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의 네크로맨서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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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장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0.20 18:52
최근연재일 :
2024.08.22 21:5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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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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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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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2) 불을 지피다 ― 1

DUMMY

2) 불을 지피다 ― 1




기술이란, 경험의 축적이다.


즉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반복된 실험이 필요하다.


“그래, 다 실험이니까······ 눈 딱 감고 해보자.”


유재익은 새로 얻은 스킬 ‘헬 포지’를 여러 방면으로 테스트할 생각이었다.

다소 찝찝하지만, 인간 제련도 그 일환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는 게 좀 그렇지만······ 다 당신들 업보라고 생각하라고.”


유재익의 고갯짓에 고블린 스켈레톤 두 마리가 시체 한 구를 들어 올려서 헬 포지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 해당 존재는 제련할 수 없습니다.

* 단, 계속 진행 시 파괴는 가능합니다.


“씁, 사람 시체는 안 되나 본데.”


헬 포지 제련은 마수 사체만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때 유재익의 옆으로 고블린 스켈레톤들이 다가오더니, 바닥에 무언가를 내려놨다.

총, 탄창, 손전등, 지갑, 핸드폰 등이었다.


딱딱!


녀석들이 납치범들의 시체를 뒤져서 주머니 속 모든 물건을 꺼낸 것이었는데, 몸수색하라는 짧은 지시만으로도 유재익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수행했다.


“잘했어.”


딱딱!


칭찬에 기분이 좋기라도 하듯 경쾌하게 이빨을 부딪치는 녀석들.

그 모습에 유재익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뭐······ 무슨 캐스터네츠냐? 화음까지 맞춘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솔직한 감상은, 역겹고도 기괴하다.


하지만 이 녀석들, 보면 볼수록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부하가 아닐 수 없었다.

말 잘 듣고, 잘 이해하고,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뒤통수 맞을 일도······ 없겠지?”


유재익이 녀석들에게 묻듯이 말했다.


딱!


“어? 이번엔 왜 한 번만 부딪히냐? 설마······ 부정은 아니지?”


유재익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과장이란 놈의 핸드폰을 주워서, 시체의 검지로 지문 인식 잠금을 풀었다.

뭔가 쓸 만한 정보가 있겠거니 싶었다.

가령, 이 일을 벌인 놈들을 압박할 만한 구린내 나는 증거물 같은 거 말이다.


“이거 2등급 마나 차폐 기기잖아? 돈 좀 쓰셨나 본데 아깝게 됐어.”


본디 균열이 열린 지역 내에서는 전자 기기가 전부 먹통이 된다.


일명 레드 그라운드(Red Ground).


균열 너머 무 대륙에서 흘러 들어온 진한 농도의 마나가 전자 설비에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장소를 오고 가는 직군들은 마나 차폐 기능에다가 마나 통신 기능이 내장된 아주 값비싼 기기를 이용한다.


하지만 핸드폰의 메신저나 이메일에서는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아마도 이번 일의 오더는 전부 전화로 받았나 본데, 녹음 기능을 꺼둔 상태였다.


“더럽게 철두철미하네······.”


그런데 그런 철두철미한 킬러들을 자신이 넷이나 죽이지 않았는가?

다시 생각해도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뿌듯해하는 건 다소 사이코패스 같다고 생각한 유재익이지만, 그래도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각성하자마자 이 정도 전투력이라면······.’


앞으로 스킬이 성장하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스킬 정보]

― 이름 : 네크로맨시(S등급)

― 등급 : 기초 (LV : 1)

* 망자를 언데드 권속으로 만듭니다. (4/4)


지금 최대 4마리를 운용하지만, 앞으로 숫자가 늘어나고, 고블린 스켈레톤이 아닌 더 거대한 마수를 언데드로 일으킬 수 있게 된다면······.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될까?


그 순간 유재익이 떠올린 것은─


‘무 대륙 탐사에 엄청난 이점이 될 거다.’


제6의 대륙 무(MU)였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유일한 대륙, 그 땅으로 가는 것은 유재익의 인생 목표 중 하나였다.


‘어쩌면 탐사대에 지원해서 오랜 시간 말단으로 구르지 않고, 내 탐사대를 꾸릴 수도 있지 않을까?’


1945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땅이 치솟았고, 인류는 그 땅에 전설 속 대륙인 MU의 이름을 붙였다.


