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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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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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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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4)

DUMMY

216화


꼬챙이 사이를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피 안개가, 하지운의 면상 앞에 다다라, 순식간에 형체를 갖추었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아가리를 쩍 벌리고선 대갈통을 들이미는, 흡혈귀 전사의 입천장에 꼬챙이 한 자루가 뚫고 들어가 정수리를 꿰뚫고 나가 버렸다.


“너희가 이러니까 내가 젖꼭지 털을 못 뽑는 거야. 내가 진짜 민망해서 상의 탈의를 할 수가 없어.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 그러니 반성들 하고 순순히 뒈져.”


피 안개 상태로는 할 수 있는 게 도망 다니는 것밖에 없다.

적을 죽이려면 어쩔 수 없이 본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게 흡혈귀들의 서글픈 속성이었던 것이다.

탁월한 흡혈귀 전사들이 아무리 잽싸게 움직여도, 결국에는 꼬챙이에 꽂힌 식재료 신세가 되고 마는 게 이 때문이었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놈들을 상대로, 광기에 가까운 기세로, 생기를 빨아먹는 거죽만 인간인 하지운이다.

죽여 버린 흡혈귀의 마릿수가 사천 마리에 달하자, 그 시점부터는, 아예 지랄병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표출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히히히힉! 사랑해, 모기 같은 병신들아! 어서 나에게 달려들어 줘! 크하하하! 병신 같은 모기 새끼들 너무 좋아!”


피의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의 성안에서 짭퉁 흡혈귀 하지운이 멀티 오르가슴에 본격적으로 미쳐 가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은근히 스트레스를 유발해 왔던 레벨 업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는 중이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쾌감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설쳐 대는 하지운을 목도하고, 토종 흡혈귀들이 가눌 수 없는 분노에 치를 떨어 댔다.

하지만, 이미 한낱 각질 쪼가리가 되어, 가을 밤하늘을 수놓아 버린 수천의 동족들을 지켜본 흡혈 전사들이다.

선뜻 몸을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의 낯짝엔 감출 수 없는 모멸감이 서려 있었다.


흡혈귀들의 공격이 뜸해지자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한 하지운이 정상인의 말투로 차분하게 충고를 해 주었다.


“야행성 짐승 주제에 왜 시간을 끌고 지랄이야? 해 뜨는 거 보고 싶어? 너희 벌건 대낮에 야외에서 나랑 한번 놀아 볼래?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연놈 할 것 없이, 괄약근 마사지 한 번씩 해 줄까? 너희 마사지 엄청 좋아하는 거 같던데. 기대해도 좋아. 내가 새로 자리 잡은 집안이 원래 항문 쪽으로 알아주는 집안이거든. 아주 화끈하게 개통시켜 줄게.”


밤의 제왕 흡혈귀들의, 날 때부터 쭉, 창백한 얼굴이 완전 투명하게 질려 버렸다.

원래 이런 대사는 자신들이 하는 거고, 손님은 오줌을 질질 싸면서 살려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하는 거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느자구 없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흡혈귀들의 진솔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 닥쳐라!! 이 비천한 인간 놈아!”

“감히 우리를 조롱하다니!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리겠다!”


더 이상은 모욕을 견뎌 낼 수 없었던 흡혈 전사들이 하지운을 향해 초개같이 몸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0.1초도 지나지 않아, 기다리느라 눈이 빠질 것 같던, 하지운이 쾌재를 부르며 냅다 가시를 세워 버렸다.

골렘은 이미 소환 해제한 상황이라, 방향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가시를 뻗어 버린 하지운이다.

오륙십 미터 밖까지 뻗어 나간 수십 개의 꼬챙이에, 백 마리에 가까운, 흡혈귀가 여기저기 꿰뚫려 있는 모습이 흡사 교수형 나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뻔히 이렇게 될 줄 예상하고서도, 무려 백여 마리에 달하는, 흡혈 전사들이 피할 겨를도 없이 가시 공격에 당해 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 열 배가 넘는 전사들이, 피 안개로 변해 가시들을 피해 버리고는, 하지운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심지어 하지운의 머리 위로도 수십 마리의 흡혈귀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넘치는 풍성충 하지운은, 남아도는 터럭을 활용해, 삽시간에 헤어스타일을 성게 머리로 바꿔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미 세워 놓은, 수십 개의 가시에서 비교적 얇은 잔가시 천여 개를 단숨에 솟구치도록 만들어 버린 하지운이다.

