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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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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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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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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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설계된 엔딩 (3)

DUMMY

‘최루탄 추방 결의대회’가 있었던 6월 18일의 부산이었다.



당일 이한율이 기폭제가 되어 개최된 이 대회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50만 가까이가 참여한 6월 항쟁의 분수령이었다.


최초 2만여 명이 집결한 부산에서는 시위대가 가톨릭센터를 거점으로 대청동, 충무동, 남포동 일대를 장악했다.


그리고 촛불을 든 시위대가 전경들의 저지선이 있는 범일동 및 좌천동 고가로 진격하기 직전.


한 중년이 가톨릭센터 입구의 계단 위에 올라섰다.



“시민여러분! 이것이 나라입니까! 이것이 어찌 나라입니까!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자기 나라 국민들을 군화발로 짓밟은 것도 모자라서! 자기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꽃다운 젊은이를! 무자비하게 최루탄으로 조준해 쏴 죽이는 것이! 어찌 나라라는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시민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시민여러분, 반대합시다! 시민여러분, 저항합시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오직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뿐입니다, 여러분!”


“살인정권! 고문정권! 한율이를!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 최루탄을! 추방하자!”



그의 결기는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구호로 이어지며, 시민들의 분노를 터지기 직전의 용광로처럼 들끓게 했다.


시민들의 선두에서 그들을 폭발적으로 이끄는 자.


그는 범국본의 부산지역 상임집행 위원장, 변호사 노무연이었다.


또한 그의 곁엔 언제나처럼 그와 함께 한 범국본 부산지역 상임집행 위원, 변호사 문재민이 있었다.


쏟아져 나가는 시위대가 이에 놀라 출동한 경찰 병력을 향해, 인근 공사장의 철근과 벽돌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들이 이젠 국민 구호가 되어버린 네 박자 구호를 외치며, 범일동과 좌천동 고가 앞에 이르렀던 그때.



“콰과과과과광! 콰콰콰콰쾅!!”



좌천동 고가의 전경 저지선에서 천둥소리 같은 페퍼포그 최루탄이 무차별 난사됐다. 그리고.



“퍼걱!”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누군가가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고가 다리 밑으로 추락했다.


그는 28살의 회사원 이태천 씨였다.



“저.. 저, 뭐꼬?”



시위를 주도하던 노무연과 문재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과 함께 사방에서 그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추락 직후, 이태천 씨는 시민들에 의해 다급히 인근 봉산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6일 뒤인 6월 24일에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27일 이태천 열사의 노제에선, 그의 영정을 든 노무연과 그 우측에 선 문재민 변호사의 참담한 표정만이 사진으로 남겠지.


어쨌든, 이태천 열사가 추락한 그날 분노한 부산 시민들은 단숨에 전경들의 저지선을 뚫었다.


그들은 KBC 부산방송총국을 습격하며 서면에서 범내골 일대로 30만이 넘는 시위대가 되어 운집했다.


6월 항쟁 동안 단일 시위로는 최대의 사건이었고, 짓밟힐수록 더욱 거세게 일어나는 국민들의 분노를 단적으로 대변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인 18일, 나는.



“다음은 여러분들도 너무 잘 알고 계신 그분! 바로 박종천의 증인! 저항의 철성! 이한율의 방패! 백골단의 저승사자! 명동의 대천사! 민주 통일당 청년위원회, 김주혁 위원장을 모시겠습니다!”


‘염병! 쪽팔리게, 뭐 그런 걸 죄다..’



갈수록 길어지는 별명들로, 소개에만 한참이 걸리는 6월 항쟁의 수퍼스타가 되어, 걸 그룹 못지않은 바쁜 스케줄을 꾸역꾸역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이게 모두 다.. 결국 나를 민통당에 입당시키고, 청년위원장으로 앉혀 쉴 새 없이 뺑뺑이를 돌렸던, 이대하신 YS 김영산 총재님의 은총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정산할 시간이 다가온다. 과연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받아내야만 하는가!’



증언과 연설을 위해 오르는 자리마다 나는 차갑게, 차갑게 내 심장을 식혀갔다.


전생에선 전혀 관계없던 이 뜨거운 6월이 나에게도 어느새 수없이 많은 마음의 빚들을 남기며, 생때같은 청춘들의 핏 값을 받아내라고 아우성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기꺼이 그 떼인 핏 값을 받아 내리라.


비록 전생에선, 나정도 되는 깡패들은 손도 안 댔던 일이지만.