그곳은 막대한 마력 자원이 묻힌 미개척지인 동시에, 세상을 ‘게임’으로 만든 ‘시스템’이란 존재에 관한 진실이 잠든 곳이기도 했다.

혹자는 그곳의 생명체 구성이 신화 속 존재들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인류 기원의 비밀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그래, 그런 세계가 지구 바닥에 잠들어 있다가 불현듯 나타난 건, 분명 어떤 계시처럼 보였다.


당연하게도 각국은 경쟁적으로 모험과 개척을 시작했다.

이미 바다를 넘어서 신대륙을 정복하고, 하늘을 날아서 우주까지 도달하지 않았던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인류는, 무 대륙 외곽 부분에 캠프 도시 몇 개를 건설한 게 전부였다.


또한 대륙 심부로 나아간 탐험대의 잔혹사는 매해를 거듭하며 축적되었고, 그 기록물이 거대한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완벽한 실패였다.


그러나 개척이 인류의 본능이라도 되는 걸까?


그 어떤 위기 앞에도 무 대륙 탐사는 중단된 적이 없었다.

외려 그 규모는 나날이 커지는 중이었다.

마치 불길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무모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리고 유재익의 아버지, 유진석 역시 그 본능에 충실하고 말았으니······.


결국, 그는 6년째 실종 상태였다.


유재익이 그토록 싫었던 무 대륙에 직접 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무 대륙에 관해서 자료 조사를 하며 언젠가 탐사대에 참가할 준비를 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알아 가고 준비해 갈수록 무 대륙에 대해 드는 감상은 단 한 가지였으니······.


‘미지(未知).’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함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 앞에 선, 나라는 초라함······.


유재익은 문득 고개를 돌려서 터널 안쪽을 바라보았다.


폐쇄된 터널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간간이 켜 있는 녹색의 비상등은 어둠을 밀어내기는커녕 어둠에 녹아들었으니, 흡사 어둠 속에 웅크린 짐승의 안광처럼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그 앞에 유재익은 홀로 서 있었다.


“······.”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묘한 불쾌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고요 속,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저 안으로, 더 깊은 어둠으로 발을 옮기기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저 길고 긴 어둠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잔뜩 굶주린 채로, 초행길을 걷는 자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미지다.


“······.”


하지만 앞서서 떠올렸듯이, 모든 기술의 발전은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그리고─


‘위대한 경험은 미지에서 얻을 수 있다.’


유재익은 아버지가 종종 하곤 했던, 그 낯간지러운 말을 되새겼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빛줄기가 쏘아져 나오며, 몇 걸음 앞의 어둠을 밀어냈다.


딱딱!


고블린 스켈레톤 녀석들이 어디선가 손전등 가져와서 켠 것이었다.


“······잘했어.”


그건 아마도, 유재익의 의지를 따른 것이었다.



* * * * *



유재익은 터널 건너편으로 나가서 자신의 차를 발견했다.


‘퇴근하고 집 앞에 주차했을 때 납치당했지.’


직후, 놈들이 유재익의 차까지 끌고 와서 스스로 이곳으로 들어온 것처럼 꾸며 놓은 것이었다.

그 시나리오대로, 놈들은 유재익에게 넥타르를 먹인 뒤 주머니에 차 키를 넣어 두었다.

그 덕에 차 키를 찾는 수고는 덜었다.


“잘 숨어 있어라, 누가 보면 기겁한다.”


유재익이 차에 타며 말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뒷좌석에는 고블린 스켈레톤 세 마리가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딱딱!


“안전벨트······ 너희는 할 필요는 없겠지?”


딱딱!


유재익은 차에 시동을 걸고 무작정 달렸다.

혹시 진태준의 부하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일단은 이 근처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십여 분을 달렸음에도 접근해 오는 차량은 없었다.


‘그 넷이 전부인가?’


하긴, 비전투 특성인 유재익을 처리하는 데 그런 베테랑 팀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오히려 많은 인력이 움직이면 불필요한 흔적을 남길 우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쪽 부하들이 연락이 끊어진 걸 파악하면······ 더 사리기 시작하겠지.’


6대 가문이 아무리 법 위에 군림한다고 하지만,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날뛸 수는 없었다.


왜?


‘가주의 눈이 무서울 테니까.’


