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미안해 아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한산(韓山)
작품등록일 :
2023.05.10 12:14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3,009
추천수 :
385
글자수 :
274,795

작성
23.06.05 20:00
조회
104
추천
3
글자
10쪽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DUMMY

“노태후 후보에게 만의 하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도록 하는 겁니다.”


“?!!”



정주열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에겐 나의 말이 선뜻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만의 하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내레 그 상황이라는 거이 잘 이해가 되디 않는구만. 설마 자네, 이제 와서, 노태후가 떨어진다는 거는 아니갔지?”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야 저희 집 두 어른의 단일화가 실패할 거라는 것과, 그로인해 노태후 후보가 당선될 거라는 것을 확신하지만, 회장님께선 제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때문에 제가 회장님이라면.. 저는 노태후 후보가 2위로 떨어지는 상황도 대비를 할 것 같습니다만.”



나는 그의 차가운 반응에 더 찬물을 껴 얹었다.



‘두려움을 파고든다. 그건, 단지 노태후나 양김뿐만 아니라, 정주열 회장 당신도 마찬가지..’


“끄응.. 어렵구만 기래. 하긴, 신이 아닌 이상, 만의 하나를 대비해서 나쁠 건 없디.”


‘됐다. 지금 그의 선택이 향후 5년 간, 현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거면 되는 거다.’



정주열 회장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으리라.



“후.. 기래. 길타면 내레 어케 해야 하는 디, 그 방법도 있갔디? 거, 뜸 그만 들이고, 말하라우. 대체 그 보험이라는 거이 뭐이야?”



그가 소파에 묻혀 있던 상체를 세우며 제 무릎 위로 양 팔꿈치를 얹었다.


나는 테이블 쪽으로 바짝 당겨 앉은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답을 시작했다.



“방법은 결선투표입니다. 회장님께서 노태후 후보로 하여금 지금의 8인회담에서 결선투표제를 관철시키도록 힘을 쓰시면 됩니다.”


“결선투표?”



나의 차분한 대답에 그의 예리한 눈매가 꿈틀거렸다.



“네. 결선투표요. 국민들에게 주거 문제로 유세를 해도, 그 관심이 쏠리는 데는 약간 시간이 걸릴 겁니다. 때문에 우선은 국민들의 열망이었던 6.29 민주화의 공로를 노태우 후보가 독차지하도록 유세하면서 1차 투표에 집중하고, 만의 하나 단번에 제압이 안 될 경우, 주거 문제 해결을 부각시키면서 2차 투표에 임하는 겁니다. 1차 투표에서 단일화에 실패한 양김이 2차 투표에서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의 말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설령 2차 투표에 간다 해도.. 양김이 뒤늦게 떠밀리듯이 한 단일화는 힘이 없다. 길타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주거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리 2차 투표로 붙으면 된다. 기래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거디?”



그제야 정주열 회장이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네. 아시다시피 1위라고는 해도 노태후 후보의 지지율은 불안합니다.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거지요. 때문에 1차 이전에 양김의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이미 그 자체로 이 승부는 끝난 거지만.. 예상대로 단일화가 불발로 끝날 땐, 결선투표로 가는 게 보다 더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노태후 후보가 6.29를 통해서 열어준 길을 그들 스스로가 단일화 실패로 말아먹은 잘못을 충분히 저격하고, 민주화니 뭐니 했어도, 결국 줘도 못 먹은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몰아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


“그러면?”



그가 잠시 말을 멈춘 나를 바라보며 눈빛을 번뜩인다.


아마도 지금 그의 머릿속에선 수많은 경우의 수와 셈들이 번개처럼 번쩍이고 있겠지.


그의 저 눈빛처럼 말이다.



“그러면, 민주화의 열망은 실망으로 바뀌고, 그제야 주거 문제와 같은 것들이 좀 더 국민들의 피부로 와 닿겠지요. 우리는 그에 대한 대책을 이미 확정해서 진행시키고 있다는 걸 부각시키면서, 노태후 후보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국민들을 위하는 민주적인 후보다, 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노태후 후보는 불안했던 정권의 정통성과 대표성까지 획득하면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나는 소파의 등받이에 가볍게 등을 기대며 정주열 회장을 바라봤다.


