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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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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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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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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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귀(2).

DUMMY

무림공적(武林公敵).


말 그대로, 무림 공공의 적.


그 네 글자가 가지는 힘은 지대하다.


누구든 이름 앞에 무림공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천하 무림인들의 표적이 되니까.


용모파기가 그려지고 목에 걸린 현상금,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까지 낱낱이 쓰인 수배지가 각 지역의 포도아문, 문파, 낭인, 심지어는 객잔에까지 걸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림공적이 체포되거나 척살되는 일은 드물었다.


왜냐하면, 무림공적이란 하나같이 괴물 같은 힘을 겸비한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야 될 수 있는 무림공적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수혼귀도 그랬다.


“칠여 년 전에 호북의 한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죽이면서 출현했고, 그 이후로 꾸준히 살겁을 일삼다가 무림맹의 별동대의 추격 대상이 된 모양이야. 하지만 그 이후로도 살아남았더군.”


왕필은 수혼귀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소일도를 위해 차근차근 악인의 전적에 대해 설명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검수였다고 하네. 추정 경지는 절정경 이상이고.”


절정경.


소일도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일류고수의 다음 단계로, 적가장주와 같은 수준이었다.


자신의 무(武)를 이해하고, 그 이전의 고수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존재. 절정경쯤 되면 강호 전체로 따져도 얼마 존재하지 않았다.


복건 삼대세가였던 적가장의 장주로서도 손색이 없는 경지였고, 절정 중에서도 극후반에 달하면 천하백대고수(天下百隊高手)의 한 축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수혼귀가 그 정도는 아닌 듯했지만, 어찌 됐든 고수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소일도는 덤덤하게 말했다.


“적가장주의 폐관 직전에 접촉했고, 그 폐관 뒤로 적가장주가 무사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마공을 가르친 건 그놈인가.”

“정황상으로는 그렇지.”


왕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확신을 얻은 소일도가 덧붙였다.


“확실히 마공의 이해도가 낮았소. 마지막에는 마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했지. 폐관수련으로 익혀서 한 번도 써볼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말이 되는군.”

“음, 그리고 또 한 가지.”


왕필이 검지를 펼치며 말했다.


“수혼귀라는 놈, 흑사방주와도 만난 적이 있었네.”

“흑사방주와?”

“그래. 시기상으로는 적가장주와 접촉한 직후였어. 흑사방이 생긴 것이 삼 년 전, 적가장주가 폐관에 들어간 것도 삼 년 전. 계축년(癸丑年)의 일이네.”

“......”


흑사방주는 수혼귀와 만난 후 흑사방을 세웠고, 적가장주는 마공을 익히고 복건제일가를 꿈꾸며 무사 시험을 치렀다.


두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가?


“흑사방은 납치한 여인을 적가장 팔아 돈을 받았소. 그 돈으로 화염공에 필요한 영약을 사들였지.”


소일도가 중얼거렸다.


“적가장은 흑사방으로부터 여인을 제공받았소. 여인들을 음기를 갈취해서 마공을 익혔고.”


둘은 상호 간에 거래를 했다.


마치 서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흑막(黑幕)이 있었군.”


흩어져 있었던 조각들이 소일도의 머릿속에서 맞춰지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졌다.


소연을 죽인 것은.

설화은 부인을 납치해서 창기로 판 것은.

아버지 철방주의 삶을 무너뜨리고, 처참하게 죽인 것은.


소일도의 눈빛이 흉흉한 살기로 차올랐다.


모든 원흉이 거기에 있었기에.


그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물었다.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흐음.”

“또 대가가 필요한가?”


친분을 쌓았어도 일은 확실해야 하는 법.


소일도는 검 끝으로 자신의 손가락 지문을 살짝 베어서 내밀었다. 혈서라도 쓰겠다는 듯했다.


하지만 왕필은 고개를 저었다.


“대가도 대가지만, 수혼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워낙 신출귀몰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출현한 것이 벌써 일 년도 전의 일이라서.”


하긴, 무림공적의 소재 파악이 그렇게 쉬우면 무림공적이 아니었다.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곧 무림맹에서 자네에게 적가장 건에 대해 치하를 하러 올 걸세. 그때 수혼귀의 추적을 의뢰하는 것은 어떤가?”


