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새글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19 21:11
연재수 :
261 회
조회수 :
28,621
추천수 :
574
글자수 :
1,115,268

작성
24.07.16 21:02
조회
16
추천
1
글자
10쪽

고원 지대로 (2)

DUMMY

230화


상황이 저승에서 걱정하던 그대로 흘러가 버렸다.

현재 가장 언짢은 상태에 머물고 있는 건 하지운이 맞지만, 지켜보는 저승사자들도 하지운 못지않게 짜증을 주체 못 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하지운이 승아에게 리조트에서 며칠 놀자는 제안을 했을 때, 역설적이게도, 그 말에 가장 설렜던 건 승아가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중이던 저승사자들이었다.

정말로 승아에게, 인간의 육신을 구현시켜 준 후, 일주일만 붙잡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릴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저승의 상층부였다.

위에서 봐도 난이도 조정이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못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주받을 청개구리’ 하지운이 죽음의 나무의 에너지 39.99퍼센트를 원샷 때리는 개떡 같은 해프닝이 발생해 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 그 청개구리의 영혼의 단짝은 규정 위반까지 거하게 해 버렸고 말이다.

도저히 징계를 안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하지운에게 제약을 걸 수는 없었다.

지금도 레벨 하나 올리는데 살생을 천 번씩이나 하고 있는 하지운이다.

여기에다가 제약을 두 배, 세 배 건다고 소시오패스 학살마 하지운이 눈이나 끔쩍할 리가 없다.

그냥 그렇게 더 성실히 때려죽이고 다닐 거라는 게 눈에 선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승아를 모든 업무에서 배제한 후 가택 연금을 시켜야 했고, 이에 극도로 삐져 버린, 하지운은 드워프들의 장비와 흡혈귀들의 유동 자산만 가로챈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서 버린 것이었다.


난데없이 환골탈태를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한 놈이, 대응할 시간적 여유도 제대로 주지 않고, 매몰차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또다시 시간을 강제로 멈춰 놓은 상태에서, 대놓고 업데이트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안 하겠다고 통보한 게 고작 닷새 전이었다.

저승사자들의 입에서 쌍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균 신장이 십 미터인 초엘리트 깡패 오우거가 산길 한편에 웅크린 채 울먹이고 있었다.

놈의 사지는 팔꿈치와 무릎 부분에서 절단이 나 있었고, 심지어 재생도 안 되게 불로 지져져 있기까지 한 상태였다.


“야, 또 고함쳐 봐! 씨발놈, 성량이 아주 쩔던데. 고막 나가는 줄 알았어. 얼마나 무섭던지, 고추가 쪼그라들어서 똑 떨어져 나가려고 하더라니까. 야, 또 무섭게 해 달라고! 존나 스릴 있게!”


하지운에게 싸커 킥을 맞고 있던 놈이, 동네 주유소에서 가끔 보이는, 유조차 한 대분의 피를 게워 내 주었다.

하지운의 요청에 제 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응대했던 것이다.


“이 더러운 새끼가... 밥맛 떨어지게...”


한층 더 잔혹한 발길질이 내리꽂혀 댔고, 웅크리고 있던 오우거 용사의 입에선 검붉은 피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왔다.

양팔을 잡아 뜯긴 채 피를 토하고 있던 놈의 동료가, 안간힘을 다해 몸을 날려, 놈의 육신 위에 피범벅이 된 자신의 몸뚱어리를 덮어 버리는 것이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순간 인간 말종 하지운조차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미친... 너희 진짜 개멋진 놈들이구나! 나 감동했어!”


금세 온 상판대기가 눈물, 콧물로 덮여 버린 하지운이 양손에 은빛 찬란한 편곤을 꺼내 드는 것이었다.


“너흰 진짜 사나이야! 완전 상남자들! 흐윽, 진짜 존나 멋있어!! 나도 장난 그만 치고, 정성을 다해서 상대해 줄게!”


음속의 열 배가 넘는 속도로 휘둘러지는 편곤 두 자루에, 두 마리의 오우거들이 순식간에 만두소처럼 다져져 버렸다.

멍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엘프녀가 결국 이마를 짚으며 드러누워 버렸다.

놀란 금 실장이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야 했고 말이다.


