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처럼 부서진 약속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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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우는피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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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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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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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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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기 마련이다 (6)

DUMMY

한 달 후. C구역 백설 휴게 공간.


백설이 소파에 앉아있다. 소파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본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빈 천장에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그동안 일이 많았지.’

백설이 중얼거린다.


금고를 열고 난 후 그 안에 있는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료들이 사라지면 허 센터장이 의심할 것에 대비해서, 건강센터 센터장실에서 자료를 복사한 후 원본은 두고 복사본을 가지고 가서 조사하는 식이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허 센터장은 그동안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의 약점을 착실하게 모으고 있었다. 의외인 점은 변 박사보다 한 박사에 관한 자료가 많다는 것이었다. 백설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어서 자신에게 더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으로 추측했다.


‘아니. 애초에 한 박사님을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거야.’

하지만 변 박사의 생각은 달랐다.


변 박사는 말했다. 한 박사는 변 박사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허 센터장이 무어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변 박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고 허 센터장은 한 박사가 그러리라는 것을 알고, 한 박사와 가깝게 지낸 것이라고 한다. 그저 변 박사를 견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한 박사가 자기 꾀에 넘어가는 때가 오면, 가차 없이 버리려고 했겠지.’

변 박사가 말했다.


변 박사가 덧붙였다. 허 센터장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한 박사가 변 박사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 보니 한 박사는 온갖 잘못된 일을 저지르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만약 한 박사의 만행이 밝혀지게 된다면, 그걸 두고 지켜 보고 있었던 허 센터장에게도 불똥이 튀게 될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한 박사를 쳐내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게 다른 사람 눈에도 잘 보였어요?’

백설이 변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서 물었다.


변 박사는 그 말에 생각에 잠긴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같이 지낸 세월이 있는데 설마 그랬을까 싶었는데, 이번 일 겪고 나니까 확실해졌어.’

변 박사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변 박사는 한 박사가 허 센터장이 선물한 술에 담겨 있던 ‘그림자’를 먹고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 일을 조사하면서 끈끈하게 보였던 두 사람의 사이가 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를 의심했고, 그 결과 애초에 허 센터장에게 한 박사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기 좋은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한 박사님도 불쌍한 인생이네요. 자기 편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언제든 뒤통수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백설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백설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자기가 믿고 충성을 다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마음 아픈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한 박사님이 한 행동이 이해된다는 건 아니에요.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쳤는데 이해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백설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한 박사를 용서할 이유는 아니었다. 허 센터장이 무언의 압박을 했든 말든, 결국 그걸 행동에 옮긴 사람은 한 박사다. 자기 의사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니 분명 잘못한 것이다.


후.


백설이 깊은 한숨을 쉰다.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니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성하 일도 곧 밝혀질 거라고 했지.’

백설이 중얼거린다.


자료를 찾고 난 후 의미 있는 다른 일 하나는 성하에 관한 일이었다. 그동안 변 박사가 가지고 있는 증거로만은 허 센터장과 한 박사의 범죄 사실을 밝혀내기가 어려웠다. 성하가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있어도, ‘누구’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금고에는 ‘누구’에 관한 증거가 있었다. 아마 허 센터장은 한 박사가, 한 박사는 허 센터장이 그 ‘누구’라고 보일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가, 한 박사가 가지고 있던 게 이 금고로 옮겨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의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서로를 믿지 못한 거였어.’

백설이 말한다.


하.


백설이 실소를 터뜨린다. 서로 같은 편이라며 붙어 다닌 것치고는 결말이 참 우스웠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게 된 것이니 말이다.


‘이제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아야지.’

백설이 생각한다.


백설은 한 박사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한 박사가 깨어나면 왜 쓰러지게 되었는지를 알려줄 셈이었다. 그래서 허 센터장과 느끼고 있던 유대감을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지 두 사람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서 깨어나야 할 텐데.’

백설이 말한다.


한 박사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허 센터장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일주일 후.


지이잉.


스마트워치에서 진동 소리가 들린다. 백설이 스마트워치를 집어 든다. 변 박사에게 전화가 왔다.


백설이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차분히 변 박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박사님이 깨어나셨다고요.”

백설이 덤덤하게 말한다.


백설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다시 현재. 저녁. A-1구역.


저벅. 저벅.


백설이 1층 로비로 들어선다. 운영 시간이 끝난 후라 건강센터가 고요하다. 걸어가다 보니 로비 가운데에 있는 나무 앞에 다다른다. 변 박사가 나무 앞에 서 있다.


“안녕하세요.”

백설이 인사한다.


변 박사가 뒤를 돌아본다. 백설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짓는다. 백설이 변 박사 옆에 나란히 선다.


“이제 퇴근한 거야?”

변 박사가 묻는다.

“네.”

백설이 말한다.

“아무리 센터가 시끄러워도, 센터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네.”

변 박사가 말한다.

“그러게요.”

백설이 말한다.


