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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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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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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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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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도 (2)

DUMMY

기억 추출과 저장 그리고 재현.

그것이 김윤이 가진 고유 스킬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가진 하나의 고유 스킬, '기억'을 세분화한다면 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지정한 대상의 기억을 추출하고 원하는 형태로 저장.

이어 그 기억을 재현하는 것.


그중 형태는 지도가 되었고, 재현은 그 지도를 읽어 그 안에 길을 찾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길잡이에서 판매하는 특수 지도이자 그의 통합된 고유 스킬, 기억의 지도.


김지아는 멍하니 그 지도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형태가 땅과 물, 그리고 도형으로 새겨진 지도.


“······그곳에 기억을 담으면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김윤이 지도를 향해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지도에 새겨진 수많은 길 중 단 하나에 길을 타고 푸른빛이 타올랐다.

지도에 새겨진 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것에 담긴 기억을 재현하는 길을 말이다.


재현의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

이전에 보여준 단도와 같은 응축을 통한 형상화.

그리고 지금 그가 시도하고 있는 기억 재현.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빛이 지도에 새겨진 하나의 길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러자 지도 안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무언가가 드러났다.


섬광이 사람 형태의 대륙을 타고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도시의 모습이었다.


푸른 섬광이 불태운 길이 이어져 도시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자 지도 전체가 푸른빛에 물들더니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지도가 토해낸 푸른 빛이 김윤과 김지아를 향해 스며들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하나의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기억이었다.

과거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다시 보고 싶어 하던 기억이었다.


“이건······.”


멸망하기 전 세상의 모습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마치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후 재현된 기억이 사그라들자 김윤이 입을 열었다.


“이것이 기억의 지도가 보여주는 기억입니다.”


김지아는 이제야 그가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행복한 기억을 가져간다는 것.


그것은 방금의 기억과 같은 것이었다.

마치 지금 겪은 것 같은 생생함.

그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은 힘들 때 본다면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떠나가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부 해드릴 수 있다면야 저희도 좋겠지만 제 능력에는 제한이 있어서 말이죠. 타인에게선 하나의 기억만을 추출해둘 수 있습니다. 물론 추출한 기억의 지도를 사용한다면 다시 추출 가능하지만, 지우는 경우에는 보통 지도를 사용하지 않아서 불가능합니다.”


김윤이 설명을 더 했다.


“그렇기에 보통 후자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후자가 좀 더 쉽기도 하고요. 전자의 경우는 조금 복잡합니다.”


김윤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기억이라는 게 생각보다 서로 엉켜있어서 말이죠. 그 기억을 지우려다 다른 기억마저 손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다른 기억을 통해 지웠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그뿐만 아니라 한 번 추출한다고 온전히 지워지는 게 아니라서요. 최소 세 번은 추출해야 합니다. 추출할 때마다 그 기억이 옅어지는 식이라서 말이죠.”


김윤이 손가락을 펼쳐 숫자를 표했다.


김지아는 고민했다.

기억을 지워도 그것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면, 행복한 기억을 토대로 버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동시에 방금 보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멸망 전 세계, 아공간에 들어오기 전의 평범한 삶.

그리고 그것을 함께 했던 친구.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이제 없다.


그녀의 손이 다시금 떨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괜찮으신가요?”

“괘, 괜찮아요.”


김지아는 심호흡하며 심신을 진정시켰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었다.


“······기억을 지우겠습니다.”


그녀는 선택했다.

기억을 지우는 쪽으로 말이다.


“알겠습니다.”


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선택에 그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그저 손님인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뿐.



***



김윤이 김지아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푸른 마력의 아지랑이를 일으켰다.

기억을 추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가 부탁한 기억의 제거.

그리고 그 기억은 하나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었다.


푸른 마력이 김지아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을 발휘하며 그녀에게 새겨진 기억을 헤집었다.


그곳엔 수많은 열매가 맺혀있었다.

그리고 그 열매들엔 푸른 뿌리가 나 있었는데 그것은 서로를 뒤엉키게 했다.


열매는 기억, 그리고 뿌리는 김윤이 말한 기억의 뒤엉킴이었다.


그곳을 파고든 마력은 주인의 지시대로 하나의 기억을 찾았다.

김지아가 의뢰한 제거할 기억.


마력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고, 뿌리를 타고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것과 뒤엉킨 기억마저 조작하기 위함이었다.


뜨드득.


뿌리가 뽑히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기억의 원천인 구체가 천천히 들리기 시작했다.

뒤엉킨 뿌리를 통해 다른 기억들도 들리긴 했으나, 마력이 칼날로 변해 그들과 맞닿은 뿌리를 잘라냈다.


