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19 21:11
연재수 :
261 회
조회수 :
28,643
추천수 :
574
글자수 :
1,115,268

작성
24.06.26 23:47
조회
21
추천
1
글자
12쪽

베타테스터 (8)

DUMMY

220화


“구성이 알차네.”

“흡혈귀 테마파크 같은 건가?”

“근데 원래 ‘흡혈’ 능력에 이런 기능도 있었어?”

“아니, 없었을걸. 그리고 본체가 흡수한 거 ‘흡혈’이 아니잖아. ‘흡혈귀화’잖아. 이게 아주 살짝 상위 능력이라면서.”

“그래서 이런 것도 가능한가 보네. 아기자기한 부가 기능이 여러 개 있어서 그런지 보는 맛이 있어.”


문짝을 가루로 만들어 놓고서, 네 번째 복도를 들여다보는 개망나니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여기만 동굴처럼 꾸며 놨네. 근데 이거 진짜 바위 맞나? 혹시 스티로폼 아니지?”

“바위 맞아.”

“그럼 천장에서 득시글대는 박쥐 새끼들도 다 찐인가 보네.”

“아, 당연하지. 근데 이게 다 몇 마리야?”

“비켜 봐. 몇 마린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해? 다 죽여 버리면 영 마리 아냐?”


마력을 일으킨 하지운이 앞으로 나서면서 심드렁하게 한마디 뱉었다.

복제 인간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하지운을 쳐다보며 한마디씩 보탰다.


“살살 해라. 건물에 불내면 안 돼.”

“조절 똑바로 해. 좆도 아닌 흡혈박쥐 따윌 잡겠다고, 건물 전소시키면 진짜 들이받아 버릴 거다.”

“존나 걱정되네. 진짜로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 새끼가 딱 이 새낀데.”


걱정은 현실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가 버려!! 오빠 믿지!”


거버스의 불의 창을 비웃기 위해 연습했었던, 지름 이 미터짜리, 특대 불의 창 ‘오빠 믿지’가 오랜만에 발사된 것이다.

이름은 그냥, 주둥이에서 나오는 대로, 즉석에서 지었기에 딱히 별 의미는 없다.


검푸른 불의 기둥이 딱 일 초간 나타났다 사라졌다.

일단 건물 전체에 도배되어 있던 불길한 마력이 발광을 하면서 귀곡성을 뿜어 댔다.

뒤이어 이사진과 보좌관의 뚫린 주둥이 스물두 곳에서, 허리케인 같은, 욕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하지운이, 대략 오 분 후, 실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을 살폈다.

욕을 하다 지친 복제 인간들이 조심스럽게 마력을 일으켜, 녹아내리고 있던, 골조를 얼음 마법과 흙 마법으로 굳히고 있는 중이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사내 커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대표 이사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을 한 듯 비장한 표정을 한 채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 대표의 코앞까지 다가온 수석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이런 게 바로 네놈의 세상에서 말하는 ‘오너 리스크’라는 건가?”

“......”


대꾸도 못하고 눈알만 뒤룩거리는 모지리 같은 우두머리를 보고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 엘프녀가 남친의 손에 있던 철퇴를 낚아채 버리는 것이었다.


“세, 셀런! 안 돼! 참아!”

“참긴 뭘 참아!! 너 이 새끼야, 엎드려뻗쳐!!”

“셀런, 그러면 안 돼! 이 새끼가 아무리 병신 같아도, 우리 주인이야. 언데드가 사령술사를 구타해선 안 돼!”

“이 새끼가 왜 이 모양인 거 같아? 안 맞고 커서 그래! 진짜 아니다 싶었으면, 회초리를 들었어야지! 그저 막내아들 미친놈인 거 소문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세뇌 교육만 시켜 놨으니 이런 정신 나간 물건이 나왔지! 내가 지금이라도 이놈을 사람 새끼답게 만들어 놓고야 말겠어! 사장 새끼 너, 당장 엎드리지 못해!!”


정말로 엎드려야 하는 건지 고민이 돼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꾸물거리는 하지운을 복제 인간들이 둘러쌌다.

파손된 성벽을 임시로 복구하느라 짜증이 날 대로 난 상태여서인지, 눈빛들이 영 좋지 않았다.


“이 새끼가 귓구녕에 좆 박았나? 엎드리라는 말씀 못 들었어?”

“보좌관님이 엎드리라 하시잖냐. 얼른 엎드려라. 넌 정말 맞아야지 정신 차릴 거 같다.”

“그래그래. 빨리 엎드려라, 이 금쪽이 새끼야.”


그 순간 복도 건너편에서 떠들썩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백여 개의 가고일 석상이 몰려나오는 것이었다.

