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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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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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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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 (1)

DUMMY

굳게 닫힌 성문의 건너로 범상치 않은 격이 이찬의 피부를 따끔따끔 괴롭혔다.

운사를 비롯한 영혼들의 도움 덕에 이찬은 무사히 벨리알의 성 앞에 당도했다.


“죽거나 죽이거나.”


끼이이이익.


문이 열린 것이 이번이 처음인 듯 기괴한 소리를 흩뿌리며 성이 열렸다.

이찬의 전신이 성 안에 들어오자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오싹오싹한 마기가 이찬의 정신을 침식할 듯 내리 눌렀다.

그런 압력을 발출하던 괴물들은 누군가의 손짓에 압력을 거두어 마치 이곳을 걸으라는 듯 비켜 주기 시작했다.


“너·······!”


[왜 그래? 손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건 우리 행성의 관습이다. 그게 적이라 한들 달라질 건 없지.]


“아윤이 어디 있어.”


[글쎄다. 너무 마음이 급하구나. 천천히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꾸나.]


“닥쳐.”


[입을 좀 곱게 쓰는 게 어떠니?]


“닥치라고오오!”


기도를 비스듬히 들고 천천히 벨리알에게 접근하던 이찬이 단풍 같은 주황색 검기를 격하게 발출하며 벨리알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카아앙!


그러나 주홍의 검기는 칠흑 같이 검고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벨리알의 애병 코셰흐샤비브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그러졌다.

더욱 그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이찬이 격을 바닥까지 긁어 날렸던 멸절의 검기가 일수에 공허로 돌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쯧쯧, 마음이 이리 급해서야.]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찬 벨리알이 제 앞 탁자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불과 10분 전 우사가 마시던 홍차와 벨리알의 모습이 유사하던 것이 이찬의 눈을 한층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네 수하가 우사의 팔을 떨어뜨렸다.”


[아, 맞다, 그 세 놈. 까먹고 있었네. 한 명도 못 죽였다고? 이건 의왼데. 두 놈 정도는 죽일 줄 알았지.]


큭큭 대며 웃는 모습에 노기가 극에 치달은 이찬이 자신의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이템 정보>


아이템 이름: 마나 증폭 물약

아이템 등급: A+(소모품)

아이템 설명: 마나 폭풍을 만들려던 한 페케니아 출신 지신의 물약. 마나를 증폭시킨다.

10분간 대상의 상상력을 2배 증폭시킨다.


이전에 ‘마나 폭풍의 신’에게서 받은 A+급 아이템.

이찬은 제 상상력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지금 당장 그 상상력이 바닥난 것 같았기에 이찬은 물약이 담긴 병을 가차없이 들이켰다.


꿀꺽꿀꺽.


부드러운 목 넘김을 통해 한 방울도 빠짐없이 이찬의 몸에 들어간 물약이 괴상 반응을 일으키긴커녕 변화가 거의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잔재주를.]


이상하리만치 변화 없는 제 몸을 구석구석 둘러보던 이찬은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상관없어. 너 하나 잡는데 상상력 증폭 따위 과분하니까.”


[태양이 별빛을 집어삼키는 덴 의도가 없지. 왜인지 아느냐? 밝은 태양이 밝지 않은 별을 삼키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니냐? 내가 너를 죽이는 이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별은 밤이 되면 다시 떠오르지.”


이찬은 눈을 감고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느꼈다.

눈앞에 적을 두고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결단코 아니었다.

아마 자신이 달려오기 전까지는 그 어떤 선제공격도 하지 않으리라는 오묘한 믿음 때문이리라.


알알이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찬의 주변을 한참을 맴돈다.

괴물들의 거친 숨소리.

철을 긁어대는 누군가의 쇳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까지.


그러나 이찬은 그 수없이 많은 소리의 행진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소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다그닥다그닥.


일 평생 단 세 번밖에 들어보지 못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말의 말발굽소리.

그러나 추상적이기 짝이 없던 이전 둘의 소리와는 다르게 지금 그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더없이 또렷하고 구체적이었다.

실체가 있는 말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느낌. 이내 이찬의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콰아아아아앙!


터져 나간 성문의 바깥에 주황빛이 전신을 감싼 말이 푸흐흥 거리며 얼굴을 좌우로 털었다.

이내 이찬이 감았던 눈을 떴고,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여태껏 그 누구도 본 적 없던, 볼 수 없던 벨리알의 당혹 어린 눈빛과 표정이었다.


[막·······, 막아라아아아아!]


고함과 동시에 잠깐 당황하던 벨리알의 군사들이 하나되어 말을 향해 병기를 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말은 가소롭다는 듯 코로 숨을 한 번 내뱉고 땅을 드륵드륵 긁더니 그대로 날아드는 쇠붙이들을 피하지 않고 맞서 달렸다.


카각!

쿠구구국.


부딪힌 쇠붙이와 말의 사이에서 생명에게선 나면 안 되는 괴성이 들렸다.

말이 목덜미를 아래서 위로 올리자 반경에 있던 군사들은 물론 그 반경 바깥에 있던 후미의 병사들까지 휘말려 세로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달려오는 말을 찔러 죽이려던 병사들은 말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부러진 자신의 도를 바라보다 말이 흩뿌리듯 날린 기운에 산산조각 나며 죽었다.

네노쿠니의 군단장 급 되는 괴물들이 일섬에 갈가리 찢기는 것을 보며 이찬은 경이를 느꼈다.


푸흐흐흥.


