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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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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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5.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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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9> 십이편복의 추격

DUMMY

*

로운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시대와 세상이 달라도 사라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기본적 예의와 도리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취소연한테 도움을 주었으나 해를 끼친 건 크지 않다.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파란이라고 우긴 것 정도는 충분히 넘어갈 일이다.

그런데 검을 겨누었고 협박까지?


로운의 손이 번득였다.


- 떵!


취소연의 철검이 날아가고 로운의 젓가락이 그녀의 눈동자에 향했다.


순식간이었다.

취소연이 피할 겨를도, 벽자룡이 도울 여지도 없었다.

나무젓가락 하나로 취소연의 검을 날리고 동시에 요혈인 안구까지 위협한 것이다.


공포가 스며 나오는 취소연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로운이 말했다.


“세상엔 순리라는 게 있거든. 사람 사이의 관계나 대화도 마찬가지야. 나랑 목숨 걸고 싸우고 싶냐? 그럼 지금처럼 칼을 뽑고 덤벼. 근데 정말 대화를 하고 싶다면! 내 대답이 듣고 싶은 거라면! .......칼이 아니고 마음 열고 말로 먼저 전하는 거다.”


로운이 겨눴던 젓가락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더니 못 다한 식사를 시작했다.


취소연과 벽자룡은 꼼짝도 못했다.

경악과 공포와 안도가 섞인 감정으로 그냥 식사를 하는 로운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뿐.


취소연은 맹주의 손녀, 딸로 살아오면서 숱한 어른들, 많은 고수들을 만나왔었다.


하지만 지금 만난 이로운은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른 유형이었다.

때론 한 없이 가벼워 보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태산과 같이 느껴졌다.


숨을 추스린 취소연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벽자룡도 따라 앉았다.


로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걱우걱 맛있게 음식만 집어 먹고 있었다.


*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던 대둔산 아래 들판에는 갈대를 흔드는 바람만 일렁이고 있었다.

노을도 저물어 어둠이 내린 들판에 열두 명 편복들이 로운이 남긴 흔적을 살피고 있었다.


갈대밭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찾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것도 어둠이 깃든 시각에.


하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말발굽에 뭉개진 갈대들을 찾아냈고 그 흔적들이 이어져 가리키는 방향을 추측한 뒤 지체 없이 추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로운과 취소연이 간 길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따라잡았다.


추격하면서 백 리 마다 한 명씩 빠져나와 현청으로 돌아갔다.


현청에서 기다리고 있던 효지림은 첫 보고자가 도착하자 곧바로 함께 추격에 나섰다. 두 번째, 세 번째 보고자를 만나는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그녀가 일곱 번째 보고자를 만난 건 대둔현 초입에서였다.

일곱 번째 편복은 목표가 대둔현으로 진입했다고 보고했다.


이미 날이 저문 시간이라 필시 대둔현 어딘가에 그 괴물이 숙소를 마련했을 거라 판단했다.


‘냉면귀를 아작 낸 놈이란 말이지? 이 놈만 묶어 가도 큰 공을 세우는 거다.’


거기에 더해 전임 맹주의 손녀이자 임시맹주의 딸 취소연과 벽자룡까지.


‘훗. 이제야 내 인생에 꽃 피는 봄이 오겠구나. 셋을 한꺼번에 잡아가기만 하면....’


어둠 속 대둔현을 바라보는 효지림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대둔현의 불빛보다 더 환한 미소였다.



*

‘가서 백령기로부터 취소연과 벽자룡 두 사람을 인수해 오라.’


외진각주의 명은 정확히 두 사람을 인수해 자신 앞으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백령기가 둘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예측 하에 내린 명령이었다.

효지림이 이곳에 도착해서 본 상황은 전혀 달라져 있었지만.


‘어쨌거나 둘을 인수해 오라고 했으니 둘을 데려가는 건 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지. 거기다 괴물이란 놈까지 얹어 간다면....’


음양노동 관쌍을 넘어 각주 다음 서열 2위로 올라 설 절호의 기회였다.


‘취소연과 벽자룡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한 일인데... 문제는 그 의문의 고수란 말이지.’


효지림이 믿는 구석이 있었다.

괴물이 다행히 남자라는 점이었다.


효지림의 독문절기인 섭혼음양지법.

그것은 크게 섭혼술과 음양공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섭혼술은 상대의 정신계를 장악하는 내공심법이었다.

대상은 남녀를 가리지 않으나 특히 이성에게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기에 섭혼술만 제대로 먹혀들면 괴물이든 인간이든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편복들이 잠시만 소연과 벽자룡을 맡아주고 그 사이에 놈을 독대할 수 있다면...... 승산은 충분해!’



*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어요.”


취소연이 잘못을 시인했다.


“당신이 가진 그 단봉. 틀림없이 교주의 신물과 같은 거예요. 크기는 훨씬 작지만 할아버님을 해친 바로 그 물건과 같은 것이 틀림없어요. 그래서 교주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예요.”

“교주? 뭔 개소리야? 난 방금 이 세상에 도착했어. 이 동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단 소리거든!”

“그 단봉이 우는 걸 똑똑히 봤어요.”

“단봉이 울어? 아아~ 방금 그거? 나도 왠지 몰라. 처음이거든 이런 적은.”

“아니라고 하시니 믿겠어요. 다만 하나만 더 물어볼 게요”

“뭔데?”

“당신.... 우리의 적인가요?”


로운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취소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널 위협한 적 있디? 날 몰아세운 거 항상 너였어. 근데 내가 적이냐고? 내가 보기엔 내가 적이기를 바라는 건 너 같은데?”


백 번 맞는 말, 취소연이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벽자룡이 얼른 끼어들었다.