“스트레스가 많았구나, 본체야. 진정 좀 하렴. 무서워서 못 보고 있겠어.”

“그래, 심장이 벌렁거려서 앓아누워야 할 거 같다. 제발 좀 살살해라.”


오직 일 호만 반응이 달랐다.

관찰력이 뛰어난 일 호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하지운의 정신적인 성장을 발견해 냈던 것이었다.


“본체야, 많이 성숙해졌구나. 뿌듯해서 눈물이 다 날라고 한다.”

“역시 넌 알아봐 주는구나. 널 전무로 임명하길 잘했어. 옆에 있는 밥통들과는 확실히 다르긴 달라.”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들이.”


사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진화한 하지운은 오우거들의 몸뚱어리를 살짝 띄워 놓고 그 밑에, 염동력을 이용한, 일종의 보호막을 깔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무게가 오 톤이 넘는 편곤으로 그 지랄을 해 댔는데도, 충격의 대부분이 땅속으로 전달되지 않고 허공으로 분산될 수 있었다.

만약 하지운이 염동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산사태가 발생해, 봉우리 하나 정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게 자명한 일이었다.

범죄자는 잔혹하게 살해하면서도, 자연은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성숙한 하지운의 참모습에 일 호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헤이디스 산적단의 척후대 열 마리 중 아홉 마리가, 하지운의 손에 의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했다.

비정한 살인마가 앞서 두 놈은 잘게 다져 버렸고, 나머지 일곱 놈은 사지를 박살 낸 후 기력을 쪽쪽 빨아서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넌 몇 살이야? 왤케 존만 해?”

“여, 열다섯 살이다.”


상꼰대 하지운이 예의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달해 주었다.

원래 이병 때 기합 빠졌던 놈들이 병장 돼서 더 꼰대 짓을 하듯,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는 하지운이 남의 반말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스무 대가 넘는 귀싸대기를 맞은 오우거 소년이 눈물, 콧물, 침을 질질 흘려 대며 덜덜 떨어 댔다.


“난 평등주의자야. 애도 패고, 노인도 패고, 여자도 패.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마. 인간이 괴물을 잡으러 왔다고, 꼭 정의로운 용사라는 법은 없는 거야. 너희 도적질하면서 금붙이 같은 거 많이 모아 놨어?”

“그, 그런 건 왜 묻는 거...”


우직한 오우거 소년이 말대꾸를 하면서 심지어 또다시 반말을 사용하려 하였다.

이번에는 귀싸대기 쉰 대가 작열했다.


“내가 네 엄마 대신 존댓말을 가르쳐 줄게.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번쩍거리는 것 좀 모아 놨냐고 내가 물었잖아. 대답 안 해 줄 거야? 너 오늘부터 네 의지랑 상관없이 암컷으로 한번 살아 볼래? 내가 예쁘게 만들어 줄까?”

“벼, 별로 모아 놓은 것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왜?”

“목이 좋은 곳을 이미 흡혈귀 놈들이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너희... 고작 흡혈귀도 못 이겨? 그 큰 덩치로?”

“아, 그게... 저희가 원래 소수 정예라... 놈들이 머릿수로 들이밀면... 아무리 저희라도... 거기다 놈들이 때리려고 하면, 자꾸 비린내 나는 핏물로 변해 버려서...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아이씨... 장사도 더럽게 안 되는 것들이 걸려들었네. 야, 나 그냥 지나가게 두지, 뭐 하러 기어 나와서 시비를 건 거냐? 가진 것도 좆도 없는 것들이. 아이, 씨발... 진짜 기운이 쑥 빠지네.”

“......”


편곤 한 자루는 수납장에 집어넣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것만 검으로 변형시킨 하지운이 소리도 없이 두 번 휘둘러 버렸다.

멍때리고 있다가, 자신의 양팔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본 오우거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토해 냈다.


“호들갑은, 너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재생되잖아. 근데 왤케 엄살이 심해?”


그러고는 바로 절단면에 불을 붙여 버리는 마족도 울고 갈 악마 하지운이다.

어린 오우거의 신체 재생에 악영향을 끼친 하지운이, 바닥을 구르며 절규 중인, 어린 친구를 염동력으로 일으켜 세웠다.


