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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3.06.02 10:11
최근연재일 :
2024.01.03 18:0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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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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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푸른 가운 Ⅱ

DUMMY

#109. 푸른 가운 Ⅱ


대대장님을 만나러 간다기에 대대본부로 향할 거라 생각했던 차량은, 내 예상과 달리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는 도로를 벗어나 덜컹 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수십 분 동안 달린 끝에,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도시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내려. 대대장님께서 기다리신다.”


특작팀장님의 말에 나는 대원들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린 뒤,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가고 있는 어둠 속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모닥불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무표정한 얼굴로 타들어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대대장님이 보였다.


“수고했네 팀장.”


대대장님이 다가오는 나와 특작팀장님을 바라보며 말하자, 팀장님은 경례한 뒤, 대원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나를 양 옆에서 붙들고 있던 대원들은 내 다리를 발로 걷어차며 강제로 무릎을 꿇렸다.


“으윽···”


순간의 고통에 내가 신음하며 주저앉자. 대대장님은 가보라는 듯 특작팀장님과 대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내 귓가에서 사라져 갈 때쯤, 대대장님은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7급 민상혁,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지? 자네의 상황 판단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 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키는 일은 잘했었는데 말이야··· 시키지도 않은 일은 대체 왜 저지른 거지?”


“그, 그건···”


대대님의 말에 나는 무언가 울컥했다. 이제는 시키는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그런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네에게 여러모로 실망이 크군··· 내가 부여한 특수임무 관련 자료들을 즉각 폐기했어야 했음에도, 미루거나 아예 폐기하지 않았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도 들고 말이야.”


“아, 아닙니다! 대대장님! 전부 폐기했습니다. 단··· 단지 그 이철호와 관련된 녹음파일만은 제가 뒤늦게 깨달아서, 그, 그걸 제가 수습해보려 했는데··· 그랬는데···”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이라도 흘렸다간 더 쓸모없는 대원으로 낙인이 찍힐 뿐이었다.


“그것 조차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했지. 맞나?”


“맞습니다···”


설움을 참고 고개를 들어보니 대대장님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꺼낸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하나 피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마지막’이라는 말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문 뒤 그가 주는 담배를 받았다. 그러자 대대장님은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나지막이 내게 말했다.


“이 담배가 다 타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자네를 살려두어야 할 이유를 말해보게. 나를 설득해 보라는 얘기야.”


무심코 담배를 피우다가 기침을 하던 나는, 떨어지는 담배 재를 보며 순간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나도 곧 저 담배 재처럼 떨어질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처음엔 그냥 구걸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잘못했으니 살려달라고, 앞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고, 관련해서 어떠한 것도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잘은 몰라도 그동안 지켜본 대대장님의 성격 상,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람을 누구보다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솔직해지기로 했다. 한번 마음을 그렇게 정하자 떨리던 몸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잃었던 자신감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래도 할 말은 다 하고 죽어야지 싶었다.


“대대장님은 절 살려두실 필요가 없습니다.”


“오? 그런가?”


내가 담배연기를 뱉으며 말을 시작하자 대대장님은 흥미롭다는 듯 그런 나를 내려다보았다.


“예. 하지만 감히 제게 설욕의 기회를 달라고 여쭙고 싶습니다.”


“설욕의 기회라···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보균자 해밀, 유진, 그리고 윌프로텍 연구원 이태리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녀석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제가 녀석들을 추적할 일도, 녹음파일을 만들었을 일도, 그리고 지금 여기에 대대장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게 어쨌단 거지? 어차피 증거는 다 사라졌다네. 불에 타서 사라진걸 자네도 봤을 텐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녀석들을 추적하고 싶다는 건가?”


대대장님의 말에 나는 이제는 거의 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답했다.


“증거도 없고, 이제 불법행위를 파헤칠 수도 없지만, 이 사태를 만든 범인들은 아직도 활개치고 있습니다. 녀석들을 제 손으로 제거할 기회를 주십시오. 하다 못해 보균자 해밀이라도 제 손으로 꼭 제거하게 해 주십시오.”


