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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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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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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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7)

DUMMY

“후우우우.”


장탄식을 늘어놓으며 백원의 풀 속에 파묻힌 이찬이 그 옆에 같이 엎드려있는 풍백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왜 풀이 자라죠?”


그러자 풍백이 칼같이 답했다.


[난들 아나.]


“아니 신이 그런 거 하나 몰라요?”


[그런 거 하나까지 알면 진짜 신이 되는 거지.]


비늘 한 쪼가리를 찾기 위해 풀숲을 헤친 것도 어느덧 한 시간.

무수히 많은 풀을 헤치는 것은 둘째치고.


“아니 왜 풀이 자라냐고!”


이찬과 풍백이 헤친 풀은 십 초도 안 돼서 다시 자랐다.

오죽하면 「폭풍」을 발현하고 헤쳤는데도 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높아질 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비늘은커녕 용의 코털 하나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바스락.


풀을 짓이기며 반대로 몸을 뒤집은 이찬의 몸이 대자가 되었다.

그러고는 이찬이 풍백을 불렀다.


“풍백.”


[응?]


“잠깐 저 따라와 봐요.”


풍백은 이찬의 등을 따라 걸었다.

이찬의 낮은 등을 보며 걷는 풍백은 어딘가 애틋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느낌뿐이었다.

이찬을 보고 있으면 그때 그 제우스의 주민 키트리노스의 손에 죽었던 아이가 떠올랐다.

마지막 풍백의 주민.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신은 그래서는 안 된단 걸 알지만, 그 아이만 생각하면 분노와 안타까움이 동시에 폭풍 속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아.]


마음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풀어내려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던 풍백의 앞에 무언가 부딪혔다.


[뭐냐?]


물론 그것은 다름 아닌 이찬이었다.

백색의 하늘을 본 채 걷고 있던 이찬의 걸음이 멎어 바닥을 한번 보고는 이번에는 걷던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걷기 시작했다.


[뭐야.]


대거리할 수도 있었지만 풍백은 말없이 그의 등뒤를 지켰다.

어떨 때는 왼쪽으로, 또 어떤 때는 오른쪽으로, 왔던 길을 다시 가기도 했고 하염없이 무작정 걸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풍백은 말 한마디 않고 그의 곁에서 함께 걸었다.


사락.


그때, 이찬이 걷던 자리에 주저 앉아 작게 풀숲을 헤치기 시작했다.

풍백은 그를 말없이 지켜봐 주었다.

바스락거리는 작디작은 소리가 한없이 넓은 백원의 내부를 채웠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

하나 세상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

생각없이 행했던 일이 눈처럼 불어나 화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풍백이 지켜본 이찬의 행동은 분명 득이 될 것이다.

신의 직감이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얼마 가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찾았다!”


망상에 빠져있던 풍백이 어느새 이찬의 옆으로 와 그의 손에 쥐어진 그것을 보았다.

덕지덕지 풀이 붙어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비늘이었다.

백룡의 흰 비늘.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던 풍백이 이찬에게 물었다.


[어떻게 찾은 거냐?]


그러자 이찬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


[눈?]


“네, 눈.”


30분 전.


바스락.


풀을 짓이기며 반대로 몸을 뒤집은 이찬의 몸이 대자가 되었다.

덕분에 그의 눈은 자연스레 하늘로 향했고, 하늘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백색 공간에 떠 있는 ‘공포의 눈’이 보였다.


“응?”


그런데 눈이 평소 보던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평소 눈이 무언가를 찾는 듯, 정확히는 이찬을 찾는 듯 쉼없이 움직이는 것과 달리 지금 눈은 한곳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그곳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을 일으킨 이찬이 눈이 가리키는 것 같은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동공이 응시하는 곳을 따라 걸었다.

앞뒤 좌우 방향을 맞추며 걷다 보니 마침내 동공이 정확히 중앙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박.


바닥마저 하얀 흙을 밀어내자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이찬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집어 올렸다.

반짝거리는 백룡의 새하얀 비늘을 보며 드디어 목표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기분을 느낀 이찬이었다.


[그랬던 거였군.]


“이제 밖으로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래. 좀 오래 있긴 했지.]


“나중에 벨리알이랑 싸우게 되면 또 부르겠습니다.”


[그럴 때만 부르지 말고 경사 날 때도 좀 부르거라.]


“상황 보고요.”


킥킥대며 웃은 이찬이 ‘공포의 눈’과 마주쳤다.


{목적지를 말하라.}


여전히 골 울리는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전보다는 버틸 만 했다.


“태극본성.”


그의 몸이 백색으로 변하여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찬의 팔이 사라지기 직전 그가 바닥에 있는 풀을 한 움큼 뜯었다.


“이따 봅시다!”


