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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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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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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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테스터 (2)

DUMMY

214화


애커론강 변에서 이튿날 아침까지 푹 쉰 하지운이,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또다시 기나긴 수련의 여정에 들어섰다.

목표 신장인 삼십 미터를 찍기 위해서, 그리고 십만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을 육성하기 위해서.

꿈 많은 소시오패스 하지운은 오늘도,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복제 인간 일 호가 그런 하지운을 바라보며 흐뭇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표가 아무리 병신 같더라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구나. 힘내라, 본체야.”


칭찬도 자꾸 하다 보니 느는 모양이었다.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의 훈훈한 모습을 보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던 아름다운 엘프녀가 그새를 못 참고 또다시 바른말을 간하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뭐가 맘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이들을 이 지경으로 무자비하게 채찍질하고 있는 건가요?”


뭔 소릴 하냐는 듯 두 눈을 멀뚱거리던 하지운이 손에 쥐고 있는 말채찍을 들어 보이며 반문했다.


“이거 얘기하는 거야?”

“네.”

“어... 이건 요즘 너무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는 거 같아서. 식후 운동 중인 건데. 왜? 보기 안 좋아?”

“하아... 야, 이 미친놈아! 그게 보기 좋겠니?”


시무룩해진 하지운을 대신해 옆에 있던 복제 인간들이 변호를 자청하고 나섰다.


“너무 그러지 마라, 불여시야. 본체는 지금, 벌건 대낮까지 처자빠져 자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중인 거야.”

“스스로를? 이 미친놈이 언제부터 이들하고 한 몸이었는데?”

“어어!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 새끼가 이래 봬도 전하야! 전하! 넌 인간을 그렇게 오래 염탐해 놓고, 어떻게 매 맞는 아이(The Whipping Boy)도 몰라? 얘도 얘 나름 지위에 걸맞은 법도라는 게 있는 거라고! 설마 너, 이 새끼 옥체에 직접 손을 대려는 거야? 너 반역자야?”

“하아... 됐다. 내가 미칠 대로 미친 네놈들이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보다 못한 하지운이 금 부장을 보고 한 소리 하였다.


“네 여친이야말로 아침부터 왤케 짜증이야? 금 부장 너, 이 버러지 새끼들이 어떤 종자들인지 얘한테 얘기 안 해 줬어? 아니, 이것들이 대체 뭐라고 못 지켜 줘서 안달이야?”


딴청을 부리고 있던 금 부장이 발끈해서는 버럭 성질을 내며 맞받아쳐 버렸다.


“야, 나더러 고결한 셀런 양에게 그런 메스꺼운 얘기까지 다 하라는 거냐?”

“뭐,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야, 엘프야. 이 연놈들이 뭔 짓을.”

“닥쳐!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지운과 금 부장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엘프녀가 부르기도 전에 미리 남친 곁으로 다가갔다.

인상을 구겨 버린 금 부장이, 두 번 말하기가 싫은 듯, 버러지들의 화려한 전적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로 한 번에 읊어 버렸다.

약간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버러지들을 지켜보던 엘프녀의 면상이 금세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더니 차츰 안면을 일그러뜨리다가, 종국에는 토사물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버러지들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이었다.


“너... 저승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갖고 놀 수 있는 것들을 챙겨 왔던 거구나...”

“어, 맞아. 앞으로는 나 노는 거 방해하면 안 돼. 다음번에도 또 이러면, 그땐 아무리 너라도 가만 안 둬.”

“알았다...”


유일한 방해꾼이었던 엘프녀조차 손을 놔 버리자, 버러지들을 역성들어 줄 이가 인세에 더 이상 존재치 않게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열심히 유산소 운동 중인 하지운과 그의 식구들 앞에, 고원 지대를 둘러싼, 헤이디스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산맥을 넘어가면 고원 지대가 분지처럼 형성되어 있다는 거잖아.”

“뭐, 그렇지.”

“그럼 이 산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전설 속의 괴물들이 튀어나와서 우릴 괴롭히겠네.”

“그렇겠지.”

“그럼 우리 저기서 며칠 쉬다가 들어갈까?”

