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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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2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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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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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DUMMY

*

로운은 취소연한테 엄지를 세워 보였다.


“야, 너 좀 한다? 많이 늘었네. 거기서 낙장불입을 꺼낼 줄은 몰랐다야.”

“저도 놀랐어요. 요결을 듣고 머리 속으로 내내 상상하고 잠시 검으로 흉내 몇 번 낸 것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갑자기 그 초식이 나왔어요.”

“헐. 은근 지 자랑 쩌네. 그래 한 번 듣고 완성하는 니가 천재다, 천재.”

“다 오라버니 덕이예요.”


자연스럽게 나온 호칭에 로운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젠 내가 알아서 할게. 넌 좀 쉬어”


로운이 지밀원주를 돌아봤다.

지밀원주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일월교 지밀원의 무영흔이라 하오. 일월교로 가는 거라면 안내하겠소.”

“장난 하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되지! 냅다 덤벼 보곤 상대가 안 되니까 꼬리 내리는 거냐?”

“그 말이 다 맞소. 안 될 걸 알고 있었지만 효지림이 섣부른 행동을 했소. 저들이 그 댓가를 치른 셈이고.”


무영흔이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말했다.


“말대로 일찍 꼬리 내렸어야 하는 게 맞소. 헌데 그걸 말 해줄 틈이 없었소.”

“바로 인정? 태세 전환 겁나 빠르네.”

“교주님을 뵙겠다고 하셨다니 소인이 안내 하겠소.”

“됐거든. 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고 싶은 날에 갈 거니까. 너는 저 안에 죽어가는 놈이나 돌봐 줘”

“도제룡이 살아 있소?”


지밀원주가 깜짝 놀랐다.


“그 친구 이름이 도제룡이야? 이소룡 선조인가? 아.... 성이 다르네. 근데 넌 내가 아무나 막 죽이는 살인마로 보이냐?”

“당신을 죽이지 못하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했소.”

“응. 돌아오진 않을 거야. 동쪽은 반대편이니까.”

“그게 무슨 뜻이오?”

“거 참 말 많네. 직접 물어 보던가!”


로운이 취소연 옆에 서서 한 팔을 들었다. 부축해 달라는 뜻이다.


“방금 보니까 부축할 정도는 아닌 거 같던데요?”

“아..... 눈치 빠른 누이 같으니라고!”


두 사람은 걸어 가자 지밀원주가 옆으로 물러나 길을 열어 주었다.


효지림은 철검에 찔린 어깨를 누르고 지혈을 하고 있었다.


“괜찮냐?”


로운이 지나가면서 물었다.

효지림은 대답 대신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기만 했다.


“성질 좀 죽여.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로운은 걱정이 되어 한 말이지만 효지림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취소연이 꼴 보기 싫었다.

그녀가 자신의 어깨에 칼을 꽂은 것, 패배를 안 긴 게 꼴 보기 싫었다.

하지만 로운과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있는 게 몇 백 배 더 꼴 보기 싫었다.


“흥! 제갈휘도 못 치킨 주제에 누굴 걱정하는 거야?”


효지림이 로운의 뒤에 대고 바락 소리 질렀다.


의도치 않게 쏘아버린 말이었다.

실수로 시위를 놓쳐 날린 화살 같은 말이었다.

효지림도 의도치 않았던 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효지림이 제 감정을 못 이겨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독 바른 살처럼 로운의 가슴에 꽂혔다.


로운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말을 뱉은 효지림이 더 놀랐다.

지밀원주 무영흔도 눈빛이 반짝 빛났다.

공유된 정보로는 휘의 얘기를 하면 혼절한다고 했었다.


“한 번만 더 그 아이 얘기하면.... 한 방에 훅 간다. 내 손에...”


로운은 그 말을 남기고 아무 없다는 듯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색이 된 효지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꼴 보기 싫어졌다.

어린 계집애한테 질투 같은 감정을 느끼는, 그래서 의도치 않은 말을 뱉어버린 자신이 가장 꼴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

유유곡 안은 백만 대군이 휩쓸고 간 듯 폐혀가 되어 있었다.

밑둥부터 갈갈이 찢겨 나간 아름드리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고 바위가 박살난 조각들이 날카로운 돌조각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오직 불에 탄 초옥 주위만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지밀원주는 일대를 다 살펴 보았지만 도제룡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었다면 시신, 아니면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터.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동쪽은 반대편이니까.


이로운이 남긴 말로 추측해보면 이 곳을 떠났다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이로운한테 패했다면 목숨을 보존했어도 중상을 면치 못했을 텐데 그 몸으로 왜, 어디로 떠난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정확한 정보를 교주한테 보고하는 것. 그걸 기반으로 판단은 교주가 할 것이다.


유유곡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은 천을 발목에 매단 추색이 날아 올랐다.


추색이 유유곡의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가볍게.

지밀원주의 가슴은 무거워졌다.