풍백은 대답했으나 이미 이찬은 떠난 후였다.


[막무가내로군.]


풍백은 미련없이 뒤로 돌아 자신의 행성을 향해 걸어갔다.


***


“후!”


이찬이 상쾌한 듯 기지개를 한번 펴고 비늘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자신의 주먹 쥔 왼손을 바라보았다.

꽉 쥔 주먹의 안에는 못생기게 삐져나온 하얀 풀들이 있었다.

서서히 주먹을 펼치자 흰 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백초들은 이내 부끄러운 듯 검게 물든 재로 화했다.

하지만 이찬은 이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락.


이찬의 오른손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찬의 손엔 책의 일부를 뜯어 놓은 듯한 작은 종이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정자로 쓰인 한 문장이 이찬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찬은 그것을 소리 내어 읊었다.


“꽤나 빠르게 목표치에 도달했군. 쿠에비코 녀석 쓸데없는 말을 했어. 하나 아직 조금 부족하다. 나를 담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릇을 만들어 놓아라.”


아무리 봐도 백룡이 남긴 쪽지였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려 주고 하라고 해야지.”


투덜거리긴 했지만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든 이찬이었다.

이어 이찬은 공방으로 복귀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 시스템을 보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시스템의 디스플레이를 휙휙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볼 게 없어.”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인기 동영상’ 탭.

이찬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눌러 인기 동영상 목록을 훑었다.

그때, 1위의 영상이 눈에 띈 이찬은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을 틀자마자 날카로운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영상을 본 이찬의 얼굴엔 당혹감이 짙게 어렸다.


“이게 무슨······.”


그 영상의 주인공이 지금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 즉 이찬이었기 때문이다.

3군단장과 치열한 혈전을 벌였던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중계되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조회수는 사천만 회에 댓글은 육만 개로 미쳐버린 인기를 체감하는 이찬이었다.

이찬은 댓글창을 켜 반응을 살펴보았다.


-와 네노쿠니면 미친 놈들 소굴 아님?

-ㄹㅇ 저기서 살아 돌아오기는 했냐?

-오 근데 쟤 잘생겼다.


대부분 이찬을 칭찬하거나 군단장의 압도적인 무위에 감탄하는 댓글이 주를 이루었다.

이찬이 뒤로가기를 눌러 2위의 영상을 클릭하자 이번에는 가스페르의 전투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스페르의 전투를 본적이 없던 이찬은 자연스레 영상을 시청했다.


챙!

퍼억!


활을 저렇게 쓰니까 내구도가 박살이 나지.


사슬낫을 활로 막고 활을 검처럼 사용하는 가스페르를 보다 보니 문득 이찬은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1위에서 5위까지의 영상이 각기 다른 이찬 일행의 네노쿠니 전투였다.


“이런 미친!”


황급히 영상을 끄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은 진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구나.”


따지자면 신세한탄에 가까운 혼잣말 후 이번에는 6위의 영상을 틀었다.


촤악!

서걱.


이전의 영상들과는 확연히 다른 잔혹함과 혈향이 영상을 붉게 물들였다.


“어우.”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이찬이 영상을 넘기려던 순간, 그의 눈에 누군가의 목을 잔혹하게 썰어버리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이찬은 얼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영상을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섬뜩함과 당혹감이 이찬의 전신에 어렸다.


“아윤······?”


아무렇지 않게 영혼들의 목을 썬 사람은 아윤이었다.

벨리알의 휘하에 들어가 혹독한 수련을 받았을 거라고는 예측했건만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혹독한 참변에 이찬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우사와 이노가 복귀하고 기도와 인시터애로우의 수리가 끝난 후 약간의 격 수련만 더해진다면 벨리알에게서 아윤을 구하는 것도 그리 힘들진 않을 것이었다.

미련없이 시스템을 닫은 이찬이 자신의 모든 격을 발현해 수련을 시작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삼십 분만 수련하다 가자.’


넓은 공터에서 주먹에 격을 담은 이찬이 주먹을 내지르자 주먹에서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미칠 듯한 격이 발출되었다.

공터에 먼지바람이 일었고 그 틈을 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모의 전투를 이어갔다.

그의 발차기가 상대의 목을 강타했고 기로 이루어진 임의의 검을 생성한 이찬이 상대의 목에 칼을 질렀다.


‘벨리알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쩌면 이찬이 부딪혔던 존재들 중 가장 강할 수도 있었다.

아니, 가장 강할 것이다.

괴물을 이기려면 괴물이 되거나 괴물을 사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휘익!


삼십 분만 수련하고 간다는 이찬의 다짐이 무색하게 바람 가르는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고 해가 지고 서늘한 달빛이 공터에 들 때까지 이찬의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아윤의 무사 귀환을 위해 이찬은 밤새 격을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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