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무직을 건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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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바니
작품등록일 :
2023.10.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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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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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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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일진 여직원들

DUMMY

식당 주인은 막걸리를 가져오면서 임시현에게 얘기했다.


“이번에도 흘리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임시현이 막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느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임시현이 막걸리 흔드는 것을 멈추더니 상단부를 엄지로 강하게 세 번 눌렀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을 때는 아슬아슬하게 거품이 차오르고 있었다.


잔 하나에 반 잔쯤 채우고서 바로 옆 잔을 채웠다. 그리고서 반 잔만 채운 잔에 나머지를 채웠다.


“이래야 딱 맞지.”


임시현이 마무리 맨트를 하자 주변 몇몇으로부터 박수까지 나왔다. 임시현은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로빈이 갑작스럽게 임시현의 손을 잡았다.


“우리 결혼하자.”

“미친놈.”


임시현은 바로 손날을 세워 로빈의 이마를 쳐 버렸다.


***


임시현과 로빈이 순댓국집에서 나오고 나자 로빈은 만족한 듯이 얘기를 했다.


“덕분에 잘 먹었네!”

“임무가 있는데 막걸리를 먹어도 되는 거야?”


임시현이 로빈을 걱정하면서 물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 처리해야 할 것도 아니니까.”

“그래 다행이네? 덕분에 나도 막걸리 조금은 먹었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오늘 재껴?”

“시끄러워. 난 일하러 가야 해.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래.”


임시현이 회사 건물로 향했다. 로빈은 임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임시현이 건물에 들어서자 바로 등 뒤로 강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걸리 냄새.”

“헉.”


임시현은 강혁과 거리를 두었다.


“뭐야? 금발과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이라도 찍고 왔어?”

“무슨 소리야?”


TV 자체를 보지 않는 임시현은 강혁이 하는 얘기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아무튼, 아침에 연구소 남자들에게 실실거리면서 웃는 것도 그렇고, 금발 남자랑 나갔다 오는 것도 그렇고, 너무 가볍게 행동하는 거 아니야?”

“뭐라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입사 동기니까.”

“신입사원 합숙 훈련도 나오지 않고서 동기라고?”

“아무튼, 주변에 남자가 너무 들끓어.”

“네 주변이나 신경쓰세요.”

“뭐?”


두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오히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몇몇 있었다.


오후 3시경.

직장인들의 업무효율이 떨어질 시간이었다. 점심때 먹은 것이 소화되는 과정과 업무의 피곤함이 겹치면서 졸림과 함께 짜증까지 몰려오는 시간이다.


한유나가 임시현에게 다가왔다.


“어, 언니. 잠깐 시간 돼?”

“응? 알았어. 마침 졸렸는데. 커피라도 마실래?”

“으응.”


한유나가 머뭇거리면서 앞장섰다. 임시현은 한유나의 이런 모습을 간파 못 한 것은 아니었다.


‘얘가 오늘따라 긴장한 모습이지?’


한유나를 따라가니 여자 화장실 옆쪽 복도가 나왔다. 이미 몇몇 여직원들이 모여있었다. 마치 담배 연기만 없을 뿐이지 일진들이 모여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신입들 왔니?”


한 여직원이 분위기를 잡으면서 얘기했다.


“야야 그렇게 목소리에 무게를 깔면 애들이 쪼라서 회사를 어떻게 다니겠냐?”


모두 크큭데는 소리를 내면서 얘기했다. 한유나는 이미 기가 죽어 있었다. 임시현은 선배 여직원들이 후배 여직원들 타깃으로 기강을 잡기 위한 작업으로 생각했다. 일단 한유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조용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무슨 일이죠? 지금은 업무시간일 텐데요.”


선배 여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얘, 말하는 싸가지 보소. 누군 일 안 해?”

“그럼 불러낸 이유가 뭐죠? 이유가 없다면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가자 유나야.”

“엉? 으응 언니.”

“잠깐.”


모여있는 여직원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가 두목이군!’


임시현은 안쪽에서 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직원들의 두목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이세준 선임, 점심에 프랑스 금발.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 강혁···. 지난날에는 퇴근했을 때 어떤 어린 남자와 손잡고 가던데···.”