왕필의 의견은 합당했다.


마공과 관련되었다고 하면 바쁜 무림맹에서도 다시 한번 추격대를 편성할 것이다.


그것도 척살에 실패했던 전보다 훨씬 강한 인력들로.


“사도련에도 내 쪽에서 한번 요청해 보지. 다른 건도 아니고 마공이 관련되어 있으니만큼, 단칼에 거절하지는 않을 걸세.”


무림맹에 사도련은 현 무림을 대표하는 양대산맥이다.


그런 무림맹에서 동시에 조사가 들어가고, 사도련에서도 추적하여 쫓으면, 제아무리 수혼귀라 해도 살아남기는 어려우리라.


이만하면 최선이자 동시에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소일도는 잠시 생각했다.


그는 한 날, 한 시라도 그놈이 편히 살아있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최선책을 내놓았음에도 도저히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두 세력은 거대 세력이다.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실력만큼은 믿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철저하고 복잡했기에.


당장 떠오르는 절차만 해도 열 손가락을 가볍게 넘기는데, 무림맹과 사도련이 동시에 움직인하고 하면 나름의 알력 다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는 직접 하고 싶었다.


얼마간 검파에 손을 올려놓고 고민하던 소일도가 고개를 들었다.


“무당파 장로들,”


그 말에 왕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어쨌다는 건가?”

“너무 빨리 왔소. 무당파가 위치한 호북(湖北)만 해도 이곳 복건까지 강서(江西)라는 성(省) 하나를 끼고 있지 않소?”


소일도는 지금까지 소가철방이 있는 남정현에서 복주까지 거의 쉬지 않고 왔지만, 아직도 복건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하나의 성은 넓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쉬지 않고 걸어도 달포는 넘게 걸릴 거리를, 허겸과 허동은 적가장이 멸문하고 고작 하루 만에 찾아온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그들은 무려 무당파의 원로들이네. 자네도 절정경에 올라보면 알겠지만, 이 수준부터 거리는 문제가 아니야. 무위와 함께 경공술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단 말일세.”


얼핏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지만, 소일도에게는 이미 전생에 절대지경까지 올랐던 고수의 기억이 있었다.


소일도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절정경이라 해도, 반 주야 만에 호북에 있는 무당파에서 복주까지 주파할 수는 없소. 그 위의 초절정이라면 모를까.”


역시, 왕필은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당장 절정경인 자신이 반 주야에 호북부터 복주까지 도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운종(梯雲縱)으로도 불가한가?”


왕필은 자신이 물어놓고도 어이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젊은 사내는 뛰어나긴 하지만, 아직 절정경에도 올라본 적 없다.


그런데 마치 절정경을 아는 것처럼 말했고, 이에 자신은 또 정말 자문을 구하듯이 묻고 있지 않은가?


제운종이란, 구름을 밟고 뛰어오른다는 무당파 특유의 경공이다. 자주 세간에서 말하는 ‘경공만큼은 무당이 제일(第一)’이라는 말이 곧 제운종을 뜻했다.


하지만 소일도는 제운종은커녕 무당의 무공을 겪어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왕필은 스스로도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일도의 대답은 여전히 확고했다.


“제운종이라도 불가능하오.”

“......”


마치 이미 안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안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필이 물었다.


“제운종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고 봐야지.”

“그건 또 무슨......”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저 애매한 대답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걸 깊게 파고들면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왕필은 의문을 털어버리고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두 장로는 복건 근처에 있었을 거요. 적가장의 소식을 듣고 바로 출발했겠지. 그리곤 마공에 관해 두 가지를 묻고 깔끔하게 떠났소.”


질문은 두 가지였다.


마공은 어땠는지.


적가장주에게 마공을 가르친 배후에 대해 알아낸 게 있는지.


이 질문들로 봤을 때, 그리고 아직 무림맹에서 지령이 내려오려면 한참이 남은 시점임에도 그들이 성급하게 떠났다는 점에서 미루어 봤을 때.


