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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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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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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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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대혁명 (9)

DUMMY

“끄으으·······. 쿨럭쿨럭!”



극심한 두통에 피 섞인 숨을 토해냈다.

뿌연 시선을 애써 다잡으며 바라본 공간에는 이찬을 비롯한 사람들이 침상에 누워 앓았다.

개중에는 그가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우사, 가스페르, 이노야?”


침상에 앉아 두통을 호소하며 홍차를 홀짝대는 우사와 여전히 드러누워 배를 벅벅 긁고 있는 가스페르.

그리고 여전히 멍한 듯 자신의 머리를 몇 번 내려친 이노가 의원의 제지에 그 행동을 멈추었다.


‘다같이 머리를 다친 건가?’


[머리를 다치긴 했지.]


“풍백?”


어느샌가 옆에서 나타난 풍백도 얼음 주머니로 제 머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제가 없을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라움과 혈전을 벌였던 우사와 그 과정에서 뜯긴 그의 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이찬은 우사의 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의 텅 빈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찬을 마주한 우사는 뭘 보냐는 눈빛으로 이찬을 보다 고개를 새침하게 휙 돌려 홍차를 마저 홀짝였다.


[그리고 저 잡졸들이 공격하려 들 때, 콜럼버스 녀석의 배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했다.]


“그럼 바깥은·······.”


[운사 녀석이랑 길동이, 선장이 싸우고 있다.]


문득 이찬의 뇌리에 한 가지 떠올라선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


그런 이찬의 물음을 풍백이 간단히 파악했다.


[그래, 푸르손.]


“안 됩니다. 그 놈은 너무 위험해요! 당장 가서·······.”


[아니.]


“예?”


[녀석들은 강하다. 너와 나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무리 그래도·······!”


이찬이 겪은 푸르손은 지금껏 겪은 적들과는 한 차원, 아니 어쩌면 두 차원 이상을 상회하는 강적이다.

그럼에도 풍백은 셋을 믿었다.

이찬은 그런 풍백의 단언에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정말 지원 가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래. 그런 헛짓거리 그만 하고 회복에 집중해라.]


“그럼·······.”


이찬의 시선이 선실의 바깥에 비치는 벨리알의 괴성(怪珹)으로 향했다.


“전 놈의 성에 들어가겠습니다.”


그 한 치의 두려움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차를 마시던 우사는 차를 뿜었고, 가스페르는 벌떡 일어나 옆에 곤히 자리하던 활을 잡아 시위를 당겼다.

금방이라도 손을 떠날 것 같은 화살과 그 시위가 팽팽하게 이찬을 노렸다.

이노는 말 없이 이찬을 노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풍백이었다.


[진심이냐?]


의외의 질문에 이찬은 망설임없이 답했다.


“예. 제가 그곳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풍백도 되물었다.


[살아 돌아올 자신 있느냐?]


그 말에 이찬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알고 있다.

지금 저곳으로 가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하늘에 별 따기 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러나 이내 이찬은 결의에 가득 찬 눈으로 모두를 바라봤다.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이찬은 별을 딸 인간이고, 그가 따는 것은 결코 별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자 당황했던 우사도, 비몽사몽한 상태로 활시위를 당기던 가스페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이노도 서로가 비슷한 표정으로 이찬을 응시했다.


[허한다.]


처음 허락의 시작은 우사였다.


“어쩔 수 없죠. 당신이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아니고.”


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가스페르가 이어 동의했다.

이노는 대답대신 침묵으로 이를 답했다.


[나뿐인가.]


가장 늦게 대답한 것은 풍백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극구 반대하고 싶지만.]


어깨를 으쓱한 그는 이찬의 애처로운 눈빛에 못내 입을 열었다.


[그 친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앞뒤 따지지 말고 무조건 탈출해라.]


신신당부를 거듭하며 거듭한 풍백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찬의 전신이 풍백의 고유격으로 둘러졌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꼭, 다녀’와라.’]


한줄기 빛으로 화한 이찬이 마신 벨리알의 성을 향해 쏘아졌다.


“그······· 제가 가도 된다고 했던가요?”


이찬을 담당하던 의원은 넋 나간 얼굴로 쏘아진 이찬이 통과했던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적응하게.]


***


[저건.]


무려 홍길동, 운사, 콜럼버스와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벨리알을 향해 날아드는 이찬을 발견한 푸르손이 이찬을 막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질주는 눈앞에 나타난 순백색의 흰 무언가 때문에 저지되었다.