어느새 모든 잡졸을 모두 죽이고 나타난 말이 이찬을 향해 부비적거렸다.

피에 젖어 축축한 머리를 들이밀었으나 이찬은 그것이 꽤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말갈기를 쓸어 내린 이찬이 다시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어때, 이쯤 되면 이제 밤인가?”


나름대로의 도발이었으나 벨리알은 이전에 노기에 가득 찬 얼굴과는 상반된 표정으로 이찬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찬의 옆에서 애교를 부리는 말의 모습을 보았다.


[위험하군. 네가 마신 물약의 영향을 저 말이 받아낸 것인가.]


이찬은 벨리알의 추측에 크게 놀랐다.

그의 생각과 벨리알의 생각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전에 오리아스와의 생사를 넘나든 싸움에서 말의 모습은 분명 강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 웅혼한 격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말의 눈을 본 이찬은 순간 그의 눈에서 현기를 느꼈다.


혜안.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이찬의 귀에 목소리를 때려 박았다.


-고적마(高赤馬). 세 번째 격이다.


고적마란 이찬의 옆에서 애교를 부리는 말의 이름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은.

필히 광개토대왕일 터.


“감사합니다.”


육성으로 감사함을 표한 이찬이 재차 검을 제대로 잡고 광개토대왕의 두 격을 발현했다.

이에 호응하듯 말의 주변을 하염없이 떠돌던 기운도 이찬의 기도에 깃들었다.


쿠구구구구국.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듯한 벨리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아윤을 풀어줘. 그럼 순순히 돌아가지.”


그가 마지막으로 하는 제안이자, 양보였다.

이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누가 포식자고, 누가 피식자지?]


“당연히 네·······.”


네가 피식자라고 말하려던 이찬은 벨리알이 사정없이 뿜어대는 노기 섞인 격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묻겠다. 누가······· 포식자라고?]


이찬은 말없이 부러질 듯 이를 악 물고는 벨리알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게 네놈의 대답인가. 그렇다면.]


코셰흐샤비브를 굳게 쥐고는 전투의 시작 전 마지막 문장을 서서히 내뱉었다.


[깨닫게 해 주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섬전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다.


푸아아아악!


전례 없는 파동이 「쿰란」 전체를 뒤덮었다.


후우우우웅!


불어온 바람이 풍백, 우사, 가스페르, 이노가 타고 있는 배를 크게 가격했다.


[우왓! 뭐야?]

[전투의 여파인 것 같군.]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의미 없다. 죽을 것 같다면 빠져나오라고 신신당부했어. 위험하면 빠져나올 거다.]

[넌 아직도 쟤를 믿냐?]

[믿는다.]


풍백의 시선이 무너질 듯 흔들리는 벨리알의 성으로 향했다.


***


검과 창이 1초에 수십 번 맞부딪힌다.

내상을 감당하지 못한 이찬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진다.

그럼에도 검은 멈출 줄을 모르고 벨리알을 향해 찔러진다.

수십, 수백 번을 찌른 끝에 마침내 벨리알의 어깻죽지에 긴 자상이 남는다.


“하하. 어떠냐. 아프·······우웨에엑!”


올라온 선지피를 울컥 뱉어낸 이찬이 검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푸흐흐흥!


어느새 이찬의 곁으로 다가온 고적마의 몸에 긴 상흔이 여러 개 새겨졌다.

수십이 달려들어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한 것과 다르게 벨리알의 수를 무수히 막아내도 여럿의 상흔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고적마가 없었더라면 이찬은 일격에 몸이 두 동강 나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이 구역질 나는 곳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괜찮아?”


푸흥!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긍정을 표한 고적마가 다시 이찬을 태워 앞으로 달려나간다.

벨리알은 이전과는 다른 굳은 표정으로 이찬을 마주보곤 창을 감싸 잡았다.


버겁다.

처음 합을 맞춰보고 벨리알에 이찬에게서 느낀 생각이었다.


‘내가 버겁다고? 이 내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이찬이 쏘아대는 기운을 모조리 쳐내고는 목을 뚫기 위해 힘을 쏟았다.

이찬은 분명 오리아스와의 전투로 지쳐있는 상태.

대체 어떻게 이토록 쌩쌩하고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일행이 데려온 의원의 의술이 뛰어날 수도 있다.

아니면 의원이 가져온 약이 무가지보의 영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중 하나라도, 아니 그 둘이 모두 작용한다 한들 이 부자연스러운 회복량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콰앙!

콰아아앙!


다시 한번 합을 맞추는 둘의 사이에서 격을 감당하지 못한 여러 물질들이 사그라져 불타오른다.

불기둥이 둘의 사이를 갈라 놓듯 사정없이 불타올랐다.


삐끗!


이찬의 실수로 검이 이찬의 몸에서 멀리 떨어졌다.

이를 놓칠 리 없는 벨리알이 창을 반대로 움켜쥐고 던지듯 이찬의 목에 꽂는다!


푸슉!


바닥에 피가 흩뿌려지며 무언가가 바닥으로 털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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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백룡 (3) 23.09.02 37 0 10쪽
62 백룡 (2) 23.08.28 37 0 10쪽
» 백룡 (1) 23.08.27 41 0 10쪽
60 바빌론 대혁명 (9) 23.08.26 28 0 9쪽
59 바빌론 대혁명 (8) 23.08.20 32 0 10쪽
58 바빌론 대혁명 (7) 23.08.19 38 0 13쪽
57 바빌론 대혁명 (6) 23.08.14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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