이제 다시 그가 선택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흠.. 기래. 긴데 말이야.. 내레 다 알아 듣갔는데,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기는구만, 기래. 먼저는 자네가 왜 이런 얘기들을 자네 쪽 인사들한테는 하지 않느냐, 하는 거이고, 다음은 설령 내레 자네 말대로 노태후 후보한테 제안한다고 해서리, 그 사람이 과연 내 말을 들어 주갔냐, 하는 기야.”



나는 그의 최종적인 확인에 다시 테이블 가까이 앉았다.


놀랍게도 그의 이 두 가지 질문은 모두 같은 맥락이 아닌가.



“첫째는 제가 모시는 두 어른과 그 어른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6월의 승리를 자신들이 이룬 양 움켜쥐고, 현재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당연히 누구의 말도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두려움이 없다?”


“네. 그에 비해 노태후 후보는 현재 꽤 두려워하는 중이라, 회장님의 제안을 충분히 받아들일 겁니다. 더군다나, 회장님은 그에게 주거문제 안정과 철거민 대책이라는 빚을 떠안길 것이고, 거기에 보태 못해도 200억 이상의 선거 자금을 쥐어주며 한 배를 탈 사람인데.. 그가 회장님의 우려를 치워야 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상도덕 아니겠습니까? 또, 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노태후 후보는 본인 스스로가 낙선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양김보다 큽니다. 그래서 결선투표는 그에게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사안이고요.”



“후.. 기래. 길킨 한데.. 자네가 모르는 거이 하나 있어. 본래 정치를 하는 종자들은 말이야, 변소 갈 때랑, 나올 때랑 다른 것들이다, 이 말이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을 경청하던 정주열 회장의 표정이 씁쓸했다.


하긴, 그가 이런 식으로 대놓고 강탈당하고, 무시당했던 일들이 어디 한 두 번일까.


나는 단정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러고도 노태후 후보가 회장님의 말씀을 안 듣는다면, 회장님의 현세가를 이용해 기업차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어도 될 겁니다. 공공기관이야 선거기간 동안 조사조차 여의치 않지만, 기업은 다르지 않습니까? 회장님께서 가볍게 노태후 후보가 2위로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지 한 장만 건네면 일은 훨씬 쉬워질 겁니다. 그게 진짜건, 가짜건 말입니다.”



나는 그의 씁쓸한 표정에 일부러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그가 나의 웃음에 물이 들 듯,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좋네! 기럼 우리 한 번 길케 해 보자우! 내레 일단 노태우 후보 그 양반부터 만나봐야 돼갔어! 뭐, 만나봐야 이거든 저거든 말도 할 거이고.. 아, 혹시 자네도 같이 가겠어? 내레 아무래도 자네만치 설명할 자신이 없구만, 기래. 엉?”


“네, 뭐. 그러시죠. 마침 저도 노태후 후보한테 할 얘기가 좀 더 있습니다.”


“기래? 기럼 우리 손 맞잡고, 오붓하게 같이 가자우! 하하하하!”



나는 마음을 굳힌 듯 시원하게 웃어젖히는 정주열 회장을 향해 흔쾌히 답을 해 주었다.


이제 노태후 그 양반한테도 양날의 검을 쥐어줘야 할 테니까.




***




“흠..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말씀도 충분히 이해했고요. 이 사람 같은 보통사람이 대 현세그룹의 왕회장님을 만나 뵙고, 이런 좋은 조언까지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헌데..”



이틀 후, 나는 정주열 회장과 함께 노태우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정주열 회장의 권유로 일련의 제안들을 노태후에게 전달한 직후, 노태후가 말끝에 토를 달며 정주열 회장을 바라봤다.



“8인회담에 회장님의 조언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야당과 함께 4대 4로 위원수를 맞춘 상황에서 그 제안을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더욱 한 차례의 투표로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을 굳이 2차까지 끌고 가서, 오히려 역전 당해버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것도 고려를 해봐야 할 테고요.”


