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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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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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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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붉게 물든 손 (3)

DUMMY

흔한 이야기다.

멸망한 이후, 지금의 세상에서는 말이다.


가족을 잃었고, 지옥을 맛보았다.

때문에 도망쳤고, 온통 새하얀 곳에서 살아간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곳에서 사랑했던 이들조차 잃은 채로.


그렇기에 대부분 사람은 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병이든, 육신의 병이든.


그렇기에 흔한 이야기다.

대수롭지도 않다.

그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겪은 일 역시 그러한 사연 중 하나인 보잘것없는 이야기라고.



***



“허억, 허억···.”


거칠어진 호흡, 흔들리는 동공.

빨라진 심박수.

정상적으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떠올려서는 안 되는 광경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보았던 손이 이 현상을 일으켰다.

피로 물든 손.

그것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커, 커허억···.”


김윤이 나머지 한 손,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호흡을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다고?’


노호수는 그 모습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놈이었다.

오히려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자신의 공격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막아낸 후, 갑자기 발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는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저 모습은 연기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나, 상관없다.’


오히려 노호수에게는 기회일 뿐이다.

자신을 방해하는 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마력도 아껴야 하니.’


그는 전신을 휘감던 바람을 거두고 오른손에만 마력을 집중했다.

그의 손끝을 타고 바람이 칼날처럼 휘몰아쳤다.

이어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김윤의 목을 가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김윤의 주위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A랭크는 재앙이다.

그리고 김윤 역시 A랭크.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기술들이 수수하다고는 하나, 그가 가진 마력의 양은 A랭크의 것이다.

즉, 재앙을 일으킬 힘은 충분하다는 뜻.


김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점점 짙어진다.

하늘빛으로 물들던 아공간이 이제 대양의 빛깔로 푸르게, 아니 검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모두 김윤이 지니고 있던 마력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마력이군······.”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노호수는 멀리 도망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지옥을 맞이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아아악!


푸른 섬광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


“결국 너는 구하지 못했잖아.”


피로 물든 손이 김윤의 눈동자에 담겼다.

그는 구하지 못했다.

가족은 물론, 수많은 사람을.


“잊으려 하지 마라.”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기억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김윤은 아직 멸망하기 전 세상을 달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멸망하는 날의 세상을 달리고 있었다.


하늘 가득 차오른 먹구름과 푸른 섬광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

마석 대재해, 그는 그날에 있었다.


“허억, 허억.”


숨이 차오른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콰아앙!


대지가 뒤흔들리며 사방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쪼개진 섬광의 일부가 근처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김윤은 고개를 돌려 부모님이 함께 달려오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두 분은 잘 따라오고 있었다.


아버지 쪽이 조금 불안했지만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리학자였다.

때문에 운동 선수 출신인 어머니보다 체력이 부족했기에 많이 뒤처진 상태였다.


“여보! 좀 더 힘 좀 내봐요!”


그렇기에 그런 그를 아내가 부추기며 더욱 바삐 발을 놀렸다.


김윤은 부모님을 넘어 그 뒤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섬광은 아름다웠으나, 그것이 떨어진 대지는 끔찍할 뿐이었다.


새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비명이 쏟아지며 매캐한 연기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김윤은 침을 꿀꺽 삼킨 후,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후, 여, 역시 저, 젊은 게 조, 좋아······.”


김윤의 아버지가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까.


‘지하철? 아니면 대피소?’


그들은 우선 지하철로 향했다.

보통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 가장 근처에 있으며 대피하기 좋은 곳은 그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피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김윤이 저 멀리 보이는 지하철 출입구를 발견하며 외쳤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번쩍.


마치 번개라도 떨어진 듯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콰아아앙!


지하철이 위치한 곳을 향해 섬광이 한 줄기 쏟아졌다.


굉음과 충격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폭풍이 일어나며 김윤과 그의 가족들은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크으윽······. 대체 무슨······.”


이어 몸을 일으킨 김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하철 쪽에 떨어진 섬광은 일대를 녹여버렸으니 말이다.


섬광의 잔재가 남은 대지가 붉게 물들어 들끓었다.

증기가 피어오르며 근처에선 열기에 먹혀 불길이 피어올랐다.


지옥이나 다름없는 광경이었다.


이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가.


김윤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몇몇 이들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좌절에 빠져있었다.


김윤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아직 젊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되었는데 죽고 싶지 않았다.


김윤은 부모님을 챙긴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최대한 멀리 가야 했다.


