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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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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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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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78화, 석 잔 술로 큰 도를 통하고

DUMMY

사실 냉여빙의 무공은 일류의 반열에 들었지만, 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침착성을 잃고 놈들의 더러운 술수에 휘말린 것이다.


두성이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놈들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뒤에 남은 마동탁은 그동안 놈들이 빼앗은 돈과 귀중품은 물론, 놈들이 숨겨 놓은 재물을 보자기에 싸서 등에 묶었다.


부상당해 신음을 토하는 놈들을 모두 황천길로 보내고 두목의 손을 묶어 끌고 나왔다. 마동탁의 뒤로는 놈들의 산채가 불타고 있었다.


놈들의 숫자로 봐선 뒤에 더 큰 조직이 있음이 분명했다. 마동탁은 놈들의 조직에 대해서 더 알아볼 작정이었다.


마을사람들과 자경단원이 부상당한 사람들을 마을로 옮겨오자 마을에 하나 뿐인 의원이 바쁘게 움직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마동탁은 유람객들에게 귀중품과 돈을 돌려주고, 두목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네놈들의 만행을 도와주는 뒷배가 누군지 이실직고한다면 가혹한 고문은 하지 않겠다. 아니면 분근착골의 고통을 맛보여주마.”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죽일 테면 어서 죽여라!”

“하하, 제법 뼈대가 있는 놈이구나. 좋아 그래야 사내답지.

그럼 한 가지만 묻자, 여인들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은 왜 납치한 것이냐?

양자나 양녀로 삼으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마라!“

“그건..., 저....”

“좋게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마동탁이 근육을 위축시키는 근축혈을 비롯해 놈의 혈도를 몇 군데 찔렀다. 놈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전신의 근육이 모두 경련을 일으키며 수축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고, 전신의 관절 마디마디가 어긋나고 탈구되는 것 같았다.


지독한 통증으로 의식이 거의 마비된 놈은 식은땀을 빗물처럼 흘리며 죽어가는 소처럼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신 신음소리를 토해냈고, 몸도 무서우리만치 떨리고 있었다. 눈은 뒤집혀 핏발이 선 흰자위만 드러나 있었다.


마동탁이 막힌 혈도를 풀어주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자 간신히 눈을 떴다. 축 늘어져 얼굴이 사색이 된 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 말할 테니..., 제발 그 그만 하십시오.”

“거짓 없이 고해라!”

“우린 토봉채(土蜂寨)의 부하로 이곳에서 부유한 유람객들의 재물을 털거나 젊은 사람들을 납치하여 본부로 이송합니다.”

“토봉? 땅벌을 말하는 것이냐?”

“네, 네. 우리 깃발에도 새겨진 것이 바로 땅벌입니다.”

“채주는 어떤 놈이냐?”

“무적일침(無敵一針) 초대봉입니다.”

“장침을 무기로 쓰는데 적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 대단한 사람이군, 토봉채는 어디에 있는가.”

“이곳에서 남서쪽에 있는 연화산에 있습니다.”


놈은 채주에 대해 아주 존경하는 눈빛으로 설명했다. 마동탁은 놈을 끌고 나가 자경대원에게 뒤처리를 맡겼다.


상처를 치료받은 냉여빙이 어린 딸과 시비 배옥란, 그리고 마부와 함께 찾아왔다.


“소협과 대협 덕분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난 냉여빙이라 하고 얘는 내 딸인 냉취영입니다. 은인의 성명을 알려주시겠습니까?”

“......”


두성이는 커다란 두 눈을 깜박이며 다소곳이 서있는 취영이를 보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비록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취영이는 그사이 훌쩍 자랐고 귀티가 줄줄 흘렀다.


그러나 자신의 눈엔 어릴 적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취영이가 자신을 흘깃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냉여빙의 여식인가?)

‘내가 네 오빠란다’란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전 장두성이라 합니다.”

“우린 낙양에 살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마음을 굳게 먹은 두성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긴히 드릴말씀이 있는데 둘이서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지요.”


눈치가 빠른 마부와 배옥란이 취영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제가 열 살 때 어린 여동생과 괴한에게 납치된 적이 있었습니다.

상요에 있는 창고에서 빠져나와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도망치다가 관제묘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오들오들 떨던 어린 여동생은 결국 의식을 잃었지요.“

“어머나! 그 그래서요?”

