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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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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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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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 (6)

DUMMY

209화


“원래 본판은 개허접한데, 전신 성형이 엄청 잘된 거였구나. 그런데 재생 능력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기력도 빨아먹을 수 있네. 정말 다재다능한 년들이야. 대단하다.”

“거기다 구라도 잘 쳐. 표정 하나 안 바뀌던데.”

“남 부려 먹는 것도 좋아하고.”

“푸흡!”

“크크크큭.”

“그거... 이년들 얘기 맞지?”

“크흐흑... 무, 물론이지... 크흑.”

“그만들 해라! 비록 괴물이긴 해도, 한 종족의 성체 만 육천여 마리가 몰살을 당했다. 그런 자리에서 이 무슨 망발들이냐! 참으로 예의가 없구나! 자중하거라!”

“하아... 일 호 새끼 넌 진짜... 너 그런 얘길 할 때마다 제발 표정 관리 좀 하라고 내가 말을 했냐, 안 했냐? 그렇게 비열하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네가 본체랑 다를 게 뭐가 있냐?”

“뭐! 너 진짜 한번 뒈져 볼래? 나 진짜 저 새끼 안 닮았다고!”


복제 인간들이 한쪽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노는 동안, 괴물 학살의 명인, 하지운은 사이렌 족장 다섯을 매달아 놓고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너희는 어느 부위 좋아해? 미리 말해 두는 건데, 나는 배꼽살이랑 대뱃살.”

“저, 저희는 우읍!”


피가 섞인 토사물을 게워 내느라 고생하는 아름다운 인어를 보고, 하지운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가리만 꺼내 놓고 땅에다 파묻어 버릴까... 아니면 팔이랑 하반신을 박살 내 놓고 머리끄덩이를 나뭇가지에 묶어 버릴까...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까 계속 토해 대네. 대화가 도저히 진행이 되질 않아.”


갈대숲에서 방금 끌려 나온 아름다운 커플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땅에다 묻으시는 게 가장 무난해 보여요, 전하.”

“제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 묻히고 싶었어? 너희 둘 다?”

“네? 저, 저희가요? 저희 말고요! 이분들이요!”

“우리가 왜 묻혀!”

“이 잡것들아, 내가 적당히 하라고 했지.”

“아... 네...”

“전하야, 너도 그 슁안가 뭔가 하는 애랑 더 하고 싶다고, 겁도 없이 저승에까지 징징거리지 않았느냐! 너 정말! 같은 사내끼리 이럴 거냐? 넌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하아... 이 새끼가 이제는 대놓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네. 내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어? 전투 중에 사라지지 말라고!”

“네가 이것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는 바람에 셀런이 놀라서 울잖아! 그런데 그걸 계속 보고 있게 하라고!”

“그럼 그냥 소환을 해제해 달라고 말을 하든가! 네가 야동에 등장하는 몸으로 위로하는 아로마 세러피스트야? 왜 맨날 걔를 위로한답시고 숲으로 사라지는 거냐고!”

“저, 저기... 전하, 이분들 숨이... 금세 죽을 거 같은데...”

“아이씨, 귀찮아 죽겠네! 넌 이따가 보자, 이 떡 부장아!”


사이렌들을 흙바닥에 심고는 물까지 준 하지운이, 그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심문을 이어 갔다.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뿐이야. 케런 그 새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어? 그것만 대답해. 그러고 나서 얼른 편하게 죽어.”

“케, 케런이요?”

“모른다고 하지 마. 모닥불을 피워 놓고 너희의 하반신만 꼬챙이에 꽂아서 잘 구운 다음, 아까 그 똥쟁이들한테 먹일 수도 있어. 물론 너희들의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흐으윽... 저, 정말 몰라요...”

“정말이에요! 진짜 맹세코 몰라요! 지금 당장 ‘그분’께 맹세하라면 할게요!”

“사실 이 강을 건너려고 여기까지 오신 분도 용사님이 최초예요! 저희 여기서 백 년 가까이 살았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한 생명체는 용사님이 처음이었다고요! 진짜예요! 누가 이 강을 건넌 적이라도 있어야, 뱃사공을 구경이라도 해 보죠!”


면상이 하얗게 질린 사이렌들이 아우성을 쳐 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가시를 하나 뽑아서 휘둘러 대던 하지운도 뭔가 뻘쭘했는지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보탰다.


“그럼 당장 맹세해 봐.”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하지운이다.

그런 놈이 남들이 하는 말을 쉽게 믿어 줄 리가 없었다.