용감하게 뛰어들었던 흡혈귀들이, 일순간에, 꼬챙이에 꿰뚫린 산송장이 돼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해 버린 하지운의 가지 곳곳에서, 장식이 되어 버린, 흡혈귀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거기에 나무 형상을 한 마귀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흡혈귀 마을의 고유한 정취를 한껏 자아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가 인적이 아예 없는 고원 지대 부근이었기에 망정이지, 민가에서 이러고 있었으면 지나가던 행인들 여럿이 미쳤을 것이다.


“흐윽... 고마워! '기력 흡수'까지 전부 백 레벨을 찍었어... 어흐윽... 눈물이 멈추질 않아...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아직도 두 달이 넘게 남았는데... 왜 벌써! 너희들 산타니? 여기 원래 자선 단체였어? 나한테 왜들 이래?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


입이 귀에 걸린 채 눈물을 펑펑 쏟는 정신병자를 바라보며,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삼만여 마리의 흡혈귀들이 팔다리를 덜덜 떨어 댔다.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가운데 가랑이 사이에서 찌릿찌릿한 느낌까지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밤의 제왕들이었다.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호구를 함정 속으로 몰아넣은 줄 알았더니, 배고픈 여우를 닭장 안으로 자진해서 밀어 넣은 꼴이었다.

이쯤 했으면 제발 그냥 가던 길 가시라고 읍소라도 하고 싶은 흡혈귀들이었지만, 사실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리조트 부지를 둘러싼 마법 성벽은 일출 때까지 생명체의 출입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을 밀실로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연쇄 살인마를 불러들인 가엾은 등신들이 절망에 몸부림쳤다.

그러든 말든 하지운은, 상태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단 몇십 분 만에 이룩한 자신의 업적을 게거품을 튀겨 가며 몸소 찬양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정말 ‘신체 재생’이랑 ‘골렘 소환’만 남았어. 책이라도 다시 써야 할까 봐. ‘세상에서 레벨 업이 제일 쉬웠어요.’라는 제목으로.”


「또라이 같은 하지운 님, 진정이 좀 되셨어요?」


‘응... 내가 너무 지랄을 했지? 미안, 너무 기뻐서... 자제할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특성이 겹치는 능력들의 경우, 전부 백 레벨을 달성하시면 서로 통합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통합이 가능한 능력은 ‘능력 강탈’, ‘흡혈귀화’ 그리고 ‘기력 흡수’가 있습니다. 지금 통합하시겠습니까?」


‘응.’


「축하드립니다, 하지운 님. 통합이 완료되어 하지운 님의 고유 능력이 ‘착취’로 진화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자기 놈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네요.」


‘......’


오늘따라 유달리 지랄을 떨어 대서 그런지, 승아의 기분이 적잖이 언짢아 보였다.

급속도로 차분해진 하지운이 골렘과 복제 인간들을 쏟아 낸 후, 도로 숙소로 들어가, 발코니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 하지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엘프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넸다.


“너 이제는 정말 사람으로 안 보여.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어때?”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하지운이 아름다운 엘프를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반문하였다.


“내가 언제는 사람 같았어? 난 이미 죽은 귀신이야. 그 상태로 이곳으로 넘어와, 남의 몸을 강탈한 채로, 인간 시늉을 하고 있는 잡귀에 불과하다고. 그런 주제에 산 사람인 척하려고 애쓰는 게 더 징그럽지 않아?”

“하아... 비록 널 본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넌 툭하면 너 자신에게조차도 지나치게 가혹하게 굴어. 너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산 사람에게 애정을 줄 수 없어. 약혼녀는 귀신, 동료들은 좀비... 넌... 도대체 산 사람들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려는 거니?”

“넌 정말 생긴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존재구나. 네 동족들을 학살한 나 같은 흉물에게조차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줄 만큼. 하지만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어차피 사람의 본성은 고쳐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난 헛수고라고 생각되는 일은 시작조차 안 해 보는 그런 부류의 종자야.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 뭐?”

“너, 오늘 나한테 생긴 일들을 보면서 느낀 게 없었어? 너도 알다시피, 흡혈 능력을 흡수할지 말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게 고작 닷새밖에 안 됐어. 그런데 기가 막히게 흡혈귀 소굴이 딱 튀어나와 주네. 꼭 작정하고 날 키워 주려고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음...”

“네가 보기에 내가 근래에 들어서 뭔가 받을 만큼 잘한 게 있었어? 네가 봐도 좆같았을 거고, 내가 봐도 솔직히 좆같았는데.”

“......”

“이제는 확신이 들 때도 됐잖아. 저승이 나라는 놈한테 원하는 모습은, 다정다감한 정의의 사도가 아닌, 그저 사리 분별이나 잘하는 고분고분한 살인마라는 걸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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