“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동생을 놔두고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억수처럼 쏟아지는 빗속에 사람들은커녕 집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런, 그래서요?”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이상한 일에 엮여 다음날 관제묘에 가 봤더니 여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았나요?”

“지금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안됐군요, 그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을 하던 냉여빙의 안색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서 두성이를 노려봤다.


“여동생의 이름이 취영입니다.”

“......”

“다음날 아침, 제가 관제묘로 가다가 마주오던 붉은 마차를 보았습니다.”


하얗게 안색이 변한 냉여빙이 손을 떨면서 감정을 삭이는지 묵묵히 두성이를 보고 있었고 두성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방안의 공기도 숨을 죽이고 있었고, 두 사람의 숨소리만 겨우 들리는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냉여빙은 온갖 생각으로 엉클어진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진실을 밝힐 수도, 그렇다고 양심을 속이고 숨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젠 자신의 어엿한 딸로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취영이를 뺏길 수 없다는 욕심과 딸을 잃은 부모의 상실감을 몸소 겪은 자신이 내려야 할 결단이 양심을 옥죄고 있었다.


더구나 어린 취영이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데, 그 결과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오직 어린 취영이를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이왕이면 양쪽 다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궁리를 해봤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꽉 막혀 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냉여빙이 눈을 지그시 뜨고 두성이를 보니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장 소협, 지금 당장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좀 기다려줄 수 없겠습니까?”

“네? 네......”

“댁이 어디죠?”


“용호산 밑에 있는 용호표국입니다.”

“적당한 시일을 골라 부모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네,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냉여빙이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마동탁이 들어왔다. 둘이만 있게 되자 마동탁이 산채에서 끌어 모은 재물을 늘어놓았다.


돈은 물론 진귀한 귀중품들이 많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 두성이는 마음이 흐뭇했다.


*****


연화산(莲花山)은 용암현과 연성현에 걸쳐있는 산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웠으며 특히 유람객들과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연화산은 단하(丹霞)지형에 속한다. 단하지형이란 붉은 모래암석이 장기간 풍화와 물의 침습으로 기이한 암석으로 변한 지리적 경관을 말한다.


맑고 깨끗한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곳곳에는 높이 솟아있는 절벽 사이로 기묘한 소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오랜 풍상을 이겨내고, 멋들어지게 몸을 구부린 고송이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말을 몰아 연화산에 도착한 두성이와 마동석은 일단 객잔에 머물며 점소이에게 도적에 대해 물어봤다.


“깊은 숲속에 도적들이 숨어있다고들 합니다.

재작년에 떼거리로 몰려와 약초꾼들이 모여 사는 산속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이 있었죠.

심지어는 이곳에 유람 온 권문세가의 자재들을 납치해 금품을 요구한 적도 있었답니다.

이에 진노한 성주가 관병을 보내 놈들을 잡아들이려고 했으나, 이곳 지리에 빠삭한 놈들은 모두 꽁꽁 숨어버려 잡을 수가 없었죠.”

“그럼, 지금은?”

“떼거리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가끔 재물을 털렸다는 사람들은 있었죠.”

“그것뿐인가?”

“글쎄요,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호랑이한테 물려갔다는 말도 있고.....”

“알려줘서 고맙네.”


두성이는 사례금으로 동전을 댓 개 주었다. 점소이는 고맙다며 연신 절을 하며 주방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을 먹은 두성이와 마동석은 부지런한 유람객들을 따라 산으로 향했다.


유람객들 중에는 부유한 집안의 공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몰려서 갔는데 기녀들과 짐꾼을 데리고 으스대는 자들, 심지어 호위무사까지 대동하고 거들먹거리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기녀와 호위무사를 거느린 공자들이 길을 벗어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필경 복잡한 길을 피해 시원하게 흐르는 물가에서 풍류놀이를 즐기려는 것일 게다. 내가 도적이라도 저런 자들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두성이는 그들 뒤를 멀찍이 따라갔다.


그들은 계곡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넓적한 바위가 있는 물가에 짐을 풀었다. 기녀 두 명이 익숙한 솜씨로 술상을 차렸다.


