜻해 질거야."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나름 멋있었던 것 같다..

뒷말은 더 하지 않았다.

할 말도 없었고.. 하기도 어색했고..

결정적으로..

그냥 느끼고만(?) 싶었다.


품 안의 그녀..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의 체취에 취해..

정신을 가다듬기조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제법 잔잔해진 호흡 소리도 시끄러운 빗소리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결국 충동이.. 솟구치고 만다..

비가 언제 그칠가를 걱정하는 그녀와

끓어 넘치는 본능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

그녀와 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K-0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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