어차피 최면을 걸어서 추가로 검증할 거면서, 말 한 마디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하가 놈이었다.


너무 억울해서 뒈질 것 같았던 사이렌들이 고개를 쳐들고는 고래고래 악을 써 대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저희가 한 말에 티끌만 한 거짓도 없었다는 걸 당신께서는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이 악마에게 저희의 진솔함을 증명해 주소서!”

“맞습니다, 존귀하신 하늘의 왕이시여! 제발 이 악마에게 뱃사공을 보내 주시옵소서! 제발! 제발 이 악마를 저희의 보금자리에서 치워 주소서!”

“지금 그게 원래 너희 목소리야? 와, 우렁차고 화통한 게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얘들아, 너희 목소리 너무 듣기 좋아. 아까 개수작을 떨 때만 해도, 목소리가 너무 간드러져서 속이 다 메슥거릴 지경이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좀 더 살살했을 텐데. 사실은 내가 비위가 엄청 약하거든. 그래서 너희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듣고, 살심이 많이 뻗쳤었어.”


하지운의 조롱에 아름다운 족장들의 입에서 오만 가지 저주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저주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완벽하게 면역이 된 하지운이었다.

당연히 눈곱만큼의 동요도 보여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족장들을 상대로 한참 조롱 삼매경에 빠져 있던 하지운이 갑자기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하지운은, 하얗게 질려 버린 면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골렘을 향해 다급하게 고개를 비트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날아온, 골렘이 귀두도 형태의 오른팔을 휘둘러 일격에 다섯 족장의 목을 날려 버렸다.


이미 몸을 날린 채로 사이렌 족장들의 최후를 확인한 하지운이, 골렘과 언데드 커플을 소환 해제시키고는, 복제 인간들과 함께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아 버렸다.

실성한 놈들처럼 정신없이 달아나는 그들의 뒤로, 끝도 없이 솟구쳐 오르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물기둥이 시선을 강탈하고 있는 중이었다.


단숨에 삼 킬로 밖으로 달아난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이 강 쪽을 바라보며 눈알만 뒤룩거리고 있었다.


“일 호야, 내 볼 좀 꼬집어 봐. 어? 씨발!! 너 진짜 뒈질래?”

“어... 으, 으아악! 아오, 징그러! 이게 뭐냐, 본체야?”

“뭐긴 뭐야!! 내 볼살이잖아, 이 미친 새끼야! 내가 꼬집으라고 했지, 언제 너더러 잡아 뜯으라고 했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일 호가, 자신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들려 있던 살점을 내팽개치며, 소스라치게 놀라 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하지운의 주특기 중에 재생 능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정말 말도 못하게 끔찍한 일이 발생할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개망나니들의 소요도 금세 흐지부지돼 버리고 말았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엄청난 스케일의 이적에, 그 정도의 자잘한 사건은 순식간에 무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게 케런인가 하는 새끼인가 본데... 본체야, 너 어떡하냐?”

“와... 이만한 거리에서 저 정도 크기로 보이려면, 저 새끼 키가 어느 정도인 거야?”

“음... 한강 고수부지에서 보는... 63 빌딩 정도?”

“어! 얘네 집에서 멀지 않은 거기... 그 다리 뭐더라... 아! 동작 대교! 거기서 63 빌딩 봤을 때 딱 이 느낌 아니었나?”

“그러네! 잠깐! 63 빌딩은 이백 미터가 훨씬 넘어!”

“미친! 그럼 저게 한 이백사오십 미터 정도는 된다는 거 아냐! 저걸 어떻게 이겨? 본체 너 너무 까분다고 저승에서 빡친 거 아냐?”

“야! 너 여친한테 얘기해서 한동안 자숙하면서 반성하겠다고 해!”

“씨발! 강에다 똥 뿌릴 때 알아봤다! 뭐, 세균전이 어쩌고 어째?”

“강물 표면에 쫙 깔려 있던 마력 전체가 저놈을 구성하는 육신 같은 거였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시원하게 뿌려 버린 거고.”

“빡칠 만했네.”


복제 인간들의 아우성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하지운이, 한숨을 내쉬며,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하아... 어쩐지 강에 존나 들어가기 싫더라니...”

“강 한복판에서 저런 거랑 마주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긴 한데. 뭐 어찌 되었든 저걸 도대체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냐, 본체야?”

“흐음...”

“어! 본체야, 지금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 새끼 지금 뭐 하려고 해!”


삼 킬로 밖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물로 만들어진, 거인이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아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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