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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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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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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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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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6)

DUMMY

소스라치게 놀란 가스페르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며 깨어났다.


‘평생 몇 번 안했던 기절을 여기 와서 얼마나 하는 거야.’


이어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맛든 국밥을 흡입했던 가게의 안에 들어와 있었다.


“몸은 좀 괜찮나?”


가스페르가 고개를 돌려 그의 옆을 보자 화랑의 복장을 갖추고 저를 향해 질문하는 강환중이 보였다.


“내 제자 놈이 사고를 쳤군. 사실 자네가 <켈트>에서 오지 않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네. 그저 자네한테 관심이 가 내 제자와 붙여보고 싶었다고 할 수 있지. 미안하네.”


강환중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사죄와 동시에 사례를 약속했다.


“내 불찰로 이어진 일이기에 본디 이기시면 받는 국밥 한 그릇과 사만의 상상력을 지급해 주겠네.”

“예?”


딱 보아도 강환중이 굉장한 부자임을 가스페르는 직감했다.

그렇기에 이 승부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적지 않은 용돈을 챙길 것이라 생각하긴 했다만 40000이라니.

참고로 가스페르가 먹었던 국밥 한 그릇의 가격이 200상상력이다.

다시 말하면 가스페르는 저 상상력으로 국밥을 400그릇 먹을 수 있다는 것.

당황한 가스페르가 손사래 치며 거절했다.


“너······너무 많습니다. 반절만 주셔도 감읍할 따름인데.”

“마지막에 가스페르 자네를 공격해 기절시켰던 격은 누군가를 제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격이 아니네.”

“······”

“철저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특수로 제작된 격이지. 놈이 숙련도가 부족하고 자네의 대처가 최선이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사례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


‘이게 어떻게 턱없는 금액이냐.’ 라고 반론하려던 가스페르가 벌렸던 입술 사이를 다시 닫았다.


“그럼······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죄를 받아줘서 고맙네. 그리고······.”


저벅저벅.


누군가 천막을 걷고 국밥집의 내부로 들어왔다.

아까 자신과 겨뤘던 승현이었다.

승현은 들어오자마자 구십 도로 고개 숙여 가스페르를 향해 사과했다.


“제 불찰과 쓸모없는 호승심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으신 가스페르 님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가스페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승현을 일으켜 세우고는 말했다.


“아닙니다. 덕분이 많이 배웠습니다.”


단순 걷치레가 아니다.

가스페르는 승현으로부터 미지의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과 격 활용, 상상력의 분배 등 많은 것을 배웠다.

타고난 전투 센스와 관념화 덕에 그 기법들을 스펀지처럼 모조리 흡수한 가스페르의 수준은 한층 더 높이 올라갔다.


“그······국밥은 나중에 먹어도 됩니까? 지금 빨리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

“물론이네. 외상해 놓을 테니 언제든지 와서 먹어도 되네. 상상력은 지금 바로 입금해 놓겠다.”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음?”

“그 무기 공방으로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


그 시각 이찬은 마철의 공방 가장 안쪽에 자리잡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했다.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파공음을 애써 무시하며.


‘새로운 비늘을 얻기 위해서는 그때 백원(白原)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만나야 했다.

기절해 존재감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

풍백.

사실 풍백은 자신의 행성이 고쳐지고 난 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말이라고는.


-고생했네.


아무런 단서도 되지 않고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주민.

신은 본디 신을 추앙하고 신뢰하는 이들의 상상력이 모여서 존재한다.

그런데 풍백의 행성이 황폐화되면서 풍백은 상상력의 공급을 거의 받을 수 없었고, 이찬이 겨우 황폐화를 막아 준 덕에 새 주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풍백은 새 주민을 구하는 데 전전긍긍할 것이었다. 그러나 풍백은 어쨌든 이찬의 내면에 있는 상태.

풍백을 불러내든, 자신이 내면으로 들어가든 만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가부좌를 푼 이찬이 공방의 밖으로 나와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는 공터의 한가운데 다시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이찬은 아까와 다르게 눈을 감지 않고 저 드높은 하늘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하늘에서 이찬을 좌시하는 ‘공포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무섭지도 않은데, 공포라고 부르지 말까?’


잡념도 잠시 이찬이 마음속으로 백원을 외쳤다.

그런데 눈은 이찬을 백원은커녕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찬이 그런 눈에 의문을 한가득 품을 때쯤.


{장소를 말하라.}


기괴하고 흉측한 굉음이 이찬의 귀에 틀어박혔다.


“크윽!”


겨우 한마디에 이찬이 신음과 코피를 흘렸다.

광포했기에 듣기 힘들었지만, 광포했기에 그 문장을 더없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찬은 망설임 없이 눈을 마주보고 외쳤다.


“백원!”


그러자 그의 몸이 흰색으로 명휘했다.

이전의 황금빛이 아닌 설백으로.