괜히 논란을 일으켜서 가문 이름에 먹칠했다가는 법의 심판은 피하더라도 가주의 눈 밖에 날 수가 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6대 가문의 가주들은 명예와 품격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킨 게 자신들이라는, 주인 의식이라는 이름의 책임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6대 가문의 핏줄을 타고난 이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면서도, 고상한 척 평판 관리를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가문 본원으로 가자.”


유재익이 가주를, 외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주로서 모르는 체할 수 없는 오래된 약속 하나를, 유재익은 기억하고 있었다.



* * * * *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 덮인 산맥이 펼쳐졌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더라도 희게 물든 산봉우리가 보였으니─ 태백(太白)이라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본디 이 산간 도시는 탄광업으로 번성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이 축소되자 마치 엔진이 통째로 사라진 기계처럼 급속도로 녹슬어 갔다.

그러던 1987년, 이 땅의 종말을 선언하듯이 말도 안 되는 재앙이 닥치기에 이른다.


적룡 백두적관(白兜赤冠).


관동 지역에 출현하여 백두대간을 8년간 지배하던 그 괴물이, 별안간 남하하여 태백산 봉우리에 착륙한 것이다.


그것이 내뿜은 화염 브레스가 산간을 숯 더미로 만들었으며, 탄광의 석탄들마저 불사르며 이 땅을 통째로 화산 지대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은 오늘날 ‘태백시의 제련’이라는 퍽 긍정적인 단어로 회상되곤 한다.

왜?

산불이 꺼졌을 때, 태백시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은 진은 가문이었다.


1990년 2월 7일, 진은가의 가주가 직접 통솔하는 토벌대가 동해안에 상륙했고, 장장 47일에 걸친 전투 끝에 그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존재의 유해가 추락한 곳에 가문의 새로운 본산을 지었으니─

그날, 태백시는 하루아침 만에 이 나라의 아티팩트 산업 중추로 거듭나는, 이변의 역사를 얻게 되었다.


그 역사적인 전투가 있었던 태백산 협곡의 산간 도로를 따라서, 유재익이 차를 거칠게 몰았다.


고도가 오르고 산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이내 절벽 위로 늘어선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산허리에 걸린 안개 속,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절벽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건축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으니─ 그 감각의 한계가 그곳을 향해 다가가는 이들에게 경외감을 선사했다.


용효대(龍歊臺).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마력 용광로이자, 가장 위대한 장인 가문의 본원이었다.


“여길 또 올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가까워진 용효대는 한옥 형태의 마천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독특한 외관이었다.


유재익이 어렸을 적에는 한 해에 몇 번씩 이곳에 오곤 했다.

가문의 가장 큰 어른을 뵙기 위해서,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문의 가솔들······ 그러니까 그룹의 직원들과 길드원들까지 깡그리 모이는 거대한 연례행사 때였다.


‘그때는 마냥 즐거웠지.’


그럴 것이, 잔칫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관심과 예쁨을 받았으니 어린 마음에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진혜연 전략병기본부장의 외동아들─


위대한 가문의 꼬마에게 그런 거창한 평가가 뒤따랐으니, 누가 어여뻐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1년 뒤, 유재익의 1차 각성이 부계 혈통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희귀성 마나하트 균열증 판정을 받으며 2차 각성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그 뒤로 유재익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측은지심 같은 것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안타까움은 한심함으로, 기대는 경멸로······.


진은이라는, 매일 같이 양품과 불량품을 가려내는 삶을 사는 장인들의 세계에서는 불쌍함이란 불필요한 존재였다.

더 나아가 가문의 가치를 깎아 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유재익은 차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서 용효대의 거대한 정문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을 등지고 나왔을 때, 등 뒤에서 친척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 쯧쯧─ 저건 썩은 가지야.

― 제 어미 아티팩트도 내놓지 않겠다고 했다며? 가문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마지막으로 거하게 뽑아 먹으려는 거야 뭐야?

― 혜연이 걔가 손재주는 그렇게 좋았는데, 정작 자식은 제대로 못 만들었어.


애써 숨기지도 않는, 들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가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 2차 각성을 시도해 보겠다면, 넥타르를 보내마.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죽으란 말인가? 그런 무가치한 능력을 지니고 살 바에는 목숨을 건 도박이라도 해 보란 건가?

어떤 의미일지라도 유재익으로서는 ‘불량품’ 선고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때가 떠오를 때면 속이 쓰렸다.