그 핏 값을 위해서만큼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고, 모자라다면 없는 특기들을 만들어 내서라도 반드시, 반드시 받아낼 것이다.




***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네. 민주통일당 대책위 입니다. 네. 어디요? 아, 예. 대전이요?”


“따르르릉.. 네네. 마산 지구당이요?”


“어디요? 강릉이요?”



6월 22일 저녁.


민통당 사무실은 여전히 사방에서 들어오고 있는 시위현장의 상황들로 분주했다.


북적이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한 두 차례의 보고들을 반려하며, 서성이는 YS가 보였다.


그는 굳게 다문 입술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연신 입구 쪽을 바라봤다.



“덜컥!”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김무석이 뛰어 들어왔다.



“그래 마, 우찌 됐다 카드노?”



YS가 김무석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물었다.


그의 관심이 지금의 시위현장 보단 김무석의 답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네, 일단 전두안도 전두안이지만, 노태후가 문제 같습니다. 워낙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내각제 얘기를 떠벌려 놓은 통에 물러서기가 쉽지 않은 거죠. 어제 정민당 비상 의원총회에서 나름 의견을 충분히 조율한 것 같긴 합니다만..”



YS의 곁에서 숨을 고르며 답하는 김무석의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치아라, 마! 문디 자슥. 노태후 글마가 뭔 힘이 있어가 버팅기노. 버팅기길. 언제나 문제는 전두안이 글만긴라, 글마!”



YS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18일 이후, 시위대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지만, 범국본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조직된 집회는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YS는 이틀 전 20일, 범국본의 이름을 빌려 정부 측에 4개 안(案)을 촉구했다.


호헌 조치 철회와 6.10대회 관련 구속자 및 양심수 석방, 집회·시위·언론의 자유 보장과 최루탄 사용 중지의 4개 안이 그것이었다.


나름, 이제 대세는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YS가 던진 승부수였던 것이다.


그는 만약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26일 대대적인 ‘국민평화대행진’을 강행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런 승부수를 던진데에는 무엇보다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최의원. 니 분맹히 확인했제? CIA 말이다. 글마들 분맹 수방사(수도방위 사령부)캉, 특전사(특수전 사령부)캉 단디 틀어막았다 안했나?”



YS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분명합니다. 촉구 안을 통보하기로 한 그날 새벽, CIA 애들이 당국의 구체적인 군투입 첩보를 입수했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탱크 5대를 수방사와 특전사로 보냈십니다. 연합사 지휘 아래에 있지 않은 그 두 곳의 정문 앞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이 말입니다. 제가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확인도 안했겠십니까?”



YS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어느새 그의 곁에 와있던 최형오의 표정이 억울했다.



“맞다. 내도 그래가 질렀다. 헌데.. 전두안이 일마, 무신 배짱으로 버팅기노? 글마한테 군대 빼면 대체 뭐가 있다꼬!”



YS의 표정이 답답했다.



실상 전두안은 14일 명동성당의 시위대를 풀어주면서도 계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국 주요 대학을 거점으로 군부대를 출동시키는 강온 양면 전술을 걸쳐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18일 부산 시위까지 이어지면서 그가 끊임없이 계엄카드를 만지작거리게 하는 뒷심이 됐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와 아직까진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유보에 유보를 거듭했던 그 계엄카드는, 결국 YS의 승부수보다 반나절 앞서 현실화 될 뻔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움직여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투입불가를 엄중히 경고하기 전까진 말이다.


문제는 여기까지 확인한 YS의 승부수에도 불구하고 전두안이 요지부동이었다는 데 있었다.


YS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두안으로 인해 초조해 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저, 총재님. 전화 좀 받아보셔야겠습니다.”



YS에게 당직자 한명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전했다.



“뭐꼬? 어덴데?”



화난 듯 한 그의 대꾸에 당직자가 움찔했다. 그 성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게.. 청와대랍니다.”


“?!”



사무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데? 청와대?!”


“네..”



반사적으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답을 하는 당직자를 두고, 잠시 눈알을 굴린 YS가 성큼성큼 전화기로 향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짧은 시간 전화를 끊기 전까지 그의 표정이 서늘했다.



“뭐랍니까?”



숨죽여 있던 사람들을 대신해 최형오가 YS에게 물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손을 떼지 못한 채 생각에 잠긴 YS의 시선이 천천히 최형오에게 향했다.



“내보고 청와대로 들어오란다. 고마, 준비해라!”



YS가 칼로 자르듯 답을 남기곤, 총재실로 돌아섰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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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8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3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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