퇴근 후 손잡고 간 것은 임시현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김민준이었다. 그리고...


‘우리 강혁?!’


임시현은 속이 메스꺼워졌다. 하지만 임시현의 속마음과 상관없이 여직원 두목은 계속 얘기를 이었다.


“네년이 이 남자 저 남자 꼬리치고 다니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버릇을 좀 고쳐주려고 이 선배들이 어려운 시간을 마련한 거야.”


임시현은 이제야 분위가 파악되었다.


“버릇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 모여서 나 같은 예쁜 여자를 괴롭히는 건가?”


임시현의 말에 한유나가 기겁하였다. 당연히 주변 여직원들의 얼굴도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한유나가 기겁한 것 중의 하나는 선배 여직원들이 무서운 것도 있지만, 임시현이 스스로 예쁜 여자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 어이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언니가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예쁘다고?’


“이년이 미쳤나!”


선두에 있던 여직원이 임시현의 머리 체를 잡으려고 다가왔다. 임시현은 옆벽에 철판으로 되어있는 건물소화전을 바라보았다.


“어머, 소화전 위로 바퀴벌레가 지나가네!”


임시현의 눈이 살벌하게 바뀌면서 주먹으로 소화전 문을 쳐버렸다. 그와 동시에 소화전 문이 크게 찌그러졌다.


당연히 임시현의 머리 체를 잡으러 오던 여직원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시현이 말한 바퀴벌레도 없었다. 앞에 있는 선배 여직원들을 바퀴벌레로 치부한 것이었다.


“아씨, 놓친 건가?”


이번에는 뒤돌려차기로 소화전 상당까지 부숴버렸다. 소화전의 상하부가 모두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찌그러져 버렸다.


“아휴, 치마가 방해되네. 그래도 속바지는 입었다구요.”


임시현이 해맑게 웃고서는 선배 여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더 할 말이 있으신가요?”


임시현의 살기 어린 눈빛에 선배 여직원들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다음부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면 유나를 통하지 말고 저에게 직접 얘기해 주세요. 시간을 들여서 친절하게 응대해 드릴 테니까. 가자 유나야.”

“응, 언니.”


임시현과 한유나가 복도를 빠져나왔다. 선배 여직원들은 따라나설 용기가 나지도 않았다.


“언니야. 무서웠다.”


한유나는 임시현을 쫓아가면서 울먹였다. 임시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이수희 주임이 말을 걸었다.


“무사하네!”

“이 주임님도 알고 있었어요?”

“자기네들끼리 어쩌고저쩌고하더라고, 난 신경 쓰지 않았어.”

“그래요?”

“내 코가 석 자야.”

“······?”


퇴근 시간 한 시간 전 김기혁 과장이 이수희 주임에게 말을 걸었다.


“이 뉴스 기사에 나온 동네, 이수희 주임이 사는 원룸 동네 아니야?”


이수희 주임이 김기혁 과장이 보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네, 맞아요.”


[범인은 혼자 집에 가던 20대 여성을 따라간 후 원룸인 것을 확인하였고, 여성의 집 문이 닫히기 전에 문을 열고 침입하여···.]


이수희 주임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얘기했다.


“요즘 제집 주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무서워서 밤늦게 집에 가지를 못하겠어요.”

“경찰들은요?”


임시현이 이수희 주임에게 물었다.


“경찰들은 동네를 오가기는 하는 것 같은데 증거가 없다 보니···. 범인이 굉장히 주도면밀하다고 하더라고···.”


김기혁 과장이 이수희 주임의 얘기를 끊으면서 얘기했다.


“그래도 밀린 전표가 많은데 좀 처리해주면 안 돼···. 나?”

“저보고 야근하라고요?”


이수희 주임이 김기혁 과장을 노려보았다. 김기혁 과장을 꼬리를 내렸다.


“아니···. 전표가 밀려서 월 매출 처리가 안되어서리···.”


***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도 퇴근해 보겠습니다. 밝을 때 빨리 가야겠어요.”

“전표는?”