“내 생각은 이렇소. 그들은 마공에 관련된,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누군가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것이 수혼귀라는 말인가?”

“그렇소.”


왕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뒤 그는 골치 아픈 듯이 마른 세수를 하더니, 마지막으로 말했다.


“억측일 수도 있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성일 뿐이야.”

“어차피 기다려야 하잖소.”

“끄응......”


뒷머리를 벅벅 긁은 왕필이 집무실로 들어가며 소일도에게 손을 내둘렀다.


“수련이나 하고 있게. 허동과 허겸, 두 장로의 행선지를 조사해 보지. 도사들 산책이야 예사로이 있는 일이니까, 굳이 흔적을 지워가며 이동하지는 않았을 걸세.”


물론 소일도의 추측이 맞다면, 누군가를 추격하고 있으니 세부적인 경로는 지웠겠지만 말이다.


동시에 들키면 안 되는 극비 임무라는 뜻이니 대략적인 행선지는 보란 듯이 흘렸을 거였다.


“고맙소.”

“젠장. 고생을 사서 하는군. 자네가 죽어서 계약서가 무용지물이 되면 어쩔 텐가? 위험수당 값으로 계약서 한 장 추가할 테니 각오하게.”


그렇게 말한 왕필이 집무실의 문을 탁 닫았다.


그날 온종일 그의 집무실에서 전서구가 날아갔다 도착하기를 반복했다. 하오문도들은 집무실을 들락거렸다.


* * *


몇 시진이 지나지 않아, 왕필이 집무실에서 나왔다.


어둠살이 내려앉은 축시(丑時: 오전 1~3시), 고요한 새벽이었다.


하지만 침소에 들지 않고 집무실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것은 소일도였다.


그가 눈을 스르르 떴다.


“어디요?”

“광서(廣西).”


고개를 끄덕인 소일도가 몸을 일으켰다.


소연심법을 닦느라 풀어놓았던 낡은 검도 챙겨서 허리춤에 찼다. 며칠 새 녹을 벗겨내고 잘 갈고닦아서 이제 검신은 새것 같은 검이었다.


그 검을 본 왕필이 새삼 말했다.


“검을 보는 눈이 있군. 잘 골랐네.”

“이래 봬도 철방 자식이오.”

“내게 말하면 개인적으로 모은 것들 중 하나를 내어줬을 텐데.”


하긴, 일전에 찾아왔던 여가에서 왕필이 애도가라고 했었다. 분명 훌륭한 검이 많으리라.


하지만 소일도는 그 사실을 알고도 사양했다.


“내 아버지는 야공(冶工: 대장장이)이셨지만, 검의 품질은 검수가 죽을 때 검을 탓해야 할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셨소. 명검은 독약(毒藥)이라.”

“무슨 의미인지 알겠군.”


명검은 다른 검들과 다르기에 명검이다.


명검의 감각에 익어버리면, 점차 그 검에 의존하게 되고 검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게 되는 것이다.


검수는 역설적으로, 검에 집착하다 죽는 경우가 많다.


떨어진 검을 줍거나, 빼앗긴 검을 회수하려고 한다거나, 어딘가 박힌 검을 뽑으려다가 허점을 드러내는 경우들은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한 말이리라.


“명검을 만드는 분은 아니셔도, 내게는 제일가는 명장(名匠)이셨지.”


기교 없이 검다운 검을 만드는 야공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검수라.


왕필은 어쩐지, 우직한 소일도의 면모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다음번에는 계약서 내용을 이행하러 오겠소.”


등을 돌려 하오문을 나서려는 소일도.


그 등에 대고, 왕필이 말했다.


“나도 가겠네.”


소일도가 그를 슥 뒤돌아보았다.


“하오문은 어쩌고?”

“별일이 없을 테니 총관에게 맡겨놓으면 되네. 이미 하오문주에게 허가도 받았고. 문도들에게도 이미 말을 전해놓았어.”

“잘 됐군. 짐을 챙길 시간이 필요한가?”


왕필이 씩 웃었다.


“이대로 가세.”


캄캄한 새벽, 별하늘 아래서 두 사내가 하오문을 나섰다.


선선한 밤공기가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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