“하하!”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나오는 게 아닌가?


“······나, 그 도박에 성공하긴 했잖아?”


본의 아니게 목숨을 건 룰렛을 돌렸고 잭 팟이 터졌다.

이 상황, 꽤 우습지 않은가? 실로 기가 막히는 아이러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죽음을 경험했다.


외할아버지는 늘상 말씀하셨다.


― 다 녹아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워야지만, 새로운 모습이 될 수 있는 거다.


고통이야말로 사람에게 제련이고 담금질이라고.


그렇다면 고통을 넘어선 죽음은, 인간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적어도 그 순간을 기점으로 유재익은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었다.


즉, 그의 정신이 제련되었다.


“······이제 뭐가 더 무섭겠어? 안 그래?”


딱딱!


백미러로 뒷좌석에 타 있는 고블린 스켈레톤 한 마리가 보였다.


“이 집안사람들이 좀 꼰대라서 신기술을 못 알아볼 거거든? 밖에서 안 보이게 잘 숨어 있어.”


그러자 녀석이 좌석 아래의 더플백 안으로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나머지 셋은 오는 길에 수풀 속에다가 숨겨 뒀고, 한 녀석만 호신용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 능력, 구태여 만천하에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물론 소환형 특성 각성자는 적지 않은 편이었으나······ 솔직히 유재익이 생각해도 이 네크로맨시라는 스킬은 다소 기괴한 감이 있었다.


그는 다시 차를 움직여서 용효대의 정문으로 나아갔다.


― 정지하십시오.


스피커를 거친 음성과 함께 경비실에서 누군가 나왔다.

가죽 재질의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 완드를 찬 걸 보아하니 본원 경비대인 모양이었다.


“방문증 있으십니까?”


유재익이 창문을 내리자 경비원이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가문 사람입니다.”



* * * * *



“뭐? 누가 찾아와?”


용효대 관리실장 이장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가문의 아침을 열기 위해 새벽녘부터 일정을 확인하던 차, 경비팀장이 황당한 보고를 해 온 것이다.


― 유재익이라고 합니다.

“······확실해?”

― 예, 그, 신분증은 확인했습니다만, 제가······ 가문 일원 중에 유씨가 있다고 듣긴 들었는데, 근 5년간 방문 기록이 없는 이름이라서······ 정말로 가문 사람이 맞는지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방문 목적이 뭐라는데?”

― 그게······ 가주님을 뵙고 싶답니다.


경비팀장이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장호의 눈썹도 꿈틀거렸다.


지금······ 사전 약속도 없이, 그것도 새벽에 찾아와서 가주를 만나겠다고 했단 말인가?


“허······.”


그건 누구도, 설령 이 나라의 대통령일지라도 안 된다.

심지어 가주의 자제들조차도 몇 달 전에 미리 약속을 잡고 문안 인사를 오는 형국이거늘, 이 무슨 비상식적인 일이란 말인가?


― 저······ 가문 사람이 아니면, 지금 바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렇기에 가문 사람이 아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감히 진은가에 장난질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가문 사람 맞긴 맞으니까, 여기로 보내.”

― 어, 아! 예 알겠습니다! 즉시 별관으로 모셔 가겠습니다!


이장호는 인이어 형태의 마나 무전기를 빼고는 거울 앞에 섰다.

그는 안경을 닦고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중얼거렸다.


“유재익······ 그 녀석이 무슨 일로······.”


근 7~8년간 가문 안에서 그 이름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

사실상 호적에서 떨어져 나간 출가외인이 대체 어떤 이유로 이른 새벽부터 가문 본원을 찾아왔단 말인가?

이럴 경우 웬만해서는 좋은 일일 리가 만무했다.


‘혹시······ 술에 취해서 땡깡을 부리려는 건 아니겠지?’


이 가문에 악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유재익이지 않은가?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하지만, 한은 농익을수록 진해지는 법, 어느 날 갑자기 울분이 폭발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장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심보를 지닌 인물은 또 아니지.”


가문을 33년간 모셨으며 12년째 가문의 집사나 다름없는 ‘용효대 관리실장’ 자리에 있는 이장호였다.

이 가문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그가 보기에 유재익은 소인배처럼 굴 인간이 아니었다.


‘좋은 부모 아래에서 컸으니까.’


