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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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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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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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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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DUMMY

“네. 제가 묻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정치적 이유입니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약관의 청년이 빈민들을 위한 주거대책을 제시합니다. 이어서 내부의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일화 실패를 확신하며 이를 이용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회장을 움직였지요. 거기다 오늘은 다시 그 기업회장과 저를 앞세워 자신의 정당 어른들에게 맞설 상대편의 차기 대권주자를 휘두르는 기막힌 상황을 연출했네요.”


“예.. 뭐,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민주화 투사를 가장한 그 어린 청년이 얼마나 비상한 머리를 가졌는지 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그 의도가, 아니 그 정치적 이유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허.. 이 양반 대체.. 그 짧은 순간에 그걸 다 따져봤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섬뜩한 논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만 삐끗했다간 그간의 노력이 송두리째 그에게 먹혀버릴 것 같은 위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담력을 있는 힘껏 쥐어 짜, 가까스로 그의 추궁을 웃어 넘겼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결론을 집어 던졌다.



“후.. 저의 기우겠지만. 혹시라도 왕회장님을 부추겨 차차기 대권을 노릴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왕회장님의 킹메이커가 돼보겠다는 의도라면.. 그만두라는 충고를 하고 싶군요. 재벌이 정치에까지 손을 대는 건, 그 자체로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끝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나를 쏘아봤다.



‘읭? 그게 무슨..’



나는 마지막에 어긋난 그의 추론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비록 틀리긴 했지만, 만약 그의 결론이 마침내 나의 속내에 닿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섬찟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가만, 근데 이 사람 알고 있었나? 정주열 회장이 대권에 뜻을 두고 있다는 걸? 하긴.. 이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왕회장을 모셔왔다면..’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여전히 엄격한 표정을 풀지 못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나도 말렸다. 그게 정주열 회장과 그의 현세 가(家)를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니까. 근데.. 이쯤 되니 나는 당신이 나에게 그런 경고를 하는 저의가 궁금한데?’


“재앙인지 축복인지 어떻게 그리 단정하십니까? 아, 물론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킹메이커 같이 힘 빠지는 짓은 안합니다. 그래봤자 권력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의 속내가,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이상박 그가 궁금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 후인, 2002년.


서울시장 당선을 전후로 갈라져 버리는 그에 대한 평가가 왠지, 그가 걸어온 인생의 굴곡에서 비롯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킹메이커 같은 짓은 안하신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김 위원장이, 모시는 어른들을 배신하면서까지 왕회장님을 움직여 상대편을 지원하는 이유가? 설마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 권력을 스스로 잡기라도 하실 겁니까?”



그가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나를 응시했다.


그래. 설마하니, 나처럼 새파랗게 어린놈이 쟁쟁한 잠룡들을 젖히고, 대권을 꿈꾼다는 거.. 생각조차 못하겠지.



‘하지만, 이 양반아. 예나 지금이나 내가 그쪽 보다는 한참 어른이야. 지금 밖으로 보이는 우리 모습만큼이나.’



나는 그를 향해 작정하고 빙그레 웃음을 흘렸다.


마치 그가 넘겨짚은 것에 대해 ‘왜, 그러면 안 됩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그가 나의 도발에 잠시 흠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기가 찬 듯 말을 이었다.



“허! 진심이군요. 정말로, 정말로 대권에 도전..”


“감히. 그렇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제 나이에 벌써 무슨..”


‘아니라고도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말입니다.’



나는 내 속내를 꾸욱 삼키고, 정색을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그의 말을 잘라 먹었다.


잠시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에게 심술이 나긴 했지만, 뭐든지 일이 성사되기 직전까진 그 속내를 알려줘서 좋을 건 없으니까.



“단지 전.. 회장님께서 마치 제가 저희 당을 배신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기에 기가 막혔을 뿐입니다. 배신을 한 건 저희 당의 두 어른이지 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깡패들처럼 보스를 모시고 패거리 정치를 하는 것이 아직까진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고는 해도, 공당인 이상 저희 당은 두 어른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 두 어른은 제 주인도, 보스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뭐, 뭐요?”



나의 도발에 놀랐던 그의 눈이 더 더욱 휘둥그레졌다.



‘설마.. 당신이 나에게 경고를 하고 나선 이유가..’



나는 짚이는 바가 있어,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그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며 끝나지 않은 내 얘기를 이어갔다.



“배신을 한 건, 단언컨대 김영산 총재와 김대종 의장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배신을 할 분들이지요. 중요한 건 그 분들은 그 시점에서 주인이 누군가를 ‘잠시’ 잊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비록 이번 대선은 실패하더라도, 유의미한 씨앗을 뿌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낫습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재앙이 재벌이 정치에 손을 대는 거라면, 제가 생각하는 재앙은 끝끝내 완전하게 갈라서게 되는 양김이며, 그로인해 갈라질 이 나라의 미래거든요.”



