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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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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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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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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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DUMMY

“당장은 현세건설이 무상에 가까운 상태로 지급하게 될 임대 보증금에 대해, 그 이자 부담을 져야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 문제는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현 정부와 다음 정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담보를 제공해야..”



나는 내가 제시한 토끼인지 호랑이인지 모를 어설픈 한반도 그림이 최신의 네비게이션 파일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 이거 봐, 이 회장. 기거는 신경 쓰지 말라우. 내레 누구 말처럼 고조 올림픽 좀 유치하갔다고 하면서리, 미처 신경 쓰디 못한 책임도 있갔고, 오짜피 이번 한 번 뿐이네까는.. 기건, 내레 사비로 감당하겠어. 뭐, 이번 선거만 잘 되면 앞으로는 우리 노 후보님이 특별법이건 뭐건 만들어서리 책임디시면 되시갔디. 안 그렇습네까, 노 후보님?”



대수롭지 않게 흔쾌히 사비를 들먹거리는 정주열 회장의 목소리가 호탕했다.



‘그래. 현재 저 괴물 같은 이상박의 주인은 정주열 회장이다. 게다가.. 목동부터 상계동에 이르기까지 철거민 세입자들의 보증금들을 합친 원금이라 봐야, 이 당시 가치로는 노태후의 떡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 더더욱 그 이자라면 그에겐 돈도 아닐 것이다. 비록 자신을 위해선 구멍 난 양말조차도 꿰매 신는 양반이지만.’



나는 저 세상 능력이 틀림없을 것 같은 그들의 일하는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정치적인 셈법으로만 다가갔던 나에게 정주열과 이상박이라는 경제 괴물들의 진면목은 여러모로 따져 묻기 힘든 부분들이 존재했다.


그게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전문적인 실무능력을 가진 보좌관들이 붙는 이유니까.


물론 그것도 알아들을 정도의 기본 소양은 되어있는 자들에 한한 것이지만 말이다.


정주열 회장이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아마도 내가 물었던 그의 책임에 대해, ‘내레 책임을 다했어!’ 라는 제스처 이리라.


또, 이상박 회장은 그런 그의 모습이 익숙한 듯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어차피 자기 돈도 아니고, 정주열 회장의 결정에 이견은 있을 수 없다는 오랜 습관 같았다. 그러나..



“그거야 다, 당연히 이 사람이 책임을 지겠지만.. 이, 이게.. 그러니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이에 대한 언급조차 듣지 못했던 노태후의 표정은, 하릴없이 기획안만 들척이는 그의 손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잠시 잠깐 두 양반에게 놀라, 노태후의 간 보기를 끝낼 타이밍을 놓칠 뻔했던 나처럼 말이다.



“네. 바로 그 이슈입니다. 1차 투표에서 후보님의 민주적인 6.29선언에도 불구하고, 양김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실패한 단일화를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 누가 더 민주적인 후보냐를 어필한 후..”



나는 차분하게 그가 2차 투표에서 승리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2차 투표에선 안정적인 행정력을 바탕으로 이미 이 정부에서 착수에 들어간 신도시 계획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보다 가까이에서 국민들의 살림을 살피고, 실천하는 후보가 누군지를 묻는 후보님만의 이슈지요. 2차 투표는 양김보다 민주적이고, 양김보다 안정적이며, 양김보다 진솔한 후보를 뽑는, 보통사람 노태후 대통령을 위한 투표가 될 겁니다.”



‘노태후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대놓고 좋아하진 못해도,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노태후의 입 꼬리가 감출 수 없는 그의 감격을 대신하고 있었다.



‘염병.. 기분 드럽네. 그래. 웃어라. 웃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문득, 비록 그것이 실질적으로 노태후와 전두안에게 도움이 되는 천인공노할 짓이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단일화 실패로 촉발된 일련의 사태는 분명히 YS와 DJ의 책임이었고, 그들의 배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개입과는 상관없이 본래의 역사에서도 극심한 분열과 반목의 뿌리가 되는 반쪽짜리 직선제로 남아 이어진다.


친일에 이어 군부독재마저 청산하지 못해 켜켜이 쌓인 쓰레기로 구린네가 진동하는 흑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이 싸움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헌신과 한율이를 비롯한 열사들의 핏 값만큼은 반드시 받아낼 생각이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노태후에 이어 YS와 DJ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한 발 앞서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그것은 명분 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체불명의 기득권 거대 양당정치를 끝내고, 다양한 민주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선명한 정당정치로 거듭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래서 87년 6월을 넘어 88년은 기필코 온전한 민주화의 원년이 되어야만 한다.


비록, YS와 DJ의 뼈아픈 실수는 막을 수 없더라도 말이다.



“길카고, 명동성당 철거민들의 기획연재로 하마터면 좌초 될 뻔했던 88 서울 올림픽을, 기사회생시키고 성대하게 치러낸 공로도 빠짐없이 노태후 후보님의 치적으로 기억되게 할 겁네다. 아시갔습네까? 이거이 절대로 질 수가 없는 선거다, 이 말입네다.”



