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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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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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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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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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이간질

DUMMY

여기까지 온 이유.

그건 의문 때문이었다.

이 고압적이고 사나운 인간이 유독 자신에게만은 관대했다.

몇 번이나 잘못을 눈감아주고 또, 기회와 선택지를 내려줄 정도로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통제할 수 없는 접근이다.

그렇기에 불안했고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무례한 잠입 역시 그 때문에 벌어졌다.

모든 게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버릇없는 고양이가 생떼를 부리듯이.


“글쎄···. 한 짓이 있어서 그럴까···.”

“죄책감 때문이라고? 나를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책임감으로?”

“···하, 역시 그건 아니네. 차라리 죽게 두는 편이 안전했어. 그래도 슬펐을 것 같지도 않고.”


녹호가 그럴 리 없었다.

굳이 살려둘 핑곗거리는 많았지만, 위험을 감수하며 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럴 정도로 심성이 좋지도,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다.


“역시 권력이 필요해서 사람을 끌어모으는 거 아니겠어?”

“권력이라면 벌써 있잖아. 이런 저택에 살고 있을 정도니까.”

“돈이 권력이다? 아니지, 그건. 단순히 돈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이 있어. 제대로 된 도구를 쥐고 있어야지. 예를 들어, 회사라든가.”

“······.”

“돈이라는 연료로 맞는 엔진을 구하는 것뿐이야. 모든 게 그 과정이고.”


갑자기 사업을 하려는 이유.

그건 권력 때문이었다.

백화점 VIP든 뭐든, 그건 아주 잠깐 제한된 용도로 쓸 수 있을 뿐이다.

이 제한을 없애려면 제대로 된 법인이 필요했다.

인영 역시 핵심 부품으로 일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게 꼭 나여야 할 이유는 없잖아.”

“그건···.”

“다른 사람도 많아. 훨씬 일도 잘하고, 나만큼 사고 치지도 않았겠지. 차라리 걔네를 데려오고 말지.”


하지만 그 역시 대답이 되진 않았다.

더 좋은 선택지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인영을 내버려 뒀던 건, 분명 설명되지 않는 호의였다.

녹호도 괜찮은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그렇게 꼬치꼬치···”

“그러니까 앞으론 내가 너한테 맞출게.”


그 답을 인영이 대신 말했다.


“괜찮은 장기 말을 구하던 중이었다고? 그럼 내가 최고의 선택이 될게. 권력이 필요해? 그럼 어떻게든 쥐여줄게.”

“······.”

“네가 머리 위를 가리키고 바다라고 부르면, 그렇게 생각할게. 망상이든 뭐든, 거기에 맞춰줄게.”


생떼를 부려댄 만큼 나 역시 억지를 받아주겠다고.

의리를 제대로 지켜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녹호가 고집대로 살아갈 수 있게.


“그 대신 내가 정말 그렇게 잘 해내면, 지금처럼만 대해줬으면 좋겠어.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


토요일 정오.

원래라면 예현 교회가 문을 닫고 있을 시간이다.

신도 대부분이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자주 못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 앞에서 한 여자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서주야, 많이 기다렸니?”

“···목사님?”


예현이 서주를 내려다보았다.

여느 때와 같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목사님, 제가···. 그게···.”

“괜찮단다. 일어나렴.”

“제가···, 제가···.”


겁에 질린 양이 이럴까?

바들바들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모두 알고 있으니.”

“흐으윽···.”


그래, 두려워할 만도 했다.

서주에게 예현은 신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보고 있고 또,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잘못을 하고서 뻔뻔히 나올 수 없었다.

감히 거짓말을 하는 일은 의미 없이 죄를 쌓는 짓이니까.


“인영 양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제발 버리지만···.”

“버리다니? 왜 그러겠니?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양이란다.”


다정한 말이 계속 흘러나온다.

서주는 그 온기에 몸을 맡겼다.

떨림마저도 점차 다독일 수 있었고, 곧 진정된 기색마저 보였다.

예현은 구원 그 자체였다.


“다만, 나를 도와줄 사람이 비어버렸구나.”

“죄송해요, 제가 어떻게든···.”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하지만 그 대가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바쳤다.

더는 전능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무의미하다고 믿었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죄의식까지 더해졌으니, 무슨 일이든 거부하지 못하고 묵묵히 견디겠지.

그게 얼마나 불합리한 일이든 간에.


“한 사업가와 교회 확장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란다.”

“네···, 알아요. 그래서 인영이를 부르려고 하셨고요.”

“그래. 그런데 일정이 있는 날 약속이 잡히고 말았단다. 나 대신 누군가가 나서줘야 하는 상황이지.”


예현이 중요시하는 일은 신성한 과업이고 영광스러운 신화였다.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감지덕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상황이라고, 따져볼 정신도 없었다.


“그럼···.”

“그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양아.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단다. 해줄 수 있겠니?”

“당연하죠! 최대한 잘해 보일게요! 할 수 있어요! 시켜만 주세요!”


서주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눈앞에 왔다.

그렇기에 의심 없이 덥석 받아들였다.

어떤 일인지, 자신에게 해낼 능력이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목사가 직접 맡긴 과업을 해내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떠올릴 뿐이다.



***


평일 커피숍.

많지 않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서주 역시 존재했다.


“언제 오는 거지?”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게 누구일지 뻔했다.

바로, 예현이 말했던 사업 파트너겠지.