“허허, 자네 아주 제대로 정신이 나갔구먼.”


말을 마치고 나자 어딘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뭔가 이제 다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죽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너무나 두려웠지만, 내게는 더 이상 대대장님을 설득할 힘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전부였다.


“자네의 그런 행위로 인해 치안대가 얻는 건 뭔가? 위험 밖에 더 있나?”


“통제부는 녹음파일을 빌미로 치안대 조직을 흔들려고 할 겁니다. 가뜩이나 요즘 같이 일반 시민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자기들은 무슨 행동이라도 보여야 하니까 더더욱 그럴 테죠. 그러려면 녹음파일에 관련된 증언들이 필요할 텐데··· 이철호는 특작팀에 의해 처리가 됐고, 남은 건 저, ‘민상혁’입니다.”


“오늘 경찰대에 잡혀있던 것처럼 말이지.”


대대장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경찰대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심문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잡히기 전까지 들은 것에 의하면··· 해밀, 그 보균자는 지금 ‘집중검사소’에 있습니다. 제 설욕을 위해 녀석을 제거하려면 집중검사소로 들어가야겠지요.”


“이제 이해가 되는군.”


대대장님은 ‘집중검사소’라는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일반 시민으로서 이곳에서 죽게 되는 거군.”


나는 그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착잡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대장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 모닥불 주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야 자네가 쓸모 있어지는 것 같은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아쉽군.”


대대장님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나는 자네에게 설욕의 기회를 주고, 그 대가로 자네의 사회적 죽음을 받는다. 앞으로 민상혁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대대장님은 내 뒤에 있는 대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전투화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오다 내 바로 뒤에서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대대장님은 나를 한번 더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수고 많았네.”


[퍽]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언가가 내 머리를 강하게 쳤다. 엄청난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오며 암흑이 찾아왔다.


***


“으으으···”


말도 안 되게 심한 두통, 그런 두통과 함께 일어난 나는 덜컹거리는 어떤 차 안에 있었다. 빛도 들어오지 않고, 밖도 보이지 않는 차 안에, 나와 그런 나를 포박하고 있는 치안대 대원들이 있었다.


“이 새끼 일어났습니다.”


내 옆에 있던 치안대원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조수석 방향에 앉은 치안대원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럼 다시 재워.”


[퍽]


순식간에 주먹이 내 얼굴에 꽂혔다. 내 입안은 순식간에 덜렁거리는 치아와 흐르는 피로 만신창이가 됐다.


“이··· 이게 뭐야.”


술에 거나하게 취한 뒤 끔찍한 숙취가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야야~ 너무 때리진 마라. 이제 곧 도착인데, 거기 직원들이 피 묻은 애들 보면 뭐라고 한단 말이야.”


“알겠습니다 수송관님.”


머리가 빙빙 도는 것이 어느 정도 나아지자, 나는 그제야 내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충성. 어디서 오셨습니까?”


“치안대 제3 수송관이다. 특별 운송 건으로 왔어.”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차가 멈추고, 선탑한 치안 대원과 다른 대원들의 대화가 오가는 것이 들려왔다.


“음, ‘0동’ 가시는 거 맞습니까?”


“맞아.”


“문 열어드려!”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입안에 흐르는 피를 삼켜가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도착했다. 끌고 나와.”


“알겠습니다.”


차가 멈추고,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차 문이 열렸다. 순식간에 빛줄기가 쏟아 들어오자 저절로 눈이 찡그려지면서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하납니까?”


“어, 본부 쪽에서 보냈다는데?”


“본부에서 보냈다니··· 특이한 것 같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고, 나는 그제야 회색의 거대한 벽들에 둘러싸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이라곤 세로로 조그맣게 난, 마치 숨구멍이라도 뚫어놓은 것 같은 외벽을 가진 건물 앞에서 치안대원들은 이런저런 서류를 주고받고 있었다.


