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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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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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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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7화 설계된 엔딩 (5)

DUMMY

“뭘 수용해? 안 해! 못해! 감히 나를 상대로.. 이게 무슨 협상이야? 협박은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어!”



접견 테이블을 벗어나, 제 책상 앞에 선 그가 우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두 마리의 봉황과 무궁화 문양 아래서 우리를 쏘아보는 전두안의 눈빛이 흡사 이무기 같았다.


그가 당장 책상에서 권총이라도 꺼내는 줄 알고 슬쩍 긴장을 하고 있던 그때.



“끼이익..”


“알멘 됐다, 마. 가자! 주핵아. 헵상은 겔렐되었다!”



YS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전두안의 집무실을 나섰다.



‘협상은 결렬..’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김영갑 민정수석과 전두안을 향해 차례로 목례를 했다.


비록 협상은 결렬됐지만 YS를 따라 집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쾅! 우당탕탕..”



닫힌 집무실 문 뒤에서 온갖 집기를 집어던지고, 때려 부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주핵아. 니는 거서, 고새 고걸 또 배웠나? 큭큭큭.. 일마, 참.. 싸움 하나는 타고 났데이. 잘했다. 고마. 어차피 전두안이 글마, 막판에 한 번 우릴 떠볼라꼬 부른 기다. 우리는 거서 딴 생각 몬하게 성기를 굳혔으니 됐고. 마, 니 덕택에 허얼씬 수월했다. 어차피 답은 이미 나와 있어!”



돌아가는 차안에서 YS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양반 정말 큰일 나시겠네. 성기가 아니라 승기고요. 네. 뭐, 제가 소싯적부터 싸움은 좀.. 읭? 근데.. 허! 어쩐지. 이 양반 알고 있었구나. 이 흐름이 어찌 될지..’



명불허전. 역시 YS는 YS였다.



“부우우우웅..”



나와 그를 태운 차가 느긋하게 청와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




6월 항쟁의 마지막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전두안의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바로 다음날인 25일에는 DJ 김대종 공동의장이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


그와 더불어 26일에는 결국 전국 33개 시, 군, 읍에서 180여 만 명이 참여하는 국민평화대행진이 시작됐다.


경찰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가는 시위대의 위세에 밀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대장님. 최루탄이.. 최루탄이 없습니다.”


“뭐어? 뭐가 없어? 최루탄?! 이런.. 씨X! 뭘 주면서 싸우든 막든 하라고 해!!”


“그게.. 분명히 본부에 수차례나 요청을 넣었는데..”



‘최루탄 추방 결의대회’가 있었던 18일이 되기도 전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최루탄이 문제였다.


그 무엇보다 경악한 당국은 기를 쓰고 공장을 풀가동했지만, 생산량은 소모량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해 최루탄 회사 사장 삼영화학 한영지가 국내 유수의 재벌들을 제치고, 소득세 1위의 기염을 토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상황이었다.


경찰들은 체력도, 사기도 바닥난 마당에 최루탄마저 턱없이 부족해지자, 거의 맨몸으로 국민평화대행진의 180만 시위대를 막아야 할 판국이었다.


몰아치는 거대한 해일을 고작 작은 우산 몇 개로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애당초 가당치도 않은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서로 다른 설계가 얽힌 엔딩으로 치닫고 있었다.



“동지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장래의 문제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첫째, 여야 합의 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둘째,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해야합니다. 셋째, 김대종씨의 사면복권을 포함하여 시국사범 등을 석방.. 여덟째,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해 사회정화 조치를..”



1987년 6월 29일. 정의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태후는 여덟 개 항의 특별 선언문을 발표했다.


6월 항쟁의 빛나는 결과물이자 신군부의 무조건 항복을 의미하는, 그 유명한 6.29 선언이었다.



“만약, 정부와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 노태후! 당대표를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며..”



물론 그는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강경한 슈퍼액션을 취했다.


전두안 연출, 노태후 주연으로, 모두가 노태후의 직선제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30일.



“이에 본인은 노태후 정민당 대표의원이 건의한 내용을 전폭적으로 수용해서..”



전두안은 특별담화를 통해 전격적으로 6.29 선언에 대한 수용입장을 밝힌다.


그것이 노태후를 단숨에 대중 정치인으로 부상시키면서 여론을 돌리고, 양김의 분열을 획책해 권력을 이어가려는 그들의 설계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6월 항쟁에 있어서 그들의 엔딩과는 다르게, 나와 국민들의 엔딩은 또다시 눈물과 감격 속에서 치러졌다.


그건 우리의 엔딩이 지난 7월 5일에 결국 숨을 거둔 한율이의 장례식이었기 때문이다.


한율이의 노제(路祭)가 있던 7월 9일, 서울 시청 앞에만 100만의 인파가 몰렸다.



“조기! 조기! 조기! 조기!!..”



국민들의 요구대로 서울 시청과 주변 건물들엔 조기가 걸렸고, 나는 YS와 DJ에 이어,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



‘와.. 이게, 다시 보니까 정말.. 이런 거였구나!’



100만 인파가 나를 연호했다. 100만 인파가 나와 함께 박종천과 이한율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래. 감개무량이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이리라.