몇몇 이들이 그런 김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또다시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 굉음과 비명을 배경음악 삼으며 달렸다.

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토가 쏟아질 것 같았다.

참았다.

그리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김윤의 앞에 갑작스레 무언가 생겨났다.


푸른 기운을 토해내는 원이었다.


“이, 이건······.”


포탈이었다.

멸망이 시작되기 전부터 갑자기 생겨난 의문에 원.

그러나 이곳에 들어섰던 사람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김윤은 고민했다.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콰아아아앙!


주변에 섬광이 떨어졌다.

대지가 뒤흔들리며 충격파의 폭풍이 한차례 그들을 덮쳤다.


섬광이 떨어지는 주기가 점차 빨라졌다.

그는 선택해야했다.


“······엄마, 아빠.”


김윤이 몸을 일으키며 부모님을 뒤돌아보았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는 포탈을 노려보았다.

저것 말고는 이제 없다.


“윤아.”


그러자 그의 곁으로 그의 부모님이 다가왔다.

그리고 포탈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콰아아아앙!


수많은 섬광이 일대에 떨어지며 지진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의 섬광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저 멀리 있으나 알 수 있었다.

그야 이 일대는 모조리 불타올랐고, 그들이 있는 곳만 멀쩡했으니 말이다.

저것은 반드시 이곳에 떨어져 이곳마저 불태울 것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나같이 포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김윤과 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제일 선두였다.


그는 포탈 바로 앞에 서며 부모님을 향해 양손을 펼쳤다.


왼손엔 어머니의 손을, 오른손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포탈을 향해 제일 먼저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섬광이 떨어졌다.


그는 양손에 잡히던 것이 없어짐을 느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잊을 수 없었다.


포탈로 들어서는 순간, 보였던 사람들의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

인자한 어머니의 웃음.

아버지의 ‘살아’라고 말하는 입 모양.

그리고 푸르게 물든 시야.


김윤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붙잡아 당겼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피로 물든 두 손만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흐아아아아아악-!!”


김윤이 울부짖었다.

마력이 더욱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니 감내해야 한다.


그가 고민했기에, 바로 뛰어들지 않았기에.

그의 가족은 물론, 그 뒤에 있던 모두가 죽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직시해야지. 고통받아야지.”


새카만 어둠이 그에게 속삭였다.


“너 때문에 모두 죽었잖아.”

“아, 아니야······.”


김윤이 부정했다.


“내, 내가 그런 게······. 미, 미안해요. 나는······.”


죄악감이 그를 휘감았다.

그날 그의 손에 느껴지던 감각이 다시금 맴돌았다.


끈적이는 피, 그것이 품은 온도.

서서히 식어가며, 굳어가던 두 손.


김윤은 노력했다.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폭주를 억누르기 위해.


흔한 일이다.

멸망한 세상에서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었고, 상처 입었다.

그러니 흔한 일이다.

자신만 그 고통에 아파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겪었다고 해서 자신이 겪는 고통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정말로 아파했으니까.

그가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화아아악!


푸른 마력이 섬광으로 화하며 일대를 집어삼켰다.


마력의 사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품고 있는 꿈.

그러한 것들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같은 스킬이라고 한들 사람마다 조금씩 형태가 달랐다.

노호수의 경우 고유 스킬이긴 하나, 다른 이가 그 스킬을 지닌다면 또 다른 바람의 형태가 태어날 것이다.


김윤 또한 그러했다.

그의 고유 스킬은 기억 추출과 저장 그리고 재현.

그 형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그가 그것을 지도로 표현했을 뿐.

다른 이가 가졌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의 능력은 지도가 아니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새하얀 공간에 그의 마력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대지를 그려나갔다.


아공간에 기억을 새기기 시작했다.

이어 그것은 사방을 둘러싼 그의 마력을 통해 재현되었다.


아공간에 하나의 기억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김윤의 기억 속 가장 떠올려서는 안 되는 것.

그의 트라우마 속 잠겨 있는 기억.


“이건 설마······.”


노호수가 마력으로 인해 변하는 주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공간 내에 있다는 뜻은 대부분 그날의 일을 겪었다는 뜻이 된다.


마석 대재해.

그날의 기억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재앙이다······.”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아악-!!”


김윤이 울부짖었고 불타오르는 도시가 그에 맞춰 화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하늘에선 섬광의 비가 쏟아졌다.


김윤, 그는 마력 랭크 A.

움직이는 재앙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큰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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