옷 역시 값비싼 명품이다.

그날, 녹호에게 부탁해서 얻어낸 대가였다.

그 덕분에 이 중요한 날 제대로 차려입고서 응접할 수 있었다.


‘그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양아.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단다. 해줄 수 있겠니?’


서주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목사가 직접 맡긴 일이다.

심지어 그 입으로 친애하는 듯한 호칭을 불러주기도 했다.

마치 믿고 있다는 듯이.


그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실행할 테고 어떻게든 완수해야 했다.

오직 목사를 위해서, 그 눈에 들어차기 위해서 말이다.


“많이 늦었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만나기로 한 사업 파트너일 터.

서주는 일단 머리부터 숙이고 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방서주라고 합니다.”

“하, 처음은 아닐 텐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음성이 어딘가 낯익지만, 한기가 서려 있다.

꼭 자신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네? 그게 무슨···. 어?”


머리를 들어 시선을 마주한다.

이제야 확인하는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상을 와락 구길 수밖에 없었다.


“너···!”

“조심해주시죠. 공적인 일로 왔으니까.”

“야, 박인영! 네가 무슨 낯짝으로···!”


얇은 눈매, 이마를 가리지 않는 생머리, 마지막으로 보기 드물 만큼 기다란 기럭지.

몰라보려고 해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가! 나 바쁘니까!”


증오스러운 조카는 꼴도 보기 싫을 만큼이나 신수가 훤해졌다.

우선, 온몸에는 명품을 두르다시피 했다.

샵에서 세팅까지 마쳤는지, 얼굴과 머릿결에는 은은한 광택이 흘렀다.

가장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꼭 태생 자체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듯이.


서주도 명품을 둘렀지만,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다.

우선, 큰 키가 주는 저 우월함은 없었다.

화장조차 집에서 부랴부랴 했을 뿐이다.

인영처럼 고아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앙증맞은 느낌이라고 할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모가 아니라 동생처럼 보일 정도다.


“정말 말을 못 알아들으시네요. 제가 약속 상대라고요.”

“···뭐?”


큰 소리가 나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댄다.

호기심 서린 눈빛도 있지만, 불쾌함도 적잖이 느껴진다.

이대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주변에 민폐였다.


“거짓말하지 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그 사정까지 말해야 할 것 같진 않은데요.”

“증거도 없이 내가 그 말을 믿으라고?”


서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대로 계속 민폐를 부려서 좋을 게 없었다.

망신도 망신이었지만, 이번 일을 망칠지도 몰랐다.

다름 아닌, 예현이 직접 맡긴 과업을.


“교회 관련 사업. 그쪽은 전도를 늘리기 위해, 이쪽은 고객 확보를 위해 만났죠. 자세한 제안은 이제부터 해야 하고요.”

“······.”

“애당초 갑자기 내가 여기 나타났잖아요, 이렇게 차려입고. 이 정도 사연 없이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인영이 자리에 앉았다.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그 속은 온갖 감정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으니까.


“제안할 내용은 간단해요. 저희가 설립할 레저회사랑 교회랑 제휴를 맺는 거예요. 신도가 헌금을 낸 비용에 따라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그럼···.”

“이해가 안 가세요? 헌금이랑 고객을 저희 법인이 넘겨받는다는 소리잖아요.”


빈정거리는 목소리.

어떻게 말을 해도 못 알아듣냐는, 명백한 무시였다.

당연하게도 기분 나빠지라고 한 말이겠지.


서주가 제 조카를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자기 잘난 맛에, 걸핏하면 이모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지.

분노했고 외로웠고 또, 배신감이 느껴왔을 터였다.

지금도 그런 감정이 떠올랐는지, 어금니를 꽉 물고 있었다.


“너 진짜···”

“벌써 얘기 중이야?”


그때, 멀리서 껄렁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주는 놀라서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왔어?”

“같이 가자니까 성질도 급해서는.”

“당신이 왜···.”


커다란 덩치, 풍성한 노란색 머리카락, 그리고 사나운 미소.

분명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던.


“배신···, 이에요? 어떻게 쟤를···.”

“배신이라는 말은 어이없는 소린데? 우린 제대로 된 협력관계도 아니었잖아. 내가 거의 일방적으로 도와줬지.”

“잠시만 얘기해요! 얘가 어떤 앤지 알면···”


탕···!


녹호는 테이블을 소리 나게 치면서 자리에 앉았다.

얼굴에는 냉기 서린 미소를 품으며, 사나운 눈빛을 내비친다.


“지금 나를 따로 불러내겠다는 거야? 지난번에 확실히 경고해줬는데도?”

“아니, 그게···.”

“원한다면 그렇게 해. 그 대신 밑바닥까지 처박힐 각오는 하고서.”


저번에 만났을 때 서주는 녹호를 모텔로 유인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미행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녹호와 자신은 매우 친하다고.

그러니 예현이 질투하도록 꼭 전달해달라고.


그 여파가 바로 이 순간이었다.

거짓말을 들키면 안 되니,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한다.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럼 자신이 한 일을 주변에 알리는 꼴이니까.


“오냐오냐해주니까 기어오르기는.”

“그게···.”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봐?”


작가의말

설날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다들 즐겁게 보내셨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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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9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6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3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5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5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5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9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2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0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9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 41화. 이간질 +1 24.02.12 39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40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3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4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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