[구름?]

[난층운(亂層雲)이다.]


갑자기 푸르손의 사위가 어지러워졌다.


[크윽, 뭐냐.]

[본래 난층운은 공기가 어지러울 때만 일어나는 구름이다.]

[구름뿐 아니라 구름을 통해 공기의 성질도 조작할 수 있다는 거냐.]

[마신 주제에 꽤 똑똑하군.]


후우우웅!


거대한 난층운 속에서 기다란 나무 봉이 불쑥 튀어 나왔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튼 푸르손이 겨우 날아드는 봉을 피했다.


[오.]


그러나 그 봉의 난타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후우웅!

후우우우웅!

후우우우우웅!


사방에서 날아드는 봉의 개수에 푸르손이 당황하여 봉이 날아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하늘로 곧게 튀어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푸르손의 오판 중 오판이었다.


우우우우웅!


뱃고동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 재질로 된 무언가가 텅 비어있던 난층운의 상단을 메웠다.


[겨우 이따위 것으로 날 막으려 들어!]


배 바닥을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뚫어낸 푸르손이 공중으로 떠 올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푸르손은 자신의 일생 중 가장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철컥.


무언가 장전을 거듭하는 소리가 들리자 푸르손이 반사적으로 아래를 보았다.

그저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배의 갑판에는 수십의 총을 든 선원들이 일제히 그를 조준하고 있었다.

공중이라 제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상황에 총탄이라니.

그때,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푸르손의 뇌리를 강타했다.


“전 선원! 장전!”


철커덕.


“발포!”


투두두둥!

타앙!


수십의 총이 하나같이 푸르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의 총탄이 범상치 않은 격을 담고 있었다.


푸슛!

푸그르륵.


총탄이 생명체의 몸체를 뚫는 소리와 함께 주륵주륵 푸르손의 몸에서 피가 말 그대로 쏟아졌다.


[크허어억!]


고통을 참아내던 푸르손의 입에서 마침내 세상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냈다.


운사의 시야 차단.

홍길동의 교란.

콜럼버스와 그 선원들의 마무리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연계였다.


[이·······버러지 같은 놈들이!]


“지금 봐. 누가 버러지인지.”


콜럼버스의 조소에 푸르손의 이가 산산조각 날 듯 갈렸다.


[후·······.]


심호흡을 한 번 푹 내쉰 푸르손의 얼굴에 다시 여유가 돌았다.


[버러지들 치고 잘 몰았구나.]

[그 놈의 버러지 타령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이미 네 정보는 모두 입수했다. 벨리알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나베리우스의 강령술로 되살아났다지? 방금 막 되살아난 참이라 마신화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고, 궁지에 몰린 네가 뭘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우사가 승리를 확신한 얼굴로 푸르손을 조롱했다.


[맞다. 난 지금 마신화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 그런 네가 뭘 할 수 있·······.]


[그런데 그게 내가 져야할 이유는 안되지.]


그 말을 남긴 푸르손의 육신이 점점 새것으로 교체가 되는 듯싶더니 총 구멍이 메워지고 전신에 난자했던 생체기들이 아물고, 이내 그들과 처음 조우했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한번 더 떠들어 봐라, 버러지들아. 내가······· 이 내가, 죽는다고?]

[이런 시벌.]


“전원 전투 태세!”


다급히 콜럼버스가 명령을 내려보았으나 푸르손의 손톱이 먼저 대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안 돼애애애애!”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 콜럼버스가 격이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핏!

푸슈욱!


내지른 주먹에서 무수히 많은 생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흉터들은 이내 내지른 주먹을 타고 팔로, 이내 전신을 뒤덮었다.


“선장니이이이임!”


많은 선원들이 콜럼버스를 향해 경고성을 발했지만 정작 그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난 괜찮다! 전열을 갖추어라! 놈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


촤아아악!


선원에게 하는 경고가 그의 단말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선장님! 의무관! 여기 의무관을 불러라!”


전신에 힘이 쫙 빠진 콜럼버스의 몸이 스르륵 고꾸라졌다.

단정한 거짓의 악마. 단정왕(端正王), 푸르손.

제 몸의 상태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그가 무려 세 영혼을 상대로 감쪽같이 제 진짜 모습을 숨겨 그들이 자신을 완벽히 궁지에 몰았다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공허한 눈빛을 한 운사의 등 뒤에서 나타난 푸르손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전쟁은 이렇게 하는 거다.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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