유진석 진혜연 부부는 생전에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중, 이장호가 문득 탄식을 내뱉었다.


“아─ 약속도 없이 찾아온 인간이 하나 더 있었군?”


자신이 이 가문에 막 들어왔을 무렵,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가주를 만나게 해 달라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참 나······.”


이장호는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잠시 후, 경비대 SUV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소형차 한 대가 별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차······ 하단부의 도색이 죄다 벗겨지고 녹이 슬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저런 차로 산을 오를 순 있나?”


편견일지라도, 아무리 가문 사람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경비들이 무시하고 내쫓지 않은 게 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운전석에서 젊은 사내가 내렸다.


허우대 좋고 잘생긴 청년이었다.


‘역시 가문의 피가 완전히 희석된 건 아니지.’


이장호가 사무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입니다.”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이장호는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가문 사람들을 대하듯이 행동했다.


다만 ‘도련님’이라는 칭호가 나오려는 걸 억지로 집어삼켰다.

유재익은 사실상 출가 외인이니까.


“실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역시 아직 별관을 지키고 계셨군요.”


유재익 역시 살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주님을 뵈러 오셨다고요?”

“네, 공방에 계시죠? 언제나 그렇듯이요.”

“그게······ 아시겠지만, 가주님을 뵙기 위해서는 오래전에 저한테 연락을 주셔야지만, 제가 일정을 확인해서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장호가 능숙하고도 완곡하게 불가능함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재익은 못 알아들은 건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별관 입구의 계단을 올라왔다.

그러고는······ 이장호를 지나쳐서 문이 열린 별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되죠? 운전을 오래 해서 좀 피곤하네요.”


그 태도는 무례하다기보다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뭐야, 이 녀석······.’


이장호가 기억하는 유재익의 마지막 뒷모습은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를 연상케 했었다.

상실감과 배신감에 잔뜩 위축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배포, 그런 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무릇 자연스러움이란 여유에서 나오는 법이고, 여유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어디에서 기인한 자신감이지?’


혹여 믿을 구석이 있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 이장호는 유재익에 관한 정보 수집을 설렁설렁하긴 했다.

유재익은 이제는 완전히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예의주시할 가치가 없었다.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뭐가 달라진 건가?’


다만 그것도 어불성설인 것이, 감히 진은 가문의 본원에서 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그 이유를 유재익이 직접 말했다.


“실장님, 약속을 잡은 건 외할아버지십니다.”


다름 아닌 가주의 이름─ 그것이 유재익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인 듯했다.


하지만 이장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모르는 가문의 일정은 없습니다.”

“음, 그게, 오래된 약속이라서 실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예?”


이장호의 눈썹이 처음으로 꿈틀거렸다.


‘실장님은 모른다?’


용효대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장호, 그가 용효대의 모든 흐름을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재익이 고개를 돌려서 이장우를 바라보았다.


“일단, 외할아버지께 말씀 전해 주세요.”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약속을 지키실 때가 왔다고요.”


유재익은 기억했다.


자신이 가문을 떠난 날, 가주에게 걸려 왔던 전화······ 그때, 외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가슴에 새겨서 기억했다.


― 2차 각성을 시도해 보겠다면, 넥타르를 보내마.


희귀성 마나하트 균열증······ 2차 각성 시 치사율 100%라는 진단을 받은 손자에게, 가주가 그렇게 권했다.


다만, 쉬이 이해할 수 없는 권유인 만큼 상당한 조건을 붙였으니······.


― 네가 그럴 용기가 있다면,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


가주가 건넸던 오래된 백지 수표─


유재익이 그걸 쥐고 찾아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한동안 연재는 새벽 1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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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 망치를 들다 ― 1 +34 24.07.27 16,971 393 14쪽
6 2) 불을 지피다 ― 3 +18 24.07.26 17,092 445 16쪽
5 2) 불을 지피다 ― 2 +28 24.07.25 17,276 405 16쪽
» 2) 불을 지피다 ― 1 +16 24.07.24 18,901 428 22쪽
3 1) 심정지 후 네크로맨서 ― 3 +14 24.07.23 19,918 452 20쪽
2 1) 심정지 후 네크로맨서 ― 2 +19 24.07.22 20,659 486 15쪽
1 1) 심정지 후 네크로맨서 ― 1 +41 24.07.22 26,132 52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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