그러나 나의 설계는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빛나는 승리가 수많은 열사들의 핏 값으로 쟁취한 피의 승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피의 승리가 순결한 그 핏 값을 받들어 뜨겁게 연대했던! 그야말로 뜨겁게 연대했던 국민들의 승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멸사봉공! 자신들의 일은 돌보지 않고 학생들을 지켰던 명동성당의 철거민들과 전국 방방곡곡의 해고 노동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들의 헌신을 직선제를 통해 뽑은 우리의 대통령으로 보답합시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다음 대통령에게 엄중히 요구합니다! 그게 누가 되었든, 다음 대통령은 최소한의 살 곳과 먹을 것을 보장하십시오! 그것은 곧 안정적인 집과 일자리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인권이자, 이 나라 국민의 기본권임을 잊지 마십시오!”


“적어도 그 최소한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견고한 바탕 위에서만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모든 반목과 분열을 청산하고! 비로소 자유와 평화가 공존하는 참다운 조국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그날까지! 우리의 6월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그날까지! 우리는 열사들의 핏 값을 받아 내기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시작이고, 이제야 말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틀 전, 로이탑 통신의 정태운 기자에게 오늘 날짜로 기획연재를 시작해달라고 부탁했던 나는 6월의 엔딩에서 그들을 소환해 냈다.


아침 자 신문을 통해 명동성당 철거민들의 기획기사를 접한 100만 인파는 나의 말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철거민들 갈 곳 없다! 그린벨트 해제하라!”



의도했던대로 나의 연설에 이어 누군가로부터 명동성당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저기 단상 아래, 나와 함께 명동 성당에 있었던 저 학생부터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대련(서울지역 대학생 대표자 연합) 안에서 철거민들의 구호를 외쳤다.


잠시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 우상우와 이원영이 서대련 전체의 삼창을 이끌었고, 그건 어느새 운집한 군중들의 화답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



“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한 쪽에서 내가 의도치 않았던 구호가 그 뒤를 따랐다.


그렇다면, 그 또한 받아먹는 것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



“우리들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아보자!”


“어용노조! 끝장내고! 민주노조 쟁취하자!”



나는 철거민들의 목소리와 함께 노동자들의 통한에도 힘을 실었다.


그것이 이제부터 시작해야할 또 다른 민주주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집회를 주최한 주최 측이 서둘러 무언가를 준비하고, 이내 얼마지 않아 가까이 있던 노동운동 대표 한분과 철거민 대표 한분을 단상위로 올렸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내 특유의 찢어지는 철성으로 구호를 이어갔다.



“4천만의 대동단결! 6월 정신 계승하자!”


“열사의 혼 계승하여! 민주주의 완성하자!”



서로를 대변하는 그 두 사람은 물론, 100만 인파가 절규하며 서로의 연대를 확인했다.


단상 아래, 왠지 내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YS가 보였다.


그러나 이미 집회현장의 열기에 휘감기며, 연대의 감격을 경함한 인파들은 멈추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이후, 또다시 뜨겁게 연대하는 연대의 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나는 그곳을 태우고 있는 그 불길에 감응하면서, 그쯤에서 인사를 마치고 내려섰다.


그 때, 낯익은 한 분이 단상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늦봄, 문익한 목사.


어찌 보면, YS 김영산 보다 더 존재감이 큰 재야의 어른이었다.



‘아.. 이번 사면복권에 저분도 있었구나! 그래. DJ만큼이나 저분도 반드시 나오셔야 했던 분이다.’



나는 주최 측이 즉흥적으로 부탁하여 단상에 오르신 문익한 목사님께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가 말없이 나를 보듬어 안고는, 천천히 단상 앞으로 향해 내가 못 다한 말들을 이어갔다.



“김주혁 위원장의 말씀처럼 직선제 투쟁을 승리한 지금. 철거민들과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민족의 통일과 번영으로 이어지고, 이 나라 민주주의의 완성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의 열사들은 가혹한 독재의 폭거에 맞서, 그 뜨거운 연대의 신앙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 놓으며 순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서로가 믿는 신념이나 종교를 넘어 한 마음 한 뜻으로 열사들을 추모하고, 다짐했으면 좋겠습니다.”



문 목사님이 나의 주장에 담담히 공명해주고 있었다.


6월 항쟁의 비장한 엔딩은 나에 이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그의 연설에서 그렇게 정점에 이르렀다.


그는 연단에서 침묵기도와 함께 스물여섯 열사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온몸이 찢겨 터져나갈 것처럼 절규하며 불렀다.



“아! 전태인 열사여! 장준아 열사여!.. 박종천 열사여! 오동건 열사여! 이한율 열사여!”



하늘을 향한 피맺힌 절규와 간절한 호소가 울려 퍼지던 그날.


100만 인파가 함께 울고, 소리치고, 전율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전두안의 퇴진을 외쳤다.



“콰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콰!!”



또 다시 전경들의 페퍼포그에 의해 완전히 흩어지는 그 순간까지.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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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공존의 조건 (7) 23.06.16 65 3 11쪽
58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70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7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5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7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6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5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8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30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9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50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39 38화 다른 나라 DNA (1) +1 23.05.28 172 6 9쪽
»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5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4 6 10쪽
36 35화 설계된 엔딩 (3) 23.05.27 157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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