하지운의 불 마법 ‘오빠 믿지’에 다음 구역의 문짝과 외벽 일부까지 재 가루로 변형돼 버리면서, 대기 중이던 흡혈 전사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가만 앉아 있다가 불에 타 죽느니, 먼저 돌격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을 보고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하지운이, 내연녀를 맞이하는 불륜남의 심정으로, 부리나케 마중 나갔다.


“얘들아, 적이 쳐들어왔어!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야! 내가 앞장서서 놈들을 막을게!”


병신 중의 상병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방관만 하고 있는 임직원들과는 달리, 유일한 충신인 은빛 부장 골렘 군만은 한달음에 달려 나와 하지운의 앞을 막아섰다.


“너밖에 없구나, 은 부장!”


골렘 군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맹하게 달려 나가 가고일 석상에 라이트 훅을 날려 버렸다.

반전은 없었다.

바위를 감염자의 핏물에 백 일 동안 담가 놓았다가 꺼낸 후, 정성을 다해 조각한 단단한 석상이 비스킷처럼 부서져 버렸다.

동시에, 석상 안에 스며들어 있던, 흡혈귀까지 같이 뚝배기가 으깨져 버리고 말았다.


뭘 해도 안 통하는 하 대표와 직원들을 보며, 슬슬 절망감에 빠져 드는 흡혈귀들이다.

하지만 덤비다가 맞아 죽는 것 외에 별도의 선택지도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골렘의 주먹에 몸을 맡기는 슬픈 잡귀들이었다.


“잘한다, 은 부장. 그냥 다 때려 부숴 버려. 이런 돌덩이는 돈도 안 되고 무게만 나갈 뿐이야. 아주 개박살을 내 버려. 아니, 조각이라도 이쁘게 해 놓든가. 무슨 뿔 달린 오리너구리같이 만들어 놓고 말야. 이딴 걸 가지고 어디 장식품으로 써먹겠어, 내다 팔겠어? 근데 진짜 쓰잘데기 없는 부가 능력을 왤케 많이 설정해 놓은 거지?”


조합만 잘해 놓으면 침입자에게 극한의 공포를 줄 수 있는 능력들이지만, 하지운에게는 조잡스럽기 짝이 없는 잡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섯 번째 공간과 일곱 번째 공간에, 매복해 있던 흡혈귀들도 다 뛰쳐나왔다.

어차피 들킬 게 뻔해 보이는데, 더 이상 버티고 있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 것이었다.

결국 골렘의 경험치만 잔뜩 올려 주고는 모두 다 성불해 버리고 말았다.


“몇 대 맞을래?”

“영 대.”

“장난치면, 열 대만 때릴 거, 백 대 때리는 수가 있어. 아니, 일단 엎드려뻗친 상태에서 얘기하자.”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 거야. 벌써 반성 엄청 했어. 진짜야!”

“뭐라는 거야! 평생 반성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놈이!”


홀을 둘러싼 구역들마다 매복해 있던 흡혈귀들이 몰살당해 버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감각 기관을 거슬리게 하던 것들 중 적어도 복도에 있는 것들은 씨가 말라 버렸다는 걸 인지한, 임직원들이 또다시 하지운을 둘러싸는 것이었다.

엘프녀가 철퇴를 휘두르며 대표로 나선 상황이다.


“너, 처음부터 이 성이 진짜 무너질지도 궁금했지?”

“응...”

“여기 흡혈귀 연놈들이 소품이랍시고 들고나온 자질구레한 것들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 재료가 뭐야?”

“감염자의 피.”

“그럼 이 성 어딘가에 감염시키기 위해 납치해 온 생명체들이 갇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 봐. 너, 그 생각을 했어, 안 했어?”

“... 했어...”

“그래 놓고 성질이 변한 네 마력이 흡혈귀들의 마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해서, 이 성이 무너지든 말든, 실수인 것처럼 위장해서 벽에다 갈겨 버린 거지?”

“응...”

“네놈이 그러고도 영 대만 맞겠다고?”

“진짜 반성할게!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반성할게! 애들 보는 눈도 있는데 한 번만 봐 주라...”

“이 새끼가 진짜... 너 오늘은 그냥 넘어가 주는데,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고마워...”

“내가 네놈 옆에서 적응하고 살기로 마음먹은 만큼, 내 나름 맨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목표를 정립해 봤어. 네놈 옆에서 수천 년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세월을 보낼 수는 없어. 널 어떻게든 사람답게 만들어 놓을 거야. 그게 내 목표야.”

“아니, 그런 허무맹랑한! 울 집 꼰대들도 포기한 걸 왜 네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이 새끼가! 너, 될 때까지 맞을래?”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엘프 누나.”


열중쉬어 자세로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하지운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던, 엘프녀가 임직원들과 함께 멀어져 갔다.

입을 삐쭉거리던 하가 놈이 느적느적 그 뒤를 따랐다.