그가 그때까지도 다물지 못했던 입을 다물며 시선을 내렸다.



“후..”



깊고 긴 그의 한숨이 흐른 뒤.


표정을 통해 그의 결핍을 눈치 챈 나는 차분하게 그에게 물었다.



“한번쯤은.. 우리도 주인이 돼야하지 않겠습니까? 한번쯤은,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이 당신들의 주인은 우리고!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의 뜻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무섭게 경고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지금 제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이윱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들을 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이상박 회장의 표정은 달랐다.



“하.. 김 위원장님. 내가 해봐서 잘 아는 데요, 김 위원장님 같이 부족함 없이 자란 분들은요.. 모르는 게 있습니다.”



그가 마침내 자신의 속내를 보이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뭡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혼자서 알 수 없는 것들은 비록 의견이 다른 상대일지라도 경청하고 배우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서로 다른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요.”



나는 비로소 대화할 준비가 된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첫째, 돈이든 힘이든 가진 자들은 모든 걸 다 갖기를 원합니다. 절대로 나누지 않아요. 그건 이 이상박이가 증거입니다. 세간에서 나를 뭐라고 부르며 띄워주고 금칠을 해도, 내가 왕회장님의 주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왠지 그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못해 처참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개인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극단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성공이 정주열이라는 거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그의 여전한 갈증도 오로지 정주열을 넘어서고 싶은 그의 뜨거운 열망 탓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둘째, 정의는 오직 가진 자들의 것입니다. 때문에 설령, 그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합심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오너가 아니라면 결국 아닌 것이 되지요. 뭐, 당장은 오너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아도.. 예,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파편화되면, 결국 오너의 뜻대로 됩니다. 선거든 시위든 없는 자들의 시간은 짧고, 가진 자들의 시간은 아주 길거든요.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오직 가진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봐서 아주 잘 알아요. 잘.”



그의 말이 확신을 넘어 신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그야말로 주경야독해서 오늘을 일군 그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더더욱 그런 형편에도 나라를 위해 한일수교 반대 시위를 주도한 죄로 수감되었던 그가 아닌가.


그로인해 그는 제 어미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먹고 살겠다고 지원한 현세건설 입사시험에서 필기에 합격하고도 거부당했다.


가난하지만, 명석하고 정의로웠던 청년 이상박에게 ‘정의’는 제 가족의 안녕은 물론, 당연해야할 끼니조차 해결해 주지 못했던 거다.


심지어 그는 살기 위해서 그가 싸웠던 불의한 유신정권에게 손을 내미는 치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젊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려는 것을 막는다면, 국가가 영원히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라는 허세 가득한 편지였다.


당당한 척 박통에게 보낸 그 편지 한통으로 꿇은 무릎은, 아마도 그가 박통 덕으로 현세에 근무하는 내내 그의 지침이 되었으리라.


가진 자들을 넘어서고, 이를 위해 스스로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는 피맺히고, 한 맺힌 삶의 이정표 말이다.



‘그래.. 그래서 결국 선을 넘는 괴물이 되었고, 다시 그토록 초라한 노후를 보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상박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삼 처음으로 이해라는 것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군부독재가 끝나고 국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뽑기 시작한 이래, 노무연의 죽음과 이상박의 구속·수감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가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개개인을 떠나, 그 두 사람 모두 국민들의 뜻을 대변했던 상징이고, 그 시대의 집단의지가 반영된 시대정신이었다는 것만큼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래서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고, 오너가 분명한 기업에서는 스스로 2이자임을 인정하시고 엎드려 계신 겁니까? 왜요? 나중에 오너가 영원하지 않은 정치판으로 옮겨서 왕회장님의 주인이라도 되어 보시게요? 혹시 그래서 왕회장님의 대권도전을 반대하시는 거라면 실망입니다. 나라는 기업도 아니고, 대통령은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건 왕회장님도 똑 같습니다. 그 꼭대기에 가서야 두 분 다! 결국 그 자리가 가난하고 정의로운 또 다른 청년 이상박과 또 다른 청년 정주열을 오너로 모시는 자리라는 것을 이해하실 겁니다. 아니면..”



나는 그가 그의 야망을 위해 선택할 길을 최소한으로 짚어주었다.


지금이라면, 그가 선을 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있다는 미련 때문이었고, 또 무엇보다 현재의 내가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박수무당 뺨치는 나의 장담에 그가 연신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본능적인 긴장감이 그의 얼굴에 만 가지 감정을 입히는 사이.


그가 마지막에 말을 멈춘 나의 말꼬리를 덥석 물었다.



“아니면?”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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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7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6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5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8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3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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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9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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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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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4 6 10쪽
36 35화 설계된 엔딩 (3) 23.05.27 156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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