눈을 뜬 이찬은 공터의 가부좌 상태 그대로였다.

바스락거리는 풀들을 밟으며 일어난 이찬은 감탄했다.

모든 것이 하얀 세상.

존재해서는 안될 하얀 잡초들.

이 모든 것이 백원은 허상의 세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풍백!”


이찬이 목청 터져라 풍백을 불러 보았으나 풍백은커녕 바람 한 자락도 느낄 수 없었다.

이찬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백원을 걸었다.


바스락. 바스락.


이 풀을 자신이 밟아 내는 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밟아 내는 소리인지 구분도 하지 못한 채 백원을 걸었다.


백원은 걷고 걸어도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 숨겨진 비늘을 찾아보라는 듯 백원은 끝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찬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격을 발현해 한 움큼, 한 움큼 백초(百草)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촤악!


백초 뽑히는 소리가 마치 피가 낭자하는 소리와 같았다.

격을 발현해 무수히 많은 풀을 뽑는 이찬의 표정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혹여나 바닥에 흩뿌려진 비늘이 없을까.

그걸 내가 놓친 건 아닐까.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백초를 뽑는 이찬의 모습은 실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풀을 뽑은 지 삼십 분이 조금 넘었을까.

해탈한 표정으로 풀이 없는 한쪽 구덩이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라고는 했지만 그건 하늘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하얀 벽.

하얀 벽만이 이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하얀 벽에 검붉은 눈이 이리저리 무언가를 찾는 듯 움직였다.


‘저게 언제 익숙해진 거지.’


이젠 눈이 밖으로 걸어 나와서 인사를 건넨다 해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아까 그 괴이한 말은 빼고.


“으아아악!”


하늘에 대고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다시 일어나 풀을 마구마구 뽑기 시작했다.

누군가 남겼을 발자취를 따르며.


바스락.


이 풀 밟는 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아는 이찬이 뽑던 풀을 꼭 쥐며 그대로 굳었다.


[저게 뭐냐.]


이어 들려오는 신언에 이찬은 뽑던 풀을 내팽개쳤다

전보다 분명 더 웅혼하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 익숙하고 낯익은 신언은 모든 신 중 단 한 명이었다.

뒤를 돌아본 그곳에는 푸르고 흰 생활 한복을 입고 전형적인 동양의 미남 모습을 하고 바람을 부려 공중에 떠 기분 나쁘게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풍백이 이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백!”


한껏 풍백을 부르며 달려간 이찬은 풍백의 앞에 섰다.


“어디 계셨어요? 그릇도 새로 구하셨네요?”


[어디는. 주민을 구하겠다고 했지 않느냐. 그릇이야 주민을 구하다 보니 이리 되었구나.]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반가움에 그런 말을 한 것 같이 믿게 되었다.


“네. 근데 어떻게······?”


[내 행성이 너의 통제를 벗어나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더군. 서른의 주민을 입성시켜 교육까지 끝내 놓은 상태다.]


절대적으로 많은 수치는 아니었으나 몰락을 감안한다면 서른이라는 숫자도 과분했다.


[수는 별로 안 되지만 상상력은 대부분 복구했다.]


“다행입니다.”


[그 마왕인지 마신인지 이길 수 있을 정도는 되지.]


다른 신이 말했다면 허세 아니냐고 되물었을 테지만 풍백은 저 지고한 천신.

거짓말일 리도 없었고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한들 그가 강한 신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여긴 무슨 일로 왔나?]


“그······.”


말하기 조금 그렇다는 듯 얼버무리자 풍백이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기십니까?”


[아, 아니다. 비늘을 구하기 위해서 왔지?]


“예?”


[내가 아무리 너한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마철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밖을 보지 않을 수 있겠나.]


“염탐도 가능합니까?”


[물론이지 지금은 네가 너 자신의 내면에 들어온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밖을 볼 수는 없지만 평소라면 시스템을 켜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지.]


“······꽤나 충격이군요.”


[무튼, 백룡의 비늘을 구한다고?]


“예.”


[백룡······나도 못 본지는 꽤나 됐지. 너랑 대화하고 다음날 사라졌을 거다.]


“그럼······”


[하지만 그 전에 나와 얘기한 것이 있지.]


“네? 그게 뭡니까?”


[하도 오래 살아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곳 어딘가에 자기의 흔적을 남겨놨다?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지.]


“흔적이라 하면.”


[용이 남겨봐야 뭘 남기겠나. 비늘이겠지.]


“여기에 비늘이 있다고요?”


[정황상 그렇겠지.]


그 말을 들은 이찬이 백원으로 달려가 예초하듯 손을 놀리며 풀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걸 본 풍백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 넓은 데를 어떻게 다 찾겠다는 말이냐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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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61 백룡 (1) 23.08.27 41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3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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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무장 (7) 23.07.30 41 1 10쪽
» 무장 (6) 23.07.29 40 0 10쪽
48 무장 (5) 23.07.24 4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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