‘역시 온전하진 못하군.’


김윤이 뽑혀오는 기억을 살피며 생각했다.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한 것을 통째로 지우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쉬웠을 것이다.

애초에 그것은 기억에 깊게 새겨지지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가까웠던 존재이다.


기억을 뽑는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했던 사람인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충격적인 거겠지.’


김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기억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김윤은 마력을 더욱 세밀하게 조정했다.

그리고 고유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기억의 구체가 추출되고, 그 뒤로 뒤엉킨 뿌리가 잇따랐다.

다른 기억에서 통째로 잘려온 뿌리들도 있었기에 뿌리의 크기는 구체보다 훨씬 커다랬다.


“아무래도 뿌리가 깊어 위화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기억을 다시 상기시킬 수도 있었다.


“······괜찮습니다.”


김윤은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후, 기억을 마저 끄집어냈다.

그녀의 머리를 통해 푸른 마력의 구체가 빠져나왔다.

그의 고유 스킬을 통해 추출된 그녀의 기억이었다.

이시한이라는 남자의 기억이 모조리 담긴 기억.


그는 그것을 곧장 테이블에 놓인 종이로 옮겼다.

그러자 종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억을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푸른 마력의 구체가 흩어지며 종이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종이에다가 지도를 새기기 시작했다.


지도가 그려진다.

땅이 그려지고 물길이 새겨진다.

그리고 길이 생기며 산이 자라난다.


완성된 그것의 모습은 김지아의 모습이었다.

이어 지도에 새겨진 길을 타고 푸른 마력이 순간 피어올랐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길이었다.


김윤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자가······.’


그것 또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허억, 허억······.”


기억을 추출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김지아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기억을 추출하는 순간 그 기억이 강조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


김지아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금 기억의 추출이 이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녀의 앞에는 총 여섯 개의 지도가 쌓여있었다.

모두 이시한에 대한 기억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윤이 만들어진 지도를 둘둘 감았다.

그리고 중앙에 튼튼한 끈을 묶어두었다.


“기억이 떠오르는 방아쇠가 될 수 있으니 의뢰 내용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추출, 그것은 그녀가 그 기억을 의뢰했다는 내용마저 잊게 했다.

그것 역시 그 기억과 관련이 있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김지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피로하다.

하지만 그 원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 추출이 잘 되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워낙 뿌리 깊었던 기억이기에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도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떠올리지 않도록 유지하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산은 나가셔서 하면 됩니다.”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김지아가 빠져나가고 김윤은 둘둘 말린 지도들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담긴 여섯 개의 지도.


이것을 다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야 제거를 부탁한 기억이 담긴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애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그가 만들어낸 기억의 지도는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파괴 불가능하니 말이다.


김윤은 그 지도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접객실을 빠져나온 후, 가게 바깥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커다란 창고였다.

그가 지닌 가게와 맞먹는 크기로 말이다.


어째서 지도 가게에 이렇게 커다란 창고가 필요한 것일까.


김윤은 창고 입구로 다가갔다.

이어 창고의 문을 열자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의 구조는 마치 도서관과 같았다.

창고 곳곳을 채운 수많은 책장 형식의 수납장.

그리고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지도가 들어차 있었다.


김윤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공간이 비어있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 손님의 이름과 기억의 종류를 새겨넣었다.

이어 지도를 그곳에 꽂았다.

파괴할 수 없는 지도를 보관하는 방법이었다.


김윤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이곳에 쌓인 지도를 보았다.

모두 사람들이 제거를 바란 기억이었다.


5년.

단 5년 동안 쌓인 기억이었다.

그것이 벌써 이 창고에 있는 책장 중 반 이상을 채워버렸다.


대부분 리터너들의 기억이었다.


보관할 수 있는 기억은 한 사람당 한 종류.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기억을 품고, 그것에 대한 제거를 바란 것일까.


김윤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 기억들을 바라보았다.

저 지도의 주인 중 몇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앞서 말한 대로 저 기억들은 대부분 리터너들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늘 사선에 있다.

그렇기에 저것의 주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추출된 지도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 한 주인이 죽는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이곳에 지도는 쌓여만 갔다.

버려진 기억들이, 제거할 수도 없는 기억들이 말이다.


김윤은 한동안 그것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창고를 빠져나왔다.


이것이 그가 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그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모두에게 비난을 들어가며 지도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도 제작자였다.


멸망한 세상에서, 아공간에서.

그는 지도 제작자였다.


그의 발걸음이 자신의 가게, 길잡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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