“크흑...”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버린 하지운이, 어깨를 들썩이며 끅끅대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는 하지운의 앞으로 정장 차림의 여성이 다가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0140206 훈병 하지운 님 본인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신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저승의 자회사인 헤이디스 리조트 사업부에 재직 중인 엘리자베스 사원이라고 합니다. 고원 지대에서 고생하실 하지운 님을 위해, 저희가 소박하게나마 풀 빌라와 마사지 코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부디 사양치 마시고, 하루 푹 쉬시면서 저희 리조트의 정성을 다한 서비스를 즐겨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오오! 저승의 세심한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당연히 이용해야지요. 이곳의 풍광이 빼어나니, 잠시 산책을 하다가 금방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운 님.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수속을 마쳐 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엘리자베스 사원이 리조트 건물로 들어서는 걸 끝까지 지켜보던 하지운이 복제 인간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복제 인간들도 별반 다를 게 없는 표정으로 히죽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전하, 미치셨어요? 저 소름 끼치는 곳에서 기어이 하룻밤을 보내시려고?”


엘프녀의 염려 반 비아냥 반의 잔소리에, 입을 삐죽거리던 하지운이 푸념 섞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그럼 어떡해? 이용해 보고 리뷰 남겨야 할 거 아냐.”

“도대체 그놈의 회전목마가 뭐 하는 물건인데, 목숨까지 걸고 지랄이야? 너도 넘치는 게 황금인데, 네가 직접 만들면 될 거 아냐!”

“......”


보고 있던 복제 인간들이 갑갑하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전목마는 그저 핑계일 뿐이야. 이 새끼한테 뭔 힘이 있다고, 저승의 제안을 거절하겠냐?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어?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보상이라도 확실하게 받으려는 거지.”

“이 새끼가 자꾸 약게 구니까, 그딴 걸 시키는 거잖아. 고분고분하게 준비된 시련을 다 겪게 만들려고.”


복제 인간들의 말을 듣고 있던 엘프녀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다 비참하게 죽어 간, 딴딴한 친구들을 떠올렸다.

왠지 저승의 조치에 수긍이 가려는 듯한 기분이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엘프녀가 한마디를 남기고 금 부장 옆으로 잽싸게 되돌아갔다.


“자업자득이었네, 이 악마 같은 새끼야.”

“인정.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네.”

“화가 나지만 이건 불여시의 말이 맞아. 본체 새끼야, 미안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네가 좆같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어.”


복제 인간들도 순순히 엘프녀의 의견에 동의해 버렸다.

징그럽게 히죽거리고 있는 분신들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하지운이 담담한 표정으로 몽둥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한결 진중해진 가족들을 거느리고, 리조트 부지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다시 정문 앞으로 되돌아온 하지운이 금 부장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뭐 느낀 거 있어?”

“딱히... 아주 살짝 뭔가 꺼림칙하다는 느낌 정도. 솔직하게 말하면, 셀런이 네놈에게 경고하기 전까지는 전혀 낌새조차 못 느꼈다. 그저 건축 양식이 굉장히 생소하다는 생각밖에 못했었지. 이건... 네놈이 살던 곳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것인가?”

“응. 근데 얘가 이 정도면, 루시아나 컬버트 흉내 내고 있는 두 밥통들은 맥없이 털렸겠는데.”

“그러게. 너나 불여시나 대가리가 좆나게 발달했으니, 일단 논외로 쳐야 하고. 육체의 역량만 따지면, 다른 두 참가자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이놈이 이 정도로 못 느끼고 있다는 건.”

“그래, 그러면... 위장 점수는 5점 만점에 3.8점.”

“적당하네.”


외부 검사를 마친 하지운이 리조트 입구로 다가갔다.

대기 중이던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마중 나와,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하지운 일행을 안내했다.


“풀 빌라와 마사지 코스는 내일 정오까지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골프장과 루프 탑 클럽은 별도 이용료가 부가되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얼만데요.”

“골프장은 황금 오백 킬로그램, 클럽은 황금 백오십 킬로그램입니다. 황금 대신 보석이나 미술품도 취급하니,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혹시 클럽에서 술값도 따로 받나요?”

“스파클링 와인 한 병과 기본 안주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추가로 주문하실 경우엔 당연히 봉사료가 포함된 금액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직원이 듣든 말든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은 슬슬 품평을 시작하였다.


“눈탱이 존나 심함. 가격 토 나옴.”

“손님을 병신으로 앎. 들어서자마자 기분 좆같아짐.”

“서비스 점수는... 5점 만점에 0.1점.”

“무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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