백설이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고 검사가 비밀금고에 있는 자료를 가지러 센터에 왔었다. 허 센터장이 체포된 데에 이어, 서주지검에서 사람들이 나오자 센터가 술렁였다. 그렇지만 센터는 그 일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잘 굴러갔다. 허 센터장이 아니어도 센터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센터는 어떻게 될 거 같아?”

변 박사가 묻는다.

“잘못한 일을 한 사람들이 그에 따른 벌을 받게 되겠죠. 그러면 센터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죠.”

백설이 말한다.

“그렇겠지.”

변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변 박사는 생각한다. 자신이 그동안 경계에 있었다고 말이다. 자신이 나서서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허 센터장과 한 박사가 잘못된 일을 저질렀을 때 나서서 말리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자신은 뚜렷한 가해자는 아니지만, 방관자는 맞기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만약 자기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후.


백설이 작게 한숨을 쉰다. 어느덧 길었던 싸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C구역 백설 휴게 공간.


백설이 변 박사와 헤어진 후 C구역으로 왔다.


허 센터장과 한 박사 일 때문에 한동안 바쁘게 지내다가, 이제 여유가 생기니 왜인지 허전하다. 아직 할 게 더 남은 것 같은데, 무언가 빠진 것 같은데, 하는 생각 때문에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이던 백설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거실을 둘러본다. 창을 통해 달빛이 들어온다.


지이잉.


진동 소리가 들린다. 백설이 손을 뻗어 스마트워치를 집는다. 세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전화를 받는다.


“어. 무슨 일이야?”

백설이 묻는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세아가 말한다.

“그래? 나돈데.”

백설이 말한다. 건너편에서 세아가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자료 조사하겠다고, 뭐라도 하나 알아내겠다고, 바쁘게 지내다가 이제 우리가 할 게 다 끝났다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하지 않냐?

세아가 묻는다.

“응. 이상해. 진짜 끝난 게 맞나 싶어서 얼떨떨하기도 하고.”

백설이 말한다.

―나도 그래. 아직 해야 할 게 많은 것 같은데 말이야.

세아가 말한다.


백설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제 백설과 세아가 할 일은 재판장에 서서 증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봤던 것과 경험했던 것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며, 허 센터장과 한 박사의 만행을 밝혀내는 데 도움을 주는 일만 남았다.


―너는 이번에 증거 찾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있어?

세아가 묻는다.

“너무 많아서 하나 고르기가 어렵네.”

백설이 말한다.

―나도 그런데, 나는 좀 충격적이었던 게 있어.

세아가 말한다.

“어떤 건데?”

백설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세아의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생각을 정리 중인가 보다.


―변 박사님이 피가 초록색이라는 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놀랐어.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너가 ‘블루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꺼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내가 옆에서 너무 밀어붙인 건 아닌지 조금 후회가 되더라.

세아가 말한다.

“그랬구나.”

백설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아가 ‘블루문’에 대해 변 박사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게 이해가 되었다. 백설도 그 감정을 느꼈으니까. 그래도 변 박사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이용해야 한다’라고 말했기에, 백설은 그런 마음을 조금은 덜었다. 변 박사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면서까지 유리한 위치에 서려고 하는데, 자신이 그 부분을 걱정해서 주춤하다가 일을 틀어지게 할 수는 없다고 마음먹으면서 말이다.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아. 변 박사님이 각오하고 한 일이었고, 그 일은 잘 끝났으니까.”

백설이 말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지.

세아가 말한다.




―참, 근데 너는 허 센터장님께서 능력이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았냐?

세아가 침묵을 깨고 묻는다.


백설은 하회탈이 ‘변 박사가 피가 초록색이다’라는 사실을 폭로하기 전, 세이와 만났을 때, ‘변 박사가 능력이 있다’라는 것을 넌지시 말하고 난 후, ‘허 센터장이 능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세아는 그때를 떠올리며 백설에게 물었다.


“아, 그거. 사실 허 센터장님께 내 능력을 몇 번 쓴 적 있었는데, 안 먹히더라고. 그래서 능력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능력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때부터 의심했는데 너가 허 센터장께서 ‘초능력 연구회’에서 일했다고 이야기한 걸 듣고, 이거구나 싶었지.”

백설이 말한다.

―연구회에서 일하면서 후천적으로 능력을 만들었다고?

세아가 말한다.

“응. 허 센터장님께서 능력에 관심이 많잖아. 그러니 그 정도는 했겠다 싶었지.”

백설이 말한다.

―그랬구나.

세아가 말한다.


백설이 생각한다. 허 센터장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초능력에 관한 관심을 넘어서서 자신이 초능력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백설이 작게 고개를 젓는다. 자신이 관심 있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에는, 큰 집착을 한다는 게 다시금 느껴졌기 때문이다.




백설이 시간을 확인한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은 금방 흘렀다. 내일을 위해 슬슬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백설이 세아와 전화를 끊는다. 거실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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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63 공든 탑이 무너지나 (3) 23.11.01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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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058 드러나는 연기의 정체 (3) 23.10.25 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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