가고일이 죽치고 있던 다섯 번째 복도를 지나, 여섯 번째 복도에 들어선 일행들이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이 정도면 찐 순애다.”

“크기 좀 봐. 소머리 괴물들 불알만 해.”

“이거 진짜 혼수야? 네 여친 완전 호구냐? 너, 걔 약점이라도 잡았어?”

“저 새끼가 지껄이면 다 이뤄지는구나. 저딴 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리가 없는데.”


양쪽 벽 곳곳에 박혀 있는 백 개가 넘는 새빨간 돌덩이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치는 복제 인간들이었다.


“걱정 마. 이거 보석 아냐.”

“엥?”


벽에 박힌 돌덩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엘프녀가 금세 복제 인간들의 멍든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이거 감염자의 피를 굳혀서 만든 모조품이야.”

“푸흡...”

“본체야, 너 설마 이것도 할 수 있냐?”

“어...”

“흡혈 이거 완전 사기꾼을 위한 능력이었네.”

“잘 어울린다. 잘 어울려.”


매우 언짢은 상황임에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모조 보석들을 꾸역꾸역 챙기는 하지운이었다.

그 와중에 진짜 보석이랑 섞일까 봐, 망토를 꺼내서 보자기로 싸듯, 따로 분류해 놓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여기가 마지막이네. 저 문짝이 홀로 들어가는 출입문인가 봐.”

“근데... 여기는 좀 섬뜩한데.”


일곱 번째 복도에 들어서던 일행들 모두가 일시에 안면을 구겨 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이전 공간들에서처럼 실실 쪼개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제일 앞에 있었으면 위험했을 수도 있겠다. 저 새끼가 딴 건 몰라도 와인은 바로 입부터 대고 보는 주정뱅이잖아.”

“저 술꾼 새끼 말야. 저 새끼도 배가 터지면 뒈지려나?”

“글쎄, 터질 때 심장을 건드리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겠어?”


눕혀진 상태로 양쪽 벽에 빼곡하게 쌓인 백수십 개의 오크 통을 보며 전율하는 일행들이었다.

일 호와 금 실장의 도움으로 오크 통을 하나 열어서 들여다보던 엘프녀가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짐작한 대로야. 멀쩡한 와인에 미세하게 피 냄새가 섞여 있어. 감염자의 피가 제조 과정 중에 섞인 거 같아. 애초부터, 자신들이 피 안개로 변해서 무리 없이 스며들 수 있도록, 작정하고 만든 물건이야.”


복제 인간들이 갑자기 하지운을 응시하며,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듯,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너 배 터지면 죽어?”

“네 몸 안에서 흡혈귀가 변신을 풀면, 흡혈귀가 이겨? 네 위장이 이겨? 어느 쪽이 더 튼튼해?”

“궁금하다. 확인해 보고 싶다.”


간만에 거울 치료를 제대로 당한 하지운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떠듬떠듬 대꾸를 하였다.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3 고원 지대로 (4) 24.07.20 17 1 10쪽
232 고원 지대로 (3) 24.07.18 18 1 9쪽
231 고원 지대로 (2) 24.07.16 17 1 10쪽
230 고원 지대로 (1) 24.07.15 20 1 10쪽
229 베타테스터 (16) 24.07.12 22 1 10쪽
228 베타테스터 (15) 24.07.10 20 1 10쪽
227 베타테스터 (14) 24.07.08 19 1 9쪽
226 베타테스터 (13) 24.07.06 21 1 9쪽
225 베타테스터 (12) 24.07.04 18 1 10쪽
224 베타테스터 (11) 24.07.02 21 1 9쪽
223 베타테스터 (10) 24.07.01 26 1 9쪽
222 베타테스터 (9) 24.06.28 20 1 11쪽
» 베타테스터 (8) 24.06.26 22 1 12쪽
220 베타테스터 (7) 24.06.24 21 1 10쪽
219 베타테스터 (6) 24.06.22 23 1 9쪽
218 베타테스터 (5) 24.06.20 20 1 9쪽
217 베타테스터 (4) 24.06.18 22 1 10쪽
216 베타테스터 (3) 24.06.16 28 1 9쪽
215 베타테스터 (2) 24.06.14 23 1 9쪽
214 베타테스터 (1) 24.06.12 21 1 9쪽
213 도강 (9) 24.06.10 24 1 9쪽
212 도강 (8) 24.06.09 25 1 10쪽
211 도강 (7) 24.06.07 20 1 9쪽
210 도강 (6) 24.06.04 22 1 9쪽
209 도강 (5) 24.06.02 23 1 9쪽
208 도강 (4) 24.06.01 23 1 10쪽
207 도강 (3) 24.05.29 25 1 10쪽
206 도강 (2) 24.05.27 25 1 9쪽
205 도강 (1) 24.05.26 28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25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