“뛰어.”


의사 전달이 전혀 이루어지지를 못했다.

대성통곡을 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어린 오우거였던 것이다.

보다 못한 하지운이, 진정을 하라는 뜻으로, 놈의 복부에 어퍼를 한 방 꽂아 넣어 줬다.

그러고는, 막힌 숨을 토해 내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어린 오우거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잠시 기다려 주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어린 친구의 호흡이 겨우 돌아오는 듯하자, 하지운의 따뜻한 격려가 다시 이어졌다.


“어서 집으로 가라니까. 당장에라도 네 고추를 빻은 다음, 이마에 리본을 달아 줄 수도 있어. 그 꼴로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날래? 내 생각에는 지금 이 상태가 훨씬 보기 좋을 거 같은데.”


정신이 반쯤 나가 버린 오우거가 자신들의 소굴을 향해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 미터 이십의 5.0버전으로 변신한 하지운이, 일행들을 이끌고, 세상 여유로운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았다.


“또... 쫓아가서 다 죽일 셈이야?”


고개를 살짝 돌려 엘프녀를 힐끔 쳐다본 하지운이, 피식 웃으며, 반문을 던졌다.


“왜, 그러면 안 돼?”

“하아... 그게...”

“나한테 불쌍하게 처맞는 걸 보고 잠깐 헷갈리는 모양인데. 쟤들 강도야, 선량한 산골짜기 화전민들이 아니라. 쟤들의 동료들도 범죄 단체 구성원으로서 체면이란 게 있지 않겠어? 척후대 애들이 저 지경이 됐는데, 나머지 놈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러면 금세 인근의 다른 경쟁자들에게 병신 취급을 받게 될 텐데. 어차피 내가 안 찾아가도, 저것들이 끝까지 쫓아올 거라는 얘기야.”

“......”

“쟤들이 살심을 품고 내 앞에 튀어나온 순간 결말은 정해졌던 거라고. 그러니까 조용히 처박혀 있었어야지. 대체 왜 기어 나온 거야? 내가 언제 불렀던가?”


오우거들을 두고 한 말이 엘프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쑤셔 박혀 버렸다.

도저히 남의 얘기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금세 낯빛이 창백해진 엘프녀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처연한 표정을 한 채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3 고원 지대로 (4) 24.07.20 17 1 10쪽
232 고원 지대로 (3) 24.07.18 18 1 9쪽
» 고원 지대로 (2) 24.07.16 17 1 10쪽
230 고원 지대로 (1) 24.07.15 20 1 10쪽
229 베타테스터 (16) 24.07.12 22 1 10쪽
228 베타테스터 (15) 24.07.10 19 1 10쪽
227 베타테스터 (14) 24.07.08 19 1 9쪽
226 베타테스터 (13) 24.07.06 20 1 9쪽
225 베타테스터 (12) 24.07.04 18 1 10쪽
224 베타테스터 (11) 24.07.02 20 1 9쪽
223 베타테스터 (10) 24.07.01 25 1 9쪽
222 베타테스터 (9) 24.06.28 20 1 11쪽
221 베타테스터 (8) 24.06.26 21 1 12쪽
220 베타테스터 (7) 24.06.24 20 1 10쪽
219 베타테스터 (6) 24.06.22 23 1 9쪽
218 베타테스터 (5) 24.06.20 20 1 9쪽
217 베타테스터 (4) 24.06.18 21 1 10쪽
216 베타테스터 (3) 24.06.16 27 1 9쪽
215 베타테스터 (2) 24.06.14 23 1 9쪽
214 베타테스터 (1) 24.06.12 21 1 9쪽
213 도강 (9) 24.06.10 24 1 9쪽
212 도강 (8) 24.06.09 25 1 10쪽
211 도강 (7) 24.06.07 20 1 9쪽
210 도강 (6) 24.06.04 22 1 9쪽
209 도강 (5) 24.06.02 23 1 9쪽
208 도강 (4) 24.06.01 23 1 10쪽
207 도강 (3) 24.05.29 25 1 10쪽
206 도강 (2) 24.05.27 25 1 9쪽
205 도강 (1) 24.05.26 27 1 9쪽
204 즐거운 훈련 (9) 24.05.23 24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