“일단 인계는 완료된 거지?”


“예. 돌아가셔 됩니다. 여기서부턴 저희가 맡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수고.”


수송관이 자기 대원들과 함께 차로 돌아가고, 나의 앞에서 문서를 확인하던 다른 치안 대원은 나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운도 지지리 없구먼.”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어디론가 무전을 넣는 듯 헬멧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가운을 입은 연구원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나타나 그런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눈에 띄게 푸른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녀석입니까?”


그의 말에 치안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문서를 건네주었다.


“음, 특이하네요. 별다른 정보가 없는 것이··· 크게 상관은 없지만.”


푸른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문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제 가자고.”


그들 중 하나는 나에게 안대를 건네주었다. 천으로 만든 조잡한 안대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안대를 착용하고, 다시 어둠 속에서 그들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계속해서 이동했다.


“이제 안대를 벗어.”


수 분 동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걸은 뒤 내가 도착한 곳은 습기와 물기가 가득한 너저분한 욕실 같은 곳이었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서있자,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속옷까지 다 벗어서 저기 옆에 폐기함에 넣어.”


당황스러웠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들 앞에서 옷을 다 벗으라는 얘기였다. 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푸른 가운이 내게 소리쳤다.


“빨리빨리 좀 해! 병균 덩어리 주제에. 감사한 줄 알아야지.”


나는 옷을 벗어 폐기함에 넣은 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았다. 차가운 물줄기가 온몸을 강타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눈물인지 뭔지 모를 것들을 흘리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민상혁은 세상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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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30. 회의 : 에필로그 24.01.03 27 1 10쪽
129 #129. 지옥 Ⅱ 24.01.02 22 1 18쪽
128 #128. 지옥 Ⅰ 23.12.29 17 1 12쪽
127 #127. 터널 Ⅱ 23.12.28 24 1 12쪽
126 #126. 터널 Ⅰ 23.12.27 21 1 12쪽
125 #125. 시험대 Ⅱ 23.12.26 20 1 12쪽
124 #124. 시험대 Ⅰ 23.12.22 20 1 12쪽
123 #123. 낯익은 기억 Ⅲ 23.12.21 19 1 12쪽
122 #122. 낯익은 기억 Ⅱ 23.12.20 18 1 12쪽
121 #121. 낯익은 기억 Ⅰ 23.12.19 16 1 12쪽
120 #120. 마지막 탈출로 Ⅲ 23.12.15 19 1 12쪽
119 #119. 마지막 탈출로 Ⅱ 23.12.14 17 1 12쪽
118 #118. 마지막 탈출로 Ⅰ 23.12.13 15 1 13쪽
117 #117. 돌멩이 23.12.12 20 1 12쪽
116 #116. 계획 Ⅲ 23.12.08 25 1 12쪽
115 #115. 계획 Ⅱ 23.12.07 18 1 12쪽
114 #114. 계획 Ⅰ 23.12.06 19 1 12쪽
113 #113. 운동장 Ⅲ 23.12.05 19 1 12쪽
112 #112. 운동장 Ⅱ 23.12.01 22 1 12쪽
111 #111. 운동장 Ⅰ 23.11.30 20 1 12쪽
110 #110. 푸른 가운 Ⅲ 23.11.29 19 1 12쪽
» #109. 푸른 가운 Ⅱ 23.11.28 17 1 12쪽
108 #108. 푸른 가운 Ⅰ 23.11.24 18 1 12쪽
107 #107. 재회 Ⅲ 23.11.23 16 1 12쪽
106 #106. 재회 Ⅱ 23.11.22 18 1 12쪽
105 #105. 재회 Ⅰ 23.11.21 17 1 12쪽
104 #104. 낯선 실험실 Ⅲ 23.11.17 20 1 12쪽
103 #103. 낯선 실험실 Ⅱ 23.11.16 17 1 12쪽
102 #102. 낯선 실험실 Ⅰ 23.11.15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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