“우릴 구해준 것으로도 대협을 믿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교의 인물이 어떤 식으로 접급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놈들이 우리의 환심이 산 뒤 잔존한 동료들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벽자룡의 말을 잠시 곱씹어 본 로운이 대답했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그건 너희 사정이잖아? 괜히 나한테 막 대해도 되는 면죄부는 안니지 않냐?”

“사죄 드립니다.”

“사죄는 됐고. 어차피 너희들은 나 계속 의심할 거고, 나는 너 둘이랑 큰 인연도 아니니까 그냥 이쯤에서 깔끔하게 갈라지자. 그게 서로 좋아.”

“아......! 하오나.... 대협께서 위기에 빠진 군웅맹을 도와주신다면....”

“놉! 절대! 내버! 그럴 일 없거든. 나도 겁나 바쁘다고. 누굴 도울 상황이 아니라니까...”


그때였다.


- 콰앙---!


객잔 방문이 박살났다.

몇 개의 창문 또한 동시에 박살이 나며 검은 빛들이 쏘아져 들어왔다.


혈편랑 효지림의 십이편복이었다.


은밀한 접근이었고 계산된 기습이었다.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편복들은 벽자룡과 취소연을 향해 진법을 펼치고 악랄한 살초를 퍼부었다.


방안은 순식간에 섬뜩한 검광들로 가득 찼다.


- 까다다당!


당황한 벽자룡과 취소연이 얼른 검을 뽑아 편복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기습에 두 사람의 손이 어지러웠다.


벽자룡과 취소연은 이미 수많은 싸움터에서 함께 싸워 온 사이였다.

둘이 서로를 보완하며 싸울 때는 그들 또한 둘이 아니라 넷, 여섯의 위력을 발휘하였다.


취소연과 벽자룡이 손을 맞춰 나가기 시작하자 금방이라도 두 사람을 짓이길 것 같던 편복들이 조금씩 밀려났다.


첫 공세에서 우위를 잡지 못한 편복들은 서로 눈짓을 나누더니 진법을 펼쳤다.

편복진이 완성되자 열두 명의 위력이 스물넷인 듯 강력해졌다.


- 까가강! 깡-!


편복들과 둘의 싸움이 어느 한 쪽 기우는 것 없이 어우러졌다.


그 와중에 로운은 홀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편복들은 로운을 의식하지 않았고 취소연과 벽자룡 또한 도움을 청할 여유가 없었다.


로운은 이미 갈라서자고 운을 띄운 마당에 이런 싸움에 얽혀들어 봐야 좋은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혼자 슬쩍 빠져나가는 건 왠지 얍삽해 보이기도 하고.


‘내가 떠나는게 모양이 그러니까.... 저 놈들을 내보내면 되겠네.’


싸움을 멈춰 놓고 떠나는 게 보기에 그럴듯하단 생각이 들었다.


“야---!”


로운이 냅다 고함을 내질렀다.


낮에처럼 상대를 타격할 정도의 고함은 아니었지만 귀를 관통할 정도의 고함이었다.

놀란 편복들이 칼을 거두고 물러나 로운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다 나가! 싸울래면 밖에서 싸워! 내가 딱 삼 초 준다. 여기서 다 꺼져!”


편복들은 무슨 소린가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벽자룡과 취소연은 그 삼초를 어겼다가 냉하탄이 중상을 입고 쓰러지는 것을 이미 본 바가 있었다.


“일! 이!”


로운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재빨리 박살 난 창문 밖으로 날렸다.

하지만 이로운을 처음 만난 편복들은 판단 미스를 하고 말았다.


“...삼!‘


삼초를 셈과 동시에 로운이 발을 굴렀다.


- 콰릉---!


공력을 실어 바닥에 발을 구르자 엄청난 내력이 바닥을 타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밀려간 파동이 닿는 순간 편복들은 마치 강력한 스프링에 튕긴 공처럼 튕겨 올랐다.


- 콰당! 콰다당!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 튕겨 나간 편복들은 천정과 벽에 쳐박힌 뒤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 중에서 내력이 약한 자들은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았다.


“딱 삼초만 더 준다! 이번에는 버티면 진짜 죽는 거다. 하나! 두...”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만 아는 놈들이 있다.

편복들이 그랬다. 효지림의 명령이 아니면 똥이고 된장이고 치받고 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당해보니 깨달았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둘을 세기도 전에 공포에 질린 편복들이 미친듯 몸을 날렸다.

효지림의 명이든 교주의 명이든 살아야 받잡을 수 있는 것이니까.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취소연과 자룡이었다.

그 둘을 제압하는 것이 편복들이 효지림한테 하달 받은 명이었다.

그러니 도망쳐도 욕을 먹진 않을 것이다.


눈앞의 괴물은 자기들 몫이 아니었다.

이로운은 주인이 맡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혈편랑 효지림이.



*

다들 달아나고 텅 빈 객잔에 로운이만 남았다.


엎어진 테이블 아래 쟁반에 남은 만두 하나를 집었다.

이제 바깥일에는 신경 끄고 임무를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방안에 설핏 붉은 빛이 날아들었다.


온통 붉은 옷, 검은 망토를 두른 여인 효지림이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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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일월신주와 단봉 +4 23.05.12 189 7 9쪽
7 <7> 혈편랑 효지림 +5 23.05.11 219 9 12쪽
6 <6> 혈란과 군웅맹 +4 23.05.11 266 12 12쪽
5 <5> 천부경과 공동제자 +9 23.05.10 320 17 11쪽
4 <4> 신비무공 낙장불입 +7 23.05.10 328 17 11쪽
3 <3> 백령기주 냉면귀 +7 23.05.10 392 18 11쪽
2 <2>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7 23.05.10 480 21 12쪽
1 <1> 초보형사 이로운 무림에서 눈을 뜨다 +16 23.05.10 851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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