‘능구렁이 같은 작자. 누가 이 사람을 보고 물태후라고 했던가. 정치적 책략에 있어선 어찌 보면 그가 전두안을 넘어, YS나 DJ에 필적할 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아닌, 정주열 회장에게 에둘러 거부의 뜻을 밝히는 노태후의 표정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의 입장에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필요한 한 가지는 정주열 회장의 자금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일단, 지금 저희 직원들이 사과박스는 옮겨 실고 있습네다. 스무 장 정도 준비를 시켰디요. 긴데.. 여기 이거 좀 보시라요. 이거이 지난 여론조사에 이어서, 우리 종합기획실 아들이 분석한 정본데..”


‘후후.. 하지만, 내 옆에 계신 양반도 더하면 더 했지 절대 어디 가서 빠지는 양반이 아니지.’



정주열 회장이 노태후가 목말라하는 물 대접을 내밀며, 동시에 내가 말했던 물 값에 대한 흥정을 시작했다.



“거기 보시면.. 지난주의 대통령 적합도 여론 조사에서 노 후보님의 지지율이 32.2%, 김대종 공동의장이 29.3%, 김영산 총재가 28.0% 맞디요? 긴데, 어제 날짜 우리 아들 조사 좀 보시라요. 외람되디만, 31.4%의 김대종 의장이 30.1%의 노 후보님을 젖히고 1위로 올라섰다 이 말입네다. 게다가 28.7%의 3위 김영산 총재하고도 고작 1.4% 차입네다. 이거이 여론 조사 하는 아들이 오차범위 안이라고 하던데, 노 후보님은 무슨 말씀인지 아시디요?”




* 본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티브로 한 것이나, 등장 인물이나 단체의 이름, 역사적 사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 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 공모전 참여 중입니다. 많은 관심과 추천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987 미안해 아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담주 부처님 오신날 연휴까지 이어서 연참합니다. 23.05.19 31 0 -
공지 제목을 변경했습니다. 23.05.17 55 0 -
공지 아, 일단 다음주까지 하루 2회 연참갑니다!! ^^ 23.05.11 35 0 -
공지 연재 시간은 저녁 8시 입니다. ^^ 23.05.11 300 0 -
61 60화 절반의 승리 (2) 23.06.18 78 3 10쪽
60 59화 절반의 승리 (1) 23.06.17 66 3 10쪽
59 58화 공존의 조건 (7) 23.06.16 65 3 11쪽
58 57화 공존의 조건 (6) 23.06.15 70 2 9쪽
57 56화 공존의 조건 (5) 23.06.14 66 3 11쪽
56 55화 공존의 조건 (4) 23.06.13 58 3 10쪽
55 54화 공존의 조건 (3) 23.06.12 65 2 10쪽
54 53화 공존의 조건 (2) 23.06.11 75 3 9쪽
53 52화 공존의 조건 (1) 23.06.10 88 3 10쪽
52 51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8) 23.06.09 96 4 11쪽
51 50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7) 23.06.08 93 5 11쪽
50 49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6) 23.06.07 94 3 9쪽
49 48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5) 23.06.06 105 4 9쪽
» 47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4) 23.06.05 105 3 10쪽
47 46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3) 23.06.04 108 3 10쪽
46 45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2) 23.06.03 111 3 10쪽
45 44화 잠룡들을 움직이다. (1) 23.06.02 120 3 9쪽
44 43화 다른 나라 DNA (6) 23.06.01 130 3 9쪽
43 42화 다른 나라 DNA (5) 23.05.31 139 5 9쪽
42 41화 다른 나라 DNA (4) 23.05.30 149 7 10쪽
41 40화 다른 나라 DNA (3) 23.05.29 154 7 9쪽
40 39화 다른 나라 DNA (2) 23.05.29 150 6 10쪽
39 38화 다른 나라 DNA (1) +1 23.05.28 172 6 9쪽
38 37화 설계된 엔딩 (5) 23.05.28 164 4 11쪽
37 36화 설계된 엔딩 (4) +1 23.05.27 164 6 10쪽
36 35화 설계된 엔딩 (3) 23.05.27 156 6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