흐르는 물은 시리도록 푸른빛이었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맑은 물결은 거울과 같아 산 그림자가 어렸고 흰 구름이 가끔씩 늘어진 나무 그림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호위무사는 좀 떨어진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기녀가 술을 따랐다. 네 명의 공자들이 술을 마시며 유쾌하게 떠들며 놀다가 한 공자가 합죽선을 손에 들고 시를 읊었다.


석 잔 술로 큰 도를 통하고

한 말 술에 자연과 하나 되나니

취하고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깨어 있는 이에게 전하지 말라.


三盃通大道 삼배통대도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俱得醉中趣 구득취중취

勿謂醒者傳 물위성자전


기녀가 얼른 술을 따라 시를 읊은 공자에게 권했다. 공자는 합죽선을 촤르르 펼치더니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옆에 앉은 공자가 기녀를 지목했다.


“이번엔 자네의 노래를 들어보세.”


배시시 웃던 기녀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저물녘 냇가 정자에서 놀던 때 기억하지

술에 만취해 돌아오는 길 헤맨 그 때를

저물어서야 흥이 다해 배를 돌렸으나

착각해 연꽃 밭 깊숙이 들어갔네

어쩜 좋아

어쩜 좋아

푸드덕 날아오르는 여울의 갈매기와 백로들


시를 읊고 술을 마시는 공자들의 풍류놀이는 음란하지 않았으며, 듣는 이의 마음에 미소를 짓게 하였다.


야외에서 음식을 늘어놓고 먹을 때면 늘 냄새를 맡은 파리들이 귀신처럼 찾아온다. 공자들이 점잖게 놀고 있는데 어김없이 똥파리들이 찾아왔다.


사냥꾼 차림의 장한 둘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호위무사가 눈을 번득이며 그들을 막아섰다.


“공자님들의 풍류를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시오.”

“지나다가 술 냄새를 맡고 왔는데 너무 야박한 것 아니오? 단지 술 한 잔 얻어먹자고 온 건데...”

“목만 축이면 바로 갈 테니 한 잔만 적선하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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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81화, 납치된 조 의원 23.09.09 311 6 10쪽
80 제80화, 동자삼 23.09.08 300 6 10쪽
79 제79화, 토봉채 무적일침 초대봉 23.09.06 322 6 13쪽
» 제78화, 석 잔 술로 큰 도를 통하고 23.09.04 326 5 12쪽
77 제77화, 용과화 23.09.02 313 4 10쪽
76 제76화, 무이산 +1 23.09.01 338 5 13쪽
75 제75화, 불새단의 목표 23.08.30 336 6 10쪽
74 제74화, 오조사신과 물고기밥 23.08.28 335 6 10쪽
73 제73화, 쾌속선 23.08.26 343 1 10쪽
72 제72화, 전력투구 23.08.25 335 5 10쪽
71 제71화, 암습 +1 23.08.23 342 6 10쪽
70 제70화, 돈 냄새 23.08.21 365 7 10쪽
69 제69화, 인간사냥 23.08.19 369 6 10쪽
68 제68화, 묵묘 깔끔이의 도움 +1 23.08.18 368 6 10쪽
67 제67화, 사막의 여우 소청천 23.08.16 377 7 11쪽
66 제66화, 무패철답(無敗鐵塔) 마동탁 23.08.14 414 4 10쪽
65 제65화, 사막의 여우 沙漠狐狸 (사막호리) 23.08.12 435 6 10쪽
64 제64화, 월견초 月見草 23.08.11 406 7 10쪽
63 제63화, 월하미인 月下美人 23.08.09 460 6 10쪽
62 제62화, 살수 침입 23.08.07 445 7 10쪽
61 제61화, 자원방래 自遠方來 23.08.05 461 8 10쪽
60 제60화, 냉여빙의 천금 여식 +1 23.08.04 458 8 10쪽
59 제59화, 귀인래(貴人來) 23.08.02 458 10 10쪽
58 제58화, 인중지룡 23.07.31 464 8 10쪽
57 제57화, 불새단의 단주 23.07.29 441 8 10쪽
56 제56화, 불새단 원로와 첫 만남 23.07.28 450 8 10쪽
55 제55화, 해룡방의 무리들 23.07.26 476 7 10쪽
54 제54화, 항주의 서호 23.07.24 485 8 12쪽
53 제53화, 금수만도 못한 놈 23.07.23 502 9 10쪽
52 제52화, 조 의원의 과거 23.07.22 50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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