김기혁 과장의 물음에 다시 이수희 주임이 노려보았다.


“김 과장님은 제 안전보다 전표가 중요한 거죠?”

“아, 아니···. 그게, 업무처리가···.”


김기혁과장은 오히려 임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임시현씨가 사무직이니까 전표처리를 전담하는 것은 어때? 이렇게 급박할 때 도움이 되거든!”


임시현이 부랴부랴 이수희 주임에게로 갔다.


“오늘은 저랑 퇴근 같이해요. 저도 마침 그쪽에 일이 있어요.”

“정말?”


이수희 주임이 밝은 얼굴로 임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그쪽으로 가볼까요?”


강혁이 나섰다. 이수희 주임이 의아해했다.


“강혁 씨는 집이 그쪽이 아니잖아?”

“아는 지인과 술 한잔하기로 했는데, 둘 다 우유부단해서 장소를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마침 두 숙녀분도 지켜줄 겸 그쪽에 술집이 많은 곳으로 알고 있거든요.”


이렇게 세 사람은 같이 퇴근하게 되었다.


“칫, 전표 처리는 어쩌라고···.”


김기혁 과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


세 사람은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 서 있었다. 예상대로 퇴근 시간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서 있기도 쉽지 않았다.


“출퇴근이 쉽지 않네요.”


강혁이 임시현과 이수희 주임 주변으로 사람이 밀려가지 않도록 몸으로 막으면서 얘기했다.


이수희 주임이 그런 강혁을 보면서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러게. 내가 출퇴근하는 코스가 사람들 왕래가 가장 잦은 코스여서 좀 힘들기는 해.”


임시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회사 근처?”


이수희 주임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답변하였다.


“그 동네는 원체 비싸. 내가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


강혁과 임시현은 이수희 주임 얘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때 강혁이 한가지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를 꺼내었다.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


임시현과 이수희 주임이 강혁 얘기를 귀를 기울였다.


“글쎄, 2층 여자 화장실 옆 복도 있잖아요.”

“있지. 여직원들이 가끔 모여서 수다를 떠는 곳이야.”


이수희 주임이 강혁 얘기를 받아쳤다. 하지만 임시현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곳에 있는 소화전 철판문이 아주 작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순간적으로 이수희 주임은 강혁의 얘기에 답변하면서 동시에 임시현을 바라보았다. 임시현은 다른 곳을 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엄청난 소리가 들려서 우리 건물 경비원이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아무도 없었데요. 그런데 소화전을 누가 해머로 강하게 친 것처럼 안쪽으로 찌그러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상단부는 완전 박살 나 버리고.”

“하하. 엄청난 일이 있었구나!”


여전히 이수희 주임은 임시현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여자 화장실 쪽이어서 CCTV도 없기 때문에 누가 그랬는지 찾기 어려운 모양이더라고요. 관리실에서 수리 비용 꽤 나올 것 같다고 난리 난 듯해요.”


임시현은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쉬었다.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본 이수희 주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임시현 씨의 신경을 건들지 말아야겠는걸!’


***


세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왔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네온사인이 화려하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다.


“정말 정신없네요.”


강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수희 주임의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주변에 카페와 술집이 있지만, 유흥시설도 많아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이런 곳이니 월세가 저렴한 것이거든.”

“그래요?”


강혁은 주변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놀러 올 때는 즐거워 보이는 장소가, 만일 제 누이가 이 근처에 산다고 한다면 유쾌한 분위기는 아니겠네요.”

“오올. 바른말도 하시네?”


임시현이 강혁의 얘기를 받아쳤다.


“비꼬는 거야?”


강혁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임시현에게 물었다.


이수희 주임은 오히려 강혁에게 얼굴을 붉히면서 얘기했다.


“그럼 날 누이라고 생각해 주는 거야?”

“네, 가족이죠. 가족!”

“칫.”


이수희 주임이 입을 삐쭉거렸다.


어느덧 술집이 몰려있는 골목을 벗어나 원룸촌으로 다다랐다. 다수의 고시원과 원룸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이수희 주임의 원룸텔 입구에 도착했다.


“라면먹고 갈래?”


9화 끝.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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