무영흔은 이미 지밀원의 가용 인원 모두를 이로운과 취소연에게 붙으라 명했다.

어차피 그가 본교로 향하는 것이라면 추격은 의미가 없다.

그가 혼절한다는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전원 투입 된 지밀원 중 누구라도 그의 주위에서 작은 약점 하나라도 찾아낸다면 그걸로 족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기에 이로운이라는 자는 너무 크고 높아 보였다.


‘이 균열.... 봉합할 수 있을까? 그 자는 균열 정도가 아니라 붕괴라고 할 만큼.....’


효지림은 물론이고 깨어난 쌍관과 오령기주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일월교가 처음 중원으로 들어 왔을 때 황실은 온통 탐관들의 놀이터였다.

무능한 황제는 주지육림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았고 탐욕스런 관리들은 백성의 고혈을 빨았다.

피폐한 백성들은 일월교에 의탁했고 무리를 지어 군집한 그들은 반발심에 반란을 꿈꾸었다.

다행히 군웅맹이 일월교를 몰아냈고 그 이후로 비밀리에 탐관오리를 척살했다.


무능한 황제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젊은 황제는 전대 황제를 눈 멀고 귀 멀게 한 간신들부터 쳐냈다.

황제는 군웅맹이 백성을 쥐어짜는 관리들을 암살하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 했다. 오히려 비밀리에 황제 직속 자검위를 조직해 직접 탐관들을 척살하게 했다.


황실의 대전은 정의로 채워졌고 백성들의 곳간은 곡식으로 채워졌다.

태평성대가 시작되었다.


황자들도 모두 훌륭했다.

품성도 곧고 지혜로운 첫째가 황제의 뒤를 이었고 태평성대는 계속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율리납이 복수를 꿈꾸며 일월교를 몰아 중원을 휩쓸기 몇 년 전, 갑자기 황제가 흔들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전대에서 이어진 비밀조직 자검위에서 시작 되었다.


*

“그.... 그걸 또 해 줄 수 있는가?”

“......”

“제발 부탁이네....”

“.......”

“아니! 명령이다!! 만인지상! 자검위는 황제의 명을 받들라!”

“.......”

“제발.... 제발..... 그걸.....”


황궁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중요한 곳.

황제의 침소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나오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뭔가? 뭐라도 주겠네! 그래! 자네가 황제 하시게! 황제 자리라도 양위해 주겠네! 여기! 여기 앉게! 대신 제발...!”


황제의 퀭한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침상에서 내려와 앞에 앉은 사내의 두 손을 잡고 침상으로 오르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제 직속 자검위의 위주인 그 사내는.


화제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제야 사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침상에 오르시지요. 오늘만입니다”

“오오! 고맙네! 자네는 정말... 신이네! 황제 위의 신!”


황제는 기듯이 침상에 올랐다.

사내가 일어나 황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사내의 손으로부터 이상한 기운이 퍼져 황제의 머리를 감쌌다.


퀭했던 황제의 눈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울먹이던 황제의 얼굴에 미소가 퍼지기 시작했다..

보통의 미소가 아니었다. 쾌락의 시작, 열락의 끝을 맛 본 자의 괴이한 미소.

입가로 침이 흘렀다.


“진정.... 당신은 신이옵니다.... 신...!”


황제가 덜덜덜 떨면서 존대를 썼다.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내일은 배, 백명을 바치겠사옵니다!


황제의 말에 사내가 나지막히 말했다.


“열이면 족하다.”


사내가 황제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황제는 두 눈을 스르륵 감으며 침상 위에 털썩 쓰러졌다.

오늘 밤에는 꿈속에서도 열락을 누릴 것이고 눈을 뜨면 더 큰 고통에 잠길 것이다.


품성 곧고 지혜롭던 황제는 어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도제룡이 떠났다. 죽은 게 아니라 떠났다.....“


율리납은 부서진 석좌에 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대전에 홀로 부서진 석좌에 앉아 있으면 정신이 맑아졌다.

어지럽던 생각들이 줄을 맞춰 정리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여전히 어지럽다.


‘도제룡이 떠났다. 죽은 게 아니라 떠났다. 목숨을 걸라 했으니 목숨을 걸었을 것인데.... 어찌 살아서 떠났단 말인가. 구차히 목숨을 구할 도제룡이 아닐진데....’“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 할 일이 끝나면 떠날 것입니다. 동쪽으로. 세상의 끝까지 가 볼 요량입니다.’


도제룡이 했던 말이다.

죽이거나 죽거나, 목숨을 걸라했는데 살아서 떠났다. 동쪽으로.


‘그가 할 일을 끝냈다는 뜻. 허나 죽지도, 죽이지도 못했다. 대체.... 왜?“


율리납이 눈을 떴다.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지금 그런 문제를 만났다.


이로운, 그가 그런 문제다.

그리고 답은...

이로운을 만나야 풀 수 있을 것이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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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0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7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2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3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7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59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6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1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9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4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8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4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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