정주열 회장이 또 다시 나의 상념을 깨뜨리며 말을 보탰다.


물론, 그도 철저하게 그의 현세를 위한 것이고, 그에 따른 현실적인보상까지 톡톡히 돌려받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비즈니스에 관한 그의 대화 센스와 통찰력만큼은 알수록 놀랍고, 볼수록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이사람도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하겠습니다. 나 이사람, 대다수의 국민들을 대변하는 보통사람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번 최선을 다해 보겠다, 이 말입니다. 잘 좀 도와주십시오. 왕회장님. 허허허허!”



얼마간의 숙고와, 얼마간의 망설임을 마치고,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노태후의 복심이 움직였다.


나와 정주열 회장이 그제야 너털 웃음을 쏟아내는 노태후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눈을 맞췄다.


현세건설의 신임 회장으로서 수도권 1기 신도시 계획을 첫 임무로 지정받은 이상박 회장의 눈빛도 비상하게 그 공간을 훑었다.




***




“그 제안서.. 김 위원장의 작품, 아니지요?



얼마 뒤 노태후와 정주열 회장이 떠난 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장유유서..는 개뿔, 힘이 있는 자로부터 순서대로 떠난 그곳에서 이상박 회장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예? 그게 무슨..”



나는 전통(?)에 따라 그를 배웅하려다 말고, 예상과 달리 자리를 잡고 앉는 그를 따라 앉았다.



“젊은 양반이 타고 오신 차도 그렇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이나 시계만 해도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은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뭐, 대개의 경우 있는 집에서 자란 김 위원장 정도의 연배는 그런 식의 제안서를 만들 수가 없기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뭘까? 지금 이 사람이 하는 얘기는. 게다가 언제 내 차까지 살펴본 거지?’



나는 그의 의중을 몰라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그가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의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후후..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단지 돈이라는 놈의 생리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돈은,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법인데, 김 위원장의 제안서는 뭐랄까.. 일단 기업의 이익을 칼같이 제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음.. 또 그게 수치상으로도 그렇고요. 훗! 저 같은 건설업자는 절대 그런 제안서를 만들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나는 내가 그를 살피는 것보다 훨씬 더 서늘하게 내 속내를 훑는 것 같은 그의 눈빛이 소름끼쳤다.


그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아 침묵하는 나를 향해, 조금 더 자극해볼 생각인지 말을 이었다.



“원주민의 재거주율을 80% 이상으로 잡아둔 부분이 특히나 그렇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김위원장의 제안서처럼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규모가 아니면, 건설회사에겐 거의 수익이 남지 않습니다. 제안서대로 해도, 하자니 억울하고, 안 하자니까 또 아까운.. 그런 수준이거든요.”


“제안서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완공 이후 관광객유치나 임대사업을 통한 이익창출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그가 던진 내용에 대한 원론적인 답으로 흐름을 탔다.



“네, 뭐. 제가 그 기대수익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넣어두기도 했지요. 다만, 그건 솔직히 돼야 되는 것인데다가, 건설회사의 몫도 아닙니다. 제 말은, 그래서.. 뭡니까? 본인이 만든 것도 아닌 제안서를 들이밀며, 왕회장님을 설득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그의 눈매가 웃고 있는 그의 입가와는 달리 나를 향해 예리하게 찢어졌다.


나는 순간 퍼뜩 스치는 생각에 그를 향해 차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흠.. 일단 말씀하신대로 그 제안서는 제가 아니라 빈민 운동을 하시는 제경구 선생의 구상입니다. 그걸 파악하신 회장님의 안목이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요점이 만약 제가 빨갱이냐, 뭐 이런 것이라면.. 저는 신문에서 보셨다시피,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절대 빨갱이는 아닙니다. 망해버릴 공산주의 같은 건 관심도 없고요.”



나는 내가 가정하는 그의 속내를 자극해 보았다.


그런데 최소한의 동의를 기대했던 내게, 그의 표정이 생각처럼 따라오질 않는다.



“제가 김 위원장에게 묻고 있는 건, 김 위원장이 빨갱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더더욱 이념논쟁 같은 건, 저도 관심 없고요. 흠.. 터놓고 말해 제가 궁금한 건, 김 위원장이 우리 왕회장님께 드린 선물입니다. 저는 김 위원장이 무엇을 할 생각이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겁니다.”


“?!!”


‘뭐지? 이 사람? 설마 내가 정주열 회장과 나눈 얘기를 알고 있다고? 아니다. 정주열 회장의 성정 상, 그런 얘기들까지 이상박 회장과 나눌리는 없다. 그렇다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단지, 저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왕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것이 왕회장님께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왕회장님도 제게 응하셨던 것뿐입니다.”



나는 그의 눈을 정면으로 주시하며 흔들림 없이 마주했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내게 반응을 했다.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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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7 4 11쪽
»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4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6 4 9쪽
48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5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8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2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3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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